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 예언자들 - 8 화
예언자들 – 8
텔리가 미스터 황의 백숙을 포함해서 두 마리의 백숙을 뚝딱 먹어치우고 만족스러웠는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시 식당으로 들어온 미스터 황은 배가 고팠지만 이젠 먹을 수 없게 되자 기분은 더 우울해졌다.
“아... 정말 잘 먹었다. 자, 이제 슬슬 그 멧돼지 신수를 만나러 가야하지 않겠어?”
미스터 황은 황당하다는 듯이 텔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텔리님, 우리는 검은 방에서 100 년 만에 나온 것인데 조금 쉬고 내일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 돼. 그 빌어먹을 베토케로우스 때문에 안 돼.”
미스터 황이 내일 멧돼지 신령을 만나러 가자고 제안했지만 텔리는 한 번에 거절했다.
“하지만 전 시간이 갈수록 몸이 약해지는 게 느껴지고요. 시간을 좀 주시면.......”
“케르케로우스가 검은 방에서 나온 걸 그 놈이 알고 있잖아. 아직 육체가 어려서 힘이 약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래도 그는 자기 동생이니까 처음엔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케르케로우스가 스스로 검은 방의 권한을 포기할 수 있도록 조금의 시간을 준 거야.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무슨 여유를 부려.”
“하지만......”
“에이에이에이. 됐어. 지금 갈 거야.”
텔리는 얼굴에 죽상을 하고 있는 미스터 황과 건수를 번갈아 보았다.
“아니, 얘는 또 왜 그래? 케르케로우스의 사제, 너도 내 사제처럼 정신이 흔들렸냐? 너희가 몰라서 그러는데 케르케로우스의 형, 베토케로우스는 정말 재앙 그 자체야. 그가 만약 여기 오잖아?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그 때 할머니가 ‘호호호’ 웃으면서 말을 끊었다.
“내가 살면서 당신을 뛰어넘는 재앙은 아직 본 적이 없는데요?”
“뭐야?”
텔리는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분노가 가득했는지 얼굴이 시뻘게졌다.
할머니는 정신없이 ‘호호호’ 웃었다.
“아니, 왜 그렇게 날 잡아먹을 듯이 바라봅니까? 왜요?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너... 너...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아니. 아니. 너 어떻게 우리 세계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호호호. 그거야 당연히 말을 아니까 할 줄 아는 거죠.”
“뭐... 뭐야? 너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야?”
텔리와 할머니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건수와 미스터 황은 기가 막혀서 할머니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엘리시움어를 저렇게나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니. 그들의 입은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옆에 앉은 강원도 아저씨까지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할머니 입에서 젊은 여자 목소리가 나오고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알 수 없는 방언을 쓰면서 텔리와 대화하자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아니... 이 할매, 이젠 전국구를 넘어서 외계의 신까지도 찾아오는가 보네. 이렇게 이상한 외국어로 말도 줄줄 하는 거야? 어이가 없다.... 후아. 내가 졌다. 내가 졌어. 어휴.”
텔리는 의심하는 눈빛으로 할머니를 째려보았다.
“가만... 가만. 이거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호호. 그렇죠? 너무 오랜만이어서 기억이 희미한가 보군요. 내가 누군지 알아맞혀 보세요.”
“헉! 당신은...!”
갑자기 텔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뻗어 할머니의 멱살을 쥐려고 했다.
“이디레이아! 운명의 어머니! 이 망할 년! 드디어 널 만났구나. 이 거지같은 계집! 네가 감히 날 우롱해!”
“텔리님! 제발 진정하세요!”
텔리의 돌발행동에 건수와 미스터 황이 전력을 다해 그를 당기며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옆 테이블 사람들도 그가 난동을 부리자 전부 쳐다보고 있었다.
“호호. 여전하군요. 건수 그리고 거기 이 한심한 살육신의 새로운 사제.”
“예?”
“힘들겠지만 몇 초만 텔리를 붙잡아주세요. 내가 억지로 진정시킬 테니까.”
할머니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몇 초 동안 입으로 중얼중얼 거렸다.
“이 망할 년이! 어디서 요사스러운 술법을 쓰려고! 우아악!”
“그럼 어디 당신이 남겨놓은 힘을 전부 써보시던가. 호호호.”
그녀는 손가락 하나를 텔리의 이마에 대었다. 그랬더니 그는 순식간에 스르륵- 하고 잠에 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 됐다. 여러분, 일단 식당 밖으로 나가죠. 그리고 궁금하신 게 있을 테니 내가 직접 몇 가지를 알려줄 게요. 아니, 궁금하든 안 궁금하든 꼭 알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몇 초쯤 지나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으으으... 아이고. 삭신이야. 보통 강한 영이 아니셔서 내가 오래 버티질 못하겠다.”
“할머니, 다시 할머니로 돌아오신 거 맞죠?”
건수가 할머니를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 눔아. 그럼 나지. 누구겠냐?”
“방금 다른 사람이셨잖아요. 이름이 뭐더라? 이디... 이디......”
할머니는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후... 이디레이아. 나더러 너에게 이런 저런 것을 전하라고 하셨던 내 꿈 속에 나왔던 바로 그 분. 저쪽 세계의 운명의 어머니라고 하시는 신령님이시다. 이디레이아..... 이제야 내가 그 분 이름을 제대로 외운 것 같구나. 그런데 이름이 여전히 어렵네. 전혀 입에 붙지 않아.”
“아, 그래요. 이디레이아. 방금 전에 텔리님이 할머니 속에 이디레이아님이 들어오신 걸 아시고 갑자기 대노하셔서 할머니를 공격하려고 하셨어요.”
“그래. 나도 다 봤단다. 너와 광식이가 잘 말리더구나. 하마터면 죽을 뻔 했지.”
“그런데 방금까지 계시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셨네요?”
“아, 그건 늙은 내 몸이 감당하지 못해서 더 오래 계시면 내가 죽을까봐 날 배려하신 거야. 직접 말씀하실 게 있다고 하시니 다시 오실 거다. 그 땐 나도 좀 무리가 되더라도 힘쓰고 참아야지. 무엇보다도 여긴 장소가 안 좋다. 사람들의 눈도 있고. 여기서 어서 나가자. 이봐, 오 선생. 덕분에 잘 먹었어. 계산을 부탁해.”
할머니는 강원도 아저씨를 보며 나갈 준비를 하자고 했다.
“아.... 그렇지. 계산. 그런데 저더러 오 선생이라니요? 웬일로 절 부르실 때 선생까지 붙여주십니까?”
“이 늙은이가 어디 가고 싶을 때 차 태워주고 먹을 거 사주는데 선생이 아니고 뭐겠나. 늘 고마워하고 있었어. 오다리 선생.”
순간 아저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니, 할매.... 내가 본명을 말해준 적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 이름을 몰라서 항상 날 ‘이봐, 이봐’ 그렇게 부른 거 아니었어요?”
“낄낄낄. 그랬지. 그런데 간밤에 자네 부모님을 꿈에서 만났다네. 그들이 네 이름을 알려주더구나. 그 두 사람도 거의 내 나이 또래라 우린 쉽게 친구가 되었지. 아, 맞다. 그 양반들이 네게 이걸 꼭 전해달라고 했었는데. 깜박했네. 14, 25, 33......”
할머니가 숫자들을 말하기 시작하자 아저씨의 두 눈이 커지면서 재빨리 적을 것을 찾았다.
“아아아... 잠깐만요. 그거 로또 번호잖아요! 14, 25, 한 번만 더 불러줘요.”
“33.... 그리고 또 뭐라고 그랬지. 오늘 아침까지 다 외웠었는데 다 까먹었네. 아이 참. 나이가 드니까 기억력이 영 안 좋아져.”
“할매! 그거 사람 인생이 달린 문제입니다! 아니, 우리 가족의 미래가 다 거기에 달렸다고요! 제발 기억을 좀 더듬어 봐요. 숫자 3 개만 더요. 어서요!”
“이 눔아! 기억이 안 나는데 뭐 어쩌라는 거냐? 아이 참... 그 양반들이 자기 아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는데... 아니, 이 늙은이가 무슨 수로 그 번호를 다 기억해. 쩝.”
아저씨는 눈이 뒤집혔다.
“에라이, 할매는 진짜 맨날 날 부려먹기만 하고 부모님이 전해달라는 중요한 번호는 중간에서 까먹어 버리고! 내가 못살아. 으휴!”
“오달희 이눔아. 그 번호 세 개도 내가 최선을 다 한 거다. 뭐, 미안하게 됐다. 네게도 네 부모에게도.”
강원도 아저씨의 본명이 오달희였나 보다. 그의 본명을 듣자 건수와 미스터 황은 먼 산을 보며 아주 작게 '큭-'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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