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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

전장 안의 엑스트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김문서
작품등록일 :
2020.10.16 00:57
최근연재일 :
2020.11.13 08: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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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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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156,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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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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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모래바람(1)

DUMMY

이대로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현우는 미처 기우지 못해 벌어진 천막의 천장 틈새로 달빛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다. 살기 위해서··· 이대론 안 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엑스트라 인생. 방송국 밥을 먹으며 살아온 이십여 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니 현우는 스스로가 항상 소극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미 신립은 현우에게 전장의 선봉으로 나서라는 명령을 내렸고 내일 새벽 일찍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 현우는 화살받이, 아니 조총의 총알받이가 되어 탄금대의 벌창 어딘가에 쳐박혀 죽어가겠지···.


‘잠깐! 그래! 그거면 되겠어! 그거야 그거!’


현우는 순간 기쁨을 감추지 못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뒷주머니에 잡히는 묵직한 물건

!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신립을 만나느냐였다.



“여물이 너 역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 아이는 정녕 왜군의 간자가 아니었던 것이냐?”

“······.”

“말이 없는 걸 보니 너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흐음···.”

“장군, 그렇다면 왜 아이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 아이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일 장군을 상주에서 구한 것도 그 아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현우가 왜군과 싸우며 시간을 벌지 못했다면 아마 이일은 적의 시체가 되거나 포로가 되었을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게 아니냐? 내일이면 모든 것이 결판나리니···.”

“······.”


다시금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김여물. 그에게 장막 바깥에서의 소란이 들려왔다.


“장군, 잠시···.”


김여물은 장막밖으로 향했다. 군관 하나가 달려와 김여물에게 보고를 했다.


“종사관 나으리. 그게···.”

“무슨 일이냐? 뜸들이지 말고 말하라.”

“그것이··· 불이 나서···.”

“뭐라구?”


현우는 도망치기 위해 많은 것들을 고민했다. 그러던 그에게 떠오른 생각은 바로 ‘라이터’였다.


습관적으로 담배의 라이터를 뒷주머니에 넣어둔 현우. 사실 불이라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라이터는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물건이 될 수 있었다.


문명의 시작이 불의 발견이듯 라이터는 우연찮게 현우의 뒷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고, 다행히 군복이나 장군복 같은 당시의 복장에는 바지에 뒷주머니가 없는 것이 당연했기에 핸드폰, 담배와 달리 라이터를 따로 챙겨놨던 현우의 뒷주머니는 수색을 피해갈 수 있었다.


현우는 의자에 묶인 채로 엉덩이를 들어 죽을 힘을 다해 라이터를 꺼냈고, 그것으로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천막을 나가려던 현우. 하지만 그는 다시금 생각을 바꿔 천막에 불을 놓아버렸다. 보초를 보는 병사를 포함 주변의 천막에서 쉬고 있던 병사들이 달려온 것은 당연했다.


“어서 병사들을 동원해 불을 꺼라. 그리고 장군께는 내가 따로 말씀드리겠다.”

“예.”


천막으로 돌아온 김여물. 남은 보고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등으로 환하게 빛나는 신립의 천막 안에 보이는 실루엣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장군! 어랏! 너, 너는?!”


천막 안에는 신립이 앉아있는 탁자 앞에 서있는 현우가 보였다. 김여물은 당황한 나머지 칼을 빼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장군!”

“잠깐.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세.”


현우는 천막에 불을 낸 후 곧바로 아래의 틈새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행히 천장까지 헤진 천막이라서 구멍을 낼 곳은 많았다.


현우는 곧바로 밖으로 나온 후 가장 큰 천막을 찾았다. 그곳이야말로 신립이 있을 가장 유력한 장소일테니까.


“그래서 네 말은 무엇이냐? 널 보낸 사람이 누구라고?”

“하늘. 하늘입니다.”

“무어라? 하늘? 하하하핫. 네가 오늘 날 여러 번 웃기는구나. 하늘이라.”

“백성은 군주에게 하늘이라 했습니다. 백성이 해라면 군주는 달과 같다 했습니다. 낮의 해가 밤의 달을 빛나게 하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저를 이곳에 보낸 것은 백성입니다.”


2012년作 ‘왕세자의 첫사랑’에 나오는 대사이다. 현우는 첫사랑을 찾아 도망쳤던 왕세자가 다시 궁으로 잡혀와 왕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한 대사를 떠올려 신립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왕과 전혀 달랐다.


“이런 천둥벌거숭이놈 같으니! 감히 네가 군주를 논해?”


김여물이 거의 동시에 칼을 빼들었다. 현우는 순간 겁이 났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장군. 들으십시오! 내일 전투는 반드시 조선이 패합니다. 수많은 조선의 병사들, 아니 저 밖에 있는 병사로 둔갑한 백성들이 모두 죽음을 당한단 말입니다!”

“무어라? 네가 그걸 어떻게···.”


사실 병사의 대부분이 도성의 백성들이라는 사실은 신립과 이일 외의 우두머리 장수들 그리고 백부장 정도의 장수들만 알 법한 일이었다.


급히 부산성부터 도성으로 진군하고 있는 왜군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에서는 싸울 수 있는 남정네들을 끌어모았고, 지금 간신히 남아있는 8천 정도의 병사 대부분은 평소에 창조차 든 적이 없는 양민들이었다.


“장군, 장군의 머릿속엔 분명 내일 전투에 기마부대를 가장 먼저 내보내려 하실 것입니다. 그들로 왜군의 중앙을 돌파한 후 군졸들을 연달아 투입시켜 적을 양분시키고 그 이후에 적장을 잡든지 적군을 궤멸시킨다. 맞습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2004년作 ‘불멸의 이순신’에 엑스트라로 참여했던 현우는 촬영날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렸다.


비록 신립의 탄금대 전투는 나레이션을 포함 전체 분량의 4분의 1이 채 되지 않았지만 액션신만큼은 엄청나게 고생을 해서 찍은 기억이 있었다.


분명 대본에 나온대로라면 처음의 조선 기병들이 왜군을 향해 진격을 하다가 갯벌 같은 진창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그것을 왜군들이 살육하면서 탄금대 전투의 회상신이 시작되었었다.


현우는 그것을 기억해내 신립에게 말했고, 또한 드라마 초반부에 나왔던 신립의 활약이 대부분 북방에서 이루어졌다는 것도 기억해냈다.


어디까지나 드라마 덕후에 가까운 과거 때문에 생각해낸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신립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오직 그의 머릿속에 생각해둔 말이었을 뿐이다. 전투가 있을 내일이 되어서야 장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을 이미 모두 꿰뚫고 있는 아이가 있다니.


“장군.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신립과 김여물은 눈을 마주보며 놀랐다. 김여물 역시 이런 신립의 전략을 대강이나마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반드시 기병으로 먼저 적진을 돌파하고 뒤이어 병사들을 진격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렇듯 정확하게 예측해내는 눈앞의 현우가 놀랍기만 했다.


“일단··· 말해보라.”


군대를 통솔하는 장수에게 전략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 무력에 의존해 적과 싸우는 장수가 있지만 신립은 더 이상 북방에서 말갈기를 휘날리며 오랑캐를 무찌르는 용장이 아니었다.


몇 년 전 한성판윤을 지낸 문관에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필살 전략이 간파당한 데 대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내일 전투는 조선군이 반드시 패합니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이냐?”


이미 조선군의 패배를 예측하고 있었는지 김여물은 평소답지 않게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며칠 후면 도성이 점령당할 것입니다. 임금의 묘지는 파헤쳐질 것이고, 궁은 불줄기에 휩싸일 것입니다. 왕께서는 북쪽으로 피난을 가실 것이고, 최후의 최후에는 의주에 닿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사극 같았나?’


현우는 말을 마친 후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반신반의한 의심이 서려있었다. 아마도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최악의 사태로 이 정도의 상황을 예상한 것 같았다.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저는 하늘에서 내려왔고, 차후의 상황들을 알고 있습니다. 어느 아이의 탄생과 죽음 같은 작은 것들은 모르지만 전쟁이 어떻게 되고, 조선이 어떻게 최후를 맞이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

“장군께서는···.”


신립은 내일 싸우다 지쳐 탄금대에 몸을 던져 죽게될 것이다. 차마 그 말을 할 순 없었다.


“죽는 건가···.”

“기회는 있습니다. 지금 병사를 빼시면 됩니다.”

“무어라? 후퇴하란 말이냐? 내 사전에 비겁한 후퇴는 없다.”

“뻔히 질줄을 알고 패배를 택하는 것도 비겁한 짓입니다. 장군, 통찰하소서!”


워낙 사극에 출연한 적이 많아서인지 사극톤의 대화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현우의 말에 신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이냐?”

“제 생각엔···.”


다급히 생각해둔 말이었지만 현우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수없이 많은 드라마를 보며 항상 생각했던 것은 왜 우리의 조상들은 저렇게 약했느냐였다.


여러차례 리메이크된 인조반정의 이야기를 보면 결국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인조는 청나라의 왕에게 절을 하며 항복해야했고, 그 후로 멀리 조선 말기의 명성황후는 이름도 모르는 일본의 낭인에게 죽임을 당했고, 휘발유로 불태워졌었다.


‘망설임. 망설임이었다.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든 해야될 상황에서 망설이고 머뭇거렸던 것이 패배를 가져왔던 거다.’


현우는 결심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만의 전략을 천천히 신립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현우의 이야기를 듣고 때론 놀라고 때론 안타까운 얼굴을 짓기도 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전투의 날이 밝았다. 조령에서 김여물이 만들어놓은 조형물에 속은 왜군은 아침이 조금 지나서야 탄금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 내내 조령의 거친 숲과 길목들을 헤맸던 왜군 병사들의 모습은 많이 피곤해보였다.


오늘 전투는 고니시에겐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투였다. 아마도 오늘의 전투가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 올라가기 전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고니시가 이 전투에 집착하는 이유는 조금 더 깊은 곳에 있었다. 바로 선봉에 선 장수들의 다툼 때문이었다.


앞서 제일 먼저 부산으로 쳐들어온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 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加藤淸正)의 다툼은 날이 갈수록 점점 커지기만 하고 있었다.


- 고니시군보다 먼저 한양에 도착해야 한다!

- 가토군에게 뒤쳐질 순 없다. 우리가 먼저 출발했으니 수도를 점령하는 것도 우리가 먼저다!


애시당초 조선을 향해 오면서부터 선봉을 다투던 두 장수였다.

선봉을 빼앗기다시피 고니시에게 넘겨준 가토로써는 선봉군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였는데, 막상 고니시가 반나절만에 부산성을 점령하고 곧이어 동래성까지 함락하자 가토의 질투심은 극악으로 치달았다.


고니시에 대한 질투심으로 병사들을 닦달해댔고, 결국에는 진군 속도를 빨리하면서까지 고니시보다 앞서서 한양을 빼앗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고니시는 고니시대로 가토보다 먼저 조선으로 출병했기 때문에 한양도 당연히 가토보다 먼저 빼앗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적의 수도를 점령하는 것은 이번 출전군으로써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전공이었다.


아직 조선의 왕을 사로잡지는 못했지만, 만약 왕이 도망을 가더라도 도성을 점령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조선은 거의 점령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선봉군이지 않는가···. 당연히 도성에 발을 들이는 첫 번째 군대는 고니시군이 되어야만 했다.


“진영을 꾸려라. 빨리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하지만 탄금대의 벌판에 도착한 고니시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는지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어란 말인가? 8천은 충분히 된다고 들었는데. 척후의 보고가 틀린 것은 아닌가?”

“아닙니다. 분명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조선군이 이곳에 군영을 정해놓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조선군은 도대체 어딜 갔단 말인가?”

“엇? 장군, 저길 보십시오!”


금강의 하구. 작은 모래바람이 들판을 덮고 있었다.

소수의 기병들.


하지만 하나 같이 철갑으로 된 완전 군장을 하고 있었다.

바로 조선군 최고의 자랑이자 군의 핵심인 개마고원 기마부대였다. 그리고 그 앞에 가장 큰 말을 타고 있는 장수는 조선군을 이끄는 최고 지휘관 신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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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안의 엑스트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작합니다(수정) 20.10.17 127 0 -
28 이순신을 찾아서(1) 20.11.13 58 0 12쪽
27 용인 전투, 두 번째(4) 20.11.11 62 0 15쪽
26 용인 전투, 두 번째(3) 20.11.10 63 0 13쪽
25 용인 전투, 두 번째(2) 20.11.07 76 0 14쪽
24 용인 전투, 두 번째(1) 20.11.06 88 1 14쪽
23 팔문둔갑(八門遁甲)(2) 20.11.05 97 1 12쪽
22 팔문둔갑(八門遁甲)(1) 20.11.04 110 2 12쪽
21 홍의장군(紅衣將軍)(5) 20.11.03 114 1 12쪽
20 홍의장군(紅衣將軍)(4) 20.11.01 117 1 11쪽
19 홍의장군(紅衣將軍)(3) 20.10.31 127 3 12쪽
18 홍의장군(紅衣將軍)(2) 20.10.30 131 3 13쪽
17 홍의장군(紅衣將軍)(1) 20.10.29 136 2 11쪽
16 익호장군(翼虎將軍)(3) 20.10.28 138 3 13쪽
15 익호장군(翼虎將軍)(2) 20.10.27 151 3 13쪽
14 익호장군(翼虎將軍)(1) 20.10.26 169 4 12쪽
13 용렬한 군주 20.10.25 181 4 12쪽
12 용인 전투 20.10.24 180 4 12쪽
11 고니시(3) 20.10.23 187 3 12쪽
10 고니시(2) 20.10.22 191 5 13쪽
9 고니시(1) 20.10.21 199 4 12쪽
8 조령대첩(鳥嶺大捷) 20.10.20 210 4 12쪽
7 모래바람(2) 20.10.19 204 2 12쪽
» 모래바람(1) 20.10.18 223 3 13쪽
5 첩자(2) 20.10.17 229 5 10쪽
4 첩자(1) 20.10.16 242 4 13쪽
3 여긴 어디? 나는 누구?(2) 20.10.16 252 4 12쪽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1) 20.10.16 288 3 16쪽
1 김반장 20.10.16 33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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