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멘탈 강화 훈련
민주와 수정이 먼저 간 것을 확인하고, 녀석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걸어갔다.
녀석들을 더 응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런 감정을 분노라고 하던가?
멀리 녀석들이 자신들의 차를 타는 게 보였다.
지금 쫓아가면 늦을 것 같은데······.
작은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 거리에서도 가능할까?
목표가 자동차 정도의 크기라면 가능할 것 같다.
목표는 운전석 유리창.
그곳을 맞히면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그다음에는······.
“도탄아. 하지 마라.”
이 목소리는 나은태 팀장님?
돌아서니 뒤에 팀장님이 있었다.
언제 온 거지?
“민주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민주와 친구를 구한 건 잘한 일이야. 하지만 거기까지다.”
“녀석들이 한 짓에 비하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려는 짓을 네가 막았지. 네가 경찰이냐? 정의남이냐? 명심해! 넌 축구선수다.”
“······.”
“네가 왜 지금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을까?”
“징계를 받았으니까요.”
“네가 참지 못해서다. 네가 생각하는 행동이, 네가 생각하는 신념이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어. 때로는 참고 넘어가는 법도 알아야 해. 축구선수는 그라운드 위에서 실력으로 증명하는 거다.”
내가 인간이 되길 바랐던 이유.
난 아빠, 토니 유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어.
한국인 선수로 발롱도르를 타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 꿈이다. 좋아.
내 힘을 그라운드 위에서 쓰자.
그래서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자!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래. 그럼 먼저 돌아가거라.”
“팀장님은요?”
“편의점 좀 들렀다 가려고.”
어라?
내가 민주에게 했던 말이랑 똑같은 말이네?
그냥 우연의 일치겠지.
배가 고프다.
일단 고기를 먹으러 가자.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팀장님.”
“그래.”
유도탄이 돌아가는 것을 본 나은태 팀장이 주머니에서 복면을 꺼냈다.
그리고 손목에 찬 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 새끼들이 어디 남의 집, 귀한 딸을 건드려!”
***
잠시 후 나은태 팀장님이 돌아왔고, 우린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으며 <프리킥 스페셜리스트 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태야. 그러니까 결국 추천을 많이 받은 영상이 1위를 한다는 거잖아?”
“그렇지.”
“야, 그럼 그냥 단순하게 공만 찰 차서는 안 돼.”
“그럼?”
“어그로가 있어야지! 내가 조튜브 20년 시청자로서 말이지. 일단 영상은 어그로가 핵심이라고.”
“어그로?”
“그래! 예를 들면, 예쁜 여자가 나오고!”
“프리킥 영상인데, 예쁜 여자가 왠 말이냐?”
“어허! 유도탄! 너라면 니가 공 차는 영상 볼래. 민주가 춤추면서 노래하는 영상 볼래.”
“풉.”
왜 갑자기 불똥이 나에게 튀는 거야?
다들 나를 보잖아?
이게 뭐라고?
“왜 말이 없어! 솔직히 대답해야 한다. 고르기 어려워?”
어······.
연산이 엉키는 느낌이다.
응?
민주가 눈을 가늘게 뜬다.
답이 나왔다!
“다, 당연히 민주가 춤추면서 노래하는 영상을 보죠.”
“봤지?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유도탄이 공을 차고, 옆에서 민주가 어, 거 뭐냐. 배 좀 까고 유행하는 춤도 추고!”
“뭐야! 철진 삼촌 변태 같아!”
민주의 말에 쌈을 한가득 입에 넣은 수정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지치지도 않고 잘도 먹네.
“그런가······. 아니지!”
설득당할 뻔했던 나은태 팀장님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반론을 펼쳤다.
“시청자가 남자만 있냐? 여자들은? 그렇지. 수정아! 넌 민주가 춤추는 영상 볼래, 유도탄이 공 차는 영상 볼래?”
“에?”
“유도탄이 웃통을 까고 복근 쇼, 한 번 한 후에 공을 빵! 차는 거야. 어때?”
“그럼 공 차는 거 볼래요.”
“나두!”
민주와 수정이 킥킥거리며 함께 웃는다.
뭐가 재밌다는 거지.
“그거 봐. 이렇게 여자들 생각도 해야지.”
“은태야. 그럼 답 나왔네. 함께 나와서 둘 다 까.”
까긴 뭘 자꾸 까요.
그만 까요.
확 까버릴······.
안 되겠다.
내 의견도 말해야겠다.
“저는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민주가 나오면 지난번처럼 또 기사가 뜰 거라고요.”
“하긴······.”
“제 생각에는요, 이렇게 찍으면 어떨까요?”
늦은 시간까지 프리킥 영상에 대한 나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
다음 날 아침, 공터에 모두가 모였다.
나은태 팀장님이 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 본격적으로 프리킥 영상을 찍기 전에, 우리 도탄이 멘탈 강화 훈련이 있겠다.”
“멘탈 강화 훈련이요?”
“그래. 그라운드 위에서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텐데, 또 중징계를 받으면 안 되잖냐. 그래서 준비했다.”
언제 또 이런 걸 준비한 거지?
그런데 민주와 수정이 자꾸 피식거리며 웃는다.
도대체 뭘 준비한 거야?
“자, 철진이가 더러운 수비수 역할, 내가 심판 역할, 그리고 민주와 수정이가 나쁜 관중 역할을 할 거다.”
멘탈 강화 훈련의 규칙을 정리하면 이렇다.
난 펜션의 넓지 않은 공터에서 30분 동안 드리블로 이동한다.
더러운 수비수는 온갖 반칙으로 날 화나게 만든다.
나쁜 관중 역시 온갖 방법으로 날 괴롭힌다.
심판인 팀장님은 오로지 나만 주시하며 내가 반칙이나 폭력을 사용하는지 감시한다.
30분 동안 참아내면 통과, 실패하면 반복. 뭐 이런 규칙이었다.
삐익!
나은태 팀장님이 휘슬을 불며 공을 내게 굴렸다.
“시작!”
공이 떼구루루 굴러온다.
내가 공을 발로 멈추자 김철진 코치님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데, 김철진 코치님이 내게 바짝 붙었다.
“1단계, 꼬집기!”
“아야! 코치님!”
“어허! 난 수비수다! 에잇!”
“아야야야!”
이러다 옆구리 구멍 나겠다!
얼른 벗어나야겠어!
하지만 공터가 너무 좁다.
금방 쫓아온다.
“2단계, 철산고!! 으랏차!”
“커억!”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몸통 박치기라니!
공을 빼앗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반칙만 한다.
화가 나는걸!
나도 몸통 박치기!
“끄아악!”
“삼촌!”
이런, 나도 모르게 너무 세게 하고 말았다.
김철진 코치님이 날아가 버렸다.
삐익!
휘슬과 함께 나은태 팀장님이 내게 레드 카드를 내밀었다.
“유도탄 퇴장!”
억울하다.
하지만, 이게 규칙이었으니까.
참아야 한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심판이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널 괴롭힐 것이다. 공정하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 너에게 불리한 판정을, 네가 화가 나는 판정을 내릴 거야! 그때마다 넌 화를 내고, 무모한 행동으로 퇴장을 당할 거냐?”
“아닙니다!”
“좋다. 다시 30분 시작!”
“네!”
돌아온 김철진 코치님이 다시 똑같은 반칙을, 아니 조금 전보다 더 심한 반칙을 하기 시작했다.
“우와. 깜짝 놀랐다? 각오해라 유도탄! 1단계, 발 마구 밟기! 얍! 얍! 얍!”
마치 두더지 때려잡기를 하듯 내 발을 밟기 위해 자신의 발을 구른다.
겨우 피했다.
“2단계, 발목 차기! 아뵤!”
“악!”
정통은 아니지만, 살짝 맞고 말았다.
이게 축구야?
흡사 격투기의 로우킥을 보는 것 같다.
슬슬 또 화가 나는데······.
하지만 내가 반칙을 하면, 팀장님은 아니 심판은 내게 카드를 꺼낼 것이다.
어떻게 하지?
그 순간 라이온 마시의 드리블 영상이 떠올랐다.
작은 체구로 좁은 공간을 공과 함께 돌파하는 모습.
그 역시 수많은 수비수의 거친 태클을 당하며 구르고 또 굴렀었다.
라이온 마시의 드리블 모습이 홀로그램처럼 공터에 투영되었다.
나도 마시를 따라 해보자!
“3단계, 발바닥 보이면서 태클! 얍!”
“4단계, 옷 잡아당기기! 하앗!”
“5단계! 스핀 엘보!”
어느 순간부터 김철진 코치님과 나의 접촉이 점점 줄어들었다.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미꾸라지처럼 김철진 코치님의 반칙을 피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헉헉헉. 장난 아닌데? 아이고 힘들어.”
김철진 코치님이 허리를 숙이고 숨을 몰아쉬자 나은태 팀장님이 시계를 본다.
몇 분 남은 걸까?
“15분 남았다! 나쁜 관중 시작해!”
“네!”
“유도탄 꺼져라! 우~~~~ 세모 발, 물러가라!”
“누가 세모 발이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비방에 울컥했다.
“오빠 미안! 멘탈 훈련이잖아. 멘탈 훈련!”
미안한 것 맞아?
너무 활짝 웃고 있는데?
끝나고 두고 보자!
“네가 축구선수냐! 이거나 받아라!”
뒤에서 수정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뭔가 날아오더니 뒤통수에 부딪혔다.
빈 페트병이었다.
빠직!
화가 난다.
수정이 너는 투척 담당이구나.
“앗! 조금 전 대사는 민주가 알려준 거예요!”
대사가 문제가 아니잖아!
그때 김철진 코치님이 다시 쫓아와 반칙을 시도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주가 또 말 공격을 시작했다.
“유도탄, 반칙하지 마라! 심판 유도탄 퇴장!”
“내가 무슨 반칙을 했다고!”
말도 안 되는 우기기에 또 울컥하고 말았다.
그때 뒤에서 또 뭔가가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두 번은 안 당해! 정신을 집중해서 날아오는 빈 페트병 두 개를 양손으로 잡았다.
“우와! 오빠 순발력 쩐다!”
우지직.
페트병 두 개를 구겨버리자, 놀란 수정이가 민주 뒤로 숨었다.
심판이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페트병을 얼른 버리고 김철진 코치님을 피해 드리블을 시작했다.
“이래도! 이래도! 이야압!”
시간이 흐르자 코치님의 피지컬 반칙은 거의 다 피할 수 있게 되었고.
“국대 선발을 거부하다니 건방지다! 당장 은퇴해라!”
민주의 막말 공격은 무시할 수 있게 되었고.
“1구! 2구! 3구! 아까비!”
계속해서 날아오는 수정이의 투척 공격은 튕겨내거나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삐익! 시계를 보면서 나은태 팀장님이 휘슬을 불었다.
드디어 끝났다.
나와 팀장님을 제외한 나머지가 풀썩 주저앉는다.
“으아, 반칙하는 것도 힘들다, 힘들어.”
“아오, 목이야. 오빠, 정말 잘 참는다!”
“내가 그래도 고등학교 때 소프트볼 선수였는데, 유도탄 오빠는 도저히 못 맞히겠어.”
어쩐지 제구력이 날카롭더라니.
수정이가 소프트볼을 했었구나.
나은태 팀장님이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잘했다. 넌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어. 때로는 참는 것이 이기는 거야.”
“네, 팀장님.”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도 이긴다······.
그런데 나만 당하니까 뭔가 좀 억울한걸?
“자, 간식 먹고 하자!”
팀장님이 먼저 펜션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태야 같이 가자! 민주야, 수정아. 이 삼촌 좀 일으켜주렴!”
“아이참, 저희도 힘들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민주와 수정이가 일어나 김철진 코치님의 양팔을 붙잡고 일으켜준다.
잠깐만!
순간 내 머릿속에서 전구가 반짝하고 켜졌다!
심판이 등을 돌린 지금이 기회다!
날 괴롭혔던 악당들에게 복수할 기회!
으하하하!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공은 저쪽에 놓고~”
조금 어색했지만, 알리바이를 뒷받침해줄 대사를 날린 후 집중을 한다.
시간이 느려지며 붉은색 조준 표시가 생겨났다.
내 앞의 공에 조준 표시를 겹치자 흉악한 악당들의 몇 미터 옆으로 지나가는 공의 궤도가 만들어진다.
궤도는 공터에 세워져 있는 기둥에 닿은 후 반대로 꺾이며 되돌아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꺾고 또 꺾자 드디어 목표지점에 궤도가 이어졌다.
더는 시간을 느리게 할 수가 없다!
유도탄 발사!
시간이 다시 흐르고, 공이 발사되었다!
날아간 공은 계획대로 기둥에 맞은 후 튕겨서 악당들에게로 향한다.
퍽! 퍽! 퍽!
쓰리 쿠션으로 세 악당의 머리에 공이 차례로 맞았다.
“아악!”, “꺄악!”, “엄마!”
“앗! 미안! 다들 괜찮아요?”
걱정하며 달려간다.
표정 관리를 한다.
하지만 마음속은 다르지!
이것이 일타삼피, 일석삼조인 것인가?
복수는 역시 짜릿해!
늘 새로워! 재밌어! 으하하하!
앗?!
어쩌면 팀장님은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걸 알려주려고 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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