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첫번째 분기점, 3월 15일 (2)
*습작을 겸하고 있으며,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써 볼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중학인생 역전 프로젝트
6화: 첫번째 분기점, 3월 15일 (2)
김규홍은 교실을 나서던 재웅과 진성훈을 가로막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딱히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었다. 일단 세상 두려울 거 없는 양아치를 단번에 굴복시키기에는 그의 신체 조건이 충분치 않았다. 근력 운동의 ‘근’자도 모르던 시절의 몸으로 날린 발치기는 분명 약간의 충격과 상당한 모욕감만 주었을 게 뻔했다.
물론 옆에 서있다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진성훈처럼 당황하거나 두려운 건 아니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노리던 시나리오였으니까. 그가 기억하기로 김규홍은 누군가에게 크게 대어본 적이 없었다. 애당초 그럴 만한 대상이라면 본인이 귀신같이 감지해서 알아서 기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김규홍이 숙이고 들어가는 인물에 어린 재웅은 없었다. 즉, 그에게 있어 재웅의 찰진 싸커킥 한 방은 참교육이 아니라, 일종의 도전이나 다름없는 것일 터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그 만의 서열 기준은 아무 공신력 없는 뇌피셜일 뿐이었다. 아니, 곧 그렇게 교육 받게 될 것이다.
“야, 그냥 가려고?”
그냥 가려고? 한참 감정 잡고 메소드 연기 펼치다가 생각해낸 말이 고작 ‘그냥 가려고’냐? 꼭 태어날 적부터 발자국에 한 세 번은 찍힌 듯한 면상에서 흘러나온 말에 재웅은 순간적으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풋!’, 특별히 의도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 시대의 마지막 열혈남아 1학년 15반 3대장 김규홍을 도발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이 새끼가··· 지금 쪼갰냐?”
“살다가 터지는 순간이 있으면 웃을 수도 있는 거지, 내가 네 허락이라도 받고 웃어야 하냐?”
“허, 참나! 큰일 나지, 아주 단단히 나야지. 너희는 오늘 집에 그냥 못 갈 줄 알아, 알았어?”
“야, 김규홍! 그냥 가자, 빨리 와!”
교실 밖에서 들리는 심영진의 목소리, 당시 기준으로 사실상 15반의 최고권력자나 다름없었던 그는 김규홍이 맞은 거나 리벤지 매치를 치르겠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심영진은 나름 초등학교때 운동부 시늉도 낸 적이 있었던 지라, 스스로를 지방 권력보다는 중앙 권력 쪽에 가깝다고 여기던 놈이었다.
게다가 딱히 누굴 지독하게 괴롭히는 성격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노는 무리와 적극적으로 같이 다닌 것 외에는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소위 말해, 남한테는 별 피해 주지 않는 대신, 학교 내 지분만 차지하고 있는 그런 부류였다. 한 마디로 말부터 통하는 애였기에 김규홍과 대립각을 세운 재웅도 그와 따로 충돌할 생각은 없었다.
“야, 김규홍! 새끼야, 그냥 가자니까.”
“그럼, 너 먼저 가! 나는 이 자식이랑 마저 얘기 하고 갈 테니까!”
“난 모르겠다, 네 맘대로 해라.”
분명 일년 내내 잘만 붙어 다녔던 거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심영진은 김규홍을 붙잡는 대신 다른 친구와 먼저 가버렸다. 3대 꼴통 중 마지막 멤버인 황진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애당초 교실 안에서만 그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순식간에 혼자가 되어버린 김규홍은 내심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그냥 간다. 집에 가서 얼굴 잘 씻어라.”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재웅은 먼저 결정타를 날렸다. 이제 곧 김규홍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덥석 받아먹을 것이다.
“지랄하고 있네. 가긴 어디를 가, 이 새끼야. 바로 따라 나와. 그리고 진성훈, 너도 남아.”
“성훈이가 여기서 왜 나오냐, 이 꼴통 새끼야. 아니다, 아까 성훈이 맞은 거 사과 받아내야 되는 구나. 그냥 멀리 갈 필요도 없지? 학교 옆 공설 놀이터로 가자고, 됐지?”
아마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본인보다 체격 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권력 서열 근처도 온 적 없었던 웬 생전 처음 보는 놈이 전혀 쫄지를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마 평생 알아내지 못할 비밀이 있었다. 그의 앞에 서있는 이재웅은 사실 중학생이 아니라는 비밀을, 그것도 2년 동안 사람 조지는 법 하나는 제대로 배워온 헌병 출신임을 말이다.
리벤지 매치 장소로 결정된 학교 옆 놀이터는 확실히 화제성 측면에서 가장 좋은 곳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놀다 집에 들어가든, 일찍부터 학원 뺑뺑이를 치기 위해 집에서 나서든,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 앞을 지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름 학교 네임드로 알려진 놈이 먼지 나듯 맞았다는 소식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야, 이재웅. 너 아까 엄청 비겁했던 거 알지? 때리는 도중에 싸커킥이나 날리고.”
“매일 먹고 싸는 것만 반복해서 그런 가, 머리속까지 똥으로 가득 찼냐? 네가 아무 잘못 없는 놈 잡아서 팬 건 생각 안 하지?”
“내가 패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
‘퍽!’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서로 만담만 나눠봐야 시간만 아까웠던 관계로 재웅은 망설임없이 김규홍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비록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몸에서 나오는 주먹이라 큰 위력은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맞는 상대로 몸과 머리 모두 성장하지 않은 중학생, 작은 주먹이라도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남겨줄 수 있는 나이였다.
‘퍽, 퍼억! 빠악! 팍! 퍽!’
만약 이날 비가 내렸으면 정확히 속담에 들어맞는 장면 이었을 텐데, 아까웠다. 자신만만하게 교실 문을 가로막았던 김규홍은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주먹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땅바닥에 맥없이 쓰러졌다. 그는 팔을 들어 얼굴 부분을 열심히 가려보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애당초 멋있는 장면을 연출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서 학생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놀이터 주위에 몰린 학생들이 마치 굉장한 구경거리라도 찾은 마냥 저마다의 해설과 논평을 남기면서, 두 남자아이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김규홍은 재웅의 파운딩 세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모래사장 위에서 허우적대기만 하고 있었다.
“규홍아, 언제까지 그렇게 맞기만 할래?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지친다 이 새끼야.”
마진이 뽑힐 만큼 충분한 관객이 들어왔을 때쯤 날리는 결정적인 대사 한 마디는 모름지기 상당한 효과를 가지는 법이다. 놀이터에 몰린 학생들은 김규홍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삼산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름 중앙권력에 가까웠던 자의 완벽한 몰락, 새 학기 핫 이슈로 이거 만한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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