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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Shake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 이후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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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06.23 14:41
최근연재일 :
2020.10.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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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913

작성
20.06.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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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유령 사냥꾼 - 4

DUMMY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만, 바이젤님. 이 집에 온 게 한두 번이 아닌 것 같군요.”


“여긴 군트프리트의 집입니다. 당신은 그걸 알면서도 계속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있어요. 저번에는 당황한 나머지 실수로 공격했지만, 이번에는 실수가 아닐 겁니다.”


“전 나쁜 짓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전 아이넬의 유령 사냥꾼이고, 최근에 유령들이 계속 줄어들어 그 원인을 추적하러 여기까지 온 것뿐입니다.”


“내 금화를 훔쳐가 놓고서는 참으로 뻔뻔하네요.”


“당신이 마족이라는 걸 안 이상 굳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지요.”


마리우스는 전투태세를 취했다.


“싸우기 싫다면 더 이상 여기에 찾아오지 마세요. 여긴 당신 집이 아니에요. 쓸데없는 데 관심을 갖지 말고 사냥이나 잘 하세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계승자와 싸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요.”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유령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빠르게 줄고, 유령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은 어디론가 사라졌죠. 저희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인 만큼, 곱게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그럼 하는 수 없네요.”


바이젤은 오른손을 들어 번개구를 소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리우스 쪽이 더 빨랐다. 그는 재빠르게 화살로 그녀의 오른손을 꿰뚫었다. 바이젤은 다친 손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계승자가 일개 사냥꾼에게 지는 걸 보니, 역시나 마족이 맞군요. 마족의 주신이 죽어버렸으니 더 이상 어둠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겠죠. 자, 다음번에도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머리를 노릴 겁니다."


바이젤은 조용히 그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그 일기장을 돌려줘.”


“이 일기장은 군트프리트의 무기고에 숨겨져 있더군요. 당신이 숨긴 거 맞죠? 군트프리트는 이미 죽어버린 겁니까?”


그녀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군트프리트는 아이넬 사람들의 공공의 적입니다. 그가 창조한 유령이 죽인 아이들만 세 자릿수가 넘어가죠. 그 쓰레기 같은 놈은 백 번 죽어도 마땅하지만, 지금은 그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말해주십시오. 그가 어떻게 됐는지.”


“그 이름을 함부로 모욕하지 마!”


여자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 몇 방울이 떨어졌다.

“그 사람은......내 남편이었어요. 당신들에게는 사악한 존재였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무척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무엇보다 이미 죽은 사람이에요. 그러니......부디 그를 더 이상은 욕하지 말아주세요.”


마리우스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마법 화살을 해제한 뒤 그녀의 다친 손을 적당히 치료했다. 여전히 상처는 깊었지만, 더 이상 피는 흐르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다 나을 거예요.”


바이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했다. 그녀는 본래 천족 사람으로, 지금으로부터 백년도 더 전에 아이넬을 세운 개척자들 중 한 명이었다.


천족과 마족의 신은 각각 자신의 축복을 받은 계승자들을 동원해 전쟁을 벌였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세력의 전쟁은 격렬한 전쟁과 휴전을 동반한 소강 상태가 반복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휴전 협정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군트프리트는 마족의 관료들 중 한 명으로, 계승자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천계로의 파견되었다. 군트프리트는 휴전 협정의 일환으로 천족의 몇몇 마을을 찾아가 그들의 일을 돕는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그때 바이젤을 처음 만난 것이다.


둘은 처음에는 데면데면했지만, 이런 종류의 사랑 이야기가 늘 그렇듯 서로를 돕다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어느샌가 둘은 마을 사람 전체가 아는 연인 관계가 되었다.


오랜 전쟁에 지쳤던 군부는 앞장서서 휴전 협정을 진행했고, 군트프리트와 바이젤은 화해의 상징이 되어 테디아 전체에 그 이야기가 퍼지게 되었다. 몇몇 계승자들은 아예 두 종족의 종전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싸우지 않는 관료들, 귀족 계승자들은 오히려 휴전에 반대했다. 그들은 휴전은 곧 선조들을 모욕하는 것이며, 마족은 이제까지 수도 없이 휴전 협정을 위반해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마족이 과거에 협정을 어기고 선제공격을 가한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강경파의 주장 역시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천족 역시 먼저 배신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경파는 그 부분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러던 와중 천족 최대의 마력 충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은 것은 물론이고, 어마어마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테러범은 마족 우월주의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 테러리스트의 행동에는 여러모로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지만, 천족의 강경파는 이 사건을 기회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천계 곳곳에서 마족과의 휴전이 불만인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몇몇 마족들은 마계보다 따뜻한 천계에서 살기를 원했고, 천계는 이들을 협력이라는 명목으로 받아주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다른 환경과 문화 아래에서 살아온 마족들은 사사건건 천족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천족 사이에서는 점점 마족에 대한 반감이 심해진 것이다. 그 반감이 본격적으로 분출되자, 여론은 순식간에 전쟁 개시로 바뀌게 된다.


결국 천족과 마족은 이제까지 으레 그랬듯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왜 싸워야 하는지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지만, 원래 전쟁에 제대로 된 이유는 없는 법이다.


그와 동시에 군트프리트와 바이젤 역시 아이넬 사람들로부터 결별할 것을 요구 당했다. 바이젤이 거부하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배신자로 칭하며 죽이려 들었다.


군트프리트는 계승자의 능력을 이용해 그녀와 함께 도망치는 데 성공했으며, 둘은 천족과 마족이 싸우지 않고 공존한다고 알려진 곳으로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그들을 수상하게 본 천족 경비대에 의해 붙잡히게 되었고, 군트프리트는 살아남았으나 결국 바이젤은 죽었다.


그녀의 죽음은 연인을 바뀌게 만들었다. 분노한 군트프리트는 천족 경비대를 학살한 뒤, 아이넬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 이 때 아이넬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이후 군트프리트는 아이넬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 자신의 영역을 만들었으며, 그 영역에서 유령들을 만들어 아이넬을 비롯한 천족의 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군트프리트는 ‘암흑 군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바이젤은 죽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군트프리트가 폭주하고 테디아 전체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마족 계승자들에게 구출되었으며, 이후 마족 영토 깊숙한 곳의 실험실에서 깨어났다.


본래 천족과 마족에는 그들을 다스리는 주신이 한 명씩 존재하며, 그들은 인간들 중 몇몇에게 자신의 힘을 나누어주어 ‘계승자’로 만든다. 이들은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전투력을 바탕으로 천마 전쟁의 선봉에 섰다. 문제는 이들의 숫자가 전체 인구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었다는 것이다. 주신의 마력은 무한하지 않았다.


마족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승자들이 주신의 축복을 재현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그 대상들 중 하나가 그녀였던 것이다. 바이젤은 본래 천족 사람이었으니 천계, 특히 테디아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천족에 의해 죽을 뻔한 만큼 마족을 위해 싸우기를 원했다.


실험은 성공했다. 많은 마력이 소모되었지만, 바이젤은 마족 계승자의 상징인 검은 날개를 얻었다.


그녀는 이후 천계에 잠입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녀의 전투력은 계승자 치고는 그리 강하지 않았으나, 상인 일을 하면서 얻은 지리 정보를 바탕으로 마족 첩자와 암살자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마족 사령부는 그녀에게 상당한 대우를 해주었으나, 한 가지가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은 바이젤이 외부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군트프리트에게 자신의 생존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막았다.


군트프리트는 연인을 잃었다는 분노로 인해 천족을 적극적으로 공격했으며, 전투에서 수많은 성과를 내는 것은 물론 테디아 내에 자체적인 영역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서 바이젤이 다시 그 앞에 나타나게 되면, 마족의 승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젤은 슬퍼하면서도 사령부의 지시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살아난 것 자체가 기적이었고, 그저 멀리서 군트프리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렇게 백년이 흘렀다.


이제 마족 정보부에서 상당한 입지를 갖게 된 그녀는, 얼마 전부터 차원의 균열을 통해 넘어오는 정체불명의 괴수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괴수와 맞서기 위해 더 많은 지원 병력을 요청했으나, 천족과 싸우는 데 지나치게 몰입했던 마족 사령부는 이를 무시했다. 바이젤은 그 괴수가 어쩌면 천족보다도 더 위협적인 상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국 괴수들에 의해 후방이 붕괴하자, 마족의 군대는 무너졌다. 천족 계승자들은 자신들과 그들을 이끄는 여신을 찬양했지만, 바이젤은 그 괴수들이 이제 곧 천계를 덮칠 것이라 예상했다. 사실상 정부가 붕괴되며 도망자 신세가 된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을 찾아가 그와 함께 괴수에 대해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군트프리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이었을까? 아니면 천족과의 싸움에서 당한 저주가 뇌로 파고든 걸까? 군트프리트는 그녀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말은 했지만, 죽은 줄 알았던 연인이 눈앞에 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연인의 이름조차도 잊은 지 오래였다. 바이젤은 처음에는 섭섭해 했으나, 자신의 정체를 지금 밝힌다고 해도 그가 믿을 것 같지 않아 결국 모르는 체 하기로 했다.


비록 암흑 군주는 기억을 잃었으나, 바이젤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역설적이게도 마족의 패망이 그들을 다시 이어준 셈이었다. 그녀는 군트프리트에게 함께 괴수에 대해 조사하자고 제안했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패잔병 신세가 된 그는 바이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둘은 괴수의 흔적을 쫓았고, 그것에 대해 기록으로 남겨 이후의 천족 사람들이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했다.


긴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보였다.


“군트프리트는 괴수를 추적하던 중에 죽은 거군요. 그렇죠?”


바이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우스는 더 이상 과거를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이 유령들은 이제 생겨나지 않는 겁니까? 그가 정말로 죽었다면, 전 이제 다른 살길을 찾아봐야 합니다.”


“마법진에 마력 자체는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기 때문에, 가끔씩 한두 마리가 생겨날 가능성은 있어요. 다만 사냥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겠죠. 제 금화를 쓰세요. 그냥 드릴 게요. 뭐 이미 쓰고 있는 것 같지만......”


“감사합니다.”


마리우스는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넬의 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가문의 생계를 책임져온 유령은 이제 계속 줄어들 것이다. 금화 역시 무한히 많은 것은 아니니, 그는 정말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어머니 말대로 관료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또래의 다른 친구들처럼 바다거북을 잡아야 할까? 아니면 상인이나 대장장이가 되어야 할까?


그는 그것들 중 어느 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 공부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걸로 먹고 사는 건 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억지로라도 사냥에 나섰던 것인데, 이제는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순간 마리우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어처구니없고 괴상한 생각이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에서 할 말을 제대로 여과시키지 않았다.


“바이젤님.”


그녀가 마리우스를 쳐다보았다.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제가 당신이 하는 일을 도와주면 어떻겠습니까?”


바이젤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


마리우스는 자신이 헛소리를 했다는 걸 곧바로 알아챘다.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아 그런 걸까? 그는 바이젤이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할까봐 두려워졌다. 그는 곧바로 발언을 철회하려 했다.


“죄송합니다, 방금 했던 말은 그냥 무시......”


“좋아요.”


“네?”


마리우스는 당황했다.


“좋다는 건, 설마 제가......”


“맞아요. 같이 그 괴수들을 조사하는 거예요.”


그녀의 허가가 떨어지자 정작 마리우스가 더 어이없어했다. 암흑 군주는 모든 아이넬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었다. 그리고 바이젤은 그의 연인이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아무 소득도 없는, 정체불명의 적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탐험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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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령 사냥꾼 - 5 +1 20.06.25 352 9 13쪽
» 유령 사냥꾼 - 4 +1 20.06.24 417 10 13쪽
3 유령 사냥꾼 - 3 +1 20.06.24 475 11 13쪽
2 유령 사냥꾼 - 2 +1 20.06.23 665 11 13쪽
1 유령 사냥꾼 - 1 +4 20.06.23 1,872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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