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 미지와의 조우 - 40 화
미지와의 조우 – 40
알렉시스는 에뮤니우스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떻게 제가 도와드리면 될까요? 여긴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입니다. 어떻게 도망가신다는 건가요? 빨리 말씀해주세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도모하겠습니다. 통할지 안 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이동하시다가 혹시 제게 따라 붙을지 모르는 병사들의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는 거죠? 저더러 배신자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하아..... 알렉시스님.... 다 아시면서 또 그렇게 말씀하시는군요. 잊으셨나요? 당신은 이미 배신자입니다. 당신은 이미 예전에 후안 때문에 불새 신전을 배신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어중간하게 중간에서 서 계실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쪽에 분명히 서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명심하세요. 우리의 목표는 불새의 몰락입니다. 혹시라도 그게 아니라면 그의 대사제, 솔로우스라도 쓰러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서 부활의 능력을 빼앗아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후안도 살 수 있습니다.”
“자꾸 의심해서 죄송합니다만, 솔로우스님을 쓰러뜨린다고 해서 그 능력을 얻는 게 가능할까요?”
“믿으십시오. M이라면 가능합니다. 푸라 글로리아를 만든 그의 힘을 보셨을 겁니다. 죽었던 후안을 다시 살려서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시킨 것을 당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잖습니까? 그들을 그냥 이 세계의 다른 미개인들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아시는 것보다도 훨씬 오랫동안 그들은 우리 세계의 강력한 아군의 후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푸라 글로리아도 그렇게 해서 탄생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고향 땅을 밟았을 때 제일 먼저 할 것은 그 아군을 도와서 불새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이르는 첫 걸음이자 장애물은 바로 대사제 솔로우스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쯤 저쪽 세계에서 그는 이미 우리 아군에 의해 제거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의 정수도 확보되었을 지도 모르구요. 다만 뽑아낸 정수를 이곳으로 옮길 수 있는 통로가 없을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제 세계와 이 세계를 이어주는 교두보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만 있으면..........”
“예. 후안을 완전하게 되살릴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그들은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아까부터 불안하게 흔들리던 알렉시스의 눈동자에서 흔들림이 사라졌다. 그녀는 더 이상 주저함 없이 에뮤니우스의 도주를 돕겠다고 결의를 다진 것이다. 그것이 곧 후안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이었다고 믿었다. 그녀의 눈동자와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한 에뮤니우스는 그녀의 결심에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 할 일을 잘 해야 권리가 생기죠. 윗분들은 우리가 케르케로우스님의 정수를 취해 가져오는 것을 대가로 바라고 계십니다.”
“에뮤니우스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사실 저도, 릴리카님도 누구도 다른 누구의 정수를 뽑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제만이 할 수 있다고 해서 다들 당신을 의지하고 있었다고요. 우리 중 사제는 당신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저도 아직까지 한 번도 신의 정수를 회수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실패할 확률도.... 없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아니, 정말 이참에 솔직해질까요? 윗분들은 만약 우리가 그분의 정수를 회수하는데 실패한다면 일단 검은 방의 주인 자리라도 공석으로 만들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게 만이라도 한다면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
에뮤니우스는 케르케로우스의 정수를 취하지 못하더라도 살해하는 것만은 실패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검은 방의 주인 자리는 한 동안 베토케로우스의 것이 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저쪽 세계에서 원군이 오면 상황이 정리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렉시스에게 베토케로우스를 비롯한 자세한 상황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케르케로우스님은 이 세계에 계시고 닫혀버린 검은 방 때문에 그들은 이 일을 직접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합니다. 뭐, 솔직히 이 인원으로도 힘들겠지만 우리에겐 어찌 보면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공을 세울 기회를 독점하는 거잖습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할 일을 알려 주십시오.”
이미 완전히 에뮤니우스의 페이스로 넘어 온 알렉시스에게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는 것은 간단했다.
“세 가지입니다. 일단 제가 도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소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모두가 우왕좌왕하게 되면 저를 마크하고 있는 릴리카님의 부하들을 은밀하게 해치워 주십시오. 반드시 은밀하게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불새의 인원들은 케로케로우스님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요.”
“당신을 감시하는 2, 3 명만..... 알겠습니다.”
“두 번째로 전에 제가 전송했던 두 장의 스케치 중 첫 번째 스케치를 아직도 가지고 계시지요? 젊은이들 몇 명의 얼굴을 그린 스케치를 말입니다. 그것을 릴리카님께 지금 보여주시고 그녀와 함께 그들을 찾아 주십시오. 현재로서는 그들의 얼굴과 그 동네의 스케치만이 유일한 단서입니다. 그 외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만, 저도 피신해 있는 동안 제 나름대로 힘껏 알아보겠습니다.”
“그 단서를 지금 릴리카님에게 보여 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예. 마치 제가 그들에게 잘 협조하는 것처럼 보여서 방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 도주의 성공확률이 올라가겠죠. 다만 그 이후 조사는 오로지 여러 분에게 달렸습니다.”
“얼굴과 사는 곳이 안다면 이 인원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그 풍경 스케치에 대한 정보도 없고 천리안이 없으니 잘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케르케로우스님을 발견하셨다면 그 분을 뵈러 가기 전에 제게 반드시 알려주십시오. 물론 제가 사라진 후 첫 연락은 제가 먼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락망이 연결되면 꼭 제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케르케로우스님을 처리해서 검은 방의 컨트롤을 쥐기만 하면 이 세계와 우리의 고향이 연결만 된다면.... 강력한 원군이 올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손에 들어옵니다.”
“알겠습니다. 에뮤니우스님을 믿겠습니다.”
사실 알렉시스가 에뮤니우스를 믿던, 믿지 않던 그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뒤에 있는 사신교라는 조직이 후안 마르티네즈를 손아귀에 넣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에뮤니우스의 장황한 계획이 황당하고 못마땅했지만 그것이 그녀의 옛 애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다른 칸 화장실 앞에서 다소 길어진 에뮤니우스와의 대화를 끝내고 1 등석 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에뮤니우스의 말대로 지금 릴리카에게 그의 첫 번째 스케치, 즉, 건수 친구들의 몽타쥬 스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