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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마교의 신녀를 꼬셔버렸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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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5 11:36
최근연재일 :
2024.06.30 12:5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1,975
추천수 :
59
글자수 :
31,057

작성
24.06.25 12:50
조회
357
추천
8
글자
10쪽

001.

DUMMY

"날 죽여줘."


그녀가 말했다.


청아한 목소리.

새하얀 피부 위에 아주 커다란 눈망울.

분홍빛의 도톰한 입술과 유난히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경국지색(傾國之色), 화용월태(花容月態) 등등.

그 어떠한 수식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절세미인이 지금 나의 앞에서 죽음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잘 알았다.


"....또 무슨 바람이 분겁니까."


변덕스러운 여자.

아름다운 외관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긴 몹시도 위험한 여자.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의 눈웃음이 짙어졌다.

아마 그녀의 외관에 혹한 자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철렁였으리라.


"남편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마신녀(魔神女), 천예령.

마교의 신녀이자, 일곱 마도명가에서 부군을 선택하는 아름다운 여인.

그녀의 간택을 받은 사내는 천마(天魔)의 진전을 이어받아 교주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위험한 여자였다.


"남편께서 마음에 안 드시는데 제가 왜 신녀님을 죽여야 합니까? 그리고 이미 교주님께서는 죽으셨는데요?"

"죽은 사람을 또 죽일 순 없잖아. 그딴 놈을 남편으로 삼은 내가 병신이지. 대신 내가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그러길래 좀 신중하게 고르시지 그러셨습니까."


나의 핀잔에 마신녀가 뺨을 긁적였다.


"낸들 알았나. 잠자리 안 해주다니까 밖으로 나돌 줄은."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부군이실진대. 신녀님이 너무 하신 겁니다. 충분히 이혼 사유감입니다."

"너무 못생겼는데 어떡해."

".....그럼 왜 혼인하셨습니까."

"그나마 가장 자질이 뛰어났으니까. 천마의 진전을 모두 넘기고 나의 이능까지 선물했어. 아내의 도리는 못 해도 신녀의 소임은 다한 거지."


암천마가(暗天魔家).

그곳의 후계자이자, 마교의 교주에 오르신 마중호.

허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어릴 적에 나병을 앓아 얼굴이 문드러진 것이었다.

차마 마신녀 입장에서는 그를 상대로 잠자리까지 할 수는 없었던 모양.

그러다 보니 어긋나버린 마중호은 외도를 일삼으며, 무공에 소홀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실패.

천마신공을 대성하지 못한 그는 결국 중원의 절대자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으니.


"그래도 신녀님께서 잘못하신 겁니다. 교주께서 그리되신건...."

"내가 아예 잠자리 안 해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야. 천마신공을 대성해서 나보다 강해지면, 합방하기로 약조했어. 그런데 그놈이 지키지 못한 거지. 천마신공을 대성할 깜냥은 안되니까 외도해 버린 거고. 애초에 천마가 될 그릇이 아니었던 거야."

"....뭐. 결국 신녀님 잘못이네요.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교주님을 부군으로 맞이하셨으니까요. 애꿎은 사내 한 명만 불쌍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죽여달라고."

"싫습니다. 신녀님 도검불침이잖아요. 어떻게 죽입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마신녀가 쿡쿡 웃었다.


"많이 컸다? 소심하던 정파의 그 애송이가."

"제가 마교에 투신한 것도 어언 스무 해가 넘어갑니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죠."

"그 녀석을 받아준 게 누구였더라."

"....바로 갸륵하신 마신녀님입니다만."

"그래. 건방진 녀석. 다른 놈이었다면 바로 목을 날려버렸을 거야."


살벌한 내용에 뜨끔한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마신녀는 내가 마교에 온 처음부터,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뭐. 연모의 감정 그런 것은 아닐 테다.

정파 출신의 어린 소년이 투신한 것이 재미있었을 터.

또 마교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꼴을 지켜보는 것이 그녀의 유희였을 테니까.

원래 마신녀는 그러했다.


"그래서 나를 못 죽이겠어?"

"예."

"그럼.... 나를 연모해줘."


잠깐 정적이 흘렀다.

약간 어긋난 문맥의 괴리에 잠시 나는 벙찌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 더 싫습니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나는 마신녀의 본질을 안다.

마교 전부를 자신의 손아귀에 두고 살피면서 즐기는 그녀의 성정을.


아무리 예쁘더라도 그런 위험한 여자는 사양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있어 누군가에 휘둘리는 것은 질색이니.

저 여자에게 코가 꿰여 살아가는 것은 절대 싫다는 뜻이다.


"내가 그 정도야?"

"예. 그 정돕니다."

"....나와 혼인하면 교주 자리에 오를 수 있는데도?"

"교주께서 돌아가신 지 이제 겨우 일주일입니다. 벌써 재혼하시게요?"

"마음은 있나 보네."

"....아니요. 없습니다. 절대."

"그럼 이렇게 하지. 나와 혼인하면 네 누이의 위치를 알려줄게."


순간 나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님.

그리운 나의 누님.


마교에 투신하기 전부터.

마교에 적을 둔 이후부터 쭉 찾아왔으나, 끝내 찾지 못한 누님이었다.

그 행방을 듣자 나의 몸에서 피가 끓어올랐다.

스무 해 넘게 응어리진 나의 원념이 마기(魔氣)로 승화되었다.


"그 말.... 진짜입니까?"


마신녀는 한참 동안 분노어린 나의 눈빛을 받아내었다.

그렇게 오래 그녀를 응시하자, 이내 마신녀는 흥미가 식은 듯 싸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야."


하지만 나는 그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스무 해 가까이 그녀의 호위로 살아오며, 미묘한 분위기의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분명 마신녀는 누님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틀림이 없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보채지는 아니했다.

아무리 그녀와 격식이 조금 없다지만, 결국 마교의 신녀와 호위 사이에 불과했다.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싫증이 난 그녀를 보채봐야, 식어버린 그녀의 흥미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만큼 그녀는 변덕스러운 여자였기에.


"물러가."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





일 년이 지났다.

교주를 잃은 마교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중원에서 신강으로 넘어온 무림인들에 의해, 십만대산이라 불리던 천산(天山)은 불타버렸다.


"허억.... 허억...."


이름 모를 숲속.


나는 마신녀를 업고 뛰었다.


정해진 수순이었다.

작년부터 죽여달라던 신녀는 아마 이 미래를 보고 있었을 터.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폐는 쥐어짜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경련하는 허벅지의 호소를 무시했다.

단전의 내공은 바닥나고, 눈앞은 흐릿했다.

그래도 나는 달렸다.


"단지명."


등 뒤의 그녀가 나를 불렀다.


한 명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강했던 그녀라 한들, 열 명이나 되는 절대자들의 합공 앞에 버틸 수는 없었다.

추격자들을 피해 도주하던 나는 흐드러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단지명. 멈....춰."


한참을 달리던 중에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꺼져감을 느꼈다.

생명이 사그라드는 소리에 결국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옅어지는 숨소리가 목뒤를 두드린다.

나는 호흡을 고르며 마신녀를 불렀다.


"허억.... 허억.... 신녀님?"


다행히도 아직 마신녀는 죽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너를 왜 아끼는지 알아?"

"그만하십시오. 왜 죽을 것 같이 말하십니까?"


유언처럼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나는 싫었다.


"마교의... 신녀는 천산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 따로 혈족으로 명맥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소리지."

"그만하라니까요? 저는...."

"나에겐 동생이 있었어. 마교의 뒷골목에서 함께 자란."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막을 수가 없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이제 없었기에.


"내가 신녀가 되기 전에 죽어버렸지. 그런데 말이야. 마교에 투신하겠다고 넙죽 엎드리던 네가 뭔가 동생과 닮았더라고."

"그래서요. 동생과 닮아서 잘해줬다는 겁니까?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퍽-


뒤통수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진다.

허나 마신녀의 손짓치고는 맞을만했다.

이는 그만큼 그녀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음이라.


"끝까지 들어봐."

".....예."

"처음에는 그랬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어."

"어떻게요."

"사내로 보이더라."

"....."

"네...가 처음이었어. 너처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고 너는 나에게 무관심했지. 오로지 네가 바라는 것은 잃어버린 누님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오기가 생겼어. 한번 꼬셔볼까 했지. 그런데 지독한 놈. 끝까지 한 번을 안 넘어오고."

"당연할 말씀이십니다. 신녀님처럼 무서운 여자를 어떻게 좋아합니까."

"혼인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말하는 게 우습지?"

"예. 우습네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다음 생이 있다면.... 나를 연모해 줄래?"


또 그 소리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도 그녀의 생이 꺼져가기 전에 뭐라도 말을 꺼내야 했다.


"싫습니다. 차라리 뺨이라도 때리고 투옥당하겠습니다."


나의 대답에 마신녀의 몸이 들썩였다.

등 쪽에서 미동이 느껴지는 걸 보아, 웃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재밌겠네. 단지명."

"....왜요."

"사실 네 누이는 오래전에 죽었....어. 정파 무림인에게."

"정말....입니까?"

"미안해. 말하지 못했어. 네가 나를 떠나갈까...."

"....신녀님?"

"......"


더이상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마신녀의 육신과 등 쪽에 떨어진 그녀의 고개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검은 그림자들이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독한 여자.

끝까지 제 할 말만 하고.


스윽-


나는 마신녀를 내려놓았다.

조용히 웃고 있는 그녀의 시신을 고이 나무에 기대놓고는 검을 꺼내었다.


스릉-


달이 유난히 밝다.

꺼낸 검신(劍身)에 달빛이 반사되어 한차례 숲속을 훑었다.

이에 수십 명가량의 무인들이 찰나간 윤곽을 드러내었다.

나는 바닥난 단전 아래의 선천진기를 꺼내며, 그것을 검에 담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연모해달라고?'


그래.

다음 생이 존재한다면 뭔들 못 하겠나.

그렇게 되면 천예령. 너는 각오해야 할 거다.

아주 나 없이 못살게 꼬셔줄 테니까.


뿌드득-


검파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를 슬금슬금 에워싸는 무인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오라."


마신녀의 마지막 호위.

영마(影魔), 단지명.


나의 머리 위로 수많은 검들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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