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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남DuNam 님의 서재입니다.

로또 맞은 헤드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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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남DuNam
작품등록일 :
2020.10.07 11:02
최근연재일 :
2020.12.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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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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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nam




DUMMY

6화


ㅡ중국 유니콘 기업을 사로 잡다ㅡ



오늘은 라이브C의 한국법인 왕춘생 법인장과 이 회사 인사부장을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명동에 있는 ‘유 아 히어(You are here)’ 카페,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왕 법인장이 직접 명석에게 인사부장을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인사부장이 채용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전달해줄 것이다.


‘잡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공고만 해도 10개였어. 비공개로 헤드헌터에게만 의뢰하는 것들도 있을테지.’


오랜만에 헤드헌터로서 수입을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명석의 눈이 작아지면서 웃음이 나왔다.


로또 1등 당첨 이후로 헤드헌팅을 사실상 부업으로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큰 회사를 고객사로 만든 것은 명석 스스로도 의외였다.


명석이 이렇게 라이브C의 채용 포지션들을 담당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일이 있었다.

일종의 사건이랄까.



지난 번 왕춘생 법인장과의 첫 만남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법인장님. 헤드헌터 김명석입니다.”


“오, 이사님 안녕하세요. 왕춘생입니다. 제 한국어가 어색하게 들려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인장의 한국어 발음이 매우 좋았다.

특히 중국인들이 힘들어하는 받침 ‘ㄴ’과 ‘ㄹ’의 발음이 한국인과 똑같았다.


“법인장님의 한국어 발음은 완전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9시 뉴스 아나운서 같습니다.”


“하하. 과찬의 말씀을요.”


발음 뿐 아니라 선택하는 어휘 역시 고급이었다.


“이사님은 중국에서 공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북경사범대학(北京师范大学)에서 어학연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겨울과 여름에 열리는 단기 비즈니스중국어 클래스도 갔었고요. 단기 과정은 전매대학(传媒大学)에서 했습니다.”


“와우, 어쩐지 이사님의 중국어 발음도 베이징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군요!”


역시 중국인들은 칭찬을 잘 해준다.

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칭찬. 이것도 기술이다.


왕 법인장은 허난(河南)성 출신이다.

고대 중국 한(汉)나라의 후기 왕조인 동한(东汉) 또는 후한(后汉)으로 불리는 왕조의 수도 낙양(洛阳뤄양)이 있는 곳이다.

여기는 중국 역대 왕조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고대 한나라 뿐 아니라 북송(北宋)의 수도 카이펑(开封개봉)도 허난성에 있다.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지금은 가난하고 개발이 안된 지역이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허난 사람이 대도시로 직장을 구하러 떠났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지역이지만, 현재와 과거 영광 사이에 등호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명석이 대화를 이어갔다.

“제가 중국어를 배운 이유는 사마천(司马迁)의 사기(史记)를 원문으로 읽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제 중국어 실력이 부족하여 계속 한국어 번역본을 읽고 있지만요.”


다분히 왕 법인장의 고향인 허난성을 띄어줄 수 있는 말이었다.


“아니, 한국분이 사기를 읽으세요?


“유구한 중국 역사에 푹 빠져사는 한국인이 많습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고요.

그래서 시간이 날때마다 중국 여행을 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여행하신 곳들 중에 어디가 좋았나요?”


왔다.

결정타를 날릴 타이밍이 왔다.



“중국은 워낙 큰 나라여서 어디가 가장 좋았다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13억 인구에 한국의 거의 10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땅 크기의 나라인데, 제가 가본 곳과 제가 만나 본 사람들을 제외하곤 아직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갈수록 더 가고 싶고, 공부할 수록 더 공부하고 싶어지는 나라입니다.”



명석의 말을 들은 법인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김 선생님은 중국인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주시는 분이 계시기에 중-한 양국 관계 그리고 비즈니스 관계 역시 더 좋아질 것입니다.”


명석이 말이 이어진다.


“다만 아직 못가본 곳 중에 어디를 먼저 가고 싶냐고 누가 물으면 칭다오(青岛), 허난을 먼저 가보고 싶다고 답하겠습니다.”


법인장의 고향인 허난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와 함께.



“특히 허난은 중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어서요. 낙양이라고 하는, 중국 발음으로 뤄양은 동한과 동주(东周)의 수도였지요.

현재 중화민족의 기본이 만들어진 왕조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게임 오버.


왕 법인장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이.. 이럴수가.. 대단하십니다. 대단해요. 중국 역사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실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국 역사에 관한 명석의 말은 실제 명석이 중국 역사를 공부할 때 깨달았던 것들이다.


수많은 왕조가 들어섰다 사라지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공부하며 중국 각 지역의 문화와 특징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의 기질도 중국대륙 땅 크기만큼이나 다양했다.




명석이 말한 ‘가본 곳만 알고 만나본 사람만 아는 중국’이 헛소리가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이거, 법인장님이 바쁘실텐데 너무 제 얘기만 했습니다. 사마천 이야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아닙니다. 원래 저는 오늘 이사님을 뵙고 단순히 인재 채용 의뢰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바뀜이 좋은 바뀜이라는 것을 명석은 알고 있었다.


“저희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모두 이사님에게 맡기겠습니다.”


단독 진행.

다른 헤드헌터나 서치펌에 의뢰하지 않고 명석에게 모든 잡포지션을 단독으로 의뢰하겠다는 의미이다.



맙소사.

OMG.


명석의 뇌가 즐겁게 떨린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니, 아니요. 저희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이사님 연락처와 함께요.”



이런 것을 기대하고 오늘 미팅을 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중국어로 이런 말을 하고 싶네요.

欲穷千里目,更上一层楼!”


우리말로 하면 ‘욕궁천리목, 갱상일층루’이다.

당나라 왕지환의 등관작루(登鹳雀楼) 나오는 구절로

천리를 보기 위해서는 누각을 한 층 더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상대방과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을 때 인용하는 표현이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언어의 힘이 이런 것인가.

명석은 기뻤다.

헤드헌터로서 잡포지션 오더를 받은게 기쁜게 아니다.


중국인과 마음이 통한 것이 기쁜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로또 1등 당첨금을 갖고 있지 않은가.


돈이 생겨 마음이 편해지니까 일도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이 장면들이 명석의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런 기분좋은 상태로 오늘 라이브C의 인사부장을 만나야겠다.



“이사님 안녕하세요. 라이브C 안현정입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김명석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라이브C의 안 부장과의 미팅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ㅡ새차를 운전하다ㅡ


드디어 받았다.

볼보 S60를.


작년부터 한국에선 볼보 자동차의 인기가 갑자기 높아져서 계약금을 넣어도 반년에서 1년을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명석은 전시차를 구입했다.

오래 기다리기 싫어서.


물론 전시가 되었던 차여서 각종 기능이나 엔진,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 차가 아닌가 걱정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이 차를 영업사원으로부터 인수할 때 자동차등록원부를 확인하니 명석 이름 전에 다른 이름은 없었다.

즉 새차란 뜻이다.


명석이 이 차를 고른 결정적 이유가 있다.

반자율주행기능이 있다는 것.



통장에 잔고 17만원만 있을 때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먹는 것도 걱정했던 명석이 수천만원 짜리 차를 일시불 현금으로 구매했다.


그만큼 최신 자동차 기술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앞으로 나올 자동차들은 얼마나 신기한 기술이 들어가 있을까? 지금도 이 정도로 좋은데 내년이나 내후년에 나오는 차들은 기가 막히겠지?


그랬다.


가솔린과 디젤로 움직이던 차들이 배터리를 달고 달리고 있었다.

사람의 눈과 손과 귀에 의존하던 운전이라는 것이 카메라와 라이더에 의존하고 있다.



명석은 모빌리티 산업에도 관심을 갖고 투자처를 찾기로 했다.



이번에 볼보를 뽑은 것은 차를 바꾼 것이 아니었다.

명석이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지형과 판도를 살펴보고 결정적 투자의 한 수를 둘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기술 관련 기업에 투자를 하려고 하니 기업들의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전문가를 만나보자.’


벤처투자자 경력이 있는 투자 전문가인 동창 한철민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말이 저녁 약속이지 술 마시기 위한 자리이다.



“잘 지냈냐.”


“어. 너는?”


“나도. 그럭저럭”


명석이 그럭저럭 지낸다는 것은 로또 1등을 숨기기 위한 말이다.

인생이 바뀐 것이 너무 드러나면 복권 돈벼락 맞았다는 소문이 금방 퍼질테니까 조심하고 있다.



“뭐 먹냐?”


“글쎄.”


“그냥 중국집 가지 뭐. 깐풍기랑 고량주로 하고.”


“어. 아까 오다가 봤는데, 새로 오픈한 데가 있더라. 거기로 가자. 전단지도 받았는데 할인 쿠폰도 있더라고.”


철민이 안내하는 중식당으로 명석이 따라 들어갔다.







ㅡ귀를 열고 입을 닫아라ㅡ


철민이 TUMI 가방 앞주머니에서 전단지를 꺼내며 웨이트레스에게 음식을 주문한다.


“저희 깐풍기 중자 하나랑요, 꽃방 화권 8개, 연태고량주 큰거 하나 주세요. 그리고 여기 쿠폰요.”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깐풍기 중간 사이즈 하나, 화권 8개니까 2인분, 연태고량주 큰병으로요.”


“아, 쿠폰 있으니까 15% 할인인거죠?”


“네 맞아요.”





명석과 철민 두 사람 모두 중국음식을 참 좋아한다.


둘이 중국에서 공부할 때는 거의 매일 학교 남문 길 건너편에 있는 마라탕집에 가서 양꼬치와 맥주를 먹었다.


이야기는 자연히 중국과 관련된 것으로 시작된다.



“신문 봤냐? 중국 라이브방송 회사들이 엄청 뜨던데.”


“어.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회원수도 어마어마 하더라. 왕홍같은 인풀루언서랑 콜라보도 자주 하고.”


“그러니까 말야. 내수 시장이 완전히 해외 수출이랑 같아.”


“내수가 더 크겠다 크크.”


명석이 라이브방송 커머스 기업들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라이브C 한국 법인의 채용 의뢰를 독점하게 되었다는 굿뉴스도 함께.


“야, 근데 얼마 전에 큰거 하나 잡았다.”


“뭔데?”


“라이브C라고 알지?”


“어 중국 라방 벤처”


“거기 한국법인 잡포지션을 내가 단독으로 맡았어. 죽이지 않냐?”


“대박이네. 너 이제 돈 좀 벌겠다. 그 회사 꽤 크지 않아?”


“크지. 지금 오픈된 포지션만 10개야. 거기에 나한테만 맡긴 비공개 포지션까지 하면 전부 15개야.”


“축하한다. 거기 나 같은 놈 필요 없냐? 중국말도 할 줄 아는데.”



농담 80에 진담 20이었지만 철민의 말에는 어느 정도의 간절함이 있었다.


원래 계획했던 전 세계 투어를 하며 시장조사를 한 후에 창업을 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랬기에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명석은 그냥 웃었다.


철민이나 명석이나 42살에 벤처기업으로 이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기에.

아니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기에.



“요리 나왔습니다.”


바삭 바삭거리는 소리가 자동으로 ASMR로 들릴 것 같은 비주얼의 깐풍기다.

그런데 중자로 주문했는데 양이 너무 많았다


“저희 깐풍기 중자로 시켰는데요.”


“저희 집이 요리가 양이 많아요.”


“자주 올게요.”


철민이 이 식당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철민과 명석이 각자 접시에 음식을 더는데 고량주가 나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술병에 손이 올라갔다.


“야, 내가 먼저 한 잔 줄게. 받아라.”


철민이 명석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이렇게 한다.



“너도 받아라.”



고량주 특유의 향이 두 사람의 코로 들어가서 혈관을 타고 온 몸에 흐르는 것 같았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하는 기분.


‘짠’


‘호록’


첫잔은 언제나 원샷.


“나 궁금한게 있다.”


“뭔데”


“너 벤처투자자 VC로 일할 때 기술기업에도 투자 좀 했지?”


“어. 몇 군데”


“모빌리티 관련 기업들도 있었냐”


“있었지. 지금 잘 크더라.”


“거긴 뭐 하는 회사냐?”


“킥보드 회사였어. 강남역이나 선릉, 삼성동에 가면 많이 보이는.”


“응”


“그런 회사야. 코로나 터지고 거의 망할 뻔 했는데, 라스트마일 수요로 인해 살아났지.”




라스트마일(Last Mile)이란, 최종 목적지까지 자동차를 타기에는 짧고, 걸어서 가기에는 먼 거리를 말한다.

이런 짧은 거리 이동에 적합한 탈것이 바로 킥보드였다.




“살아난 이유가 있어?”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를 않으니까 아예 수요 자체가 죽었었어. 그러다 생활방역으로 정책이 바뀌면서 정상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다시 살아났지.”


원래 명석이 기대했던 자동차 관련 기업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킥보드 수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소득이었다.


“야, 근데 그 손잡이는 이놈 저놈 다 같이 만지는 거잖아?”


“킥보드 손잡이?”


“어. 그러면 코로나 안 걸리냐?”


“그것도 참 신기한게 뭐냐면, 사람들이 손소독제를 갖고 다녀서 코로나 감염 걱정이 좀 사그라들었어.

코로나 초기에는 마스크랑 손소독제를 구하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널렸잖아.

사업이란게 그래서 생물 같다고 하나봐.”


“그럼 그 회사들 매출은 나오냐?”


“그럼.”


“일단 회원수가 많아졌지.”


“이해가 안되는데.”


“얼마전에 킥보드 관련 규제가 풀렸어. 경찰청이랑 행정안전부가 풀어줬는데,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면허가 없이도 탈 수 있고 자전거도로에서도 탈 수 있거든.”


“그래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데이트족들, 단기 배달 서비스를 하는 파트타임 알바생들이 많이 생겼어. 또 대기업 자동차 메이커와 연계해서 공유자동차 사용자들에게도 이 킥보드를 집앞까지 타고 가게 하지.”


“그렇군. 그건 생각 못 했네.”


명석이 술잔을 비웠다.



그래.

이런 거야.


투자와 사업 모두 우리 일상과 밀접한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네가 아직 투자회사에 있었으면 성과급 좀 받았겠다.”


“그치.”



명석이 깐풍기 한입과 꽃방 한입을 같이 입에 넣어 먹고 있다.

깐풍기의 바삭한 식감이 좋았다.

빵의 부드러움과 깐풍기의 바삭거림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이 기분으로 킥보드 회사 사장과 있었다면 당장 몇 억을 투자하겠다고 했을 수도 있다.


정신을 차리자.

냉정하게.


“그건 그거고 너 창업 계획은 많이 변경되었냐?”


“변경이라기보다는 잠시 보류지 뭐. 답답하다.”


“네가 주로 관심 가졌던 분야가 여러 가지였지?”


“응. 그래서 실리콘밸리랑 유럽도 같이 돌면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했어. 당분간은 그렇게 하기는 힘들지. 그래서 우선은 랜선 여행 관련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우선은’이라는 단어가 명석 귀에 깊게 박혔다.


철민은 한 가지 사업만 구상한게 아니었다.

A안 B안 C안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


또 귀에 깊게 박힌 말은 ‘랜선 여행’. 즉 온라인으로 즐기는 여행 서비스를 말한다.

명석은 철민의 그 말을 듣는 순간 ‘K컬처클럽’이 생각났다.


“좀 생각한 건 있어?”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외국인이 많을테니까 그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과 사고 싶어하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는거야.

이렇게 먼저 회원수를 늘린 다음에 한국 옷가게나 아이돌 굿즈 상점이랑 같이 외국인들에게 관련 상품도 팔고.”


딱이네.

명석이 생각했다.


K컬처클럽에 필요한 사람이 이런 사람이다.

바로 한철민.



명석이 머릿속의 생각을 입으로 말하지 않고 계속 철민의 말을 들었다.


“사람이 여행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수는 없거든. 여행 수요는 언젠간 살아날거야. 그때까지는 비대면 서비스를 출시해서 미리 미리 사람들을 잡아두려고 하고 있어.”


“넌 기술관련 창업만 하려던건 아니었구나.”


“내가 말하던 기술은 반도체, 스마트폰 제조, 클라우드 서버 같은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었어. 데이터를 다루는 것도 기술이고 그것을 활용해서 수요를 창출하는 것도 기술이지.”


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에 술잔을 든 채로.


그래.

기술이라는 것을 명석은 자꾸 뭔가를 하드웨어 디바이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으로만 생각한게 착각이었다.


명석이 자신만의 생각으로 세상으로 바라보며 착각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더 다양한 얘기를 듣자고 다짐했다.


귀를 열어야겠다는 다짐.

그래야 내 귀한 로또 1등 당첨금이 사라지지 않을테니까.






ㅡ부업으로 하는 헤드헌팅ㅡ


어제 철민과의 술자리는 새벽 1시에 끝났다.


명석이나 철민이나 술고래들이다.


고량주 각자 한 병씩은 기본이다.


고량주, 맥주, 소주, 막걸리까지 마셨다.



명석이 1층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왼쪽문을 열어서 냉동실에 있는 해쉬브라운 감자를 꺼냈다.


이 냉장고.

참 오래도 되었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만든 냉장고이다.


수 십년을 사용했는데 고장도 없었다.


‘나도 이런 인간이 되자.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인간.

그 가치는 결국 ‘돈’을 의미했다.



오늘은 특별한 외부 일정이 없어서 종일 집에서 일을 할 예정이다.


재택근무를 격하게 환영하는 명석이다.

정부에서 권고하는 외출 자제 당부에 잘 맞는 인간이랄까.


오늘도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조간신문과 텔레비전 경제뉴스, 해외 뉴스 채널을 보며 밤 사이 일어난 일들을 확인했다.


전날에 술을 많이 마셨어도 기상시각은 어기지 않는다.

제너럴일렉트릭 냉장고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도.


‘렘데시비르 투여 후 코로나 사망률 감소’

‘트럼프, 바이든에 지지율 앞서’

‘중국국무원, 라이브방송 커머스 창업 촉진 지원책 발표’

‘NTT도코모 전 직원 대상 재택근무 돌입’


그리고 명석의 눈에 들어오는 헤드라인이 있었다.


‘한-중 스타트업 콜라보 데이 인천 송도에서 개막, 비대면 온라인으로 생중계 예정’


며칠 전 한중 스타트업 행사 전면광고를 봤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첫 번째로 행사 신청을 했을 명석이지만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위험 때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한다고 하니, 다시 관심을 갖고 참가 신청을 완료했다.


이 행사의 연사와 참가자는 모두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창업자, 엑셀러레이터, 투자자이다.

그렇다고 관련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사참석신청서 직업란에서 ‘기타’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기타’ 분류에 속했던 명석은 이번부터는 ‘투자자’로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출세했어, 김명석.’



2층에 있는 방으로 들어와서 맥북을 열었다.


새로운 이메을들을 확인했다.

급하게 명석을 찾는 곳은 없다.

아직은.


그저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광고메일이 대부분이다.

이젠 이런 메일들도 수신차단을 해야겠다 싶었다.


일반 포털사이트 계정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서치펌 계정 이메일을 확인했다.



‘새로 온 메일 7통’



7통이 전부 라이브C 잡포지션에 지원하는 후보자들이 보낸 메일이다.

여기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word 파일로 첨부되어있다.


7명의 이력서를 읽고 지원자들의 장단점 파악하고 해당 잡포지션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최소 세 시간은 걸린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명석이 이력서를 아주 꼼꼼하게 확인해서 그렇다.


당연히 잡포지션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이력서를 아주 빠르게 읽는 헤드헌터들도 있다.

짧게는 30초, 길어봐야 2분.


명석도 이력서를 읽는데 처음부터 시간을 많이 쓴건 아니다.


서치펌에 처음 출근했을 때는 ‘시간이 금’이라는 다른 헤드헌터들의 말을 듣고 1분만에 이력서를 검토 완료했다.


그러다가 하도 헤드헌팅 성과가 안나서 고민하다가 일하는 방식을 바꿔보자고 한 것들 중의 하나가 이력서를 꼼꼼히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력서는 지원자가 발자국을 남겨서 지금까지의 삶의 자국이 있는 소개장이다.

28살, 35살, 40살 할것없이 모든 지원자의 인생이 담겨 있는게 이력서다.


이런 한 편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같은 소개장을 헤드헌터가 1분만에 읽고 끝낸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이력서를 빨리 읽고 덮어버리면 후보자들의 장점과 강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지원자의 간절함이 담겨있는 이력서를 깃털처럼 날려버리는 꼴이다.


명석은 언제부터인가 헤드헌터가 갖춰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나섰다.


잡코리아나 사람인, 인크루트 같은 잡포털에서의 서칭 능력, 더 많은 채용 고객사를 확보하는 영업, 인맥을 통해 수월하게 인재를 소개받는 것.


모두 중요했다.


이것의 아래에서는.


헤드헌터의 태도였다.



업의 기본으로 돌아가면 그 태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고객사의 채용조건에 맞는 최적의 인재를 추천하는 일.

이것이 헤드헌터가 하는 일이다.




헤드헌터가 후보자를 채용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사와 후보자 사이에 있는게 헤드헌터다.

인사결정권은 고객사에 있다. 헤드헌터가 아니라.


이런 업의 구조로 인해 많은 헤드헌터가 후보자를 합격시키려는 무리수를 두다가 실패하고 이 바닥을 떠난다.


후보자를 합격시켜서 고객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아야겠다는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적합하지 않은 후보자의 이력서를 대충 검토한 후 고객사에 보낸다. 이 사람은 합격할거야라는 헛된 상상을 하면서.


이러면 당연히 고객사로부터 불합격이라는 피드백을 받게 된다.

당연하다. 이런 불합격이 몇 번 이어지면 이 직업에 대한 정이 떨어지게 된다.

당연히 돈도 떨어지게 된다.


이 얼마나 비참한가. 돈이 떨어져서 주머니가 달랑달랑하는 소리가 마치 먹방 유튜버들의 과자 씹는 소리처럼 크게 들린다.


이력서 대충 읽기 -> 부적합 후보자 무리하게 추천 -> 불합격 피드백 -> 알거지로 전락


이런 전형적인 패턴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쩐’, 돈이 그 고리를 끊어준다.

지금 명석 통장에 있는 그 당첨금과 같은 쩐.


그래서 헤드헌터를 부업으로 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37분까지 후보자 세 명의 파일을 검토하고 있다.


명석이 오도방정을 떨지 않고 천천히 애플 트랙패드를 조작했다.

후보자들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꼼꼼하게 보기 위해서.

급할게 없다.


부업으로 하는 헤드헌팅.

이렇게 편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느긋하게 이력서를 검토하다가 적격자를 한 명 찾았다.

희망연봉 5천만원. 경력 8년. 현재 구직 중.


만약 이 사람을 추천해서 합격시킨다면 약 5백만원의 수수료를 가져올 수 있다.

로또 1등 당첨금에 비교할 수 없는 액수이지만

부업으로 하는 일 치고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11시 2분.

라이브C의 Product Manager 포지션에 지원한 후보자에게 전화를 건다.



‘다이나마이트~’

BTS의 노래가 나오는 연결음.


통화 연결이 안되었다.

대신 바로 문자가 왔다.


‘제가 나중에 전화드려도 될까요?’


“구직자가 뭐가 이렇게 바빠?”

라면서 명석이 답장을 보낸다.


‘안녕하세요. 저는 헤드헌터 김명석이라고 합니다. 지원해주신 잡포지션과 관련하여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편하신 시간에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전화가 오면 이 후보자의 입사지원 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입사지원을 확정한다.

그냥 여기 저기 찔러보는 사람도 많기에 정말로 지원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석이 답장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전화가 왔다.

K컬처클럽 허연희 사장이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김명석입니다.”


“안녕하세요. 통화하시기 괜찮으세요?”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저희가 사업전략 쪽을 담당할 CSO를 찾고 있어서요. 원래 창업동기였던 제 동창이 맡고 있었는데, 집안에 일이 있어서 갑자기 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좀 급하네요.”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선호하시는 경력과 필수조건을 알려주시면 사람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요청하신 건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감사의 표시는 꼭 하겠습니다.”


감사의 표시라.

수수료를 주겠다는 것인가?


허 사장은 명석이 전직 헤드헌터였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급하게 SOS를 친 것이다


헤드헌터로 활동하는 사람이 1만명이 넘는다고 해도 막상

주위에서 헤드헌터를 찾으려면 쉽지않다.


명석은 철민에게 전화를 걸려고 한다.

지난 술자리에서 철민이 말했던 랜성 여행사업과 K컬처클럽의 사업전략이 들어맞아서다.



***7화에서 계속




du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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