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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마교의 신녀를 꼬셔버렸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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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5 11:36
최근연재일 :
2024.07.0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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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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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1,306

작성
24.07.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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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8.

DUMMY

나는 눈을 떴다.

한번 본 적이 있는 천장.

서까래와 익숙한 목조 구조를 보니, 내게 배정된 신화전의 방 안이었다.


"......으윽."


상체를 일으키자, 복부가 살짝 욱신거린다.

칭칭 둘러진 붕대를 보건대, 의원이 다녀간 듯했다.

나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고요하다.

아무도 없다.


그러다 문득.

문밖에서 여인들의 목소리가 스며들어 적막을 거두었다.


"어머. 그게 정말이니?"

"얘. 내가 어제 신마전의 무인들께 들었는데....."


시비들인 것 같았다.

아마 이전에 도화라는 시비를 물린 적이 있는지라, 들어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빌어먹을. 광명좌사놈.'


깨어나자마자 떠오르는 감정은 분노.

뻔히 옆에 있었으면서 나를 지켜주지 못해?

물론 제 딴에는 사로잡으려 손속에 사정을 두었을 것이다.

나도 명부마도놈이 그렇게까지 나올 줄 모르기도 했고.


하지만 광명좌사는 극마(極魔)를 넘어서려는 절대고수다.

방심했다면 방심한 것이다.

저번 신화전 때 호위들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마교의 분위기가 느슨하다는 뜻.

뭐. 그들의 해이가 납득이 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천예령.


신녀 중에서도 역대급 신녀가 태어났다.

당장 신녀만도 이렇게 훌륭할진대, 그녀가 점지할 천마께서는 얼마나 뛰어나실까.

마교인들은 이번 대에 마교가 분명 수황청을 무너뜨리고, 황실까지 넘볼 거라는 기대를 한껏 모으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패.

천마에 오른 마중호은 약했고, 마교는 몰락했다.


'이렇게 느슨해선 안 돼. 마교는 더 긴장할 필요가 있어.'


마교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

전생과 같은 길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 큰 고비를 넘겼으니, 무공을 익힐 차례.

이번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건 사절이다.

다친 것을 구실삼아 무공을 배우겠다고 한번 이야기해 보자.


내가 그렇게 결론을 내릴 때.


"열두 살 정도 되지 않으셨어?"

"그렇지. 그런데 피를 그렇게 흘리셨는데도, 끝까지 서 있으셨대. 선채로 혼절했다나 뭐라나."

"와아. 보기보다 훨씬 지독하신 분이네."

"광명우사께서도 마음에 드셨는지, 직접 안고 신화전까지 오셨대. 확실히.... 범상치 않으신 분 같아."


밖에서 들려온 대화 소리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 이야기를 남에게서 들으니, 괜히 기분이 묘하다.

솔직히 여자는 질색이긴 해도, 칭찬이 싫은 건 아니었으니까.


순간.


"헙...!"


다급한 소리를 끝으로 시비들의 잡담이 멈추었다.

적막 속에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락- 사락-


그리고 문이 열렸다.

이에 침구 위에 앉아 있던 내가 시선을 돌리자, 아름다운 소녀가 나를 바라본다.


".....닫아."


그녀가 말했다.

뒤에 고개를 조아리던 시비 두 명이 급히 문을 닫았다.


달칵-


다시 적막이 흐른다.

나는 천예령의 커다란 눈망울을 응시했다.

그녀 역시 나를 마주 본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흘러, 침묵을 깬 건 그녀 쪽이었다.


"인정할게."


떨떠름한 얼굴로 한숨을 토한 그녀가 눈을 감았다.

이내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분홍빛 입술을 달싹였다.


"괘씸하긴 해도 쓸모가 있어."


그녀의 칭찬에 내가 슬쩍 웃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건방진 놈. 그냥 너만 보면 기분이 나빠. 그래도 할 건 해야겠지."


덜컹-


천예령은 의자를 꺼내 앉아, 나를 바라본다.


"광명사들과 이야기한 결과.... 우리는 너를 키우기로 했어."

"키운다면..."

"따로 감찰대를 만들 거야. 너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네가 직접 감찰대와 함께 본교의 간자들을 처리하는 쪽으로."

"....마교에는 감찰대가 없습니까?"

"당연히 있지. 내가 말하는 것은 특무대야. 보다 은밀한 감찰대지."


그녀가 고혹적인 입매를 슬쩍 올린다.

마치 꽃이 만개하듯 방안이 화사해지는 느낌.

그래도 전생에 지겹도록 봐왔기에, 엄청 큰 감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에야 너를 확인한다고 함께했겠지만 광명사들은 바빠. 그리고 네가 할일은 신마전, 신화전 뿐만이 아니라 마교 전체에 있는 간자들을 솎아내는 것이지. 특히 마교에는 아무리 나라도 건드리기 애매한 곳이 있어."

"어딘데요."

"칠대마가(七大魔家). 정통이 워낙 깊은 곳들이라, 대놓고 휘젓기엔 좀 눈치가 보이긴 해."

"그럼... 저는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간자들을 찾아야겠군요."

"다행히 바보는 아니네."


그녀가 나를 이리저리 훑는다.

눈빛을 보건대, 나에 대한 평가를 정정하는 모양이다.

그 미묘한 눈빛은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것.

나는 괜히 차오르는 웃음을 삼켰다.


"....여하튼 그러기 위해선 빨리 강해져야겠지?"

"물론입니다."

"나는 참을성이 없어. 일 년 줄게. 적어도 이류에는 올라."

"일 년 만에 이류요?"

"영약 하나와 비급들이 있는 서고(書庫)를 허락할게. 이래도 못하겠어?"


일 년 만에 이류.

내 나이대를 감안하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구파일방 혹은 명문세가들의 자제들이 무공에 입문하면 가끔 일 년 만에 이류에 오르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온갖 벌모세수와 영약을 밥 먹듯이 먹는 놈들이다.

게다가 가문과 사문의 어른들에게서 지도까지 받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달랑 영약 하나와 서고의 출입으로 이류에 오른다?

확실히 그녀의 요구는 과한 면이 있음이다.


".....아니요. 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있었다.

전생의 지식을 잘만 활용하면 될 터.

하물며 신영대주로서 이미 걸었던 길을 걸어가는 셈이다.

이류 정도쯤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저 그런데 신녀님."

"왜."

"만약 제가 나중에 본교의 간자들을 전부 솎아내면.... 두 가지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뭔데."

"하나는 사람을 찾아달라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그건.... 그때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상한 거면 바로 목을 날려버릴 건데."

"들어보시고 아니다 싶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잠시 고민한 천예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생각해 보고."


이내 그녀는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들었다.


짝-


화끈한 통증.

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젖혀진다.

생각보다 맞을 만했다.

내공은 담지 않은 모양.

얼얼한 볼을 부여잡으며, 다시 고개를 돌리자.


"두 번의 기회는 없어."


그녀의 서늘한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으니.


두 번의 기회.

유독 그녀의 말이 나의 귓가에 맴돌았다.








#






마교에 피바람이 불었다.


동혈(童血).


초위량과 파군성. 나에게서 방법을 들은 두 광명사들은 어린아이의 피를 들고, 혈교의 간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피에 반응한 혈교인들은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원체 지독한 놈들이라, 모두가 죽기 전에 자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것이 혈교의 간자 전부를 몰아냈다는 뜻은 아니었으니.

극소수의 은밀한 놈들은 혈교의 무공을 익히지 않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수황청에서 온 녀석들도 있을 테니, 동혈로 간자를 구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아마 천예령도 이를 고려해서 특무대를 만들려고 했을 터.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야.'


이틀 뒤의 아침.

나는 방안에서 팔짱을 낀 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우선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신마전.

시야를 넓혀 더욱 멀리 바라보자, 일곱 개의 커다란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광활한 천산(天山)은 사실 산맥에 가깝다.

일곱 개의 작은 산이 모여 이루는 것이다.

그 일곱 산을 주변으로 마교인들이 살아가니, 그곳을 통치하는 곳이 바로 칠대마가.


하지만.


그들은 간자들에 의해 쇠약해졌다.

정확히는 각 가문의 후계자들에게 접근해 헛바람을 넣은 것이다.

신녀의 부군.

그러지 않아도 천마에 오르고 싶어 하는 후계자들이었다.

옆에서 헛바람 넣어주고 이간질 좀 해주다보니, 자연스레 서로 반목하고 어긋났다.

물론 강자존에 입각한 경쟁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향이 틀렸다.

무공에 몰두하기보단 서로를 깎아내려는데 혈안이 되어버렸으니까.


'결국... 그런 풍조가 마교의 멸망에 일조했지.'


물론 아주 약해빠진 것은 아니었으니, 그들은 분명 마교에서 손꼽히는 서열의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요. 마교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

중원의 수황청을 기준으로 잡으면 약하다는 뜻이다.

오만해진 칠대마가의 후계자들.

우물 속에 취해버려 오로지 자신만이 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피해자였다.


신녀에게 가장 총애를 받는 놈.


대부분은 대놓고 나를 괄시했다.

아무래도 그들보다 약한 내가 신녀의 옆에서 시시덕거리는게 고까웠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신녀에게 말 좀 잘해달라고 회유하려 드는 놈도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체했다.

어차피 말 잘해줘 봐야, 천예령은 한 귀로 듣고 흘릴 테니까.

그러다 보니 그들의 나를 향한 시선은 아니꼽기만 했다.


'딱 기다려라. 새끼들아.'


방안의 탁자 위.

나는 입매를 올리며 그곳에 놓인 목함을 쓰다듬었다.

이참에 전생에 받은 억울함과 멸시를 풀어내는 것도 좋겠다.

이에 나는 목함을 열었다.


달칵-


검붉은 단약 하나가 고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의 눈이 커질 대로 커진다.


'오..... 마령단(魔靈丹)이네.'


얼추 하품인 마소단(魔小丹) 정도가 내려올 거라 생각했는데, 상품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내가 세운 공이 그리 작은 것도 아니니까.


-네가 이류에 오르면 병기고의 출입도 허가할게.


천예령 역시 그것을 알았는지, 더 큰 보상을 약조했다.

물론 일 년 안에 이류에 올랐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달칵-


목함을 닫은 나는 우선 단전을 형성하기로 했다.


무허삼륜심공(無虛三輪心功).

그녀가 내게 준 심법.

전생에 나는 미처 이것을 완벽히 대성하지 못했다.

워낙 난해하고 어려운 심법이기도 했고, 사실 후반부를 전해 받지 못한 터라 완벽히 익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똑같이 무허삼륜심공을 익히기로 했다.

분명 뛰어난 극상승의 심법이었으니까.

오히려 후반부 없이도 나를 신영대주로 만들어준 점이 대단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


'우선 빠르게 전생의 경지에 오른다. 그리고 공을 세워 천예령에게 후반부를 달라고 하면....'


실제로 나는 그녀에게 후반부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늦었어.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녀는 늦었다며, 후반부를 익혀도 소용이 없다는 말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기회.

그녀의 말대로 나는 기회를 얻었다.

시간이 문제라면 시간을 극복한 셈이다.


전생보다 더욱 빠르게.

이번에는 늦지 않게 그녀 앞에 서리라.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가부좌를 틀었다.


스읍-


깊게 들이마신 숨.

다시 내쉬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정한 주기에 맞추어 호흡을 반복.

아주 고른 호흡 속에 점점 나의 숨소리는 미약해져만 갔다.

신체의 떨림은 멎어가고, 들썩이던 상반신 또한 미동을 멈추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다.

나의 내면에 고요함이 찾아온다.

한참을 그렇게 적막 속에 나를 잊었다.


무실무허(無實無虛).

실다움은 없으며 헛됨도 없음이다.

모든 것이 모호한 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무(無)만이 또렷하니.


외운 구결에 따라 호흡으로 육신에 가둔 숨이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였다.

갑갑한 나의 육신에서 벗어나고자 작은 요동을 움텄다.

하지만 나는 머금은 숨을 쉬이 내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무허는 재계(齋戒)라. 정결 속에 세 기운이 함께 움틀 것이니.>


그 순간.


나의 구결에 따라 복부 어림.

비어있는 공간에 갇힌 숨은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나는 그 행위를 반복했다.


잠시 후.


나의 복부에는 무언가가 응어리지기 시작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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