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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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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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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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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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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100화

DUMMY

마지막 손님이었다. 마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저마다 자리를 지켜가며 돌아가야 할 곳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종일 문을 열어둬야 했을 정도로 바빴던 가게의 문이 닫힌 것은 이 마지막 손님이 물건을 받아들고 나간 후였다.


“다들 너무 고생 많았어요.”


여명은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했고, 이에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 멋쩍은 얼굴을 하다가도 앞으로 저녁의 일에 대한 생각으로 여전히 긴장감이 깃든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도 단연 그런 감정이 돋보이는 쪽은 나나였다. 자신이 있던 세계에선 아무 날도 아닌 날을 특별하게 보낸다는 것은 꼭 자신, 백나나의 인생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백면의 인생도 꼭 그러했을까? 품에 작은 화분을 지니고 있는 주화의 모습을 보고 나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건 뭐예요?”


주화는 답하는 대신에 대뜸 그 화분을 나나에게 내밀었다.


“레위시아예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나는 그 꽃의 이름을 물은 건 아니었다. 화분을 들고 있는 까닭을 알고자 하였던 것이었으나, 그녀는 우선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는 꽃이 많지 않았던 나나에게는 꼭 무궁화와 진달래를 알맞게 섞어 놓은 듯한 예쁜 꽃이 화분에 피어 있었다. 말을 마치고도 눈을 거두지 않은 것은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들고 있어?”


나나의 의도를 다시 주화에게 전달한 건 여명이었다.


“아, 도진이 주려고요.”

“저를요?”


뒤에서 채비를 마친 도진이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맞아요. 원래 아직 꽃이 피진 않았던 건데 내가 아까 대신 피워놨어요.”

“왜요?”


나나는 우선 두 가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주화가 그것을 자신에게 건네면서 도진에게 주겠다는 말을 하는 것인지가 첫 번째였고, 왜 굳이 꽃이 핀 상태에서 그걸 주려고 하는지가 두 번째였다. 묻기만 하면 곧 풀릴 궁금증일 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주화의 다음 대답은 세 번째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진이 너도 선물하라고.”


도진을 향해 말했으나, 화분을 내미는 쪽은 여전히 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주세요?”

“아, 그게 말이죠.”


주화는 싱긋이 웃었다.


“오늘 너무 허리만 수그리고 일했더니 몸이 다 뻐근하거든요. 뒤돌기 귀찮아서 그래요. 나나 씨가 대신 전해줘요. 나는 가는 방향도 다르잖아요.”


때론 단순한 것이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나나와 도진은 생각했다. 여명도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시시한 답변을 듣고 꽤 허탈한 듯이 보였으나, 이내 가볍게 웃어 넘기고 말았다.


“그럼 왜 굳이 꽃은······”


이제야 화분을 거리낌 없이 받은 나나가 마저 물었다. 첫 번째 궁금증은 해결되었지만, 나머지 두 가지가 남았기 때문이다.


“아, 그쪽이 더 보기 예쁘잖아요.”


이번에도 단순했다. 만답처럼 늘어놓는 말은 더불어 간결했다.


“감회가 새롭네요.”


호흡을 가다듬고 주화는 모두 화분을 쳐다보고 있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짧게 전한 소감이었지만, 주목을 받기에는 충분한 첫 문장이었다.


“이렇게 한가한 소리를 할 때는 아니지만요······. 모두 알다시피 성인의 목숨이 달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고 있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건 너무 먼 미래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져요. 손만 놓고 있겠다는 게 아니라, 행복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시간으로는 구할 수 없는 게 행복이니까요. 특히 먼 날의 시간일수록 행복을 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시간이에요. 그게 미래든 과거든. 이상한 것 같아요,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기 더 쉽다고 믿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죠.”


되알지게 말해놓고 어울리지 않게 깊은 한숨을 몰아쉬는 주화였다.


“이런 설교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말이죠. 행복이랑 다르게 감회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잖아요. 그걸 표현하는 시간이든, 그걸 가지게 되는 시간이든.”


그녀는 대뜸 고개를 숙였다. 혹시나 몰려오는 감정에 눈물을 참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가장 가까이에 선 나나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곧바로 당차게 얼굴을 드는 주화의 변화에, 민망해진 손은 뒤로 물러서야 했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이 남았지만, 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사장님이 증명해주시는 것 같아서 기뻐요. 얻으려고 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쉬운 게 행복이니까요.”


자신을 바라보는 주화에 여명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따라 웃었다.


“그렇다고 책임감에 더 마음 무겁게 먹지는 마시구요.”


푸스스 헤지게 웃는 그 웃음의 속뜻을 모를 리 없는 주화였다. 그 한 마디에 심장 부근이 따끔하게 찔린 것과 같은 충격을 얻었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퍽 위로였기에 여명은 힘겹게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왜 그래?”


여명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가는 길, 발을 움직이면서도 여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도진에게 나나가 조용히 물었다.


“왜 그러냐니까?”


걷고는 있지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이 없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도진의 시선은 하나의 것만을 대하고 있었다. 바로 화분이었다. 주화와 헤어진 후 바로 그에게 건넨 화분이었는데, 그걸 영 곱지 않은 눈길로 대하는 것이 신기하다가도 저렇게까지 몰두할 일인가 싶어 나나는 그냥 말 건네기를 포기해야 했다. 다시 묻는 말에도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나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여명을 보았다.


“그런데 저희가 정말로 그 자리에 껴도 돼요?”


갑자기 가기 싫어졌다거나 일을 미루고 싶어서 물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제일 긴장한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지만, 낮에 진석의 일을 겪은 이후로 왠지 모르게 이런 쪽 일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이 길을 걸으며 깨달은 나나였다.


“제가 부탁한 거잖아요. 되고 말죠. 오히려 두 사람은 제게 희망을 주거든요.”

“그 정도예요?”

“네. 그리고 든든하기도 하고요.”

“든든하다고요?”

“같은 영혼을 나눈 사이잖아요.”


여명은 후하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딴 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나의 바로 옆에 있는 도진이었다. 그 역시 말수가 줄고 차분해진 도진에게 신경이 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저럴까요? 옆에서 말하는데도 듣지도 않고.”


나나가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마, 갑자기 선물을 받아서 그럴지도 몰라요.”

“선물을 받는데 저런 표정을 한다고요?”


그건 아주 간단한 것이라는 듯이 여명은 가볍게 고개를 움직였다.


“선물이라고 모두 반가운 건 아니니까요.”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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