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3 부. 미지와의 조우 - 85 화

미지와의 조우 – 85

히메이오스의 가 쓴 건수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이사우라가 받고서는 릴리카에게 넘겼다. 릴리카는 그것을 한 번 흘낏 보고서 다른 병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내가 어떻게 읽겠냔 말이야. 비모. 이것 받아. 이걸 들고 호텔 1 층으로 가서 데스크에 있는 애들에게 이걸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 알아와 봐.”

“예.”

“그리고 이사우라, 어제 이 기절한 놈의 핸드폰에서 이 글자로 적힌 이름을 찾아서 전화번호나 다른 정보를 찾아와. 어떤 정보여도 되니까 앱이란 앱들은 죄다 뒤져서 다 알아와.”

“알겠습니다.”

비모와 알렉시스가 자리를 떠나자 릴리카는 히메이오스를 불렀다.

“히메이오스, 이제부터는 저기 남아 있는 여자애의 생각을 읽어야지.”

히메이오스는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이 일이 워낙 정신적인 힘을 많이 소모하는 일이라서 곧바로 다시 시작하기엔 조금 어렵고 몇 시간 휴식을 취한 후에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3 시간 주지. 점심시간 전에 저 쪼그만 여자애의 생각을 읽어본다. 자, 아까 여기서 이 두 놈들 감시하던 두 사람만 남고 다시 내 방으로 올라가자.”

모두가 방문을 나서고 있는데, 히메이오스는 좐슨을 덮었던 이불을 치워주었다. 그 속에서 더웠었는지 그녀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은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정말이지 불쌍한 꼴이었다. 히메이오스가 그녀에게 엘리시움의 언어로 말했다.

“아까는 미안했다. 고향에 두고 온 내 연인이 왠지 모르게 너와 비슷한 분위기였는데... 키도 작고 겁도 많고.... 그런데 난 그녀를 20 년이나 가까이 보지 못했다. 처음 고향을 떠나서 여기 올 땐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왔는데....... 일주일이면 다시 돌아갈 줄 알았거든. 그런데 18 년이나 있게 되었다. 암튼 정말 미안하다. 너를 이렇게 감금하고 감시한 것도, 옆에 네 애인을 때려서 기절시킨 것도 말이야. 이 기절한 놈, 여기 잡혀 있는 동안 내내 널 많이 걱정하고 있더라. 일이 다 끝나고 너희들을 무사히 풀어 줄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하마.”

“웁! 웁! 웁웁웁!”

그는 의자에 묶인 채 입에 붙인 덕트 테이프 틈으로 소리를 내는 좐슨을 보고 딱한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 입에 붙여 놓은 덕트 테이프를 떼어 줬다. 입이 자유로워진 좐슨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야 이 XXX야! 이 빌어먹을 XX야! 이 똥오줌에 넣고 삶아 죽여도 모자랄 XX! XXX! XX! XXX!”

히메이오스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분위기로 그 말의 뜻을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잠시 눈을 껌벅였다. 그리고는 떼었던 덕트 테이프를 슬그머니 다시 그녀의 입에 붙였다. 그런 그를 보고 도원광과 좐슨을 감시하던 두 병사는 히메이오스에게 물었다.

“야, 히메이오스. 뭐하냐, 거기서? 방금 그 계집애가 한국어로 뭐라고 한 거야?”

“아... 글쎄. 아마 ‘살려줘서 고맙다’라고 하는 것 같았어.”

“바보 같은 계집. 고맙긴 뭐가 고마워? 릴리카님 성격상 이 일이 끝나면 그 둘을 절대 살려두지 않으실 거야. 걔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구.”

“음..........”

히메이오스는 감시하는 병사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말이지 얘네들은 살려줬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젊은 연인들인데 서로 결혼도 못해보고 함께 죽는다니. 그건 정말 너무하잖아. 에피알리..... 고향에 두고 온 나의 그녀는 내 얼굴을 18 년이나 볼 수도 없었고 소식도 주고받을 수 없었는데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히메이오스는 마음이 울적해져 어디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묶여있는 좐슨에게 인사를 하고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 *

릴리카와 이사우라는 스위트룸의 거실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잠시 후, 건수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가져갔던 비모가 그들에게 와서 보고했다.

“다녀왔습니다. 이 글자는 ‘건수’라고 읽는다고 합니다.”

“건수? 그게 무슨 의미야? 사람의 이름 맞대?”

릴리카가 자세한 의미를 묻자 비모가 알 턱이 없다. 아까 그를 보낼 때는 분명 어떻게 읽는 건지만 알아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모는 그저 혼나지 않을 만큼 잘 얼버무렸다.

“사람 이름도 된다는 것 같습니다. 사물의 이름은 아닙니다.”

“그래? 건... 수. 알았다. 넌 수고했으니 물러가봐.”

“옛.”

“이사우라, 기절한 놈의 셀폰에서 이 건수라는 이름의 전화번호가 있는 지 알아봤나?”

“이 일을 부하들에게 맡겼습니다. 곧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이사우라는 건수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라고 시킨 부하들 중 하나를 불렀다. 오래지 않아 한 병사가 작은 메모지 한 장과 도원광의 핸드폰을 가져왔다.

“이사우라님. 이 셀폰에 그 글자와 같은 이름이 전화번호부에 있었습니다. 이 종이에 옮겨 적은 것이 그의 전화번호입니다. 그리고 메신저 앱을 조사해 본 결과, 그 인물의 사진까지 있었습니다.”

릴리카와 이사우라는 함께 도원광의 핸드폰을 보았다. 화면에는 메신저 앱이 실행되고 있었는데, 건수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V자를 그리고 있었다. 건수의 얼굴까지 확인을 하게 된 릴리카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하! 이놈이 바로 케르케로우스의 사제란 놈이로군. 됐다. 이제 이놈의 전화번호와 얼굴까지 파악이 되었으니 빨리 잡는 것만 남았다. 이사우라, 어서 이 친구 놈의 셀폰으로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아니 건수에게 전화를 걸어 봐.”

“예.”

이사우라가 도원광의 핸드폰을 들고 친구 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그녀는 핸드폰을 귀에서 내렸다.

“뭔가? 전화를 안 받아?”

“네.”

“멍청아! 그럼 될 때까지 전화를 좀 해봐! 한 번에 안 받을 수도 있잖아.”

이사우라는 연거푸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건수는 단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검은 방에서 텔리와 미스터 황과 함께 암흑 속에서 자고 있는 중이었다. 음... 지금 그곳의 시간은 바깥세상보다 훨씬 빨리 흐르도록 되어 있으니 못해도 몇 달은 지난 상황일 것이다.

“릴리카님. 이것 혹시 케르케로우스의 사제가 자신의 친구들이 우리 불새군에게 잡혔다는 것을 눈치 챈 건 아닐까요?”

“모르지. 알렉시스를 따라간 녀석이 귀띔을 해줬을지도. 안되겠다. 로컬의 힘을 빌려야겠다.”

“그 말씀은....?”

“야, 이 멍청아! 어느 사회에나 불법적인 일들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잖아. 건수라고 하는 놈의 모든 것을 한 번 조사해봐. 주소, 직장, 가족, 친구 뭐든 말이야. 셀폰 번호도 가지고 있으니까 추적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 한국에도 있을 거야. 네가 비밀스럽게 여기 현지 코디네이터를 한 명 구해. 그 놈이 우리들 한국어 통역도 하게하고 내가 방금 말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인원을 찾게 하란 말이지. 잘 들어. 그런 불법적인 일을 하는 놈들은 어느 나라에도 있어. 반드시 있단 말이야. 돈이 좀 많이 들겠지만.”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일이 끝나면 네가 직접 다 해치워. 흔적을 없애야지.”

“예. 명심하겠습니다.”

릴리카가 부관 이사우라에게 한국에서 할 일을 지도하고 있는 동안, 거실 입구에 부상병 데디쿠스가 다른 병사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 그는 히메이오스의 도움을 받아 체내에서 에뮤니우스의 독을 빼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워낙 몸이 약해져서 어젯밤부터 몇 번이나 기절했었다. 겨우 안정을 취해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릴리카에게 꼭 보고해야 할 것이 있다고 무리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대장님, 데디쿠스가 중요한 내용을 보고드릴 것이 있다고 찾아왔습니다.”

“데디쿠스가? 데려와!”

데디쿠스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겨우 거실의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쿨럭. 릴리카님. 서서 보고를 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됐다. 네 상태를 보아하니 여기 와서 말하는 것도 버거운 일인 것 같은데 빨리 보고하고 가서 쉬도록 해.”

“예. 제가 보고드릴 것은 다름이 아니라... 쿨럭.,. 케르케로우스의 사제에 관한 것입니다.”

“케르케로우스의 사제에 관한 일?”

“예. 그리고 제 동료를 죽인 새로운 적들에 관한 것입니다.”

“새로운 적들이라고?”

릴리카와 이사우라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아니, 새로운 적들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