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모두 다 비켜!
[치열한 공방 끝에 전반전이 끝납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치고받고 물어뜯고, 춤도 추고, 열정적인 전반전이었요! 관객들이 바라는 축구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축구선수들은 내가 그라운드 위의 엔터테이너다!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겠다! 이런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그렇군요. 하프 타임을 즐겁게 만들어줄 진짜 엔터테이너의 시간입니다! 5인조 걸그룹이죠? 폭탄 걸스!]
[경기장에 폭탄이 투하됩니다! 모두 조심하세요! 예~~~~~~~~! 붐붐붐!]
통로에서 부산 나이트 FC의 유니폼을 입은 폭탄 걸스 멤버 5명이 백댄서들과 함께 뛰어나온다.
어?
멤버 중 한 명이 축구공을 들고 있네?
축구공 퍼포먼스를 하려고 그러나?
통로에서 나오는 폭탄 걸스와 통로로 들어가는 우리가 스쳐 지날 때, 축구공을 들고 있던 멤버가 갑자기 내게 공을 던졌다.
“어어? 뭐야?”
“공을 왜 준 거야?”
옆에 있던 이태신 선배와 김선범 선배가 냅다 내가 받은 공을 빼앗았다.
“뭐가 있는 거 아냐?”
“찾았다! 사인이 있네? 폭탄 걸스 채은?”
“이걸 왜 유도탄에게 주는 거야?”
“에이, 더러운 세상! 가자!”
“마음이 중요하지, 얼굴이 중요한가! 퉤퉤퉤!”
이태신 선배와 김선범 선배와 투덜거리며 함께 가버렸다.
공은 내게 다시 던져주고.
공을 버릴 수도 없고.
일단 갖고는 가는데······.
응? 작은 글씨가 있네?
검은색 패턴 부분에 작게 적혀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글씨.
휴대폰 전화번호였다.
라커룸에 들어가자마자 주경훈 감독님이 화를 냈다.
“야, 유도탄!! 갑자기 삼바 춤은 왜 추는 거야?!”
“죄송합니다.”
“하······. 후반전에 세리머니는 뭘 할 거야?”
“네? 어······. 춤은 안 추겠습니다.”
“그래. 됐고. 어? 안재민 어디 갔어?”
“화장실 갔습니다!”
정수호가 손을 들며 대답을 했다.
재민이 형, 진짜 속이 안 좋은 모양이네.
“뭘 먹었는데 저러는 거야? 저러다 경기 중에 싸는 거 아냐?”
“기저귀 차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큭큭큭.”
남개천의 말에 다들 킥킥거리며 웃었다.
최일성 코치님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호야 가서 완전히 다 비우고 오라고 그래. 작전 회의 참석하겠다고 빨리 오지 말고.”
“네!”
“자, 나머지는 집중! 후반전에는 아마 조커 주병안이 나올 거다!”
20, 21시즌 K리그 2 득점왕 주병안(34세, FW).
하지만 지난 시즌 K리그 1에서는 5득점에 그쳤고, 팀의 강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팀이 바로 수원 그리폰 FC였다.
“병안이가 작년에는 잘 안 풀렸는데, K리그 2로 돌아와서는 살아나는 것 같더라. 그러니까 조심들 해!”
“네!”
부산으로 이적한 주병안의 올 시즌 성적은 5골 1도움.
출전 경기 수가 많지는 않지만, 중요한 길목에서는 골을 넣어주고 있었다.
***
[후반전이 곧 시작됩니다! 수원 그리폰 FC는 전반전에 골키퍼 교체가 있었는데요, 그 외에는 그대로 출전합니다! 이에 맞서는 부산 나이트 FC는 2명을 교체했습니다! 주병안과 인민현(27세, MF)이 들어갑니다. 페로즈가 빠진 쓰리톱의 한 자리를 주병안이 맡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었죠? 부산의 힘은 조커로 출전하는 주병안이라고요! 2년 연속 K리그2 득점왕의 실력, 어디 가겠습니까? 그리고 인민현 선수는 빠른 발이 특기로 부산의 플래시라 불립니다!]
감독님이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가 한 명 더 나왔다.
인민현. 얼마나 빠를까?
주병안과 인민현.
4R 경기 때는 부상과 경고로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이니, 오늘이 첫 대결이다!
“측면 막아! 라인 탄다!”
[올 시즌 부주장을 맡고 있는 인민현 선수! 밀리토와 패터슨을 피해 측면을 돌파합니다!]
인민현의 오른쪽 측면 돌파.
빠르다!
페널티박스로 크로스를 허용하면 안 돼!
좌측 풀백인 백수빈(27세, DF) 형이 막아선다!
주장 준재 형이 커버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난 페널티박스로!
“유도탄! 들어오지 마! 역습 준비해!”
모진후 형과 밀리토, 패터슨까지 모였다!
부산 나이트 FC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믿고 가자!
크로스가 올라온다!
골키퍼 재민 형까지 포함해 총 7명이 경합을 벌인다! 막았다!
“도탄! 고오!!!”
밀리토의 전진 패스!
이한계가 날 막으러 온다!
내가 먼저다!
다리를 쭈욱!
닿았다!
그리고 전해지는 충격!
이겨낸다! 으랏차!
[동시에 부딪혔습니다! 아! 이한계 선수가 밀려납니다!]
[이한계 선수! 한계에 부딪혔나요? 여기서 끊지 않으면 위험해요! 한계를 이겨내야 해요!]
전방에 마로니치가 보인다!
좋은 찬스!
어라?
내 옷을 잡고 있잖아!
찢어지겠어!
지금 타이밍을 놓치면 안 돼!
집중!
시간이 느려진다!
붉은 조준 표시가 공에 겹쳐진다!
공의 중심을 강하게!
공의 목표는 마로니치의 바로 옆을 통과하는 패스다!
빵야!
[이한계 선수가 붙잡고 늘어집니다! 아! 유도탄 선수의 전매특허! 대지를 가르는 패스!!!]
[그라운드를 찢는 패스예요! 유도탄 선수 옷도 찢어졌어요!]
[마로니치 달립니다! 수비수 방향 전환이 느립니다! 좋은 기회! 동료는 없습니다!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슈웃!!! 고올!!!]
[골! 골! 골! 멋진 골! 탄마로가 해냈어요!]
됐다!
모두 모여서 마로니치를 축하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등이 허전하지?
“야, 유도탄! 가서 옷 갈아입고 와라! 뒤가 다 찢어졌어.”
그랬구나.
준재 형의 말에 따라 벤치로 달려갔다.
수호가 내미는 옷을 받았다.
땀에 젖은 옷을 벗는다.
훌러덩!
그리고 들리는 비명!
“꺄아아아아아아악!”
“오빠!!!!”
“도탄 오빠!”
파바바바박!
마구 터지는 플래시.
저건 대포 카메라?!
아이돌 직캠 영상을 위해 팬들이 사용한다는 카메라 아닌가?
뭘 찍는 거야?
내 몸?
그래, 팬들을 위해 서비스를 하자!
배에 힘을 주고!
보디빌더 포즈!
아야야! 누가 내 뒤통수를 때린 거야?
“빨리 안 갈아입어?! 시간 지연으로 경고받으면 너 퇴장이야, 임마!”
“앗! 네!”
후다닥! 옷을 갈아입는다.
최일성 코치님의 말을 듣고 보니 심판의 눈초리가 무섭다.
미소와 빠른 동작으로 무마하자.
[아유. 유도탄 선수. 인기인이에요. 테리우스 안 이후로 가장 잘생긴 축구선수로 꼽히지 않습니까?]
[얼굴에 가려서 그렇지, 사실은 축구 실력이 더 대박이에요! 이제 16R인데, 벌써 공격포인트가 21이에요! 아, 오늘 이미 1골 1도움이니까 2포인트를 추가했죠? 그럼 보자, 보자, 21 더하기 2를 하니까네, 23이네요? 올 시즌이 반도 안 지났는데, 벌써 지난 시즌 공격포인트 2위 기록을 넘어섰어요! 공격포인트 부자예요!]
[참고로 지난 시즌 공격포인트 1위는 전남의 에이스죠. 브라질 특급 손디비아(30세, FW) 선수입니다. 36경기 14골 14도움 28포인트를 기록했습니다.]
“일성아! 몇 분 남았냐?”
“20분 남았는데요?”
“그렇게 많이 남았어? 교체 카드 좀 쓸까?”
“네!”
“어?”
주경훈 감독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최일성 코치가 아니라 정수호였다.
자기도 모르게 대답하고 만 것.
잠깐의 침묵.
“애들 팔팔하니까 일단 그대로 간다!”
감독의 말에 정수호도 울고, 곽일단도 울고, 하늘도 울었다.
[비가 내립니다! 일기 예보에 없던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수중전이에요! 정확도나 스피드 보다는 체력 싸움이 되겠네요! 일단 차고 봐야 합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힘이 필요한 때예요!]
처음이다.
비가 쏟아진다.
눈을 뜰 수가 없다.
빗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린다.
공이 보이질 않는다.
“정신 차려! 패스하지 말고 밖으로 차!”
준재 형의 목소리다.
공이 어딨지?
우리 쪽 진영에 있잖아?
어느새?!
[브라질 듀오가 우당탕 2대1 패스로 페널티박스까지 끌고 갔습니다! 슛! 아, 헛발질!]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난장판이에요! 집중해야 해요! 공격수는 일단 슛하고! 수비수는 무조건 밖으로 차야 해요!]
주병안의 슈팅을 막아야 해!
슬라이딩 태클!!!
어라?! 안 차네?
[잠시 슈팅 동작을 멈춘 주병안! 그 앞으로 유도탄 선수가 미끄러져 지나갑니다!]
[시간차 공격이죠! 너는 가라! 나는 찬다! 슈팅이에요! 슈웃!!!! 고오올~~~~~~! 동점입니다!]
[주병안 선수! 골 냄새를 기막히게 맡습니다! 유니폼을 벗고 포효합니다! 부산의 왕은 바로 나다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시바. 아오, 배 아파.”
내 이름은 안재민.
1년 6개월 만에 경기에 출장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간식으로 먹은 빵이 잘못됐는지 경기 시작 전부터 배가 아팠다.
하프 타임에 열심히 비웠더니 괜찮았는데, 망할 비가 내리자 또 배가 아파 온다.
기온은 내려가고, 옷은 젖고, 게다가 조금 전 슛을 막기 위해 점프했다가 떨어졌더니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위험하다.
아직도 남은 게 있었나?
이러다 진짜 싸는 거 아냐?
이전에 경기장에서 똥을 싼 선수가 있었나?
내가 최초인가?
경기고 뭐고 화장실로 갈까?
갔다간 감독님에게 뒤지게 혼나겠지?
비가 와서 오히려 다행인가?
냄새도, 모습도 비가 가려주려나?
[비가 그쳤습니다! 수중전에서 부산 나이트 FC가 앞섭니다! 다시 페신의 슛! 안재민 골키퍼 막습니다!]
[막은 건지, 배에 맞은 건지 애매한데요?]
[재차 슈팅하는 마로스! 안재민, 또 막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합니다! 배에 맞은 겁니다!]
[공 걷어냅니다! 위기를 넘기는 수원 그리폰 FC!]
“시바, 개시끼들! 배만 자꾸 맞히고 옘병! 아우······. 배야. 수비수들! 잘 좀 막아!”
듣는 놈이 하나도 없네.
허리가 안 펴진다.
뭔가 새려는 것 같다.
똥꼬에 힘을 빡 주고는 있는데, 빗물이 바지 속으로 스며들어 양쪽 엉덩이가 붙는 힘을 줄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90분 넘은 것 같은데?
[물이 거의 다 빠졌습니다. 배수가 잘되네요! 추가 시간 3분이 거의 다 지나갔습니다! 이대로 무승부로 끝날까요?]
[무승부 안 됩니다! 이런 경기는 승부가 나야 해요! 그것이 관중에 대한 예의 아니겠습니까? 이기고 지고, 희비 교차! 화끈하게! 이거던지 지던지! 그래야 팬들이 신나요!]
“재민 형! 또 온다!”
“뭐?! 시바! 중간에 걷어내! 걷어내라고 그냥!”
더는 소리칠 수도 없다.
소리칠 힘까지 똥꼬로 보내야 한다.
1년 6개월 만의 경기.
조튜브 시대에 순간의 실수는 평생 박제된다.
게다가 이거 나오면 수분함량이 많을 것 같다.
주병안 저 악마 같은 시키!
득달같이 뛰어오네!
뭣들 하는 거야!
다리를 걸어!
밀어!
파울이고 뭐고 막으라고!
[페인팅 동작으로 수비수를 벗겨냅니다! 주병안 슛!]
아주 자동문이구나.
그래 와라!
내가 싸는 한이 있어도 막아주마!
[안재민 선수! 슈퍼세이브! 막아냅니다!]
뜨아! 틀렸어!
막느라 팔에 힘을 줬더니, 조금씩 나온다.
이러다 둑이 무너지듯 쏟아져 나올 거야!
시바! 경기고 뭐고!
나부터 살고 보자!
[안재민의 골킥입니다! 보통 이 정도 시간이면 시간을 끌 수도 있는데요, 바로 찹니다!]
[2대2 무승부는 용납할 수 없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1위 팀 골키퍼의 마음가짐이에요!]
[어어? 크게 바운드 된 공! 골키퍼 미끄러집니다! 살짝 건드렸는데, 오히려 더 밀어버리고 말았네요! 그대로 들어갑니다! 골!]
[골입니다! 골! 정용성 골키퍼 이후로 얼마 만에 이런 골을 봅니까? 대단해요! 극장 골이에요! 원정 팬들 난리 났어요!]
[그런데 안재민 골키퍼가 안 보입니다? 어? 벌써 벤치로 달려가고 있네요!]
“이야아! 형 온다! 형! 축하해요!”
“잘했다! 안재민!”
정수호와 곽일단 등의 벤치 멤버는 물론이고 주경훈 감독과 최일성 코치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재민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나.
“비켜 개시키들아!!! 확 마 주차삘라!!!”
사자후를 날린 안재민이 동료들은 물론, 감독과 코치까지 팰 것처럼 양팔을 마구 휘두르며 길을 뚫었다.
그리고 통로로 사라져 버렸다.
“뭐야? 저 새끼? 지금 나한테 욕하고 때리려고 한 거 맞지? 어? 그렇지?!”
“감독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골키퍼가 나갔잖아요! 일단 아무나 내보내고!”
“시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일단!”
“네! 곽일단!”
“정수호 네가 나가. 잘 막아라!”
“네!”
희비 교차.
정수호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곽일단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정수호가 장갑을 끼고 골대로 달려가서 자리를 잡자,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그렇게 수원 그리폰 FC는 부산 나이트 FC 원정을 3:2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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