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늑대소년

3 부. 미지와의 조우 - 90 화

미지와의 조우 – 90

어둑어둑한 모텔 방안에서 에뮤니우스는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걱정거리와 오후에 인천에 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주일을 이렇게 침대에 누워 천정을 보면서 보냈지만 적어도 인천에 가면 무슨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베벌리 힐즈 불새 저택의 내 방에서 베토케로우스님은 작게 열린 검은 문 틈을 통해 내게 정확하게 내일 인천 시티홀 근처 커피숍에 가 있으라고 하셨어. 아마 거기서 누굴 만나라고 하신 것일 텐데, 그게 과연 누굴까? 가만. 인천.... 인천이라면..... 내가 미국에서부터 타고 온 비행기가 내렸던 도시 아닌가. 그렇다면 난 다시 그 공항 근처로 돌아가는 건가?’

사실 인천시청과 인천공항은 꽤 떨어져 있는 편이지만, 두 곳 다 지명이 인천이라서 그런지 에뮤니우스는 다시 공항근처로 가는 줄 알고 있었다. 한국 지리에 어두우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 간다라.... 이건 꽤 상징적인 거야. 새로운 시작. 새로운 기회. 새로운 나. 기분이 좋아지는군.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새벽이야.’

그의 기분이 한층 밝아졌다. 하지만 그의 뱃속은 배고픔에 지쳐 심술이 난 것 같았다.

‘꼬르르르륵~’

“어휴. 배고파서 안 되겠다. 불새군이고 뭐고 나도 먹어야 살지! 그럼 다시 생명을 걸고 나가서 음식을 사와야겠군.”

에뮤니우스가 밖에 나갈 채비를 할 때였다.

‘에뮤니우스!’

그의 머릿속에서 그를 부르는 베토케로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베토케로우스님?”

‘에뮤니우스. 나, 베토케로우스다. 내가 네게 나의 늑대를 보낼 것이다. 그를 만날 준비를 해라.’

“베토케로우스님? 지금 제 머릿속으로 직접 말씀하신 건가요? 베토케로우스님? 어디 계십니까? 당신의 늑대를 만날 준비를 하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뮤니우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베토케로우스에게 질문을 하며 그와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방금 전 그가 들었던 것은 라디오처럼 수신만 할 수 있었던 메시지였던 것이었다.

“음.... 아무래도 난 베토케로우스님과 어떤 사제 관계의 맹세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대화는 불가능한 것 같군.”

그렇게 말한 에뮤니우스는 순간 무언가를 깨닫고 잠시 머뭇거렸다.

“잠깐...... 아니지. 사실 난 베토케로우스님의 사제도 전사도 아니고 사실 정식적으로 서로 어떠한 관계도 아니기 때문에 그 분이 전달하시는 메시지를 머릿속으로 전혀 받을 수 없을 텐데.... 내가 그분의 조직에 속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내 머릿속으로 전언을 하실 수 있다니 실로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보통 전언이나 환상을 전달하는 일은 같은 신을 섬기는 조직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인데, 베토케로우스는 조직 밖의 사람인 에뮤니우스의 머릿속으로 직접 전언했던 것이다. 조직 안과 밖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자신이 원하는 상대라면 누구에게나 능력을 발휘하다니. 에뮤니우스는 보통 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베토케로우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탄했다. 또 한 편으로는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그가 두려워졌다.

그 후 십 여 분이 흘렀다. 에뮤니우스는 침대에 앉아 마음속으로 초조함을 누르며 베토케로우스의 전언을 다시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베토케로우스의 음성이 들렸다.

‘에뮤니우스. 이제 그곳에서 나와 왼 편에 있는 건물 앞에 가서 서 있어라. 나의 늑대가 네게 다가갈 것이다. 그를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베토케로우스가 자신의 대답을 들을 리 만무했지만 어쨌든 에뮤니우스는 마치 옆에 그가 있는 것처럼 대답하고 조용히 자신의 모텔 방을 빠져나갔다.

* * *

에뮤니우스는 밖에 나가 베토케로우스가 말한 모텔의 왼 쪽 건물 앞에 가서 서 있었다. 아직도 불새군의 병사들이 이 지역에서 자신을 찾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최대한 어두운 구석에 있었다. 그가 서 있은 지 몇 분이 흐른 후였다. 그의 등 뒤의 어두운 골목에서 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골목 끝 담장 위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조용히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크르르....’

베토케로우스가 보낸 늑대였다. 그 늑대는 에뮤니우스의 발아래까지 다가와서는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내었다. 그리고 곧 바로 고개를 돌려 다시 자기가 왔던 어두운 골목 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에뮤니우스는 늑대가 놓고 간 물건들을 주웠다. 안력을 집중하고 보니 그것들은 두 개의 피 묻은 지갑이었다.

‘헉. 이것은 지갑 아닌가. 피가 묻은 것을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큰일 나겠군.’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바지주머니에 지갑들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모텔 입구로 빠르게 들어갔다.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는 복도에서 그는 생각했다.

‘이건 또 뭐야. 무슨 공작금을 전달하는 스파이도 아니고... 허허허. 오래 살다보니 짐승에게서 돈을 건네받는 일도 생기게 되는군. 그나저나 내가 수중에 돈이 별로 없다는 것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가 딱 돈이 필요한 시점에 이렇게 돈을 전달 받았어. 이게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만약에 그런 것까지 파악해서 베토케로우스님께 보고할 수 있는 정도의 녀석들이 내 주위에 배치된 것이라면, 그놈들은 보통 늑대들보다는 능력이 뛰어난 모양이군. 아무튼 정말 놀라운 일을 또 하나 경험하게 되었네. 그런데 이 지갑들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에이... 나도 참. 겉에 묻은 피를 보면 몰라? 생각을 하지 말자. 찝찝한 마음이 되니까.’

에뮤니우스는 방에 들어와서 바지주머니에서 지갑들을 꺼냈다. 마침 돈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때마침 돈을 받으니 속으로 신기해했다. 잠시 그 지갑들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궁금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 * *

이른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에뮤니우스는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챙겨서 모텔을 서둘러 나왔다. 사실 그는 장기투숙을 위해 몇 주나 더 그곳에 있을 수 있었지만 카운터의 점원이 자신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개의치 않고 자신에게 급한 일이 생겨 방에서 나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점원은 그에게 남은 기간만큼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에뮤니우스는 그에게 팁이라고 가지라고 했다. 점원은 어리둥절한 채로 문 앞까지 나와서 에뮤니우스를 위해 택시를 잡아주었다. 에뮤니우스는 점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택시에 올라타서 기사에게 말했다.

“테이크 미 투 인촌 시티홀, 플리즈.”

“인천 시티홀? 아, 인천시청이요. 오케이! 땡큐. 하하하!”

이른 아침부터 장거리 손님을 태운 택시기사는 기분이 좋았다.

에뮤니우스를 태운 택시는 조용히 와본동을 뒤로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에뮤니우스가 받은 지갑의 주인들이 참혹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될 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늑대들이 더 은밀한 곳에다 그 시체들을 숨겼을 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발견될 것이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에뮤니우스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방금 창밖으로 고기 집과 팥빙수 가게가 서 있는 사거리가 스쳐 지나갔다. 일주일 전 건수와 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저녁 식사가 생각났던 것일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