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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군 V-force : 오퍼레이션 임팔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대체역사

베이나이트
작품등록일 :
2022.09.25 22:52
최근연재일 :
2024.03.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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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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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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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9화 - 이방인

DUMMY

1944년 5월 인도 임팔 부근 비센푸르 요새


“괜찮은가?”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데, 며칠 더 있으라고 하더군요. 씨위드를 구하려다 보니, 하하.”


지난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크로포드 대위를 찾아온 이청천 대령의 말에 그가 너스레를 떨었다.


“얼씨구, 지가 방심하다가 칼 맞은 주제에.”


김우진 대위는 크로포드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양팔을 들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나저나 어째 조용합니다, 저놈들.”


“퇴각한 이후로 참호를 파고 지키기만 할 뿐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정글에서 진을 치고 있는 까닭에 항공 정찰로 정확히 볼 수는 없으나 부대를 우회한다거나 후방으로 퇴각시킬 뜻은 없어 보입니다.”


정찰 결과를 종합한 엠마 중위의 말에 이청천 대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먹을 것이 떨어져서 더는 전투를 이어갈 수 없을 텐데, 왜 굳이 버티는 것인지...”


“알고 있잖수. 황군의 패배는 곧 천황의 패배다. 그러니 결코 물러서지 마라!”


김우진 대위가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과 함께 말하자 크로포드 대위와 엠마 중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청천 대령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김우진 대위가 말한 것처럼 일본군은 전세가 기울더라도 항복을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자살 돌격을 감행하거나 집단 자살을 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 일본군이었다.


“적의 동태에 대해 타이리스 준장은 어떤 반응입니까?”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정글 깊숙이 수색 정찰대를 내보내는 것은 꺼리는 눈치입니다. 적의 매복이 우려되기도 할 것이고, 무엇보다 지난 전투에서 심대한 타격을 입은 적군이 무리한 공격을 더 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엠마 중위가 언급한 것처럼 일본군은 머릿수만 많을 뿐 비센푸르 요새를 두드릴 만한 화력도, 제공권도 없는 생태였다.


그에 비해 비센푸르 요새에 주둔한 인도군 제14여단과 제4군단 예비대 일부 병력은 대치하고 있는 일본군 제33사단에 비해 거의 모든 면이 우세였다.


이런 상황에 만성적인 보급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앞선 전투에서 참패했으니 일본군의 사기는 아마도 땅을 치고 있을 것이니 그들이 재차 공격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보는 타이리스 준장의 판단은 일견 타당했다.


하지만 이청천 대령은 정글에서 버티고 있는 일본군이 임팔을 포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았다.


수뇌부에서 전면 철수 결정을 내리지 않는 이상 저들은 무모한 작전이라도 거리낌 없이 감행할 것이다.


그것이 이청천 대령이 겪어온 일본군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은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지. 적진을 살펴봐야겠어.”


“이 날씨에요? 굶어 죽고 병사하는 놈들이 속출한다는 마당에 굳이 살펴볼 필요가 있겠소?”


김우진 대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청천 대령이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도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술수를 부려서 우리를 몰아붙인 자들이야.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레너드, 넌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엥? 그럼 두 분만 움직이시려고?”


김우진 대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청천 대령과 엠마 중위를 번갈아 보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부대를 통솔해야 할 사람이 필요해. 제프도 움직일 수 없으니 한 사람 정도는...!”


“알았수, 알았수. 두 분 자알 다녀오시구랴.”


김우진 대위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재빨리 이청천 대령의 말을 끊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적진을 살펴야 우리도 대응할 방법을 찾지 않겠어요? 그래서 정찰이...!”


김우진 대위의 말에 왠지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엠마 중위는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으나 어쩐지 말이 길어질수록 자꾸만 변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가 뭐라고 했수? 난 그냥 잘 다녀오시라고 한 건데.”


김우진 대위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서 어색해하는 두 사람을 놀려댔다.


- 딱!


이청천 대령이 낄낄대는 김우진 대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기자 경쾌한 소리가 의무실에 울렸다.


“아! 괜히 나만 가지고 그러네! 아무튼 한바탕 쏟아질지도 모르니 얼른 다녀오슈.”


*


“전쟁이 끝나면 뭘 하실 건가요?”


“글쎄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긴 합니다만, 기나긴 전쟁이 끝난다니, 꿈만 같은 이야기군요.”


수풀을 헤치며 걷던 엠마 중위의 뜬금없는 질문에 이청천 대령이 피식 웃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대규모 상륙 작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나치 독일이 패망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일본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결국은 조선이라는 나라도 독립을 맞이하겠죠. 프랑스처럼요.”


“조선이라...”


말끝을 흐리는 이청천 대령을 보며 엠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곳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미국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단지 나를 키워준 분들의 나라일 뿐이지요.”


무덤덤한 이청천 대령의 말에 엠마 중위는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어린 나를 거두어준 그분들의 말에 의하면 나의 부모는 조인인이라고 했지요.”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머나먼 땅에 버려진 신세, 엠마 중위는 문득 오래된 빛바랜 사진과 같은 한 장면이 떠올랐다.


라벤더의 보랏빛 향기가 짙어가는 계절, 오래된 성곽에 앉아 천천히 떨어지는 해를 보던 어린 소녀.


“내게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 곳입니다. 다만 내 부모님, 나를 키워낸 두 분이 온 곳, 그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곳이 대체 어떤 곳일지 가끔 궁금하기는 합니다.”


엠마는 말없이 걸으며 그가 속에서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바랐다.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인가 보군요.”


엠마의 말에 이청천이 씁쓸하게 웃었다.


“동쪽의 조그마한 나라, 지금은 이름조차 없어진 곳. 그분들은 그곳에서 태어나셨지요.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했으나 양반이라고 부르는 귀족에 의해 기르는 소나 말보다 못한 취급을 당한 곳이 바로 그분들의 나라였습니다.”


뜻밖의 말에 엠마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청천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그토록 모진 조국이었지만, 그분들은 그곳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봄이면 산천에 피어나는 꽃들이, 여름이면 바람에 실려 오는 풀 내음이 그리고 들판이 익어갈 때쯤 흔들리는 갈대의 소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하더군요.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컴컴하고 좁은 방에 역한 기름 냄새가 나는 호롱불을 켜놓고 싸구려 술 한잔에 웃고 울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랏빛 라벤더가 들판을 물들일 때면, 론강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일 때 그녀를 부르던 다정한 목소리, 엠마는 마치 귓가에 그 아련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분들은 결국 두고 온 곳에 남은 사람들을 그리워한 것이군요.”


엠마의 말에 이청천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광복군이 된 것은 그분들의 뜻이었나요?”


“낮에는 악독한 농장주에 시달리면서도 밤이 되면 조선인을 모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죠. 울퉁불퉁 못생긴 감자를 쪄서 함께 허기를 달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그분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그 무엇도 제게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저의 삶을 살아가라고 하셨죠. 그랬기에 더욱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이 그리워한 사람들이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곳은 어떤 곳인지, 떠나왔지만 한편으로는 떠나오지 못했던 그곳이 어떤 곳인지...”


말끝을 흐린 이청천은 엠마의 눈을 보며 물었다.


“나치 독일로부터 프랑스가 해방된다면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겠군요.”


그의 말에 엠마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야죠. 그런데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그분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그곳이.”


“네?”


엠마의 뜬금없는 말에 이청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청천 대령이 무슨 말을 꺼내려던 찰나 갑자기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전원 정지!”


갑작스러운 이청천 대령의 명령에 빅터의 수색대는 자리에 멈춰 들고 있던 소총을 각 방위로 겨누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풀에서 소총과 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를 든 십여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입니다!”


“잠깐, 쏘지 마!”


갑자기 나타난 이들을 매복한 일본군으로 여긴 대원 한 사람이 소총을 조준한 채 쏘려고 하자 이청천 대령이 다급하게 정지 명령을 내렸다.


뭔가 이상했다.


숨어 있던 일본군이라면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들의 행색과 무장이었다.


이청천 대령과 빅터 수색대를 둘러싼 사람 중 전투복을 착용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며, 몇 사람이 들고 있는 소총은 일본의 제식 소총인 아라사카 소총, 족히 30년은 더 된 프랑스제 르벨 소총(M1886, Lebel Mle 1886), 심지어 격발되는 건지 의심스러운 전장식 머스킷(Musket)까지 보였다.


“여자와 아이까지 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이들 중에는 자신의 키만 한 나무 몽둥이를 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의 아이와 증오에 가득한 눈으로 엉성하게 총을 움켜쥔 여자들도 섞여 있었다.


“잠깐만요, 이곳 주민들인 것 같아요. 제가 얘기해보겠습니다.”


불쑥 나타난 사람들, 그들의 정체가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임을 확신한 엠마 중위가 앞으로 나섰다.


“위험해요, 그럴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살기 등등한 주민들의 표정을 살핀 이청천 대령이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중재를 시도하려는 엠마 중위를 만류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큰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


엠마 중위는 언제 익힌 것인지 힌디어로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간혹 들리는 방언은 이해할 수 없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으나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빠르게 조선말을 습득할 때부터 짐작한 것이지만, 그녀는 언어에 있어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누런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나타나 먹을 것을 빼앗고 마을의 성인 남자들을 협박해서 데려갔다고 하네요.”


근방에 누런 전투복을 입은 이들이라면 일본군 제33사단, 먹을 것이 동나자 인근 마을을 약탈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이청천 대령은 가지고 온 전투 식량을 살피더니 최소 지급분을 남긴 채 남은 식량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라고 지시했다.


대원 한 명이 주는 전투 식량을 얼떨결에 받은 주민은 이것을 받아도 좋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탁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앞으로 나서더니 전투 식량을 받아든 사람의 손을 거칠게 내리쳤고, 건네받은 전투 식량이 땅에 떨어지더니 어지럽게 흩어졌다.


“... 이런다고 우리를 도울 생각은 없다고 합니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빠르게 말하는 노인의 말을 엠마 중위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통역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일본군이나 영국군이나 그들에게는 똑같은 침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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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3화 - 위기 23.03.28 245 3 13쪽
93 92화 - 잘 짜여진 연극 23.03.27 232 4 12쪽
92 91화 - 관동 제일의 해결사 23.03.26 249 5 13쪽
91 90화 - 전장의 광기 23.03.21 261 6 14쪽
» 89화 - 이방인 23.03.20 267 5 12쪽
89 88화 - 대본영의 전폭적인 지원 23.03.17 269 6 12쪽
88 87화 - 결정타 23.03.14 282 8 15쪽
87 86화 - 반격 (3) 23.03.13 273 7 11쪽
86 85화 - 반격 (2) 23.03.09 260 5 12쪽
85 84화 - 반격 (1) 23.03.08 277 6 11쪽
84 83화 - 악마의 방패 (2) 23.03.07 257 7 12쪽
83 82화 - 악마의 방패 (1) 23.03.06 271 7 12쪽
82 81화 - 비센푸르 전투 (3) 23.03.04 294 6 13쪽
81 80화 - 비센푸르 전투 (2) 23.03.02 289 6 12쪽
80 79화 - 비센푸르 전투 (1) 23.02.28 289 6 13쪽
79 78화 - 가장 무서운 적 23.02.27 294 6 12쪽
78 77화 - 푸른 지옥 23.02.27 264 6 14쪽
77 76화 - 사냥 23.02.23 274 6 12쪽
76 75화 - 처칠 급여 23.02.20 294 8 12쪽
75 74화 - 테니스 코트 전투 23.02.18 294 6 11쪽
74 73화 - 내분 23.02.17 292 6 12쪽
73 72화 - 코히마에 감도는 전운 23.02.16 295 4 13쪽
72 71화 - 반성 전보 23.02.14 318 6 14쪽
71 70화 - 야나기타의 치명적인 오판 23.02.13 322 5 12쪽
70 69화 - 헌터 킬러(Hunter Killer) 23.02.11 307 7 13쪽
69 68화 - 우크룰 전투 - (3) 23.02.09 311 7 12쪽
68 67화 - 우크룰 전투 - (2) 23.02.08 326 5 12쪽
67 66화 - 우크룰 전투 - (1) 23.02.06 353 8 12쪽
66 65화 - 악마의 무기 23.02.01 359 7 13쪽
65 64화 - 후지모토의 역습 - (2) 23.01.31 32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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