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초 토론?
시간이 제법 흘러,
이제 더 이상은 뭔가를 먹기 힘들어 졌을 때쯤.
클라우드 영주는 대한을 보며 말했다.
"폐하. 연회는 즐거우셨는지요?"
"예...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하하."
"폐하께서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한 클라우드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소신이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클라우드가 목소리를 깔며 그렇게 나오자,
여태까지 테이블 위에 차려진 맛난 음식들을 집어 먹으면서도
이 녀석이 대체 언제쯤 본론(?)으로 들어갈지를 걱정하던 대한은,
드디어 올 것이 욌다는 듯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마계의 장래와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인지라.
폐하와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둘만 있고 싶다는 말에 대한은 이 녀석이 이제 일을 꾸미는가
싶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 저택안에는 자기정도는
가볍게 제압하고도 남을만한 다크엘프 전사 수십이
여기저기에 대기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조금 전까지만해도 춤을 추고 음식시중을 들던 아가씨들도
하나하나가 데릭보다 조금 약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투능력을 가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거기에 클라우드 영주와 그의 딸 칼슨도 상당한
포스가 느껴지는 것을 감안하면,
이 자가 만일 흑심을 품고 자신을 사로잡거나 해치우려 한다면
굳이 자신을 리엔과 떼어놓는 번거로운 짓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미 아그네스 상회와의 만남도 파토를 내고 온 자리인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빈손으로 마왕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네, 그럼 가시죠."
각오를 굳힌 대한이 클라우드 영주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영주는 대한이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이 돼지녀석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담이 커서인지, 뇌가 비어서인지를 궁금해 했고,
대한이 혼자서 클라우드 영주와 이야기를 하겠다는 소리를 들은
나머지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한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았다.
"돼... 폐하. 혼자서 괜찮겠ㄴ... 으시겠습니까?"
셋을 대표하여 말을 꺼낸 리엔은, 평소 대한에게 편하게 말하던
버릇 때문에, 존대가 익숙하지 못하여 버벅거렸고
대한은 그런 리엔이 귀여웠는지 피식 웃었다.
"누님. 어차피 이 아저씨(?)가 우릴 덮칠거면
어떻게 해도 안 되잖아요? 너무 걱정마세요.
그리고 제가 보니까 그러실 것 같지는 않아요. 안 그래요 영주님?"
대한이 아예 대놓고 그렇게 말을 해버리자
클라우드 영주는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는지,
크게 웃고는 대답했다.
"으하하하핫! 물론이지요. 소신이 어찌 감히 폐하께
그런 불경스러운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럼, 어서 가시죠."
"예 폐하. 제가 모시겠습니다."
대한과 클라우드 영주는 그대로 함께 걸어 연회장을 빠져나갔고,
칼슨은 연회장에 남은 레아와 데릭, 리엔을 보며 말했다.
"두 분의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으니,
제가 여러분을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남은 셋은 대한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칼슨이 안내하는대로 따라가 각자 다른 방에 자리를 잡았다.
한편, 클라우드 영주를 따라간 대한은 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은,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져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자리에 앉아 처음에는 몸풀기의 느낌으로 잡담을 조금 나누고
곧 입이 풀리게 되자, 클라우드 영주는 대한을 보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폐하. 폐하께서는 지금 자신의 힘을 어느 정도로 보고 계십니까?"
"글쎄요 뭐. 굳이 물어보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거의 없는거나 다름없죠. 제가 뭐 힘이 세거나,
마법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가진것도 없어서 저랑 같이 있는 애들은
안 굶으면 다행이고, 웬만한 일은 마리안 누님이 없으면
처리하기도 힘들고, 제가 무슨 마계의 귀한 혈통도 아니니까."
대한의 대답에 클라우드 영주는 이 돼지가
적어도 현실 인식도 하지 못하는 무뇌돼지는 아니라고 느꼈는지,
곧 다음 질문을 건넸다.
"허면, 힘을 어떻게 키우실 생각이십니까?"
여태까지 그 때 그 때 코앞에 닥쳐온 위기들과 신마대전들을
주먹구구식대처와 임기응변, 마리안의 도움으로 겨우 넘겨온
대한은, 힘을 어떻게 키울 생각이냐는 클라우드 영주의 물음에
난감함을 느끼며 안 돌아가는 돌머리를 굴려보려다가,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문제에 대해 길게 떠들어 봐야
본전도 못 건진다는 생각에 씩 웃으며 답했다.
"영주님들께서 절 좀 도와주시면 되죠 뭐."
대한의 대답을 들은 클라우드 영주는 네 수준이 그러면 그렇지
라는 글자가 얼굴에 쓰여있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만일 저희가 폐하를 돕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때는 어찌하실 참이십니까?"
"그러면 어떻게든 해야죠 뭐. 여태 그랬으니까."
"어떻게든... 입니까."
대한의 수준낮은 대답에 클라우드 영주는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고, 대한은 그런 클라우드 영주를 보며 물었다.
"근데요. 궁금해서 그러는데 만일 영주님이 제 입장이라면
달리 방법을 생각하실 수 있으세요?"
"그.... 그건...."
영주는 대한이 되물어 올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얼굴로 더듬거렸고, 대한은 그런 영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렇잖아요. 애초에 제가 여기 처음 떨어졌을 때
마왕성에 뭐 하나 있었는 줄 아세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먼지만 가득하고. 기껏해야 지금 마왕군 간부라는 애들
몇 명 있는게 다였는데, 그걸로 뭘 해요?
그리고 어떻게 아등바등 마왕군이랍시고, 껍데기나
겨우 갖춰놓고 신마대전인지 개뿔인지 억지로 버티면서
숨 좀 돌리고 보니까, 마왕이라는 저는 영지고 뭐고 아무것도 없고,
그나마 저를 도와주는 마리안 누님은 코딱지만한 땅덩어리나
겨우 가지고 있는데, 주변 땅은 영주님하고,
브리가니 영주하고, 하나가 누구더라..... 아. 말로모스 영주.
세 분이 다 가지고 있는데, 저를 도와주지는 않고.
그런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어요?
이건 뭐 손자나 제갈량이 와도 암것도 못할 판인데.
영주님, 아무리 지가 이영오라도 멀티를 먹어야 병력을....
아 이건 못 알아 듣겠구나.
장사를 하려면 밑천이 있어야죠. 쥐뿔도 없는데 장사를
어떻게 해요? 못하지. 밥을 먹어야 힘이라도 나는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무슨 신도 아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요?"
자신을 비웃은 클라우드 영주의 모습에
화가 난 대한은, 여태 쌓아왔던 이야기를 그렇게 쏟아내었고
클라우드 영주는 비록 아이큐 70짜리의 하찮은 헛소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질문에 입도 뻥긋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돼지 녀석이 제법 꿀꿀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일단 그 주제에서는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소신이 무례하였습니다."
"뭐 알아주셨으면 됐음다."
대한에게 또 한 방을 먹은 클라우드 영주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대한에게 다음 질문을 건넸다.
"허면, 폐하께서는 만일. 신계를 이길 수 있을 만큼의
힘을 키우게 되면, 신계를 어떻게 하실 참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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