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반려 (伴侶)
나민주가 런던 집을 급습하기 전, 그러니까 토트넘 하스피탈 FC가 맨유를 2:0으로 이긴 날.
내가 데뷔골을 맨유 전에 넣을 뻔했던 그날, 너스턴 빌라 FC는 네버턴 FC를 무려 4:0으로 망가뜨렸다.
전반전에 2방, 후반전에 2방, 도합 4골의 득점자가 모두 다를 정도로 고른 활약.
어느 팀 하나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것이 프리미어리그의 특징이다.
웨스트핵 FC와 첼로 FC의 대결은 3:1로 웨스트핵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왕년의 강자 첼로 FC가 지난 시즌에 이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엔 12위였는데, 올 시즌엔 어떠려나?
반면, 현재의 최강자 맨체스터 비티 FC는 뉴캐슬을 1:0으로 이겼다.
뭔가 강자들의 싸움에서 진정한 강자가 누군지 보여줬달까?
홈경기의 이점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거니.
게다가 결승골의 주인공은 엄홀란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슈팅을 골로 성공시킨 날바레스였다.
[올 시즌 우승도 맨체스터 비티 FC?]
-슈팅 수 2배 차이! 역시 맨비티다.
ㄴ6:3이잖아! 많이 차지도 못했구만.
ㄴ맨비티는 선수교체 하나도 없었는데 뉴캐슬은 5명 교체했쥬?
ㄴ패배를 인정한다.
-그래도 뉴캐슬이 점점 올라오고 있음. 긴장해라.
-누구한테 하는 말임? 토트넘?
ㄴ가만히 있는 우린 왜 건드려?
ㄴ가만히 있으니까! 언제 우승컵 한번 들어볼래? 지나가는 아샤날 팬
ㄴ미안하다 손! 미안하다 허리케인!
-허리케인이 은퇴할 때까지 컵 못 들었으면 좋겠다.
ㄴ너어는 진짜?!
-프리미어리그도 분데스리가처럼 되는 거 아님?
맨비티의 프리미어리그 강점기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09/10 시즌엔 5위였던 맨비티. 당시 지배자는 첼로 FC였다. 토트넘은 4위.
10/11 시즌엔 3위로 올랐고, 지배자는 맨체스터 유니파이드 FC. 토트넘은 5위.
그리고 11/12시즌에 드디어 맨비티가 프리미어리그의 지배자가 되었다. 토트넘은 4위.
맨유와 승점이 같았지만, 다득점과 득실 차가 더 많아 1위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12/13 시즌에 맨유가 다시 왕좌를 되찾았다. 당시 2위는 맨비티. 토트넘은 5위.
13/14시즌에 다시 한번 1위를 차지한 맨비티. 그러나 맨유는 6위 토트넘보다 낮은 7위.
맨유 부침의 시작이었다.
14/15 시즌엔 맨비티 2위, 챔피언은 첼로 FC. 토트넘은 5위.
15/16 시즌엔 맨비티 4위, 그리고 에스터 시티 FC가 깜짝 동화의 주인공이었다. 토트넘은 3위.
우승까지 했던 에스터 시티는 현재 강등 당해 프리미어리그에 없지만······.
16/17 시즌엔 맨비티 3위, 1위는 첼로 FC. 그리고 토트넘이 2위로 대권에 도전했었다.
17/18 시즌엔 맨비티가 무려 승점 100점으로 1위를 차지한다. 토트넘은 3위.
이때부터 본격적인 맨비티 강점기가 시작되었다.
18/19 시즌 맨비티 1위, 토트넘 4위.
19/20 시즌 맨비티 2위, 챔피언은 이버풀 FC. 토트넘은 6위. 앗, 아아······.
20/21 시즌 맨비티 1위, 토트넘 7위. 주르륵.
21/22 시즌 맨비티 1위, 토트넘 4위.
22/23 시즌 맨비티 1위, 토트넘 8위. 가슴이 먹먹해진다.
총 14번의 시즌 동안 맨비티는 7번 우승한다. 1위 확률 50%.
첼로 FC는 3번, 맨유는 2번 우승.
그리고 에스터 FC와 이버풀 FC가 각각 1번 우승.
14번 시즌 동안 토트넘은 0번 우승했는데······.
하지만 내가 왔으니까 올 시즌은 다를 것이다!
“꺄하하하하!”
갑작스러운 이 웃음소리는 나은태 팀장님의 것.
패리드 FC와 아샤날 FC의 경기 결과를 본 후였다.
“형? 아샤날이 1:0으로 이겼던데, 기분 좋은 것 같다? 아샤날 싫어하지 않았어?”
“아샤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샤날 소속 선수가 싫은 거지.”
“아, 그 하······.”
“하민성이요.”
내가 잠시 끼어들어 아빠에게 도움을 줬다.
아들이잖아.
“그래. 하민성! 그런데?”
“퇴장당했어요.”
“아······.”
“크흐흐흐흐. 뭐 좀 해보겠다고 설치다가 후반전에 퇴장당했지! 동점골까지 먹혔으면 아주 그냥 역적이 되는 건데! 아까비!”
하민성은 왼쪽 풀백으로 출전해서 활발하게 활약했다.
패스, 인터셉트, 태클 모두 준수했는데, 의욕이 앞서서일까?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팀을 위기에 빠뜨렸었다.
“당분간 녀석 경기 안 봐도 되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형?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되잖아?”
“그게 안 되니까 그러지!”
아샤날은 9월에 있을 6R에서 만나게 된다.
아마도 그때 하민성이 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만난다면, 확실하게 나은태 팀장님의 복수를 해줘야겠다!
***
다시 시간을 현재로 돌려 3R 본머드 FC 경기 날 아침.
쪼르르륵.
유리컵을 채워가는 정수기의 물소리.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 차가운 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난 이런 고요함이 좋다.
“어머? 오빠?! 벌써 일어났어?”
고요함이 사라졌다.
어제 밤에 온 애가 일찍도 일어났네?
부스스한 머리.
헐렁한 트렁크 셔츠에 돌핀 팬츠.
아마 눈곱도 떼지 못했겠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나민주.
“응. 일찍 일어났네?”
“에헤헤. 오빠 아침 해주려고. 오빠 뭐 좋아해?”
“아, 나야 김밥이지.”
“응! 계란 프라이에 토스트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왜 물어본 거냐.
김밥을 말한 내가 잘못인가.
하긴, 원래 해주는 대로 먹는 거지.
30분 후.
기지개를 켜며 나오는 토니 유.
“아함, 딜리셔스 스멜. 누가 벌써 요리를 해서 먹었나? 응?”
부엌의 식탁에 놓여 있는 쪽지.
「아빠! 토니 삼촌! 저희 먼저 아침 먹었어요! 유도탄 오빠랑 운동하고 올게요! :)」
“부지런하네. 젊음이 좋다, 좋아.”
***
집 근처 공원.
아침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내 옆에는 나민주가 함께 뛰고 있었다.
“오빠랑 함께 뛰니까 좋다! 오빠도 좋지?”
“어. 그런데 너는 스케줄 괜찮은 거야?”
“오빠.”
갑자기 멈춰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나 연예인 그만둘까?”
“응?”
“그만두면 오빠 옆에 계속 있을 수 있잖아.”
“내 옆에?”
무슨 의미일까?
나와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하겠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나민주의 나의 반려자?!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상상.
가까운 사람만 불러서 작은 결혼식을 하고.
경기가 끝나면 그녀와 함께 공원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그러다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축구를 하는 걸 보고.
우리 아이의 결혼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침대에 누워 한날한시에 눈을 감으며 좋은 인생이었지······.
그렇게 되는 것일까?
“오빠를 노리는 년들이 많더라고.”
“어?!”
“내가 싹 다 머리채 잡아서 돌려버리려고.”
“뭐?!”
내 머릿속의 컴퓨터가 다운된 것 같다. 멍······.
“꺄하하하하. 농담이야. 갈 거야. 며칠만 휴가 겸 온 거야. 아빠도 보고 싶고······.”
“아, 그렇구나.”
“오빠! 오늘 응원하러 갈 거니까 잘해야 해?!”
“골 넣으면 널 위한 세리머니를 할게.”
“어떻게?”
***
[안녕하십니까! 히트 풋볼 구독자 여러분! 투스타입니다!]
[환카사이다입니다.]
[오늘은 본머드 FC 대 토트넘 하스피탈 FC 경기를 입중계 할 텐데요. 경기 시작까지 10분 정도 남았네요. 경기 전 예상 한번 해볼까요? 환카사이다님은 누가 이길 거라고 보십니까?]
[당연히 토트넘이죠. 여기서 본머드 걸면 매국노, 인정?]
[아니, 본머드에 걸었다고 왜 매국노입니까? 두 팀 다 같은 영국팀인데?]
[그래서 본머드에 거실겁니까?]
[당연히 저도 토트넘이죠. 좋습니다. 뭐 승패는 같다고 보고. 오늘 첫 골 누굴 예상하십니까?]
[당연히 미스터 손이죠. 여기서 다른 사람에게 걸면 매국노, 인정?]
[축구 경기 골 예상을 하는데 왜 다른 사람을 걸면 안 됩니까?]
[그럼 다른 사람에게 거실 겁니까?]
[음······. 아! 저는 유도탄 선수에게 걸겠습니다. 그럼 매국노 아니죠? 인정?]
[아, 한 명 더 있었네요. 투스타님 인정합니다. 그런데 뭘 걸죠?]
[이렇게 합시다. 우리가 선택한 선수가 도움을 기록하면 물 따귀 1대, 골을 기록하면 물 따귀 2대. 어떻습니까?]
[그렇게까지 해야합니까?]
[보세요! 후원금이 터지지 않습니까? 구독자님들의 지엄한 명입니다. 해야 해요!]
[그렇다면, 콜! 그런데 유도탄 선수가 출전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맞네. 그 생각을 못 했네. 유도탄 선수 출전 안 시키면 감독 매국노.]
[아니, 감독이 호주 사람인데, 왜 매국노예요?!]
[오늘 유도탄 출전 안 시키면 호주 불매 운동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우리가 호주 상품 뭘 잘 쓰죠?]
[음······. 동물원 가서 캥거루 안 보겠습니다.]
[오!]
토트넘의 원정 경기는 한국과 영국 팬들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 맨유를 이긴 것이 팬들의 기대감을 끌어 올린 것이다.
경기를 앞둔 중계 홈페이지 댓글 창도 폭발적으로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본 머드 FC 12% vs 88% 토트넘 하스피탈 FC>
-올시즌 우승은 하스피탈!
-그럼 한하가 야구 우승하냐?
-하스피탈 vs 한하, 누가 더 빨리 우승할까?
-허리케인이 있을 때도 못한 우승을 한다고?
ㄴ유도탄 있잖아?
ㄴ하스피탈이 무기 샀음?
ㄴ콘셉이지?
ㄴ22골 22도움 유도탄 모름?
ㄴK리그 안 봄
ㄴ영국 놈이냐.
ㄴ빙고. 한국 사는 영국 놈임.
ㄴ인정.
-본 머드, 본 머드, 본 머드!
ㄴ역배로 걸었구나!
ㄴ2222
ㄴ3333
ㄴ4444
ㄴ5555
-유도탄이 패스하고 손이 넣으면 대박이겠다.
-왜 손이 패스하고 유도탄이 패스하면 안 됩니까?
ㄴ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라임인데?
ㄴ구단의 주인은 팬이다!
ㄴ뭐래. 구단의 주인은 구단주지.
ㄴ느그 애비.
ㄴ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기분 나쁘네.
-애비 구단주는 손 재계약 안 하냐?!
-하지 마! 재계약! 우승권 팀으로 이적하자!
ㄴ불러 줘야 가지?!
ㄴ하스피탈의 레전드가 되어라!
ㄴ아시아의 자랑, 아시아의 큰 형님! 손!
ㄴ아시아클래스가 아니라 월드클래스임.
저녁 8시 30분.
심판의 휘슬과 함께 토트넘 하스피탈 FC의 3라운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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