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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야근의신 입니다.

자동차 회사의 역대급 낙하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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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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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06:00 연재
작품등록일 :
2024.07.3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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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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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8.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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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제3화 공손한 주먹인사

DUMMY

“으아아암, 잘 잤다.”


말 그대로 꿀잠을 잤다.

드넓은 킹사이즈 침대와 포근한 거위 털 침구류는 집에 그대로 들고 가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혼자 지내기엔 아쉬울 정도로 넓은 16평의 공간.

힐튼 임페리얼 두브로니크 호텔의 디럭스 스위트룸의 위엄이었다.


진수는 자그레브에서 장재성에게 이틀간 특훈을 받았다.

그와 비슷한 스타일로 머리를 깎았고, 어떻게 머리를 만지는지도 배웠다.

그리고 그의 워드로브를 어떻게 매치시켜서 입는지, 풀 착장 샷을 일일이 사진으로 남겨놨다.


“이야, 이 정도면 진짜 내 지인이 슬쩍 봐도 속을 것 같은데? 내 예상보다 더 감쪽같다.”


장재성은 이틀간 자신이 만들어 놓은 대역을 매우 만족해했다.

그리고 야음을 타고 홀연히 떠나가 버렸다.


- Hello, room service speaking. How may I help you?(안녕하세요, 룸서비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I'd like to order some room service.(룸서비스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 Okay. What would you like?(알겠습니다. 어떤 걸 갖다 드릴까요?)

- English breakfast, please.(영국식 아침식사를 부탁드립니다.)


어제는 조식 뷔페를 먹으러 내려갔었는데, 오늘은 난생처음으로 룸서비스를 시켜봤다.

그냥 방에서 즐기는 아침의 여유를 한번 누려보고 싶어서였다.

개카가 아닌 법카를 들고 출장을 와도 이런 건 못 먹는다.

하지만 직접 허가 받은 재카, 재벌의 카드를 들고서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TV를 틀었더니 크로아티아어로 뉴스가 흘러나왔다.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략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이자 모델, 엘레나 수아레즈(Elena Suarez)가 패션쇼 관람을 위해 밀라노에 방문했다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병명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차피 저건 꾀병이었다.

공식적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알려진 엘레나 양은 지금쯤 이태리 남쪽에 있는 몰타(Malta)라는 나라에서 장재성과 함께 화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시간이었다.


한국의 재벌 3세와 스페인계 할리우드 여배우와의 밀애.

여러 나라 언론에서 탐낼만한 이슈이긴 했다.

둘 사이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저 연인들의 밀애 덕분에 어부지리로 호사를 누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둘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부럽다...쩝.”


엘레나가 초미녀라서가 아니었다.

사랑과 정열을 불태울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부러웠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싶은데, 그럴만한 대상이 없다는 사실만큼 외로운 일이 또 있을까.


문득 베네치아에서 만났던 안드레야가 생각났다. 그녀의 추천으로 크로아티아에 오게 됐고, 장재성을 만나게 됐으니 진수에겐 인생의 큰 은인이었는데...

쿨하게 헤어진답시고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아서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다.


정말 희한한 게 안드레야의 얼굴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촉각과 체취, 목소리와 맛은 떠오르는데.

얼굴을 마주한 시간보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있던 시간이 더 많아서인가?

이렇게 꿀꿀하고 멜랑콜리한 기분을 떨치기 위해선 산책이 답이다.


* * *


‘If you want to see heaven on Earth, come to Dubrovnik.’


아일랜드의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만약 지상에서 천국을 보고 싶다면, 두브로니크로 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두브로니크에 와 봤더니,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드리아해를 배경으로, 동로마 제국 시절의 요새와 성벽이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는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높은 성벽에 올라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속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며 성벽을 따라 걷고 있는데, 동체시력이 좋은 진수의 눈에 수상한 남자가 감지됐다.

어제 시내에서도 봤던 남자였다.

얼핏 봐도 키가 190 가까이 되는 장신이라서 그런지, 미행이라 부르기 애매한 뭔가 어설픈 움직임이었다.

진수는 사진을 찍는 척 시선을 다른 쪽으로 두고 그 남자 근처로 접근했다.


“Hey, I know who you are. I'm traveling alone.(이봐.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 나는 혼자 여행 중이야.)”

“Ah...umm.”


기습적인 공격에 남자는 당황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Tell her not to worry and this is tip for you.(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 그리고 이건 당신에게 주는 팁이고.)”

“OK, OK. Thank you, thank you.(네, 네. 감사합니다.)”


수상한 남자는 진수가 내민 1,000 쿠나, 약 20만 원 정도의 현금을 받고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물론 진수가 혼자서 벌인 돌발행동은 아니었다.

어제 장재성에게 수상한 남자에 대해 보고했더니, 또 마주치거든 도발적으로 공격을 해보라고 했다.


[장재성] 내가 원래 장난을 좋아하거든. 아마 그렇게 하면 진짜 내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할 거야.


후우...

심장이 아직도 두근거리는 걸 보니, 꽤나 스릴있는 장난이었다.


성벽을 따라 탁 트인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해봤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인데 사진을 아무리 찍어봐도 그 감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한국과 시차가 있긴 했지만, 해가 쨍쨍한 대낮에 이렇게 놀고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진수 역시 사무실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며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었을 시간이라, 이렇게 한낮의 햇살을 즐기지는 못했을 거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한 것 같았다.

직장에서 더럽고 힘든 꼴을 보고 견디며 생고생을 했던 게, 마치 이 성벽이 세워진 시간만큼 오래된 것 같았다.

현실을 떠나 환상의 세계로 넘어온 듯한 기분이랄까.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크로아티아 여자와 이틀간 뜨거운 밤을 보낸 것만 해도, 친구들 사이에서 평생 안줏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었다.

솔직히 얘기해줘도 믿지 않는 놈들이 많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에피소드였다.


현도차그룹의 재벌 3세를 구해주고 그의 대역을 뛰고 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말이 안 됐다.

어차피 비밀 유지 서약 때문에 어디 가서 떠벌리지 못할 일이긴 했지만.


그나저나 장재성이 진짜 약속대로 현도자동차에 취업시켜줄까?

현도차는 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직장 중 한 곳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이직 걱정, 생계 고민 따위는 안 해도 될 텐데...

설마 본인의 일탈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려고 드럼통에 넣어서 아드리아해 깊은 곳에 던져 넣지는 않겠지.


“흐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영화는 현실과 다르다.

암, 그렇고말고.

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성벽을 내려왔다.


* * *


“잘 다녀오셨습니까?”

“덕분에 소리소문없이 잘 다녀왔다. 고마워.”


장재성은 몰타에서 일주일간의 밀회를 즐기고 다시 크로아티아로 돌아왔다.


“나도 플리트비체는 처음이거든.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 여기서 보자고 했다.”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čka Jezera Nacionalni Park)은 16개의 푸른 호수와 산림, 그리고 수많은 폭포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유명한 관광지였다.


진수는 마지막에 들렀던 도시인 자다르(Zadar)에서, 장재성이 맡긴 모든 짐을 싸서 인편으로 자그레브에 있는 호텔로 보내놨다.

그리고 자기 옷을 꺼내 입고 모자와 선글라스로 무장한 채 버스를 타고 플리트비체까지 왔다.

중간에 버스를 갈아탈 때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고 옷을 갈아입기까지 했는데, 이 모든 건 장재성의 사전 지시에 따른 거였다.


두 사람은 국립공원 산책 코스 중 가장 짧은 A코스를 따라 걸었다. 3.5km의 거리를 세 시간 정도에 완주하는 가장 쉬운 코스였다.

진수는 그동안 일과를 정리해놓은 일지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놓은 USB를 제출하고, 구두 보고를 했다.


“고생 많았어.”

“고생은요. 저야 완전 호강했습니다. 이렇게 여행을 해본 건 평생 처음입니다.”


재성은 헬리콥터 한 대를 섭외하고, 병원 헬리 패드에서 비밀리에 여친을 픽업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대로 공항으로 직행해서 전세기로 갈아타고 몰타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했다.

병원 측에서도 극소수의 경영진과 담당 의사, 간호사 정도만 이 비밀을 알고 있다고 했다.


헬리콥터에 전세기, 병원 관계자들의 입막음을 위한 뇌물 등등 진수의 머리로는 감히 견적도 뽑기 힘든 스케일의 행보였다.

눈앞에 있는 이 형님은 정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실감 났다.


“사진 한 장 찍어 줄까? 폰 좀 줘봐.”


재성은 멋진 폭포 앞에서 자연스럽게 진수의 폰을 탈취하고는, 전화기를 바로 돌려주지 않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진지한 표정에 범접하기 힘든 포스를 뿜어내고 있어서, 왜 남의 폰을 함부로 뒤져보냐는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어.”


재성은 씨익 웃으며 진수의 폰을 돌려줬다.


“내 이야기를 제삼자에게 전달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 약속을 지켰다면 믿을 수 있는 놈이라는 거고, 어딘가에 발설했는데 그 흔적을 지운 거라면 용의주도하다는 건데... 전자가 맞지?”

“네, 맞습니다.”


‘비밀 유지의 의무’는 장재성과 함께 작성한 계약서에 있는 조항이었다.

이걸 어길 시에는 그동안 쓴 모든 경비와 현금 천만 원을 더한 총금액의 다섯 배를 물어내기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평소에도 입이 싼 편은 아니었고, 페널티가 무서워서라도 입을 함부로 놀릴 생각은 없었다.


“나는 휴가를 다 썼으니, 이제 출장으로 잡은 일정을 소화해야 해. 독일 테크니컬센터에 가 봐야 해.”

“독일에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 우리가 작년에 출시한 VF있잖아. 이게 작정하고 유럽 타겟으로 만든 전략 모델이거든.”


y40.

국내에선 인기가 없는 왜건 모델의 D세그먼트 중형차였다.

유럽 시장에서는 해치백과 왜건의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현도차는 C세그먼트 해치백인 y30로 유럽 시장에 먼저 도전하고, 이어서 한 체급 위의 왜건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진 거였다.


“한국에서는...”

“그건 어쩔 수 없지. 원래 한국 시장을 노리고 만든 차가 아니니까.”


국내에서는 신차 효과를 크게 누리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는 모델이긴 했다.

가격대가 쏘나티네와 그랜다이저 사이에 끼어있어서, y40를 살 돈이면 그랜다이저를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소비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자동차 얘기를 했다.

장재성은 블록버스터급 밀회를 즐기고 온 재벌 3세에서, 이제 본업인 현도차의 임원 모드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네 살이지만 국내 굴지의 완성차 회사의 오너 일가 재벌 3세다운 포스가 느껴졌다.


“다음에는 한국에서 보자. 우리 회사 입사 일정하고 그런 세부적인 문제는 그때 상의하자고. 전 직장에서 고생 많이 했다니까 푹 쉬면서 리프레시도 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특별 보너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준 것 같아서.”


장재성이 내민 봉투를 열어보니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국항공의 프레스티지석 편도 항공권이 들어있다.

‘Jang/Jinsoo’. 영문 이름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 오픈 티켓이었다.


“원래 오픈 티켓을 끊어 왔다며?”

“아니... 뭐 이런 걸 다...”

“열 시간 넘게 이코노미 타면 힘들어. 남은 여행도 충분히 즐기다가 편하게 귀국해.”

“정말 감사합니다.”


진수는 허리를 90도로 접어 폴더 인사를 박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였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헤어지자. 자.”

“넵!”


장재성은 진수를 향해 오른손 주먹을 곧게 내밀었다.


툭.


진수는 재성의 주먹에 주먹을 살짝 맞대며 인사를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살짝 숙이며, 왼손으로 오른손 주먹을 살짝 받치는 자세로 주먹을 뻗었다.

이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공손한 자세의 주먹인사가 아닐까 싶었다.

제3화 삽화_3r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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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제21화 산 넘어 산 +11 24.08.21 4,027 122 14쪽
21 제20화 비상 상황 +14 24.08.20 4,150 128 15쪽
20 제19화 Mission Complete +12 24.08.19 4,251 131 15쪽
19 제18화 아드님을 주십쇼 +8 24.08.18 4,476 120 15쪽
18 제17화 재벌도 들어줄 수 없는 소원 +13 24.08.17 4,650 124 14쪽
17 제16화 재벌 형님의 속마음 +9 24.08.16 4,679 128 11쪽
16 제15화 우리 형 동생이다 +11 24.08.15 4,717 141 13쪽
15 제14화 말은 쉽다 +14 24.08.14 4,915 154 15쪽
14 제13화 소개팅 그리고 해외 출장 +15 24.08.13 5,026 161 14쪽
13 제12화 사람을 낚았다 +15 24.08.12 5,266 158 15쪽
12 제11화 바지사장 or CEO +17 24.08.11 5,563 161 14쪽
11 제10화 종호귀산(縱虎歸山) +13 24.08.10 5,784 155 15쪽
10 제9화 새 이름이 주는 힘 +15 24.08.09 6,160 158 15쪽
9 제8화 에델바이스의 새로운 꽃말 +15 24.08.08 6,325 161 15쪽
8 제7화 한 큐에 치운다 +12 24.08.07 6,807 165 15쪽
7 제6화 장재성의 큰 그림 +11 24.08.06 7,361 174 14쪽
6 제5화 돈 헤는 밤 +18 24.08.05 8,060 208 13쪽
5 제4화 끝까지 간다 +19 24.08.04 8,555 216 14쪽
» 제3화 공손한 주먹인사 +14 24.08.03 8,699 219 13쪽
3 제2화 왕자와 거지 +14 24.08.02 9,252 231 16쪽
2 제1화 위기에 몸을 날렸다 +14 24.08.02 9,906 227 13쪽
1 Prologue 터닝 포인트 +22 24.08.02 11,832 255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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