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푸하하하

전장 안의 엑스트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김문서
작품등록일 :
2020.10.16 00:57
최근연재일 :
2020.11.13 08:00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4,562
추천수 :
72
글자수 :
156,145

작성
20.10.17 09:00
조회
229
추천
5
글자
10쪽

첩자(2)

DUMMY

“첩자일지도 모르오. 심문은 해보셨소?”


김여물은 이일의 연속된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일과 함께 현우를 구한 사람이 김여물이었고, 그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 것도 김여물이었다.


어쩌면 김여물은 첩자를 내부로 끌어들인 사람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의기양양해진 이일이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일단 저 자를 묶어라! 뭣들 하느냐!”


그 때까지 만세를 부르며 신립의 기분을 맞춰주던 병사들. 그들 역시 이일에 대한 눈초리가 곱진 않았다.


북방에서의 명성과는 달리 상주에서 거의 모든 병사들을 잃고 이곳으로 도망온 데다 패장답지 않게 기세가 등등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신들에게 같은 병사인 현우를 묶으라고 하지 않는가.


“뭣들 하느냐? 하명하지 않았더냐?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냐? 당장 묶지 않으면 목을 벨테다!”


서슬이 퍼런 이일의 명령에 몇몇 병사가 움직여 포승줄로 현우의 몸을 묶었다.


“장군, 이 자의 의복을 살펴보십시오. 분명 왜군의 첩자가 분명합니다!”


저항조차 못하고 잡히는 현우의 모습을 보며 이일은 오히려 자신이 너무 정곡을 찔렀기 때문에 그가 저항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현우가 조선군복을 입기 전에 벗어두었던 옷들이 고스란히 이일의 손에 넘겨졌다.


“보십시오. 이 복장은 예사로운 복장이 아닙니다. 하의를 감싸고 있는 파란색의 거친 옷감. 그리고 전혀 다른 얇디얇은 상의의 옷감을 보십시오. 게다가 전혀 모르는 글자들이 상의의 앞뒤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문(한글)도 아닙니다. 수상한 놈이 확실합니다.”


하얀 티셔츠에 쓰여있는 글씨는 ‘Black Lives Matter’였다. 빌어먹을 그놈에 인종차별. 차라리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올 걸.


신립은 이일의 다그침에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분명 아까 전의 정다운 표정은 거둬들여져 있었다. 이일은 계속해서 바지 안을 뒤졌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아주 밝은 표피를 지닌 쇳덩어리입니다. 반면에 내부는 아주 어두운 흑색입니다. 이것 역시 의심스러운 물품입니다.”


촬영 중에 꺼두었다가 차마 다시 켜지 못한 것이 다행일가? 핸드폰을 살피며 이일은 크기에 비해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 듯 그것을 들었다 내려놨다를 반복하다가 다시 주머니 안을 살폈다. 그리곤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그의 목소리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것은··· 장군! 이 냄새를 맡아보십시오!”

“이, 이것은?”


하얀 종이곽 안에 든 것은 담배였다. 처음에는 하얀 종이에 싸여진 담배잎을 보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던 이일이 냄새를 맡은 후 표정이 변했고, 뒤이어 그 냄새를 맡은 신립과 김여물의 표정 역시 싸늘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장군, 이것은 담박귀(淡泊鬼)가 아니오?”

“담박귀? 그렇다면?”


이전과는 달리 순식간에 표정이 굳어버리는 두 장수.

담박귀는 담배, 즉 타바코(tabacco)의 한문 이름이다.


아직은 담배가 조선에 들어오지 않은 시기. 하지만 그 존재는 조선의 고위층 사이에 간간히 알려져 있었다.


하물며 신립, 이일 등과 같이 변방을 돌며 외국의 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은 장수들이 담배의 존재를 모를 리 없었다.


당시 담배는 연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약초 정도로 소개되었지만 이 연기를 마시는 것이 대중적으로 퍼진 주변 국가는 아직 왜(倭)가 유일했다.


“분명히 담박귀입니다! 보십시오. 저 놈은 왜국의 첩자입니다!”

“왜적?!”


의기양양한 이일의 말에 신립과 김여물은 물론이고 주변의 병사들까지 순식간에 긴장한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



현우는 임시로 만들어진 천막에 갇히고 말았다.

당시의 담배는 일반 백성은 물론 귀족이나 고위 관리조차 접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소지한 병사라니. 그것도 왜군과 상대하고 있는 전장에서 발각되었다는 것은 왜국의 첩자라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현우는 그렇게 첩자로 취급되어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빌어먹을! 담배는 끊었어야 했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포박된 후였다.

오로지 이 곳이 탄금대 전투를 앞둔 조선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 현우는 계속해서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럽게만 느껴졌다.


'망할 노인네 같으니.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날 이딴 곳으로 보낸 거냐구! 근데 혹시 이거 꿈이 아닐까?'


하지만 포박되는 순간에 몇차례 구타까지 당했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현실이었다. 현우는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현우의 한숨소리만이 느껴지는 어두컴컴한 천막. 갑자기 그곳을 찾은 사람이 있었다.


"자, 장군님···?"


현우를 찾은 자는 신립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는 자는 현우를 구해주었던 종사관 김여물.


"진정 첩자였더냐? 네가 첩자였단 말이냐!"


김여물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짜고짜 현우를 몰아세웠다. 예전에 이것과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긴 했다.


촬영장의 스텝들에게만 쪽대본으로 나눠준 다음 회차 분량.

엑스트라를 관리하는 현우 역시 그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어느 날 촬영장에서 난리가 났다. 쪽대본과 스케쥴표가 유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다른 촬영이 있는 배우들의 매니저들은 자기들의 이득 때문에 스케쥴대로 따를 수 없다고 난리를 쳤고, 그것을 유포한 범인으로 현우가 지목되었다.


[엑스트라 개새끼들! 앞으로 저 새끼들한테는 절대 대본 주지마!]


평소엔 '반장님'이라고 부르던 연출감독까지 현우를 대놓고 욕을 했을 정도니 다른 스테프들이 그를 원망한 것은 당연했다.


나중에 매니저 중 하나가 현우의 가방에 넣어뒀던 스케쥴표를 몰래 훔쳐봤다는 것이 걸린 후에야 오해가 풀렸지만 이미 기분은 상할대로 상한 후였고, 피해란 피해는 다 입은 뒤였다.


'씨발! 이건 너무하잖아? 과거로, 그것도 언제 죽을 지 모를 전쟁터로 끌려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첩자라니!'


예나 지금이나 첩자들에 대우는 똑같았다. 즉결 사형 혹은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목이 잘려 효수형에 처해진다는 것.


총지휘자인 신립과 분노에 서슬이 퍼런 김여물을 보자 현우는 지금까지의 억울함보다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저, 전 첩자가 아닙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담박귀라는 것은 너희 같은 천한 백성들이 절대 얻을 수 없는 것! 지금이라도 실토한다면 괴로움 없이 죽여줄 것이니."


서서히 허리춤의 칼로 손을 가져가며 김여물이 말했다.


"전 억울합니다. 첩자라뇨? 그것도 쪽바리 놈들의 첩자라니 정말 억울합니다! 장군님!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네? 장군님!"


그나마 자신에게 친절한 편이라고 생각됐던 신립을 향해 외쳤지만 그는 조용히 외면할 뿐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담박귀를 얻게된 것이냐?"

"그, 그건···."

'빌어먹을 어떡하지? 방송국 매점에서 샀다고 할 수도 없고···.'


현우는 고민하다가 그나마 먹혀들만한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왜군! 왜군의 몸에서 찾아냈습니다!"

"왜군의 몸에서?"

"예, 왜군 시체에서 찾아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네?"

"허허···."


신립은 다급히 말하는 현우의 얼굴을 살폈다. 왜군 시체에서 담배를 찾았다는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첫인상으로 봤던 현우가 나쁜 놈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감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현우의 말투 역시 왜인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능숙했다.


"아해야, 그렇다면 넌 분명 조선의 백성이라는 것이냐? 왜군을 미워하는 것도 맞고?"

'아해? 아이라고? 아직도 날 아이라고 보고있나?'

"네, 맞습니다! 전 왜군 쪽바리 놈들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합니다. 죽이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사람들 귀를 자르고 코를 잘라서 자기 나라로 가져가는 오랑캐 놈들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흐음···."


사실 신립이나 김여물은 아직 전쟁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왜군이 조선의 백성들과 병졸들의 몸에서 코와 귀를 잘라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분노를 토해내는 현우의 태도가 너무나 진실돼 보인 건 사실이었다. 끄응 소리를 내며 고민하던 신립은 한참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다면 너에게 기회를 주마."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장군님!"


묶인 상태에서 거듭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현우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외면하며 신립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내일 전투가 있을 것이다. 금강의 탄금대에서 우리는 왜군을 맞이한다. 네가 가장 선봉에 서서 왜군을 무찔러라. 네 손으로 직접 왜군의 목을 베고 그 누구보다 용맹하게 적과 맞선다면 아무도 너를 의심치 않으리라."

"장군, 하지만···."


신립의 말에 김여물이 놀라서 말했지만 그보다 놀란 사람은 역시 현우였다.


"저보고··· 선두에 나가서 싸우라굽쇼?"

자기도 모르게 사극톤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다. 그것이 네 죄의 진상을 밝히는 유일한 길이 될찌니···."

"현우라고 했나? 장군께서는 너에게 살아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것이니라. 너에게 선택할 길은 없다. 내일 전투에 나가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우든지 아니면 우리가 승전보를 올리고 돌아온 이 곳에서 전리품이 된 채 목이 잘리든지, 모든 것은 너의 선택일 것이다."


김여물은 충직한 장수였다. 자신이 따르는 신립의 결정이 내려지자 더 이상의 토를 달기보다 그에 복종하는 길을 택했다.


"말이 없는 걸 보니 결정을 내린 것이라 본다. 종사관, 이 아해의 포박을 풀어주고 무기를 지급하도록 하라. 내일 선두에 서는 병졸들의 무리에 집어넣도록 하고. 혹여 엉뚱한 짓이라도 벌이려 한다면 곧바로 목을 베라고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일러두도록 하라."

"예! 장군."


현우는 그렇게 탄금대에서 왜군을 치는 조선군의 가장 선두에 서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장 안의 엑스트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작합니다(수정) 20.10.17 128 0 -
28 이순신을 찾아서(1) 20.11.13 58 0 12쪽
27 용인 전투, 두 번째(4) 20.11.11 63 0 15쪽
26 용인 전투, 두 번째(3) 20.11.10 63 0 13쪽
25 용인 전투, 두 번째(2) 20.11.07 76 0 14쪽
24 용인 전투, 두 번째(1) 20.11.06 88 1 14쪽
23 팔문둔갑(八門遁甲)(2) 20.11.05 97 1 12쪽
22 팔문둔갑(八門遁甲)(1) 20.11.04 110 2 12쪽
21 홍의장군(紅衣將軍)(5) 20.11.03 114 1 12쪽
20 홍의장군(紅衣將軍)(4) 20.11.01 117 1 11쪽
19 홍의장군(紅衣將軍)(3) 20.10.31 127 3 12쪽
18 홍의장군(紅衣將軍)(2) 20.10.30 131 3 13쪽
17 홍의장군(紅衣將軍)(1) 20.10.29 136 2 11쪽
16 익호장군(翼虎將軍)(3) 20.10.28 138 3 13쪽
15 익호장군(翼虎將軍)(2) 20.10.27 151 3 13쪽
14 익호장군(翼虎將軍)(1) 20.10.26 169 4 12쪽
13 용렬한 군주 20.10.25 181 4 12쪽
12 용인 전투 20.10.24 180 4 12쪽
11 고니시(3) 20.10.23 187 3 12쪽
10 고니시(2) 20.10.22 191 5 13쪽
9 고니시(1) 20.10.21 199 4 12쪽
8 조령대첩(鳥嶺大捷) 20.10.20 211 4 12쪽
7 모래바람(2) 20.10.19 204 2 12쪽
6 모래바람(1) 20.10.18 223 3 13쪽
» 첩자(2) 20.10.17 230 5 10쪽
4 첩자(1) 20.10.16 242 4 13쪽
3 여긴 어디? 나는 누구?(2) 20.10.16 252 4 12쪽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1) 20.10.16 288 3 16쪽
1 김반장 20.10.16 336 3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