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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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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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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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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잔비어 요새

DUMMY

***


잔비어 요새.


위대한 남방의 방벽.


반왕의 나라에서 극남(極南) 요새이자 반왕이 신임하는 신(新)귀족이자 장군 자넷싱 백작이 다스리는 도시인 잔비어는 장구한 성벽, 무수한 인간, 투쟁의 역사가 임재한 인간의 도시였다.


10미터도 넘어가는 상처 많은 성벽은 잔비어 요새가 견뎌냈던 외세 침략의 인류 역사를 완연히 드러냈다.


잔비어 요새 남쪽 성벽 꼭대기에는 전설적인 다크엘프 장군 아즈엘이 남긴 저주받은 상흔이 선명했다.


탁! 탁!


요새의 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두꺼운 갬비슨을 입고 투구를 쓴 채 창끝으로 툭툭 성벽을 때리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리고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다음!”


“아이고, 나리. 늘 검문으로 고생하십니다. 이것 좀,”


간사한 수염을 단 상인 하나가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병사 쪽으로 밀어 넣으며 헤헤 웃음 지었다. 순박함을 가장한 웃음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위기가 풀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훌륭한 상인이었다.


“어허, 이 사람이. 수비대장님이 아시면 경을 칠 일이야!”


병사는 주머니를 은근히 밀어내는 체하며 성을 냈는데 진심으로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호통이 호통이되 부드러운 호통이랄까.


상인은 노련하게 대처했다.


“그럼요, 그럼요. 대장님 몫도 제가 어련히 준비하지 않았겠습니까.”


“허험. 그래. 경우를 아는군, 그래. 젤리코 상단이라. 저기 마차 뒤쪽 까봐. 어어? 이거 금지 품목 아냐? 이 자식이!”


수레의 건초더미를 들추자 엿보이는 술 냄새나는 나무통과 알 수 없는 액상이 든 유리병들. 잔비어 요새는 주기적으로 금주령이 내려지는데 그때마다 술은 금지 품목으로 들어갔다.

이름 모를 액상이 든 유리병은 마약류거나 기타 병사들의 사기 저하 물질로 분류되어 압수해야 할 품목이었고.


검사하던 병사는 화를 잔뜩 내며 수레 안에 있던 물품의 반절을 꺼내 병영으로 가져가게 시켰다.


뇌물까지 주고받으며 좋게 흘러가는가 싶더니 상인은 밀수꾼이었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그래도 뇌물을 주고받아서 그런지 누구 하나 감옥에 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상인은 자신의 밀수품이 절반 압수되는 것을 보고는 절규하며 소리쳤다.


“나리, 나리!”


“대충 압수해! 경비대를 위해 기부금을 냈으니 이정도로 끝난 줄 알아. 다음!”


그렇게 금지 품목을 밀수하려는 밀수꾼은 절반의 물품만 가지고 터덜터덜 성문을 통과했다. 아마 압수된 금지 품목은 위로 상납한 뒤 병사들이 즐길 터였다.


금지 품목을 압수해놓고 병사들이 즐기다니!


엄격한 듯하면서도 엉성한 검문 기준은 요새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자잘한 분쟁은 거의 없지만 아주 가끔 한 번 분쟁이 생기면 크게 날 수밖에 없는 잔비어 요새는 늘 엉성한 듯하면서도 엄격한 경계 수준을 유지했다.


분쟁이 자주 발생하지 않아 일상에서 오는 권태는 필연적으로 그들을 엉성하게 만들었다. 뇌물을 받고 처벌을 경감하고 금지 품목을 절반만 압수하는 게 바로 그 권태였다.

그럼에도 금지 품목을 단속하고 수상한 자를 내쫓는 등 이를 묵인하지 않고 통행하는 이들을 못살게 구는 건 큰 분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귀가 끄는 수레 등짐에 앉은 동훈이 경비병들의 단속을 보고 활을 손질하고 있는 반다르에게 물었다.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할까요?”


반다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베로니카 상단에서 붙여준 이를 슬쩍 한 번 보았다. 저들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듯.


베로니카 상단의 집사 알버트가 붙여준 상단 용병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지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기사님. 저희 쪽에서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곧이어 베로니카 상단의 차례가 되었다.


베로니카 상단의 길지만 상처 많은 행렬은 패잔병처럼 주눅 들고 지쳐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마차와 수레는 구석구석 엉망이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망가진 상단 행렬은 성문 앞에 섰다.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는 이들도 긴 상단 행렬에 이쪽을 흘긋거리고 있었다.


베로니카 상단의 책임자가 누구냐는 말에 집사 알버트를 살폈다.


상행 책임자는 달아났고 여기서 가장 높은 이는 알버트. 하지만 알버트는 움직이지 않고 옆에 있던 상행의 이십인장 돌프를 향해 눈짓했다.


돌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손을 크게 흔들며 누군가에게 인사했다.


“윈스턴!”


“돌프! 이런 모지리. 또 객지를 떠돌고 오는 참이야? 이게 다 뭔가? 아주 호되게 당하고 돌아왔군. 용이라도 만난 건가?”


고참 병사인 윈스턴은 성문 근처에서 불만 있는 표정으로 뚱하게 서 있다가 자신의 고향 친구를 보고 슬쩍 웃으며 다가왔다.


상단의 행렬이 너무 처참하기에 윈스턴은 친구를 향해 농담을 던졌고 얼결에 던진 농담에 정곡을 찔린 돌프는 잠시 멈칫했지만 천연덕스럽게 받아쳤다.


“친구가 상단에 들어갔으면 응원을 해줘야지, 객지를 떠돈다고 그래?”


용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거론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지금 용을 물리친 그 주인공이 이곳을 서슬 퍼렇게 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어찌 됐건 요새의 성주에게 보고해야 하는 일이지만 공공연하게 퍼뜨리는 건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터였다.


돌프의 너스레에 윈스턴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문 경비는 요새 내에서 너도나도 맡길 원하는 직위였다.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받는 돈도 돈이지만 성문 경비는 명예로운 일이고 사람들을 마주하는 고된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었다.


돌프는 그런 명예로운 일을 그만두고 스스로 상단에 들어가 고작해야 스무명 남짓의 부하들을 다루며 고생을 자처한 이였다. 그는 고향 친구들, 그러니까 잔비어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좋은 직장 때려치고 고생하러 간 머저리로.


물론 같이 성문 경비를 맡았던 윈스턴이나 그의 친한 친구들은 돌프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도 알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에 그렇게 말하는 놈들의 주둥이를 두들겨주지만 그들도 돌프가 스스로 고생길로 향했다는 말에는 이견이 없었다.


“객지 떠도는 걸 객지 떠돈다고 그러지 뭐라고 그러나? 잘 나가는 성문 경비 일 그만두고 상단에 기어들어가서는.”


윈스턴의 혀 차는 소리에 돌프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고생하고 돌아온 길에 만난 친구를 향해 투정 부리듯 이야기할 뿐이었다.


“됐어. 알잖아. 난 여기가 좋아.”


“안타까워서 그렇지. 금지 품목은 없지? 범죄자를 숨겨주고 있다거나?”


윈스턴의 가벼운 물음에 돌프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집사님도 오랜만에 뵙는군요! 통과!”


그렇게 베로니카 상단의 검수는 끝이 났다. 완전히 돌프를 믿기 때문에 성문 경비들은 마치 가족처럼 그들을 들여보냈다.


동훈을 비롯한 일행들이 수레에 걸터앉아있어도 그들은 본체만체했다. 전혀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수상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였다.


가족의 일행은 역시 가족이라는 듯 윈스턴은 돌프와 떠들며 가끔 웃었다.


돌프는 나중에 윈스턴에게 따로 와이번과의 조우, 용과의 일전을 전할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기사님, 디오르 경.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


베로니카 상단 집사의 대접은 더욱 깍듯해졌다.


동훈이 잔비어 요새까지 오며 있는 몬스터 토벌에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상단 입장에서 용을 무찌른 디오르 경은 대단한 경지의 기사였다. 그런 기사는 자신의 경지만큼이나 도도한 콧대 또한 높아서 쉽사리 칼을 뽑는 경우가 없었다. 특히나 기사가 사소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못 본 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사소한 일이 대단한 경지에 오른 기사의 입장에서나 사소하지 1단계, 2단계 경지에 머무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상단을 노리고 달려드는 몬스터의 경우가 그러했다. 고블린이며 오크 같은 떠돌이 몬스터들의 습격은 대단한 경지의 기사에게는 한 칼도 들어가지 않을 같잖은 일이지만 용병이나 상단 사람들은 때때로 목숨이 달아나기도 하는 심각한 이벤트였다.


그런 상황에서 동훈은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앞장서서는 손에 피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동훈 덕분에 상단은 아무런 피해 없이 요새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동훈을 두려워하던 상단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두려움이 경외로 바뀐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동훈이 다가가면 슬금슬금 피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건량이나 술 같은 것을 동훈에게 먼저 주려 다가오곤 했다.


물론 동훈으로서는 레벨업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렇게 동훈은 26레벨에 도달하게 되었다. 왕의 축복을 부단히도 소모했기에 얻을 수 있는 수확이었다.


요새의 가장 외곽 성문을 지나자 내성의 성벽이 보였다. 내성의 성벽은 고초를 겪은 외곽의 성벽보다 더 오래되어 보였다. 외곽 성벽보다 상처는 없었지만 벽을 이루는 돌이 확연히 오래된 것으로 보였으니 아마 외곽 성벽과 내성의 성벽은 지어진 세월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요새의 내성은 마치 궁전처럼 생겼다.


요새라고는 하지만 이곳 역시 일종의 성이었다. 요새로 쓰이니 요새라고 부를 뿐.

동훈이 아는 역사에 따르면 이곳은 과거 누군가의 성으로 쓰였던 곳이었다. 이들이 고대라고 부르는 원작 웹소설판 주인공의 왕국 시절의 일이었다. 그러니 내성과 내성벽은 그때 쓰였던 고대의 성벽일 것이고 외곽에 세워놓은 성벽은 이후에 이곳을 요새화할 때 세운 성벽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동훈에게 실제 눈으로 그것을 보는 건 사진으로만 보던 유럽 성채를 맨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한 감동이 있었다.


“우와, 무슨 궁전 같네요.”


동훈의 감탄사에 촌놈 보듯이 보는 시선이 따라붙었다. 일행인 애스톨이 이때다 싶어 놀리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애스톨은 동훈이 용을 물리치건 왕을 물리치건 그를 대하는 태도에 변함이 없었다. 참 한결 같은 사람이었다.


“저건 요새 내성입니다. 반왕의 궁전에 가면 까무러치겠군요. 하하!”


야옹.


니아 아가씨도 한심하다는 듯 동훈의 발목을 지나며 낮게 울었고 동훈은 그녀를 툭 발로 차며 불만을 표현했다. 애스톨이야 사람을 놀리기 좋아하는, 심지어 반다르까지 놀려먹길 좋아하는 인간이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고양이에게까지 놀림을 받아야겠는가.


밀침당한 니아 아가씨는 분노의 하악질을 시전했지만 동훈은 무시해버렸다.


“잔비어 요새 내성은 궁전처럼 크게 지어졌죠. 고대왕국 시절에 지어진 성이라 대륙의 신식 성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웅장하죠. 웬만한 왕의 궁전에도 비견할 거예요.”


라피드만이 동훈을 두둔하며 궁전 같은 내성의 대단함을 설명해줬다. 방랑 기사로서 떠돌며 보고 들은 풍문은 꽤나 두터워서 식견이 풍부했다.


반다르는 내성을 바라보며 길게 탄식했다. 왕의 요새 잔비어의 흥성은 반왕의 치세를 설명하는 것 같아서. 인상을 찌푸린 반다르는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가 진짜 성이라 부르는 것들은 고대왕국이 남긴 5개의 고성(古城)과 17개의 부성(富城)을 일컫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대한 5개의 고성은 각기 다른 강력한 세력의 참칭자들이 장악하고 있고, 17개의 부유한 성 역시 여러 참칭자들이 장악하고 있지.”


빙글빙글 웃던 애스톨이 반다르의 말에 덧붙였다.


“반왕의 궁전도 17개의 부유한 성 중 하나에요. 아마 17개의 성 중 가장 부유할지도 모르죠.”


요새의 성문을 지나 포장된 가도를 달리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저 돌을 조금 박아놓은 것뿐이라지만 바깥의 거친 땅과는 천지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단의 사람들도 요새에 들어오니 집에 도착한 것처럼 많이 풀어졌다. 마치 군대에서 행군할 때 막사가 보이기 시작하면 엄청 풀어지지 않던가. 이들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한편 오히려 긴장을 끌어올리는 이들이 있었으니.


동훈 일행 중 줄곧 말이 없던 엔솔과 리옹, 두 종자 인질이었다. 둘은 당초 잔비어 요새까지 길 안내의 임무를 맡겠다고 자처하여 지금껏 잔비어 요새까지 길 안내를 해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베로니카 상단과 조우한 이후로는 할 일이 없어진 상태였다.


엔솔은 처음 보여줬던 말빨을 숨긴 채 아무 말도 안 하고 정말 인질처럼 굴었고 자신을 정말 인질이라고 생각한 리옹은 혹시 기사의 기분이 뒤틀려서 처형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따라다녔다.


누군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용기를 냈다. 리옹이었다.


솔직히 동훈은 두 종자 중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는 엔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리옹이었다. 동훈은 엔솔이 자신을 볼 때 눈 안쪽에 도사린 은은한 꺼림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돌한 꼬맹이. 분명 녀석은 자신이 모시던 기사 알망 보다 강한 동훈의 경지를 제멋대로 가늠했을 것이다. 속이 깊은 녀석이니 동훈을 판단하고 재단했을 것이며 속내를 어느 정도 드러냈을 때는 동훈이라는 사람의 정도를 속에서 어느 정도 그려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자신이 그린 것고 다른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는 법이었다.


엔솔이 가늠했던 동훈은 기껏해야 알망을 이길 정도의 3단계쯤의 경지를 예상했으며 그의 성정 역시 함부로 인질인 종자들을 죽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유한 것으로 확인했을 터.

근데 동행하며 보니 동훈의 경지는 요행이었지만 용을 물리칠 정도였고, 목숨을 거는 과단성은 지나칠 정도였다. 그러니 엔솔이 판단하기로 동훈이 자신의 깜냥을 넘어선 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저희의 안내는 여기까지예요. 이제 저희는 가도 되나요? 잔비어 요새까지의 안내가 약속이었잖아요. 엔솔, 가자. 아버지께서 걱정하실 거야. 알망 경께서는 돌아오셨는데 우리는 못 돌아왔잖아. 어쩌면 아버지께서 우리의 장례식을 치르고 계실지도 몰라.”


리옹은 말미에 제 눈을 꼭 감으며 마지막 용기까지 짜내는 듯했다.


“가도 좋다. 너희는 너희의 일을 다 했어.”


리옹은 주먹을 꽉 쥐며 아자, 하는 자세를 취했다. 엔솔의 어깨를 툭툭 치며 즐거워했다. 리옹의 표정은 흡사 죽을 고비에서 살아 돌아온 생환자의 표정이었다. 동훈은 리옹과 엔솔에게 손을 댈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말이다.


엔솔은 마지막으로 동훈을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특유의 앳되고 중성적인 목소리로.


“안내할 것도 없었지만요. 길을 조금 짚어준 게 다였네요. 당부드리지만, 조심하세요.”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던 엔솔은 그렇게 자신의 친구 리옹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갔다. 아마 리옹의 집으로 가는 것이겠지.


엔솔은 끝까지 자신의 속을 전혀 드러내 보이지 않았고 그저 리옹과 간간히 대화를 나누며 리옹과 나란히 걸어갈 뿐이었다.


엔솔은 그렇게 떠나갔다.


***


리옹과 엔솔이 집에 돌아가는 길,


리옹은 아직 떨쳐내지 못한 두려움에 목소리가 떨리면서도 차오르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영웅담을 떠벌이는 모험가처럼 엔솔에게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엔솔, 정말 무서웠어. 저 사람들 봤잖아. 알망 경을 이상한 마법으로 사라지게 한 것도 그렇고 와이번과 용을 상대로 칼을 뽑아 들었을 땐 다 죽었다고 생각했다니까? 저 미친 기사는 미친 듯이 강하고, 그냥 미쳤어!”


“그래, 맞아. 우린 미친 기사의 손에서 벗어나 잔비어 요새, 우리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지.”


그렇게 대꾸하는 엔솔의 목소리는 왠지 쓸쓸했다.


의기소침한 친구의 모습에 리옹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을 억누르고 넌지시 물었다. 리옹은 엔솔의 꿍꿍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니지, 그의 아버지도 알았으나 순전히 허풍으로 여겼지.


“...엔솔, 괜찮겠어? 저 사람들을 통해 뭘 하려던 거 아니었어? 네, 네 계획 말이야.”


“아니야. 저 사람들은 너무 위험해. 너무 강하고, 너무 정의감 넘치지. 저런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말 거야. 난 아버지의 마지막 탐험을 문제없이 완성시켜야 해....”

그렇게 말하며 앞서 걸어가는 엔솔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모험가였던 아버지의 마지막 탐험... 기사의 종자가 되어서도 엔솔은 왜인지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한과 유산에 미련을 가졌다.


“언제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리옹은 아무래도 좋았다.


엔솔은 언제나 이상한 계획을 꾸몄고 그건 위험하거나 황당했다.


아버지는 가끔 엔솔이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는다며 애는 똑똑한데 과대망상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뒷담화를 늘어놓곤 하셨는데 리옹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면서도 아버지의 말에 일부 동의했다.


지금은 요새에 돌아와서 좋고, 집에 돌아와서 좋았다. 그것도 멀쩡한 몸으로!


저런 위험한 기사와 엮이려 했다니, 차라리 뜻을 이루지 못한 게 엔솔에게도 좋은 일일지 몰랐다.


리옹은 집에 갈 생각에 희희낙락이었다.


***


딴딴따다-


“모험가 샹트푸의 마지막 모험에 대한 노래라네~ 오오~ 그의 위대한 모험심을 찬양하세~”


베로니카 상단과 연계된 여관은 잔비어 요새에서 손꼽히는 고급 여관이었다.


여관에서 초청한 음유시인 뒤로 악단이 연주하고 그 위로 음유시인의 노래가 얹어졌다. 낮고 묵직한 음유시인의 노랫소리는 여관 1층에서 운영하는 펍을 흥겨운 분위기로 만들었다.

펍에 앉은 사람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펍의 분위기를 즐겼다. 이 여관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고 베로니카 상단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만 모였기 때문에 신분이 귀하거나 상단 소속이거나 상단이 고용한 이들만 있었다.


소란을 피우거나 피울만한 사람이 없다는 건 펍의 분위기를 풀어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엄선된 이들만 이곳에 드나든다는 사실 역시 안에 있는 사람


그런 펍 안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동훈과 일행들.


동훈은 술을 따라놓은 잔을 제사라도 지내듯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고, 반다르와 애스톨은 술을 못 마셔 죽은 귀신이라도 들린 양 술을 퍼댔다. 라피드는 아예 술을 시키지도 않은 대신 식사를 시켜 깨작거렸다. 니아 아가씨와 반다르의 사냥개는 테이블 밑에 얌전히 배를 깔고 누워 우유를 할짝대거나 동물의 뼈를 씹었다,


동훈은 고민하고 있었다. 더없이 침중해진 동훈의 표정은 흡사 세상을 떠안은 고민을 하는 듯했다.


“하아, 돈을 이렇게 달라고 한다고? 게임보다 더하네? 현실은 언제나 게임보다 더하다, 이거야?”


동훈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눈앞에 뜬 메시지를 노려봤다.


[동료]왕의 축복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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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왕의 축복과 장군 자넷싱 23.06.18 58 2 19쪽
» 잔비어 요새 +1 23.06.16 67 3 19쪽
114 비밀 경매(4) +1 23.05.20 66 2 28쪽
113 비밀 경매(3) 23.05.13 65 2 15쪽
112 비밀 경매(2) 23.05.07 85 2 20쪽
111 비밀 경매 23.05.05 91 2 23쪽
110 갤러리의 비밀 모임(2) 23.04.28 94 2 16쪽
109 갤러리의 비밀 모임 23.04.20 135 2 22쪽
108 나은과 희연 23.04.18 111 2 19쪽
107 승화 갤러리 23.04.13 115 2 14쪽
106 그린드래곤 갈라그루드(2) +1 23.04.08 115 2 22쪽
105 그린드래곤 갈라그루드 +1 23.04.04 122 3 20쪽
104 용종(龍種) 몬스터(2) +1 23.03.30 117 3 14쪽
103 용종(龍種) 몬스터 23.03.25 129 3 20쪽
102 전쟁무새 23.03.22 128 3 19쪽
101 무기 강화 23.03.19 135 3 13쪽
100 기사 라피드 23.03.12 162 3 15쪽
99 약탈 허가증서 23.03.11 143 3 15쪽
98 반왕의 영지 23.03.09 161 3 13쪽
97 중앙지대와 여기사 23.03.05 149 3 20쪽
96 전(前) 군주 형님 23.03.04 159 2 14쪽
95 세원휴먼테크 23.02.26 173 2 16쪽
94 다른 돈벌이 23.02.22 172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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