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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마교의 신녀를 꼬셔버렸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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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人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6.25 11:36
최근연재일 :
2024.06.30 12:50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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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글자수 :
31,057

작성
24.06.2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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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04.

DUMMY

천예령에게 부교주와 광명사들은 의붓아버지들에 가깝다.

그중 부교주와 광명우사는 천예령에게 무척 관대한 편.

하지만 광명좌사는 아니었다.


원래 신녀라는 직책이 그렇다.

마교 내에서 천산의 기운을 타고난 여아를 찾아 키운다.

훗날 그 신녀가 장성하면 마교의 주된 권력은 그녀에게 넘어간다.

그 이후에 신녀가 점지한 마인이 부군에 오르면, 교주의 자리와 함께 권력이 다시 천마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천예령은 신녀 중에서도 평범한 신녀가 아니었으니.


역대 신녀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무재(武材)를 타고난 여자.

천산의 힘 또한 가장 짙게 이어받은 신녀.

이른바 괴물 같은 존재가 태어난 것이다.


다른 자들은 모두 그녀를 어여삐 여겼으나, 광명좌사만큼은 마교의 미래를 걱정하였다.

결국 신녀는 천마를 점지하는 과정에 불과할 뿐.

광명좌사가 보기엔 신녀만이 마교를 통치할 마교는 올바른 길이 아니었기에.

혹여 천예령의 재능에 짓눌려 제대로 된 교주가 태어나지 못함을 염려한 것이다.


'.....초위량. 당신 생각은 정확했다.'


나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의 염려대로 천예령은 마교가 망할 때까지 통치했다.

그녀는 교주였던 마중호가 원래 천마신공을 대성하지 못할 그릇이라 했었지만.

나는 까놓고 말해 그녀의 오만함과 재능이 큰 지분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열등감.


마중호은 항상 천예령에게 자격지심을 느꼈다.

게다가 잠자리까지 안 해준다.

남편으로서도 인정을 못받으니, 그의 성취가 더욱 더디어질 수밖에.

뭐. 그렇다고 해서 마중호을 비호하는 건 아니겠다.

어차피 강자존. 천예령이 더 거들었을 뿐이지, 그의 능력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니까.


"....네가 그 건방진 놈이냐고 물었다."


마교의 광명좌사가 말한다.


마교에서 가장 학식이 뛰어난 자.

문사 차림을 즐겨하며, 사군자 중에서도 유독 대나무를 아낀다.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대나무 말이다.

이에 나는 그의 눈에 들고자, 완전히 엇나가기로 했다.


"예. 제가 그 건방진 놈입니다만."


또렷이 초위량의 두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제정신은 아닌 모양이구나. 그따위 망발을 일삼는 걸 보면."


그의 싸늘한 말투에 괜히 오금이 저린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다.

이미 범 위에 올라탄 형국.

애써 덤덤한 척 들었던 고개를 유지했다.


"정신이 온전했다면 신녀라는 분의 따귀를 때렸겠습니까?"

"....건방지다 못해 미친 놈이로구나. 네 그 자신감의 원천이 네가 알고 있다는 사천 무림의 비리렷다?"

"물론입니다. 수황청에서 사천당가를 지워버릴 수 있는 비리니까요."

".....나는 침소봉대(針小棒大)를 싫어한다."


여전하시구만.

나지도 않는 먹물냄새에 나는 코를 슥 문질렀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을지도 모르는데 과장해서 뭐 하겠습니까. 결국 들어보시면 다 아실 텐데요."

"네 말이 맞긴 하다만, 건방진 태도는 도저히 용서가 되질 않는구나. 네 사지를 자르고 입만 남겨봐야 꺾이겠느냐?"

"그럼 차라리 혀 깨물고 죽겠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팔다리 잘린 것도 억울한데, 누구 좋아라고 비밀까지 토해놓고 곱게 죽겠는가.

차라리 한 방이라도 먹이는 게 맞지.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초위량의 투명한 눈길이 나의 눈을 관통한다.

아마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모양.

하지만 나 역시 끝까지 그의 시선을 인내하며, 마주 응시했다.

잠깐의 시간이 흘러.


"....반골(反骨)이구나."


초위량의 눈이 곡선을 그렸다.

그제야 나는 한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평소라면 여기서 슬슬 본론을 토하는 것이 맞겠으나, 기호지세(騎虎之勢)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옳았다.


"그렇게 말하시는 분께서는 차림은 문사이시나, 속에는 검을 품고 계시는군요. 웃음 속에 날이 숨겨져 있으니, 소리장도(笑裏藏刀)입니다."


순간 초위량의 눈썹이 들썩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동공에 이채가 맴돌기 시작하니.


"감히 네가 나를 가늠하는 것이냐?"

"제가 적을 둘 곳인데, 높으신 분을 헤아리는 것도 죄가 되겠습니까?"

"본교는 너를 받아들인다고 한 적이 없다만."

"받아들이셔야죠. 수황청의 힘을 줄이시려면."

"......그럼 묻겠다. 감히 신녀께 손찌검을 한 연유가 무엇이더냐."


초위량이 순식간에 맥락을 바꾼다.

아마 더 이상 실랑이 벌여봐야, 득이 될게 없다는 판단일 터.

여전히 맺고 끊는 건 확실한 양반이다.

솔직히 이 부분은 입이 열 개로 할 말이 없었지만, 뭐라도 말해야 했다.


"그건.... 뭐.... 낙관같은 겁니다."

"낙관? 따귀를 때리는 것이 낙관을 찍는 것이다?"

"예. 이쁘잖아요. 처음 본 순간 저는 운명을 느꼈습니다. 내 여자다하고 냅다 도장 찍는 거죠. 강렬하게 인상도 심어줄 겸."


다시 정적이 흘렀다.


찍- 찍-


감옥 귀퉁이에서 쥐 한 마리가 울음을 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하.... 하하하."


쥐가 귀퉁이로 사라졌다.

초위량이 웃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의 몸이 들썩이더니, 급기야 상체를 젖히며 광소를 터트린다.


통했나?


웃는 걸 보니 싫은 것은 아닌 모양.


"크하하하하! 이놈 보게. 참으로 미친놈이로구나."


한참을 끅끅대며 웃던 초위량은 이내 눈 밑을 훔치며 말했다.


"신녀가 내 여자다? 방금 너는 네가 한 말의 의미를 아느냐?"

"글쎄요."

"네 포부는 마음에 든다. 허나 결국 네게 뛰어난 무언가가 있어야 하겠지. 적어도 아내에게 꿇리지 않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보여드리겠습니다. 기회만 주신다면요."

"기회라... 결국 네가 저지른 죄를 용서해달라는 뜻이구나."


그동안 그 변덕스러운 신녀를 모셔 오며,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다고 자부하는 나다.

드디어 본론을 꺼낼 차례임을 직감했다.


"제가 있던 단가장의 장주놈은 몰래 어린아이들을 사천당가에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사천당가에 아이들을?"

"예. 고아들을 남몰래 잡아 와 바치고 부를 축적했지요. 인신매매는 엄연한 국법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황청의 일원인 사천당가가 국법을 어긴다? 잘만 이용하면 수황청에서 축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허나 그것은 엄연한 증거가 필요한 일이다. 하물며 인신매매 하나로는 불가능....."


초위량의 눈이 묘한 빛을 띄웠다.

잠깐 말문을 멈춘 그는 턱을 긁으며, 입매를 올리니.


"네 놈. 뭔가 더 알고 있구나."


나 역시 그를 향해 억지로 입매를 올렸다.


"제 목숨줄인데 전부 내놓을 리가 있겠습니까? 저를 마교의 일원으로 받아주시면.... 반드시 사천당가를 지워드리겠습니다."









#







어느 전각의 복도.

초위량은 생각했다.


'영악한 놈.'


어린놈이 상당히 담대하다.

그저 만용을 부리며 뻗대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실리를 따지고 계산한 뒤에, 건방지게 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에 무딘 놈도 아니었다.

그 눈에 담긴 결연한 의지가 죽음을 각오한 자의 것이니까.

마치 오랫동안 사선을 넘어온 노련한 무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초위량이 소년을 높게 사는 이유들이 더 있었으니.


초위량은 반골을 좋아한다.

강자존이 지배하는 마교에서 무언가를 쟁취하려면 절대 꺾이지 않아야 하는 법.


'.....나를 간파했다?'


소년은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성정을 파악한 듯했다.

예사롭지 않은 안목.

속에 감춘 날카로운 예기를 알아보고, 똑같이 맞댄다.

오래전부터 자신을 알아 온 것처럼, 자신이 어떤 자를 좋아하는지 확신하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이쁘잖아요. 처음 본 순간 저는 운명을 느꼈습니다.


문득 소년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초위량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미친놈."


솔직히 헛소리인 건 안다.

하지만 초위량에게는 분명 흡족한 대답이었다.

천예령에게 손찌검을 할 깜냥의 소마(小魔)들이 있었던가?

아니. 어린 마인들은 커녕, 장성한 마인들도 그녀 앞에 납작 고개를 조아린다.

그런 상황에서 초위량이 보기엔 아주 잘만 다듬는다면, 신녀를 억제할 존재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일.


탁-


잠시 초위량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년이 투옥된 지하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제가 무슨 말을 한지는 알기나 할련지."







#







초위량은 천예령을 억제할 요소를 원한다.

정확히는 그녀보다 열하한 교주에 의해, 신녀가 만인지상에 오르는 일을 염려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초위량이 가장 먼저 찾아올 거라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신녀의 따귀를 때린 놈.


분명 흥미가 동했을 터.

그다음은 어렵지 않다.

굳이 속내를 감출 것도 없이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될 뿐이다.

나는 그나마 마교에서 그녀를 다룰 확률이 높은 사람이었으니까.

신녀의 대노(大怒)까지 감당할 수 있는 호위 말이다.


"후우...."


다행히도 첫 번째 난관을 넘긴 것 같다.

나는 참았던 한숨을 토해냈다.

아직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털썩-


퀴퀴한 찌든내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방 안.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진 세로의 창살들을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리자 몸이 나른해진다.


호오롱- 호오롱-


아주 조그마한 벽면의 창문.

단단한 창살 사이로 효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나를 연모해줄래?


그러다가 문득 찾아오는 목소리.


청아한 음성에 입매가 절로 올라간다.

그녀의 고백에 한 번은 차라리 뺨이라도 때리고 투옥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 그 일은 일어난 셈이다.

물론 마지막에 했던 다짐은 미처 그녀가 듣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남아일언중천금.

한번 말을 내뱉았으면 지켜야지.


-방금 너는 네가 한 말의 의미를 아느냐?


초위량은 내게 물었다.

신녀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아는지.

그는 내가 그 의미를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분명 알고 말한 것이었다.


아직 이게 꿈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지만.

만약 이것이 정말로 내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이라면.


천마(天魔).


그래.

나는 이번 생에 마교의 주인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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