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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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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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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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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글자수 :
1,286,707

작성
20.09.27 23:48
조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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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115화

DUMMY

“그래서?”


초영이 찻잔을 소서 위에 내려놓았다. 부딪히는 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긴장을 더 돋운 탓에 나나와 태강은 서로를 슬쩍 스쳐보았다. 까칠해진 초영의 눈치를 살피는 행동이다. 와중에 나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자신까지 왜 이런 처지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비탄하며 태강을 몹시 원망했다. 실로 오랜만에 온 양실을 둘러보기는커녕 어디에 있어도 끈질기게 보던 이 얼굴을 이렇게 또 봐야 한다니.


“어쨌든 돌아오신 건 반가운 일입니다.”


초영의 왼쪽에 앉은 달목이 팔짱을 풀며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표정은 조금도 반가운 기색이 서려 있지 않아서 오히려 태강과 나나는 울지 못해 가련하고도 못난 낯빛으로 서로만 쳐다보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초영이 이의를 제기하며 가로막았다.


“뭐? 그럼 초영은 나 안 반가워?”


어린애처럼 울먹이며 태강이 물었다.


“뭐? 왜 이래.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휘저으며 초영이 답했다.


“너무해. 왜 이렇게 다 내 주변엔 너무한 사람밖에 없어?”

“내가 널 얼마나 참아주는데 그런 소리를 하니?”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은 말로 상대방의 감정을 흠집 내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자칫하면 일이 더 꼬일 수도 있었는데, 태강이 스스로 결정해서 저는 참으로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말싸움으로 번질 뻔한 순간에 달목이 끼어든 덕분이다. 결국에 두 성인은 꽁하게 입을 다물며 시선을 돌렸다. 서로의 모습을 최대한으로 피하기 위해서다.


“천규는 도착했습니까?”


그리고 거북한 관계가 금방 회복되도록 달목은 태강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침 자신도 그것을 묻기 위해 따졌던 터라 초영은 아닌 척 굴면서도 눈길을 그쪽으로 두고 말았다.


“응. 백나나 데리고 올 때 같이 데리고 왔어.”

“에? 언제요?”


이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대화에서 물러나 잠자코 제삼자의 자세를 취하던 나나가 격정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분명히 우리 둘만 왔었잖아요!”


처음 심연도에 왔던 날처럼 태강은 바다를 밟으며 이곳에 도착했다. 여전히 신기하고도 이색적인 경험이었지만, 두 번째라 그런지 나나는 어쨌든 침착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이곳에 끌려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림자라도 있었으면 주위를 둘러보기라도 했을 텐데 스치는 사람들은 있었을지언정 따라오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나나는 믿을 수 없는 마음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태강을 바라보았다.


“응? 아닌데? 천규도 같이 왔어.”


간단하면서도 명료하지 않은, 즉 불성실한 답변에 나나의 눈썹이 구붓하게 휘어졌다.


“태강. 이럴 땐 정보를 전해야 할 게 아니라 설명을 해야 알맞은 것입니다.”


안타까운 눈초리로 달목이 그 답변을 교정해주었다.


“응? 설명? 꼭 그래야 해? 어차피 우리 다 같이 왔는데!”

“그러니까 저는 못 봤으니까 이렇게 놀랐겠죠.”


두 어깨를 늘어뜨린 나나는 상당히 허탈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정 그렇다면······ 그러니까 말이지. 백나나 너는 나랑 같이 바다만 걷느라고 촌스럽게 몰랐겠지만 말이야. 내가 천규를 하늘 위로 날려서 심연도에 먼저 도착하게 했거든. 그리고 천규 방의 창문을 열어두어서 그 안에 침대 위에 눕혀놨지. 환자를 먼저 배려한 행동이었지. 그래도 어쨌든 같이 온 건 맞아. 왜냐하면 백나나 네 정수리 위에 천규의 얼굴을 딱 알맞게 맞추어두고 속도를 유지하면서 왔거든. 어때? 세심하지?”


아무튼 천규라는 성인이 어떻게 이곳에 자신과 함께 왔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 나나는 못마땅한 고갯짓을 했지만, 이를 지켜보던 초영의 억색(臆塞)은 더 모질어졌다.


“태강, 알고 있지? 늑장 피울 시간은 이제 정말 없어.”


나나를 향해 으쓱대던 태강은 자신의 바로 앞에 앉은 초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응. 그러려고 심연도에 돌아온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좀 전까지의 장난스럽고 철없던 목소리가 아닌 진중한 목소리로 태강이 말했다. 조금도 꾸중 받을 이유가 없는 당당함에서 나오는 자신감도 느껴진다.


“그나저나 초영, 왜 그렇게 영월 같아? 까칠하고 별로야.”

“뭐?”


그러나 금방 평소의 태도로 돌아와 자신을 놀리는 태강의 태도에 초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도망칠 기회.


“어쨌든 그럼 나가봐도 되지? 내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걱정들 하지 말고!”

“···예.”


초영을 곁눈질하며 작게 이야기한 달목의 대답을 끝으로 태강이 일어서서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종결된 대화에 멀뚱히 앞의 두 성인만을 두리번거리던 나나에게 그는 소리쳤다.


“뭐해, 백나나? 안 오고.”

“저요?”

“응. 나랑 같이 가야지!”


엉겁결에 일어선 나나가 주춤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 태강의 뒤를 따라나섰다. 자꾸 뒤돌아보기는 했으나 마지막에는 완전히 양실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나랑 같이 천규 보러 갈래?”


뒤에 나온 나나가 문을 닫자마자 나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태강이 제안했다.


군말은 더하지 않고 나나는 조용히 태강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복도 끝에는 다시 계단이 숨겨져 있었다. 그 계단을 따라 마침내 3층으로 올라서야 태강은 어느 문 앞에서 멈추어섰다. 3층 복도 가장 끝에 자리한 방이었다.


“어때? 지금 눈을 감고 있긴 해도 나랑 많이 닮았지?”


문을 열고 태강은 바로 침대 쪽으로 직행했다. 마찬가지로 나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머뭇거리는 것을 그가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의자 두 개를 침대 옆에 놓고 먼저 앉은 태강이 천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나나의 반응을 궁금해하였다. 보통은 부정하고 봐야 하는 태강의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야만 했다.


“닮은 게 아니라 이목구비만 놓고 보면 똑같은 정돈데. 쌍둥이예요?”

“맞아. 내가 형, 그리고 천규가 동생.”

“정말요? 그 반대로 보이는데.”


농담 삼아 건넨 말에 태강은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할 뿐, 성을 내거나 토를 달지도 않았다. 그런 태강은 낯설었던지라 나나는 어색하게 두 손을 모아 무릎 위로 올려두었다.


“백나나.”


태강의 활기 없는 손을 붙잡으며 태강이 나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 보니 월계에 와서 자신의 이름을 제일 많이 불러준 사람은 다름 아닌 태강이라는 생각이 나나에게로 찾아왔다. 그러니 이번에는 어떤 불만 없이 그의 부름에 응할 수밖에 없다.


“왜요?”

“내일 나랑 같이 천일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자. 멀지 않을 거야. 근처거든.”

“천일나무? 무슨 볼일이 있어서 그래요?”

“응.”


그 일이 무엇인지 나나가 물어보던 찰나에 태강은 먼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천규를 보내줄 거거든.”

“보내준다고요?”


그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나나가 되물었다.


“내일은 천규가 이번의 삶을 끝내는 날이니까.”


제 동생의 마른 이마를 연신 쓰다듬으며 덤덤하게 꺼낸 고백은 듣는 누군가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막상 형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뜨거워진 나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을 감은 얼굴과 눈을 뜬 얼굴이 이토록 닮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애처롭게 받아들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2 신주원
    작성일
    20.09.28 08:23
    No. 1

    천규 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0.09.28 23:19
    No. 2

    처음 구상하던 때 천규를 아꼈던 탓에 저 역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다음 화는 분량을 조금 욕심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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