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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알 님의 서재입니다.

아카데미에서 시한부는 죽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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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해
작품등록일 :
2021.02.12 20:36
최근연재일 :
2021.04.09 17:56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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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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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8,502

작성
21.04.0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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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언제나 지켜주고싶은, 나의 셀레네

DUMMY

케이몬은 요즘 들어 부쩍 몸이 약해졌다.

그런 와중에 셀레네와 싸우기까지 했으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됐다.


케이몬이 셀레네와 싸운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려 들떴기 때문.

몸이 허약하니 정말 진귀한 약을 선물해 줄까, 아니면 뭐 원하는 건 없냐··· 등.

은근한 눈길을 보내왔다.


케이몬이 지난주부터 평소보다 더 기운 빠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까.

그래. 어쩌면 그의 탓이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녀가 잔뜩 생일 선물 고민을 하며 들떴던 오늘은 아라의 기일이었다.


*


셀레네는 눈시울이 붉어져 복도를 빠르게 지나갔다.


'어째서지? 왜? 가장 힘든 건 나인데. 어째서 그렇게 화내는 거야.'


그녀라고 아라의 기일을 잊었을 리가 있을까.

그저 떠올리면 잔뜩 힘드니까.

아침부터 애써 밝은 척, 다른 행복한 생각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몬은 그것도 모르고 화를 낸 것이다.


'너무 억울해···.'


괜찮냐고 위로는 못 해줄 망정 도리어 화를 내다니!

하지만··· 어깨를 축 늘어지며 쓸쓸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계속 떠올라 측은해진다.


"······."


어느새 셀레네는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걱정 때문에 안색이 썩 좋지 못했다.


"저······."


상념을 깨고 들어오는 소리에 셀레네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 당신은···."


연보라색 짧은 머리를 가진 남자.

그는 그녀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잠시 얘기할 게 있습니다."


아르콘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


"저를 부른 이유가 뭐죠?"

"······."


인적이 드문 학교의 뒤편.

아르콘의 부름에 따라온 셀레네는 무표정하게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르콘이 입술을 뗐다.


"아라."

"······."

"그녀에 대해 할 얘기가 있습니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데 지금 그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셀레네의 기분이 나빠지려던 찰나.


"케이몬과··· 관련된 얘기입니다."

"케이몬··· 이라고 했나요?"

"네."


케이몬이 나오자 그녀의 눈빛도 같이 흔들렸다.


*


케이몬은 멍하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건 자신에게 있어, 절대 잊지 못할 일 년의 기억이었다.


"케이몬."

"아, 아라. 좋은 아침이네요."

"네···. 좋은 아침이에요."


셀레네 옆에 딱 달라붙어 다니던 토끼 같던 소녀.

붉은 머리가 장미의 강렬한 빛을 연상케 하는 아라는 유독 그의 앞에서 수줍음이 많았다.


"저··· 이거 먹을래요?"

"아, 감사합니다."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여기요. 여기 앉으세요···."


때로는 수업 때 빈자리가 없어 난감해하던 그에게 옆자리를 권해 주었다.

케이몬은 셀레네의 옆자리를 선호했지만, 수강자가 많은 경우에는 같이 앉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케이몬은 난감했다.


'아라의 옆자리가 남기는 했지만···.'


케이몬은 그녀와 쉽사리 친해지지 못했기 때문에 망설여졌딘.

그러나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것은 아라가 먼저였다.

그래서 케이몬도 차츰 마음을 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라가 케이몬을 따로 불러냈다.


"아라? 무슨 일로···"

"케이몬······. 케이몬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어딘가 초조한 기색의 그녀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답을 내놓았다.


"······네. 있습니다."

"그게··· 혹시 저는 아니겠죠?"

"······."


케이몬은 그녀가 자신을 왜 불러 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아라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윽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라···"

"다가오지 마세요!"


아라는 고성을 내지르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쥐고 있던 무언가를 본 케이몬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렸다.


"그건···"

"저주 인형이에요. 이걸, 이 칼로 찌르면 대상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인형이죠."


아라는 허탈한 듯 웃으며 친절히 설명해줬다.


"그걸 왜···"

"왜겠어요? 나는 케이몬을 정말 사랑해요. 언제나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고, 또 계속 그립고 같이 있고 싶을 때가 많아요."


하지만.


"당신은··· 셀레네를 좋아하니까."

"······."

"하, 딱히 뭐라 반박 하지는 않네요? 그렇겠죠. 거짓이 아닌 사실이니까."


그랬다.

케이몬은 셀레네를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었다.


그의 반응을 가늠한 아라의 허탈한 웃음이 더욱더 짙어졌다.


"그래요···. 나는 당신에게 별것도 아닌 존재였겠죠."

"아라, 제가 맹세하건대 절대 그런 적은···"


아라의 손이 움직이자 케이몬은 말끝을 흐리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거,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않는 편이···"

"내 저주가 향하는 대상이 누군지 알 것 같나요?"

"······."

"네. 당신의 예상대로 저, 그리고··· 셀레네에요."


어느 쪽이든 케이몬에게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케이몬. 저예요, 아니면 셀레네예요?"

"그 선택에 따라··· 당신의 행동도 결정되는 건가요?"


아라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케이몬은 대답을 확인한 즉시, 조심조심 발동을 걸다 몸을 움직였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아라가 힘없이 팔을 떨구며, 들고 있던 칼로 인형을 찌르려 했다.


다행히도 빠르게 다가선 케이몬이 인형을 쳐내자, 인형은 맥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


아라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자신의 앞에 선 케이몬을 올려다봤다.


"아라··· 이제 그만."


푹!


"커흑···."


복부에 피가 붉게 번져갔다.


"그거 알아요···? 사실 매개체는 저 인형 따위가 아니라 나였어요. 내가 죽으면 나와, 셀레네도 같이 죽도록··· 흐··· 저주를 걸어놨죠."


케이몬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석상처럼 몸이 굳어 버렸다.

그 사이, 아라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주의 영향인지 비정상적으로 많은 피가 흘러내려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녀의 옷이 피로 물들어 축축하게 젖어간다.


"아··· 어째서···. 셀레네는 죽지 않는 걸까요?"

"···네?"

"쿨럭! ···아. 나름 만반의 준비를 기했는데···. 으, 그동안, 그동안 암시장 측에도 접근해 보고하면서··· 그랬는데."


고통 어린 신음에 잘 알아듣긴 힘들었지만,

셀레네에게 건 저주가 무효화 됐다는 것은 잘 알아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끼던 케이몬은 금세 회의감 또한 느꼈다.


'아라가··· 아라가 죽어가는데 지금 내가 무슨······.'

"케이몬······."


아라는 희미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어렵사리 말을 내뱉는다.


"사랑, 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아라는 실 끊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아, 아라··· 아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케이몬은 황급히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했지만···.

당연하게도 역부족이었다.


이후 일이 커지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아라가 타인을 해하는 저주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저주, 그 자체만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이지만··· 자신의 몸에 새기는 저주는 들킬 시에 무조건 사형에 처했다.


아라는 이미 죽어서 또 죽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가문만 난처하게 됐다.


연좌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들의 가문 사람이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이때, 실질적으로 피해를 당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자,

직접 이를 목격한 케이몬은 이번 사건에 꽤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앙겔로스 공작이 본래 이 일을 어찌할지 논의하러 와야 했으나,

앙겔로스 공작은 케이몬이 알아서 하라는 답변만 편지에 담아 보냈다.


그래서 케이몬은 정말 자신이 알아서 해결했다.

아라의 일을 묻어두고, 그녀를 죽인 게 곧 자신이라 거짓 소문을 퍼뜨린 것.

그로 인해 그는 평생을 오명에 시달려야 했지만, 괜찮았다.


'셀레네가 알면··· 힘들어할 게 뻔하니까.'


아라가 저주를 사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그걸로 자신까지 죽이려고 했다?

결국 그녀가 죽지 않았기에 사실인지 아닌지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케이몬은 적어도 그녀에게 아라에 대한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아라는··· 내게도 특별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설령, 자신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한다 해도 죄를 뒤집어썼다.


'셀레네, 당신에게는··· 나보다 아라가 더 소중하고 큰 존재일 테니까요.'


구차한 변명이라 해도 좋다.

정말 이것 밖에 그녀가 상처받지 않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으니.

후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일지언정.


그날부터 그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


"여기는······."

"깨어났구나."


에로아스의 얼굴이 시야 중앙으로 들어왔다.

케이몬은 나직이 그녀를 불렀다.


"에로아스··· 선생님? 제가 어째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어. 이제는 정말··· 한계인가 봐. 길 가다가 이렇게 막 쓰러지고···."


에로아스의 목소리는 울먹거리는 듯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케이몬은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웃었다.


"이제는 괜찮습···"

"누워."

"네······."


단호하게 어깨를 짓누르며 그를 눕혔다.


"나, 잠시만 나갔다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야 한다?"

"알겠습···"


대답을 듣기도 전에 훌쩍이며 나가셨다.

눈물을 추스르러 나가신 모양이었다.


"죄송하네···."


끝까지 도움은 되어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쓸데없이 울리기나 하고···.


쾅!


"어? 벌써 오셨···"


갑자기 쾅! 하고 열린 문소리에 케이몬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에로아스 선생님이 그새 들어왔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케이몬······."

'아니, 왜 오늘은 하나같이···'


방금 나간 그녀처럼, 이번에는 셀레네가 울먹이며 그에게 다가왔다.


"셀레네? 왜 울고 있는 거···"

"케이몬."


셀레네는 터덜터덜 걸어오며 말했다.


"들었어요."

"네? 무엇을···"

"아라에 대한 거."

"······."


병실에 불편한 정적이 들어찼다.


*


"그걸 도대체 누구한테··· 들은 건가요?"

"···말해 줄 수 없어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보나 마나 아르콘일 터이니.


'이건 아르콘 밖에 모르는 사실이니까.'


셀레네는 발설자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약조라도 한 건지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밝혀질 일이었나.'


그리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불편한 적막 속, 셀레네가 떨리는 목소리를 입을 열었다.


"왜, 도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건가요?"


셀레네는 그동안 케이몬을 모질게 대했던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진실을 모르고 그저 원망하기만 했으니까.

급기야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케이몬은 자신의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제가 미움받고 아프고, 힘들더라도 당신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요."


세상에서 자신을 제일 아끼고 사랑해주는 마음이 그의 말에서 느껴졌다.

셀레네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흐흑, 흐으윽!"

"울지 말아 주세요. 셀레네. 꽃은 비에 젖어도 청초한 법이지만,"


케이몬은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란 꽃은 웃음꽃이 만개할 때가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지켜주고 싶은 나의 셀레네.


작가의말

원래 이 부분은 감정 묘사 빌드업이 필요하나... 너무 길어져서 어느정도 생략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이후의 것들은 이렇게 길게 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하고 나니까 진이 다 빠지네요... 한 건 별로 없는데.

어쩌면 짧게 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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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030. 달콤한 외출 +8 21.03.29 746 3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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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27. 사랑의 도주 +4 21.03.19 840 38 16쪽
26 026. 동상이몽 +3 21.03.16 899 43 15쪽
25 025. 따스한 마음 +2 21.03.13 842 49 15쪽
24 024. 극과 극 +4 21.03.11 849 43 17쪽
23 023. 무미건조 +3 21.03.09 888 45 15쪽
22 022.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발을 걸치며 +5 21.03.07 940 43 15쪽
21 021. 죽음과 소생 +5 21.03.05 919 42 16쪽
20 020. 도키메 산맥 정상에서 +1 21.03.03 922 43 17쪽
19 019. 교양 없는 놈 +3 21.03.01 926 45 15쪽
18 018. 증거는? +8 21.02.28 978 45 16쪽
17 017. 돌아가지 못할 추억 +2 21.02.26 1,022 4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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