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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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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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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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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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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06화

DUMMY

입이 벌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나나가 하품하는 사이로 주변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닿았다. 참고 참다가 피곤한 끝에 내뱉던 그 호흡이 퍽 소란스러웠을 수밖에 없었는데, 한 장의 종이를 넘기는 소리도 놓치지 않는 공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자세를 바로잡는 모양새가 엉성하고 우스웠지만, 앞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도진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슬그머니 제삼자처럼 굴 뿐이었다. 그쪽으로 눈을 흘기면서도 나나는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고 자신 또한 읽던 책에 집중했다.


“이제 책은 좀 그만 읽어야겠어.”


나나가 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서며 한 말이다. 창문이란 창문을 다 열어놓았어도 빼곡이 배열된 책장이 둘러싼 자료실이 그저 숨이 막혔던 그녀는 문을 나서자마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끌 듯이 질기게 이어지는 발걸음은 얼마 가지 않아 곧 멈추었고 구부정한 상체를 그대로하여 나나는 뒤돌아 도진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어울리지 않게 왜 독서를 고집하는 거예요?”


그 옆으로 다가선 도진이 물었다.


“그냥··· 왠지 나답지 않은 걸 하고 싶었어. 그런데 어울리지 않게라니, 말이 좀 심한데? 나도진 독서 좀 한다고 유세를 부리면 그거 다 헛배운 거야.”


인상을 쓰며 나나가 엄포를 놓았다.


“유세는 아니었어요, 나나 씨가 평소처럼 굴지 않으니까 심각하지는 않게 넌지시 던져본 거죠.”

“그래, 내가 지금 도서관에 틀어박혀야 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그럼 어떤 사람인가요, 나나 씨는?”


별 생각도 없이 던진 말에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도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제 나름의 인내를 보여준 것이다.


“몰라. 그걸 알려고 여기에 남아 있어서 벌써 6월, 여름이 되어버린 거잖아. 말이 돼?”

“봄 다음에는 여름이니 그것 자체로 말이 되기는 하죠. 그럼에도 나나 씨가 계속 있어준 건 별도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뻑뻑해진 두 눈이 더 건조해지는 느낌이 들어 나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두 눈을 꼭 감았다 떴다.


“그런데 백면은 꿈에 한 번도 안 나왔어··· 말이 돼? 기껏 저번에 꾼 기억나지 않는 꿈을 확인해 봤더니 그냥 내가 원래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꿈이었다는 게······ 정작 그 꿈 때문에 난 더 돌아가지도 못하게 되었고.”


나나의 어깨가 더 처지는 모습은 착각이 아닐 거라 도진은 의심치 않았다. 그는 한껏 허전해진 그녀의 얼굴에 멀겋게 새겨진 두 눈을 향해 시선을 던지더니 나나가 그랬던 것처럼 눈까풀을 움직였다. 무슨 위로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는 눈을 내리뜨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지 않기로 한 건 내 선택이었지만.”


그러나 나나로서는 딱히 위로를 바라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도진의 대답을 딱히 바라지도 않고서 말을 잇는 나나에게서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두려움은 보였으나, 그렇다고 지금 당장에 느끼는 괴로움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네요.”


그러므로 도진은 어렵지 않게 자신이 궁금한 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응.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어째서요? 모두 궁금해할 텐데.”

“다른 사람들한텐 말했지.”


나나는 머리를 식힐 겸 차가운 벽에 먼저 이마를 부딪혀 왔다. 도진은 그녀가 한 말 때문에 황당해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장면을 지켜보고 말았다.


“그럼 저한테만 말을 하지 않은 건가요?”

“그렇지?”

“그래도 나나 씨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얻을 만큼의 노력은 했다고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군요.”


서운해진 기색을 감출 수 없는 도진의 두 눈에서는 금방 토라지고 만 사람의 심상(心傷)이 공연히 드러났다.


“그야 나도진 너한텐 말할 필요가 없었지. 네가 나한테 말해준 거였잖아.”

“제가요?”


도진에게도 이런 소심한 면모가 있다는 것에 놀라 나나는 가볍게 웃었다.


“백면이 내가 이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를 스스로 느끼길 바랄지도 모른다고, 그런 식으로 나한테 얼마 전에 말해준 게 너였는데 굳이 다시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아?”


순식간에 뒷골을 맞은 사람마냥 겸연쩍어진 도진은 무안한 입모양으로 말하기를 망설였다. 그러다가 끝내 꺼낸 말은 나나가 그 당시 저에게 했던 말을 인용한 질문이었다.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곳인데, 낯선 곳에 머물러도 괜찮겠어요?”


혹여 오해를 사서 밉살스럽게라도 보일까 봐 그는 어서 다른 말을 첨가했다. “비꼬는 게 아니라 나나 씨가 그런 말까지 했는데 여태 이러고 있는 게 제 딴에는 걱정되어서 그래요.”


나나는 처음에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할 방도를 찾았는데, 그리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아서 마침내는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그런 결심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이 사실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항상 웃거나 울거나 둘 중의 하나만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기에 나나는 그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게. 어쩌면 나 정말 백면의 내생이 맞긴 한가 봐.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에 머무르려고 하다니. 아니면 내가 이곳에 머무는 사이에 미쳐버린 건가? 하긴, 이상한 걸 많이 보기도 했지.”


팔짱을 끼며 이마를 맞대던 벽에 이제는 등을 기대어 섰다. 짐짓 유능한 탐정처럼 보이기라도 바라는 감도 없지 않았지만, 도진이 이 장단에 맞추어 줄 리가 없다. 그걸 내다보니 곧 시시해진 나나가 아까와 같이 어깨를 땅을 향해 기울였다. 이참에 화제나 돌려야겠단 생각이 든 나나가 시선도 아래로 떨구었다.


“그건 뭐길래 여기까지 갖고 나왔어?”


도진이 들고 있는 책을 가리킨 것이었다. 나나의 말에 갖고 온 책을 들어 보인 도진이 심상(尋常)한 목소리로 갑작스러웠던 화제 전환을 유순히 받아들였다.


“아, 읽던 책이라 저도 모르게 가져온 거예요.”

“나갈 때까지 갖고 가는 건 아니지?”


다소 기분이 씁쓸해지는 농담이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도진은 미소를 보였다.


“그럴 리가요. 그리고 이건 월계의 책이 아닌데요.”

“그럼?”

“세계에 관한 책이에요.”

“그런 걸 여기서 읽을 수 있다고? 세계에 관한 건 금서 같이 여길 줄 알았는데.”


나나가 화들짝 책을 그에게서 빼앗아 펼쳤다. 그러나 무작정 읽어낸다고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를 담아낸 책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는 없었다.


“도무지 모르겠네. 어디서든 전공자들이나 읽을 법한 책이잖아. 월계에 관한 책이라고 해도 난 믿었을 거야.”

“그런가요?”


도진이 실없는 말로 대꾸했다.


“응.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나나가 책을 도진에게 돌려주었으나 그는 바로 받아들지 않고 오히려 나나 쪽으로 책을 밀었다.


“오늘 하루는 그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때요?”

“이 책? 싫어.”


따라서 나나는 강제로라도 도진의 손에 자신이 빼앗았던 책을 도로 쥐어줘야 했다. 도진 또한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책을 받았다. 나나의 심심풀이 대신으로 도진이 그 까닭을 묻기로 결심했다.


“왜요?”


나나는 입꼬리마저 내리며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말하기도 귀찮다는 얼굴이다.


“아까 말했잖아. 책은 그만 좀 읽어야겠다고.”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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