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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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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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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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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104화

DUMMY

배석(陪席)이라 불러도 좋으련만,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자리는 이름이 있는 자리보다 더 불편하기만 하다. 나나는 노파 옆에 앉아 그 엎드린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노인의 몸 상태가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그렇게라도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언가 지금 상황에 맞지 않은 헛소리를 늘어놓을까 하는 두렴에 함구하고 싶었던 탓도 있다.

그런데 도진은 자신이 이 집에 방문했을 적부터 내려놓았던 화분 옆에 책상다리를 한 채 파겁한 듯한 어엿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해야 할 때는 도리어 그러하지 않고 그러하지 않아야 할 때는 반대로 그러한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던 나나는 단순함이라곤 좀처럼 없는 사물을 바라보듯이 그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괜찮으세요?”


노파가 그 순간에 신예하였기에 나나와 도진은 하마터면 눈이 마주칠 뻔했다. 다행히도 그녀가 먼저 시선을 거둔 다음이었다. 나나의 옆으로는 옴짝꼼짝도 하지 못하고 연신 눈치만 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예전의 섬뜻한 눈동자가 떠올라 안기 꺼려질 거라고 생각했으나, 할머니의 파리한 신음은 마치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나나에게 기억 속 감정까지 되살릴 정도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나란히 세 여자가 앉게 된 이상, 몸이 바싹 굳은 여자 또한 나나의 물음에 자동으로 고개를 뒤쪽으로 내밀어 노인의 상태를 내다보았다.

노인은 별다른 언어 없이 미세하고 연약한 고갯짓으로 대답했다.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주위의 모두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잠시 후 상체를 살짝 일으키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므로 모두 속내를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무슨 병이 있으신 건 아니에요?”


급한 대로 비상약을 어수선하게 챙겨 집어 넣고서 여명이 방에서 나왔다. 그는 손잡이가 달린 버드나무 바구니를 야무지게 내려놓았다. 꼭 진귀한 유물을 몰래 보고 말아버리는 사람처럼 나나가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는 사이에 여자가 기민하게 상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진찰을 해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병이 있었던 건 아닐 거야.”


그리고 과단성 있는 말을 내놓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가 상자에서 꺼낸 후 내민 약 두 알은 나나의 손을 지나 노파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도진이 한 입도 대지 않았던 식은 차를 물로 대신하며 진통제를 삼킨 것이었다.


“아······ 아무래도 그전까진 급작스럽게 편찮으신 적은 없으니까.”


자신이 꺼낸 말이 고독과 같은 침묵을 몰고 온 것을 느낀 여자는 애써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군요.”


화분 받침의 테두리를 매만지며 도진이 답했다.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모두 애쓰고 있었다. 서로를 이미 만났거나 서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으나 그런 건 아무 소용도 없기에 무신론자도 되지 않는 회의주의자들의 모임처럼 애써서 침묵을 최선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도진의 대답 이후에도 얼마간은 대화라는 것이 오가지 않았다.


“이미 약을 드시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안정을 취하실 수 있도록 따뜻한 차라도 내올게요.”


계속 서서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던 여명이 홀연히 뒤돌았다. 도진은 자신이 대신 나서서 차를 내오고 그를 이 자리에 묶어두고 싶었지만, 우선은 여명이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게 두었다. 그가 현관문 쪽을 향해 흘금 곁눈질한 것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약이 어느 정도 들기 시작한 것인지 노인은 힘겹게 일어나 똑바로 앉으며 여명에게 이야기했다. 이때는 나나도 늙은 여자의 등을 두드리던 손을 무릎 위로 모아놓고 있었다. 다시 새롭게 따뜻해진 차주전자를 내려놓는 여명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떨지 않기 위함이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나는 제 옆에서 해가 지듯이 떨어지는 고개 하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실 수도 있죠. 혹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신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다행이에요. 갑자기 그렇게 편찮으셔서 놀랐지만 이 정도였던 게 행운이죠. 다행이에요.”


여명은 입꼬리를 당기며 상당히 애꿎게 웃었다. 이는 노인으로 하여금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나이가 있으니 걸음이 꽤 느릴 수밖에··· 어멈만 고생했지, 뭐냐.”


오는 길에 걸었던 적보다 멈춘 적이 더 많았던 것은 손자에게 비밀로 할 생각이다. 여자는 노인의 거짓말에 더욱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러자 더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겠던 여명은 하는 말에 반응도 않고 돌연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는 예상된 일이었다.


“마당에 치워야할 게 있어서, 잠시 다녀올게요.”


말릴 새도 없이 여명은 달아났다. 이에 도진과 나나의 눈이 마주쳤다. 방도를 모르겠어서 난감한 나나가 난처한 기색을 내비치자, 도진은 어깨를 들먹이며 창 너머를 보았다. 어둠은 어둠인 채로 비추는 것이 창문이었기에 소리는 느껴도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나나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장의 첫머리는 매우 자신이 없었고 송름스러웠다.


“어머님께서 도와주시겠어요?”


그래서 도진이 뒤를 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말에 여자가 화들짝 얼굴을 들었다. 자신을 사납게 벽에 밀어붙이고 울던 여명의 모친은 겁먹고 있었다. 자신을 밀어붙이고 말 이 상황을 겁내고 있었다.


“밤이라 시야가 어두워서 오래 걸릴지도 모릅니다. 화분이 깨진 것이거든요.”


여자는 마땅한 이유가 생겼음에도 여전히 망설이는 듯이 보였다. 이제는 나나가 거들어야 할 차례였다.


“할머니는 잠시 저희가 챙길게요.”

“그래,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으니 신경쓸 필요 없다. 가서 여명이 좀 도와주렴.”


노파까지 나서고 나서야 권유가 마무리되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용기를 아껴 대신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해요.”


그리고는 안쪽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여자의 사죄에 놀라지 않았다. 여자는 애초에 누구에게라도 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던 탓에 바로 발을 움직였다. 그녀가 이른 곳은 현관문이었다. 신고 온 슬리퍼에 간단히 들어가는 발이 야속했는지, 나갈 준비를 마치고도 몇 초를 더 망설였으나 결국은 밖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붉은 원피스가 밤의 깊은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소리만으로 들려오던 여명의 기척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멈추었고, 이윽고 조금 오랜 시간이 지나자 다시 그의 움직임을 실내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조금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더 수다스러운 생동이 들려왔다.


“고맙네들.”


나나의 손을 붙잡아 오며 노인이 말했다. 밖의 두 사람이 여전히 조용한 것처럼, 안에 있는 두 사람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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