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4 부. 예언자들 - 47 화

예언자들 – 47

텔리는 번개같이 몸을 날려 트럭에서 뛰어 내렸다. 펠리시아는 어두워져가는 도로 위에서 낯선 트럭이 지나가다가 갑자기 자기 옆에 서자 겁을 잔뜩 먹은 상태였다. 그 트럭에서 누군가 급하게 뛰어 내리자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

“놀라지 마. 나야. 텔리. 펠리시아, 너 혼자 왜 여기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테... 텔리?”

“그래. 나다. 텔리.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쥬니아는 어디 있어?”

“텔리! 으아아아앙!”

텔리가 그녀의 어머니를 찾자 펠리시아는 순간 울컥해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펠리시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네 어머니는 어디 가고....?”

텔리는 우는 여자를 달래는 데는 별 재주가 없는지 팔짱을 끼고 조용히 기다렸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고 있는 펠리시아를 그저 바라만 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본능적으로 쥬니아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길에 서서 몇 분이고 울기만 하던 펠리시아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흐흐흑...!”

“죽었구나.”

“흐흐흑. 예.... 흐어어엉....”

쥬니아가 죽었다는데도 텔리의 얼굴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너무 침착해서 펠리시아는 순간 섭섭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알겠다. 일단 트럭에 타라. 날도 춥고 어두워져 가고 있으니까 어서.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가면서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다오.”

텔리는 손을 뻗어 펠리시아를 들어 올리더니 트럭의 적재함에 태웠다. 그러자 아저씨가 운전석에서 적재함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뭐야, 외국 여자애네? 외국 신령님이 뭐라고 하고 태운 거야? 어쩌다가 여자애가 이 시간에 이런 찻길에서 혼자 걷고 있었나. 위험하게 말이야. 어쨌든 여러분 모두 우리 집으로 갑시다.”

그렇게 길에서 우연히 만난 펠리시아까지 태운 트럭은 아저씨의 집으로 향했다. 건수는 펠리시아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꾀죄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많이 지치고 힘들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큰 충격과 공포를 받았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건수는 자기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펠리시아는 눈을 들어 건수를 보며 인사했다.

“땡큐.”

“어어... 어... 유 어 웰컴, 앤 쥬?”

그러자 펠리시아가 순간 ‘킥’ 하고 웃었다. 건수 옆에 있던 미스터 황이 건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말했다.

“하하하. 이 녀석. ‘앤 쥬’는 뭐냐? ‘앤 쥬’는. 하하하. ‘아임 파인, 앤 쥬?’ 할 때 그거 말한 거냐?”

건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 그게 제가 예전에 학교를 다닐 때 워낙 공부와 담을 쌓아서요. 그 말은 그냥 자동적으로 나온 거예요. 반사적으로.... 자동으로.... 예. 쩝.”

“얌마, 공부를 안 했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걸 모르냐. 하하.”

“그게 정말 저만큼 공부를 안 하다보면 진짜 무식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 일이 다 끝나면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그래요. 제 머리로는 힘들겠지만요......”

그 둘의 대화를 듣던 펠리시아가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워요우.”

건수와 미스터 황이 펠리시아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뭐야? 한국말 할 수 있었던 거야?”

“쵸큼. 쵸큼요. 듣는 건 더 잘 해요우.”

“잘됐다. 난 또 말이 안 통하는 줄 알고 괜히 오랜만에 영어를 썼네.”

다시 한 번 미스터 황이 웃음을 터트렸다.

“야, 뭘 오랜만에 영어를 써. 그건 쓴 것도 아니라니까. 힘들면 나한테 말해. 이 애한테 통역해줄게.”

셋은 중간에 미스터 황의 통역으로 몇 분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과 LA에서 왔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한국인 친구가 한 명 있어서 빨리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건수는 그 친구가 누군지 알게 되면 깜짝 놀라 당장 구하러 갔을 테지만 아쉽게도 방금 대화에서는 펠리시아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미스터 황이 몸을 부르르 떨며 얇은 상의만 걸치고 있는 건수에게 물었다.

“이거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 같은데? 아까 왔던 길이랑 가는 길이 다른가? 어째 시간이 더 걸리는 게 좀 돌아가는 것 같다. 야, 건수야. 넌 그렇게 얇게 입고 있는데 춥지 않냐?”

“춥냐고요? 아니요. 전혀요. 그게 아니라 사실 아까보다 좀 더워진 것 같은데요?”

“뭐? 이렇게 달리고 있는 차 뒤에서 사방이 뻥 뚫려있는데 어떻게 더워질 수가 있냐?”

“아니에요. 형. 진짜 조금씩 더워지고 있어요.”

건수는 자기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자신의 체온이 올라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분명 조금씩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무심코 팔짱을 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텔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아니! 텔리님 주위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잖아요!”

그의 말대로 텔리의 상체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 미스터 황은 조용히 텔리 곁에 다가가 열기를 느껴보려고 손을 뻗어 보았다.

“진짜다. 텔리님에게서 열이 나오고 있어. 난 몰랐는데. 혹시 외투를 입고 있어서 둔감했던 걸까?”

텔리는 미스터 황이 자기 근처에 다가왔지만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듯 했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마치 눈을 뜨고 잠을 자고 있는 듯 했다. 그런 모습이 이상했는지 미스터 황이 그를 깨우려고 했다.

그 때였다.

‘바스락.’

‘컹!’

지금까지 조용했던 케르케로우스가 상자 밖으로 머리를 쏙 하고 내밀었다. 건수와 미스터 황은 놀라서 소리 질렀다.

“왁. 깜짝이야. 케르케로우스님. 일어나셨어요?”

“건수 그리고 거기 텔리의 사제. 너희들 좀 조용히 해. 내가 봤을 땐 텔리는 지금 명상을 통해서 열심히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인 것 같아. 그럴 땐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쓸데없이 살육신을 화나게 할 필요는 없잖아? 후후후.”

케르케로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자기 목을 최대한 움츠러들이게 해서 마치 목이 없어진 것 같은 흉내를 냈다. 목이 잘리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아... 그쵸. 살육의 신을 화나게 하면 그렇게 목이 달아나겠죠.”

옆에서 케르케로우스가 말하는 것을 보던 펠리시아는 깜짝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

“오 마이 구드니스! 어 토킹 독? 디스 독 이즈 토킹!”

그러자 케르케로우스가 그녀를 바라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에! 인간이 말을 하다니! 이 여자애는 말할 수 있잖아! 캬하하하하!”

펠리시아는 말하는 개가 자기에게 농담을 하자 너무 무서워서 적재함의 구석으로 도망쳤다. 케르케로우스는 혓바닥을 낼름거리면서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왜? 짐승이 말하는 거 처음 보니? TV에서 극장에서 영화로 봤을 거 아냐. 아, 맞다. 그런데 난 개가 아니야. 난 늑대야. 내 이름은 케르케로우스라고 한다. 멋진 나를 만나서 반갑지?”

“에? 엄마야! 방금 저 개가 나한테 자기를 만나서 반갑냐고 물었어! 으아아아! 텔리! 텔리! 살려줘요!”

펠리시아는 명상에 빠진 텔리에게 기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케르케로우스가 당황해서 건수와 미스터 황에게 말했다.

“얘들아! 저 여자애! 저 여자애가 명상하고 있는 텔리를 깨우려고 한다! 빨리 막아! 큰일 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