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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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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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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86,707

작성
20.09.2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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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13화

DUMMY

“와 진짜 오랜만인다!”


태강이 건넨 반가운 인사는 도진의 요리솜씨를 향한 것이었다. 상대는 굳이 반응할 필요도 없이 오색 빛깔의 먹음직스러운 자태로 태강의 감미만 돌게 하면 충분하다. 그는 오랜만에 돌아오기라도 한 듯한 집의 그리운 기운와 집밥의 소담스러운 냄새를 동시에 만끽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른 시간부터 왜 오신 거예요?”


태강에게 나나의 방을 알려주었던 조이가 건너편의 태강을 넌지시 쳐다보며 물었다.


“응? 나 원래 아침형이잖아! 그래서 그러지, 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루도 부지런히 흘러가는 거 아니겠어?”


구태여 지금부터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털어놓고 싶지 않았던 데는 눈앞의 식찬이 탐스러워서 손을 가만히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강은 구미가 동하는 탓에 좀처럼 손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는 사람을 그렇게 깨워요?”


옆자리에 앉은 나나가 그를 실컷 흘겼다. 앉은 자세는 반듯했으나 얼굴빛은 전혀 그렇지 못하기만 하다.


“깨웠다니?” 태강이 오물거리던 입을 급히 뜸들이며 대꾸했다. “그건 내가 깨운 게 아니라 백나나 네가 친히 스스로 일어난 거였지. 게다가 나도 정말 놀랐었다니까? 피해자야, 피해자.”


평소와는 다르게 논지를 분명히 하려는 태강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나나가 분한 마음을 삭이기 위해 눈을 꾹 다물었다. 제법 얄미웠던 말씨가 오늘은 유독 가증스럽게까지 들린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칭하는 뻔뻔스러움까지 더해서 나나의 화를 돋구었다.


“아 맞다.”


눈을 그대로 뜬 나나가 문득 잊고 있던 것 하나를 떠올렸다. 정확히 말해서 잊었다기보다는 태강으로부터 비롯된 소란스러운 아침에 잠시 순위를 미룰 수밖에 없던 것이다.


“오늘 백면이 꿈에 나왔는데······ 갑자기 더럽게 왜 그래요?”


백면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그것이 목구멍에 걸려버린 것인지 나나의 말 중간에 끼어든 태강이 잇따라 콜록거렸다.


“어? 아, 네가 갑자기 말해서 그래. 너무한 거 아니야? 아까도 놀라, 켁, 놀라게 하더니 말이야.”


극구 강하게 변명하는 투에 다른 두 명이 태강을 못미덥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제 말이 부자연스러웠던 것을 감지한 태강이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역효과였다. 몇 걸음 떨어져 뒤쪽에서 식기를 정리하던 도진도 수상해진 낌새에 돌아보며 태강의 변화를 살피게 된 것이다.


“지, 진짜라니까?”


아무리 성인이라고 해도 거짓말까지 완벽히 숨길 수는 없는 것 같다며 그를 제외한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태강에게 집중된 이목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진짜는 말이지.”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로 오는 눈길을 비로소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고 다행으로 여긴 것은 조이가 출근한 후에 잠시 밍기적거리나 했던 도진마저 도서관에 간다며 퍽 여유롭게 나간 뒤였다.


“또 뭐예요?”


멍하니 천장을 감상하고 있던 나나는 갑자기 그 간이 하늘을 통째로 가로채간 도둑을 쏘아보았다. 이미 만난 사람 중에 다음 사람이 있단 백면의 말을 곱씹으며 월계에서 지금까지 만난 인연을 떠올리려던 명상 시간을 앗아간 사람이 달가울 리 없다.


“그러니까 진짜는 말이야, 백나나.”


젖혔던 고개를 바로한 나나가 손끝으로 태강의 이마를 떠밀었다. 가까워진 거리에 그의 속눈썹까지 보이는 것이 짐스럽고 불쾌했다.


“뭐요?”

“내가 찾아온 진짜 이유는 말이야.”

“진짜 이유? 그럼 가짜 이유도 있었어요?”


나나의 빼주룩하게 내민 입에서 뾰로통한 트집이 나왔다.


“응? 아니, 그건 아니었지.”


태강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곰곰이 따져보니 핑계를 대듯이 억지로 말을 도려 들키기는 했어도 거짓말로 새로운 이유를 만들지는 않았었다.


“그래서요? 진짜 이유가 뭔데요? 또 저번에 이상하고 무리한 부탁하려고 온 건 아니죠? 진짜 그거라면 미리 거절할게요.”

“응?”


속내를 예기치 않게 간파되어버린 태강이 맹한 얼굴로 시선을 떨구었다. 아무 말로도 잇지 못하고 잠시 의기소침해진 표정에서 나나는 자신이 짐작했던 것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응? 그게 맞긴 한데, 아무튼 그건 아니거든?”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그게 맞긴 한데 그건 아니라니. 무슨 헛소리 고수들한테만 성인의 자격이 주어지나, 어이가 없어서.”


귀찮아진 나나가 인상을 구기며 백면과 태강을 동시에 비하했다. 하지만 그것에 일일이 성낼 만큼 태강은 온전히 여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진짜 그거 아니야! 왜냐하면 이미 들켜버리고 말았거든. 천규는 그대로 난연에 있긴 하지만 말이야.”

“들켰다고요?”


얼핏 호기심이 생긴 나나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응. 하긴 그 애들을 상대로 들키지 않고 넘어갈 일은 아니긴 했어.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아. 덕분에 내 동생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는 내가 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행이기는 한데······ 설마 그런 감회를 말하려고 온 거였어요?”

“당연히 아니지. 굳이 순서를 정하자면 이건 두 번째 이유야.”

“그럼 첫 번째는요?”


어쩌다가 보니 나나는 태강의 대답을 기다리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모두 들었을 적에는 이미 일에 한가운데로 휘말린 뒤가 될 테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백나나, 네가 나 좀 도와주었으면 해서.”

“네? 결국 이럴 줄 알았다니까. 결국은 그게 그거였잖아요.”


나나는 병원 앞에서 태강이 부탁했던 일을 떠올리며 얼굴을 더욱 찡그렸다. 그 생각을 기다렸단 듯이 읽어낸 태강이 완고하게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그때랑 다른 부탁이야. 전혀. 완전 다른 부탁이라고. 결이 다르다니까?”

“부탁이 뭔데요? 아니, 애초에 왜 저한테 또 부탁을 하는 거예요?”


단방에 거절할 자신을 아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눈치가 없어 정말로 모르는 건지 나나는 태강의 사고방식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너한테 부탁하지 않으려고 했거든?”


태강이 애처롭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래서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 널 고를 수밖에 없었거든.”


사뭇 숙연하면서도 우울해진 태강의 모습에 신경이 쓰인 나나가 눈을 깜빡거리며 뚱한 얼굴을 하였다.


“정말로 널 안 고르려고 했거든? 그래도 진짜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었어.”

“왜, 왜요?”


말까지 더듬게 되어 긴장한 나나와 달리 태강의 우울감은 도리어 안정적인 지점에 접어들었다. 이것만큼은 말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네가 정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 이야기하겠다는 자의 귀여운 거드름이다.


“네가 제일 한가하잖아.”


자신을 저격하는 홀가분한 억양에 맥이 빠진 나나가 코언저리의 주름을 더 진하게 만들어 보였다.


“한가하다니요? 저 하나도 안 한가하거든요?”

“아니야. 모두 직업이 있어서 바쁘잖아. 도진이도 공부하느라 바쁘고. 그런데 넌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으니까 나는 너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 거야.”


재빨리 따지고 들었지만, 상대는 여전히 침착했다.


“됐어요. 부탁이 뭔지 모르지만 무조건 거절.”


자리에서 일어선 나나가 주먹을 부르쥐며 등을 보였다.


“안 돼! 나 아직 할 말 다 안 끝났단 말이야.”

“들을 마음 없거든요!”


뒤를 보지도 않고 소리친 나나가 깔낏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태강이 서두르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길을 가로막았다.


“진짜 안 돼!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해.”

“됐다니까요?”

“안 된다니까?”

“아, 그래서 부탁이 뭔데요?”


짜증에 분노에 여러모로 한껏 언성을 높이며 나나가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나랑 같이 심연도에 돌아가자.”


그러나 태강의 부탁에 쳐든 고개는 도로 내려오고 말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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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2 신주원
    작성일
    20.09.26 23:45
    No. 1

    뭔가 나만 아는 재밌는 소설이여서 좋긴한데 인기 많아지면 좋겠당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0.09.27 00:21
    No. 2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행복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의 졸작을 이렇게 좋게 생각해 주시고 계속 읽어주시는 독자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힘이 되고 그로부터 저는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실망하시지 않도록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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