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탱탱 (撑撑)
한때는 EPL을 호령했던 명실상부한 EPL최고의 명문팀 중의 하나, 맨체스터 유니파이드 FC.
해버지 박진성 선수와 축신 호난두 선수가 있었던 팀이다.
하지만, 로빈 훗 페시가 26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던 2012/13 시즌 이후 리그 우승을 못하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뭐, 우리 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상하네?
보통 리그 득점왕이 나오는 팀이 리그 우승을 하기 마련인데, 왜 토트넘 하스피탈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
리그 득점왕이 한두 번 나온 게 아닌데······.
“도탄아.”
“네, 형!”
“이따 경기에서 보자.”
“네! 이번에도 제가 패스할게요!”
“훗, 말이라도 고맙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네가 바로 차도 돼.”
“네, 형!”
어린이의 손을 잡고 통로를 지나 경기장으로 나간다.
해맑게 웃는 어린아이보다 내가 더 떠는 것 같다.
이미 EPL경기를 뛰어봤지만, 지금의 경기는 다르니까!
쿵쾅쿵쾅!
이건 발걸음 소리가 아니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다.
심장 소리가 시끄러운 관중들의 함성을 뚫고 내게 들리고 있다.
홈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 앞에서 벌어지는 맨체스터 유니파이드와의 경기라니!
영상으로만 봤던 그 경기를 어쩌면 내가 뛸 수 있는 것이다!
[토트넘 하스피탈 FC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 빅마우스와 함께 뛰어봅시다! 우호~~~~~~!]
[로빈 캉입니다.]
[미네르바토프입니다.]
[2R 맨체스터 유니파이드 전, 시작합니다!]
휘슬과 함께 전쟁이 시작됐다!
상대는 붉은색 유니폼으로 무장한 채, 악마처럼 집요하게 우리 골대를 노렸다.
하지만, 토트넘에는 골키퍼 바카라오가 있었다.
[바카라오 선방! 벌써 3번째 선방입니다!]
[골키퍼가 주인공이 되면 안 돼! 앞으로 나가라고!]
[캉! 흥분하지 말아요. 후배들도 알고 있을 거예요.]
페르난데스까의 라보나 킥에 이은 래시가드의 헤더!
이것도 바카라오가 막았다.
짝짝짝!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바카라오! 최고! 잘한다!”
홈팬들도 바카라오의 애칭을 부르기 시작했다.
“바카!”
“바카!”
“바카!”
골키퍼 장갑을 팡팡 치며 전의를 다지는 바카라오.
뭔가 레벨업이 된 것 같은 모양새다.
이어지는 우리 팀의 역습!
[손의 돌파! 패스! 포도의 슛! 아~ 골대!]
[낮게! 낮게 찼어야지!]
[캉, 당신도 많이 저랬어요.]
[왓? 내가?]
[그래서 내게 기회가 많이 왔죠.]
[아! 또 골키퍼 맞고 나가는 공! 아깝습니다!]
어느새 전반전이 끝났다.
두 팀 모두 비슷하게 골대와 골키퍼가 슈팅을 막아냈다.
“골대 안으로 넣어야 이기는 거, 알고 있는 거지?!”
“골키퍼가 막으면 득점이 안 되는 것도 알고 있고?!”
흥분한 언제 감독님의 말.
아마 상대 팀 감독도 라커룸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리라.
후반전 시작.
포도의 대지를 가르는 패스!
오른쪽을 뚫고 나가는 클루세키의 돌파!
[골라인 깊숙하게 침투합니다! 크로스! 커트! 아! 공이 뜨고!]
[때려!]
[르사~~~~~~~! 골! 가볍지만 아름답게 넣었어요!]
모두가 일어났다.
나도, 감독님도, 동료들도, 홈 팬들도.
그래, 우승은 못 해도 라이벌은 잡아야지.
22년 3월에는 3:2로 졌었고, 22년 10월에는 2:0으로 졌었다.
그리고 23년 4월에는 2:2로 무승부!
오늘은 이겨보자!
1골을 실점한 후 공격의 속도를 올리는 맨유.
탱!
탱!
탱!
쓰리 탱에 텐 하나 감독이 결국 폭발했다.
“난 골대가 싫어! 골대, 골대, 골대!!! 전기톱 가져와! 다 잘라버리겠어!”
우리보다 한 박자 빠른 교체.
3명을 동시에 바꾼다.
우리도 2명을 바꾸고, 다시 또 1명을 바꿨다.
맨유가 2명을 더 바꿔서 교체 카드 5장을 모두 소비했다.
1:0의 불안한 리드 상황.
현재 시간은 88분.
언제 감독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탄! 솔로망! 준비해!”
드디어 들어간다!
두 번째 EPL 경기다!
득점을 노리자!
지난번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으니까!
톱에는 허샬리옹 대신 내가, 오른족 윙에는 클루세키 대신 솔로망이 자리했다.
그리고 왼쪽 윙에는 주장이자 풀타임이 확정된 흔민 형이 뛴다.
***
와지끈.
관중석의 조나선이 가져온 판넬을 부숴버렸다.
“아~~~ 나왔잖아!”
“그러니까! 못 나오면 NBA가는 건데!”
실망한 표정을 짓는 조나선과 제이크.
그리고 자기보다 나이 어린 유도탄에게 오빠라고 소리치며 부둥켜안는 김선혜와 이채은.
“꺄악! 탄 오빠!”
“여기 좀 봐주세요! 탄! 탄! 복근이 탄탄! 꺄르르르!”
“복근이 탄탄 이 지랄. 흐흐흐흐흐.”
***
들어가자마자 맨유의 래시가드가 프리킥을 찬다.
바카리오의 선방!
2차 슛은 골대가 막고!
머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는 상대 팀 선수들.
아무래도 오늘은 우리가 이기겠는걸?
[축구의 신이 토트넘에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공작, 골키퍼가 3골, 골대도 3골은 막은 듯 하죠?]
[맞아요, 캉. 이럴 땐 라이온 마시가 와도 안 될 거예요.]
[진심?]
[음······. 라이온 마시가 오면 되겠군요. 하하하.]
시간이 없다!
아! 공이 내게 왔다!
흔민 형이 달린다!
하지만, 내 앞을 막아서는 카세파루!
“비켜!”
집중!
시간이 느려진다!
카세파루가 진행 방향을 막으며 달려들고 있다.
카세파루를 제치는데, 시간을 쓰면 늦을 거야!
그렇다면!
다리와 다리 사이다!
공에 타겟 락 온(Lock-on)!
공이 다리 사이를 통과해 형의 앞 공간으로 나아가는 궤도가 보인다!
가라, 유도탄 발사!
[기습적인 패스! 손에게 이어집니다!]
[오! 판타스틱!]
[좋은 찬스예요! 붉은 유니폼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타이밍!]
흔민 형이 공을 잡기 위해 달린다!
그렇다면 나도!
오른쪽에서는 솔로망이 달린다!
이번에 해결해야 해!
그래야 저 붉은 녀석들을 주저앉힐 수가 있어!
왼쪽을 뚫은 형이 나를 기다리며 시간을 끈다!
빨리 가야 해!
[탄을 쫓아가던 카세파루가 넘어집니다!]
[공작 보여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어!]
[나보다 빠른 건 확실하군요.]
형이 내게 패스를 한다!
공이 들어오는 결을 따라 그대로 차자!
공을 보던 몸을 자연스럽게 돌리며 공이 가는 방향에 힘만 더한다!
골대를 넘기면 안 되니까!
골키퍼의 왼쪽 빈 곳으로 빵야!
가라, 나의 데뷔골!
[탄의 슛~~~~~!을 막는 말티즈! 아! 자살골인가요?]
[추가골! 이 경기는 이겼어! 아하하하하. 꼴 좋다, 녀석들아!]
[탄, 아쉽지만 데뷔골은 다음으로 미뤄야겠어요.]
나의 데뷔골이 날아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발을 뻗은 말티즈 때문에.
“내 골인데! 내 데뷔골인데?!”
“잘했어, 도탄아! 네 골과 다름없어!”
“하지만 아니잖아요, 형!”
“네 지분이 가장 커. 내가 0.4, 네가 0.5, 그리고 저기 울고 있는 애가 0.1”
“아······.”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삐익!
심판의 휘슬과 함께 경기는 우리 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래, 뭐, 이겼으면 됐지!
오늘만 축구할 것도 아니고!
감독님도, 동료들도, 관중들도 모두 기뻐하는구나.
민주도 오늘 경기를 봤을까?
***
“꺄아아아아악!”
새벽 1시 30분, 한국.
나민주도 자신의 집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유도탄의 골은 아니지만, 유도탄의 지분이 상당한 골은 맞으니까.
내 일처럼 기뻤다.
“아씨, 먹으면 안 되는데, 엄청 맛있네. 후루룩.”
전반전은 잘 버텼는데, 하프 타임에 일을 벌이고 말았다.
달걀 넣은 라면을 끓이고 만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이겨서 그런지 심적인 부담이 덜했다.
“이러다 낼 아침에 눈이 탱탱 붓는 거 아냐?! 에이, 몰라.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뭐. 어?”
TV화면에서 환호하는 홈팬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민주의 눈에 띈 두 명의 여자.
81번 유니폼을 타이트하게 입으며 방방 뜨고 있는 두 여자가 낯익었다.
“맞네! 그때 그 승무원들! 이것들이!”
그때였다.
두 명 중 한 명이 유니폼을 살짝 들어올려 배를 노출시켰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유도탄♡이채은>.
빠각!
나민주가 젓가락을 거칠게 부러뜨렸다.
“아무래도 영국으로 가야겠어!”
***
한국의 또 다른 곳에서도 이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까비! 아, 저거 유도탄 골인데!”
“수호야, 뭔 소리 하냐. 팩트는 상대 팀의 자살골 맞거든.”
“아니, 개천이 형은······. 무슨 말인지 알면서.”
툭탁거리는 수호와 개천을 뒤로 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바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아싸! 3만 원 땄고!”
“아, 도탄이 짜식 더 강하게 찼어야지!”
“근데 저거 유도탄 골 아냐?”
“방향이 바뀌었잖아. 축구 선수가 규칙도 몰라?”
“그나저나 우리도 다음 경기는 이겨야 할 텐데······.”
갑분싸.
김두울 형의 푸념에 모두가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장, 김준재의 한마디.
“모두 잘 시간!”
그렇게 수원 그리폰 선수단은 모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경기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
토트넘 하스피탈 FC 구단 회장실.
구단주 애비가 화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사우디아라비아 투자 그룹의 수장이자, 황가의 자손 중 한 명인 돈 마날.
“마이 프렌드, 애비. 우리 측의 제안을 거절했다면서요?”
“내가 말했잖아요. 탄은 우리의 미래라고.”
“미래는 보통 돈으로 대비할 수 있죠.”
“돈 마날. 탄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 우리의 메인 비즈니스 이야기나 마무리 짓는 건 어떨까요?”
“손은······.”
돈 마날이 잠시 뜸을 들였다.
“손은 생각보다 완강하더군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애비의 철학.
제안이 거절되는 건, 그 제안이 거절할 수 있는 제안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상대가 원하는 물건은 최대한 나중에 팔아야 한다는 것.
‘지금은 탄을 팔 때가 아니야. 손부터!’
하지만, 손이 이적을 결심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뭐, 이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손처럼 충성스러운 선수는 재계약을 해도 구단에 이익이니까.
그가 가져온 아시아 마케팅 효과도 대단하고.
‘손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탄이 들어오다니.’
탄의 실력은 아직 미지수지만,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해야겠어.’
- 작가의말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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