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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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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연재수 :
3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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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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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글자수 :
1,286,707

작성
20.09.2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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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111화

DUMMY

“정말 그랬다니까? 진짜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어.”


나나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오늘의 일을 쪼르르 늘어놓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거실에 모여앉아 모처럼 만에 갖는 티타임이었다. 도진과 조이는 시큰둥하지는 않더라도 내습하여 오는 미래에 별다르게 경악하는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식사 시간 내내 자신이 했던 말을 나나는 아직도 되풀이하는 중이다.


“불안해서 그래요?”


조이가 끌어안은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나나를 쳐다보았다. 그 말에 나나는 옆머리를 꼬던 손짓을 멈추었다.


“솔직히··· 조금은요.”


바로 인정하는 태도는 보다 더 그녀의 장점이었다.


“그렇게 불안하면 제가 매일 확인하도록 하죠.”


도진은 하나의 방도를 제시했지만, 도리어 그는 스스로가 이를 너무 쉬운 문제로 여기며 머리를 굴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거울이 없으면 난연에 가지도 못하잖아.”


옆에 앉은 조이가 그의 동요하지도 않는 도진의 팔을 저지하며 말했다. 나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후 기가 찬 표정으로 도진을 정답지 못하게 흘길 뿐이다.


“아··· 그렇네. 미안해요, 나나 씨.”

“됐어. 넌 그냥 도서관이 있기만 하면 애잖아.”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 그러했다. 말로는 그럴듯하게 나나를 돕거나 보살핀다는 의도로 난연으로 매일같이 방문하던 도진이었지만, 사실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데는 난연에도 도서관이 있었다는 점이 제일 큰 역할을 했다. 이를 들켜버린 도진은 쌀쌀맞은 나나의 대답에 황급히 최선의 대안을 생각해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흑석 님이 계신 이상 언제든 거울은 다시 만드실 수 있을 테니까.”


도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지금까지 떠든 일을 제외하고 나머지의 것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야담이 낮에 이런 소리를 했던 것 같다. 정말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우선은 자신이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난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먼저 마음을 확고히 해야 했다.


“그런 성물을 함부로 그런 데에 방치해도 되는 거야?”


그래도 이런 건 혼자만이 은밀하게 고민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나는 자신에 대한 걱정을 거울에 대한 걱정으로 돌리고 말았다.


“안 되겠죠. 저 역시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빌린 물건을 그렇게 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고.”


도진은 상식의 선에서 알맞은 답변을 찾아냈다.


“그런 거라면 저도 조금 염려가 되긴 해요.”


조이도 이에 찬동하는 투였다.


“그런데 난연에는 인사도 못 드리고 말았군요.”


그러다 도진은 문득 주화와 여명에게 사정을 말하고 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럼 그쪽은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어리둥절해진 조이가 연신 좌우를 둘러보며 난색을 표했다.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나나는 등을 바로 펴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어차피 내가 말했으니까.”

“나나 씨야 이야기를 드렸지만, 저는 따로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조금 걸리거든요.”

“어쩔 수 없었잖아, 버스 시간 때문에. 나도 자세한 설명까지 한 것도 아니야. 괜찮지 않을까? 어쨌든 아예 이쪽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또 나중에 찾아가면 되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조이는 불안에 움직이던 얼굴을 멈추었다. 그러나 대화 끝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지만 도진은 충분한 위로를 얻지 못한 사람처럼 낯빛이 옅게나마 탁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가 꺼낸 질문에 세 명, 아니 네 명은 잠시나마 묵언을 고집했다.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틀림없이 백면의 영향 아래 여전히 놓여 있었다. 게다가 천일나무가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공간을 무구하게 확장하듯이 백면의 영향은 날이 갈수록 심대해져만 갔다.


“일단은 말이지.”


자신이 적어도 오늘 하루치의 사색은 응당 해내었다고 믿은 나나가 거실의 분위기를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다들 자러 가는 게 어떨까?”


말이야 그렇게 능청스럽게 했다지만 잠을 청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닌 날이다. 뒤척이기에도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난 터라, 이미 일어난 일과를 되짚기도 피곤해졌다. 나나는 감았다가 아쉽게 뜨게 된 눈으로 무언가 놓고 온 것이 있는 것처럼 어두운 천장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돌아가는 날이 올 때까지는 항상 제 손에 쥐고 있을 줄 굳게 알고 있던 거울을 홀라당 잃어버린 꼴이 되었다. 야담은 그것을 빌리려고 했다고 해도 어쨌거나 지금은 자신의 손을 떠나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는 처지에 처한 거울이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서 나나는 혼잣말로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 말은 이기죽거리는 것인지 흥얼거리는 것인지 모를 애매하고도 짓궂은 목소리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백면의 발성이었다.


“안녕.”


백면은 벽면에 비기고 있던 몸을 일으켜 나나의 앞으로 왔다. 그가 걸어오는 뒷모습이 거울에 비추어 고스란히 나나의 두 눈에 담겼다.


“이번 꿈에서는 넌 말을 못 할 거야.”


사실이었다. 나나는 굉장히 분한 얼굴이었다. 그에게 언힐을 주며 누가 옳거니 면론을 할 작정이었으나 입은 떨어져도 제 안에 품은 이야기가 밖으로 굴러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정했으니까.”


백면은 시시콜콜한 것은 질색이라는 불만의 눈빛으로도 나나와의 눈맞춤을 피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것이 그의 기준에서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었다.


“오랜만이잖아? 내가 왜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는지 이제는 좀 알겠어?”


눈을 부릅뜬 나나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비록 꿈일지라도 실어(失語)가 가져다주는 충격은 상당했다.


“아직 모르는 모양이네. 그럴 것 같았어.”


백면은 허리를 숙이며 자신의 시야를 나나의 것에 비슷하게 맞추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네가 말할 수 없는 거고.”


마주친 두 사람의 눈가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촉촉했다. 한쪽은 격분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다른 한쪽은 무엇 때문인지 아직은 모른다.


“걱정하지 마.” 백면이 말했다. “네가 말할 수 없게 된 만큼 내가 더 많이 말해야 하는 거니까.”


나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백면의 입 모양을 매섭게 노렸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줄게.”


그러나 그 입 모양은 감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선을 그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2 신주원
    작성일
    20.09.24 17:36
    No. 1

    오늘도 감사합니다 연제해주셔서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로즈리
    작성일
    20.09.25 00:15
    No. 2

    저 역시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작품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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