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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마교의 신녀를 꼬셔버렸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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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5 11:36
최근연재일 :
2024.06.30 12:50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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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057

작성
24.06.2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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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03.

DUMMY

침묵이 흘렀다.


'꿈이지만 기분 좋네.'


나는 손의 얼얼한 감촉을 음미하며 웃었다.

그동안 그녀에게 부림 당했던 울분이 싹 사라지는 기분.

묘한 배덕감과 함께 새삼 꿈이라는 점이 참으로 즐겁다.


"......?"


어린 천예령은 뺨을 만질 겨를도 없이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뭔가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에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때린 뺨을 쓰다듬었다.


"신녀님. 그러길래 남편 좀 잘 고르시지 그러셨습니까. 그 성질머리도 좀 죽이시고요."


어벙한 표정도 마음에 든다.

어린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나는 조용히 손을 옮겨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때까지도 천예령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노오오오옴!"


뒤늦게 양옆에 도열하던 호위들이 달려와 나를 제압했다.

두 명은 나의 양팔을 붙잡고, 한 놈은 나를 깔아뭉갰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와 충격이 상당했다.

그 고통에 눈이 번쩍 뜨일 정도.

나는 얕은 신음을 억지로 삼켰다.


"신녀님...! 괜찮으십니까?"


"이 무엄한 새끼를 아주 육시를 내겠습니다."


호위들의 흉흉한 목소리에 실소가 나온다.


'이제 와서...?'


내가 누군가.

신화전 소속 마신녀의 정예호위대.

신영대주(神影隊主), 영마다.

물론 무공 하나 익히지 못한 소년이 신녀를 어찌하겠냐는 알량한 생각이 있었겠지만.

결국은 방심했다는 뜻이니, 만약 꿈이 아니었다면 저 덜떨어진 호위들을 아주 제대로 굴려버릴 터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길지 못했다.


쿵-


등 뒤에 올라타 있던 놈이 나의 머리를 바닥에 찧었기에.






#






천예령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홉 살 때 신화전의 주인이 된 이후로, 다섯 해 동안 이런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고 아껴주었으며, 눈에 들기 위해 온갖 아첨을 떨어대었다.

특히 일곱의 마도명가들.

그곳 가주들도 연회를 열겠으니, 자식놈들의 안면을 익혀달라고 고개를 조아릴 정도였다.

그뿐인가.

실질적으로 마교를 이끄는 두 명의 광명사(光明史). 그리고 부교주마저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투신하겠다던 소년이 손찌검을 한다?

죽으러 온 게 아니고서야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미친 건가?'


그래. 미친 게 맞다.

천예령은 얼얼한 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죽이려 들었다면 이렇게 어이없진 않았을 거다.

살기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와 뺨을 후려치니, 그녀로서도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시... 신녀님. 괜찮으십니까?"


호위 하나가 다가와 천예령의 안색을 살폈다.


스릉- 스릉-


다른 호위들 역시 각자 병기를 꺼내어, 금방이라도 신녀를 능욕한 소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녀의 명이 떨어지기만 하면, 바로 여섯 조각으로 내어버릴 터.

호위들이 피워낸 짙은 마기(魔氣)가 무겁게 소년을 짓누른다.


뿌드득-


천예령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부동을 되찾은 그녀의 두 눈에 싸늘한 빛이 떠올랐다.


"우선 팔부터 잘라."


그녀의 명이 떨어졌다.


그제야 호위들이 고개를 숙였다.

두 명은 기절한 소년의 양팔을 움켜쥐었다.

나머지 두 명은 각자 병장기를 크게 위로 들어 올릴 찰나.


그때였다.


화르르륵-


천예령과 호위들 뒤에는 거대한 제단이 있었다.

커다란 푸른 불꽃이 뜨겁게 타오르니, 예로부터 신녀는 마교의 신성한 불을 모셔 옴이라.

신화(神火). 마교의 창시 이래로 꺼지지 않은 겁화.

잠잠하던 그것이 평소와 달리, 요동치며 천장 위로 열기를 쏘아 올렸던 것이다.


'이....건?'


천예령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를 지키던. 또 소년을 짓누르던 호위들 역시 일어난 이변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것도 잠시.


화륵-


신화는 거짓말처럼 침잠하며, 원래의 불길로 웅신한다.

이내 찾아온 적막 속에 천예령은 신화와 제압된 소년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


그녀로서도 신화가 저리 요동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뭔가 분노하는 모양새였다.

허나 그 연유는 모른다.

이제 겨우 신녀가 된 지, 겨우 다섯 해가 된 천예령으로서는 아직 신화의 교감이 부족했기에.


"....멈춰."


천예령은 손을 들어, 호위들을 제지했다.

이에 호위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기절한 소년을 놓았다.

감히 신녀를 능멸한 놈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었으나, 신녀의 명은 지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천예령은 저 멀리 질질 끌려가는 정파의 소년을 보며,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저놈 좀 제대로 알아내 봐. 중원 무림 전체를 뒤져도 좋아. 가족부터 사돈 팔촌까지 모두."

"명을 받드나이다."


그녀의 하문에 마지막까지 남은 호위도 사라졌다.


타닥- 타닥-


고요한 신화전 속.

조용히 불꽃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천예령은 조용히 제단 위의 신화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천예령은 천천히 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졌다.

얼얼하고도 어색한 온기에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







마교(魔敎).

중원 무인들은 그렇게 부른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마(魔)의 종주들이 모인 그곳을 이보다 잘 설명할 단어는 없으니까.


사실 원래의 마교는 명교(明敎)라고 불렸다.

기본적인 교리는 미륵 신앙.

다만 일반적인 신앙과는 조금 달라, 하늘이 인간 세상에 대리자인 미륵을 내려보내 인간을 구원한다고 했다.

그 미륵이 바로 절대자요. 그 천마를 점지하는 것이 신녀였으니.

이는 즉 처음부터 명교가 마의 종주는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명의 태조, 주원장.


명교는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세웠다.

사실 그 역시 출신은 명교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원장은 명나라를 세우자 명교의 세가 더 이상 커지는 것을 경계하여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토사구팽.

가혹한 탄압 속에 명교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수많은 교인들이 죽어 나가며, 피로 점철되어 간 그들은 훗날을 기약하며 중원으로부터 도망쳤다.

그 지독한 탄압 속에 점점 명교는 변질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마(魔).

공신을 버린 명나라 황실을 향한 복수만이 남아버린 채, 교인들은 모두 마인이 되고 말았으니.


명교는 마교로.

일월신녀는 마신녀로.

교주이자 하늘이 내려준 미륵은 천마로.

어찌 보면 내가 중원에서 쫓겨난 것처럼, 마교 역시 중원에서 버림받은 존재였다.


하지만 주원장은 지독했다.

아니. 명교도였던 주원장이었기에, 그들의 저력과 무서움을 알았던 것이다.


수황청(守皇廳).


주원장은 금의위와 동창만으로도 불안했나 보다.

신강으로 도망친 마교들을 막기 위해 무림에 수황청까지 세웠다.

직접 무림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나, 무림의 정파인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나름 자치권을 주었던 것이다.

황제가 직접 인정하고, 권력까지 내려주니 정파인들은 좋아 죽을 노릇.

수황청은 구파일방과 세가들이 주축이 되어, 무림을 안정시키고 사도(邪道)와 마도(魔道)를 탄압하였다.

이는 즉 마교가 명나라에 황실에 복수를 하려면, 먼저 수황청을 넘어서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자연스레 마교의 첫 번째 적은 수황청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수황청은 신강으로 넘어와 마교를 제거했고, 나는 그것을 분명 마지막까지 지켜본 장본인이었다.


똑- 똑-


물이 떨어진다.

낡은 석벽의 틈.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꿈이 아니다.

내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다음 날이 되어서였다.

퀴퀴한 감옥.

핏물과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도 의식이 멀쩡했으니까.

뒤늦게 현실을 자각한 나를 찾아온 건 두려움이었다.

솔직히 정상적인 사고라면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는지 궁리하는 것이 옳겠다.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분명 죽었는데 과거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길 미친놈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일어난 일을 파악하기보다, 두려움이 앞선 이유는 단 하나.

저지른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미 일어난 일....'


살아남을 자신은 있었다.

단가장에서 알아낸 사천 무림의 비리가 좀 치명적이기도 했고, 누구보다 천예령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이게 만약 과거로 돌아간 게 맞다면, 전생의 정보를 활용하면 될 것이다.

일단은 살아남자.

내게 일어난 일은 나중에 파악하는 것이 옳다.

스스로 되뇌인 나는 머리를 굴리기로 했다.


"흐음...."


시기를 생각하면 지금은 천예령이 신녀가 된 지 오 년쯤 되었을 거다.

그녀가 완벽히 마교를 장악한 건 앞으로 십오 년쯤 뒤.

비록 지금도 신녀의 위치에 마교의 주요 인사들이 잘 보이려 애를 쓰겠지만, 당장은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존재들이 있었다.


부교주와 광명사.


실질적으로 마교를 이끌어가는 자들.

우선 살아남으려면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 맞았기에.


'하다못해 부교주가 아니라, 광명좌사만라도 만날 수 있다면 여지가 있을 텐데.....'


그때였다.


밖에서 느껴지는 어수선함에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핏물이 덕지덕지 묻은 창살을 쥐고 얼굴을 들이대었다.


덜컹-


복도 끝. 문이 열린다.

담호호지(談虎虎至).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말이 있다.

약 이십 장(丈) 길이의 복도 끝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는 것을 보자, 나는 눈에 힘을 주었다.


왔다.

그래. 당신이라면 올 줄 알았지.


느긋한 걸음걸이 끝에.


검은 비단옷을 입은 중년인이 나의 앞에 멈춰 섰다.

문사 차림이었다.

곱게 뒤로 넘긴 머리 위로 드문드문 백발이 보인다.

하지만 눈빛은 날카로우며, 그 누구보다 서늘한 예기를 담고 있음이라.


광명좌사(光明左史), 초위량.


"네가.... 그 건방진 놈이더냐?"


그의 싸늘한 눈빛이 나의 오른손을 훑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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