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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

전장 안의 엑스트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김문서
작품등록일 :
2020.10.16 00:57
최근연재일 :
2020.11.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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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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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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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첩자(1)

DUMMY

한편, 회의를 마치고 군막을 나온 부장들은 이일의 막사에 모여서 다시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군께서 무언가에 씌이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리한 자리를 선점해도 어려운 판에 넓은 벌판에서 대놓고 적을 맞이하라니, 원···.”

“순변사 장군, 지금이라도 조정에 이 사실을 알리고 우리 부대들이라도 조령을 막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소이다. 내일 모레면 적들이 조령을 넘어 탄금대에 도착할 것이오.”

“허어, 이런···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그 사이 장수들은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며 이일의 막사를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 하나하나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탁상공론(卓上空論)에 불과할 뿐, 이미 전장은 탄금대로 정해졌기 때문에 이러한 회의는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가장 앞장서서 조령을 지켜야한다고 외쳤던 이일 역시 막상 회의를 마치고 다시 모인 자리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에 모인 장수들 누구도 신립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신립의 작전이 설득력이 있었고, 신립의 의지 역시 확고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는 이야기들만 오고갈 뿐, 소모적인 논쟁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런 회의마저도 잠시 후에 전령이 와서 이일에게 단월역에서 선봉(先鋒)에 서라는 지시를 전달하자 자연스럽게 끝나고 말았다. 장수들은 투덜대며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전투는 패배가 당연하다. 장수들의 의견을 무시한 대장은 결코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 신립 장군은 단지 기병을 쓰고 싶어서 평지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이일의 마음속에는 이미 조선군이 패배할 것이라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평지에서 전투를 하자는 신립의 주장을 기병에 대한 집착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개죽음에 자신이 말려드느냐 마느냐였다.

8천여 명의 조선군을 모으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긴 했지만, 대다수의 병력이 농민 출신이었다.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당시의 조선에서 농민을 찾기는 무엇보다 쉬웠다.


장수라면 병력의 숫자에 상관없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적과 맞서야하는 것이 당시 조선 무인의 자세였다.


하지만 너무 많고, 강한 적을 이미 상대한 이일은 탄금대에서의 싸움을 이미 패배한 싸움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이미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조선군의 분열로 인해 승패는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군, 조령에 대한 명(命)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항상 충실한 김여물이 조령에 가짜 진영을 만든 후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왜군과 맞서 싸우는 일뿐이었다. 김여물의 공작이 성공했는지 왜군의 진격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그 사이 조선군은 진영을 가다듬고, 편전과 신기전(神機箭)을 군의 중앙에 배치했다.


신기전은 고려 말, 화약을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한 최무선이 화약국에서 제조한 로켓형 화기인 주화(走火)를 개량한 것이었다. 신기전은 대신기전(大神機箭),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 중신기전(中神機箭), 소신기전(小神機箭) 등의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이번 전투에 배치된 신기전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신립은 기병의 위력이 최고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수적으로 불리한 왜군과의 싸움에서 이러한 원거리(遠距離)용 무기는 필수적이었다. 총을 가진 왜군이었지만 사정거리는 편전이나 신기전이 더 멀었기 때문에 신립은 기병 외에 이런 점에도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선군의 전력은 왜군에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장수들이나 병사들의 사기가 걱정이었다.


지금까지 신립이 치뤄왔던 수많은 승리들은 단순히 병력의 우위만으로 얻어낸 것은 아니었다. 적의 숫자에 절반도 못 미치는 전력으로 싸워서 이긴 전투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런 전투들에서의 공통점은 언제나 부대의 사기와 투지였다.


“흐음···. 오늘밤은 병사들이나 독려해야겠군. 그들은 나보다 더 떨릴 터이니···.”


신립은 몇몇 장수들과 함께 부대를 시찰하기로 했다. 장수들의 표정에도 두려움과 걱정이 섞여있었지만, 자신이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워주고 싸우고자하는 의지를 드러낸다면 장수들 역시 자신을 따라 내일의 전투에서 목숨을 바쳐 열심히 싸워줄 것이라 믿었다.


예상대로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도성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군수물자나 식량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조총에 대한 소문과 만명을 훨씬 넘는 적군을 상대한다는 생각에 병사들이 갖는 부담감은 상당했다.


특히 전문 병사 출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으니 현재 조선군의 전력은 신립 휘하의 기마대들을 제외하고는 민간인들을 전투에 투입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와아아···! 장군님이 오셨다.”


신립을 발견한 병사들 몇몇이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대다수의 병사들은 역시나 이런 일을 겪은 일이 거의 없었기에 신립 이하 장수들을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서 일어나서 군례를 갖추지 않고 뭐하느냐!”


신립 옆에 서 있던 종사관 한 명이 병사들을 다그쳤다. 신립은 팔을 휘저어 종사관에게 물러나라고 한 후, 병사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너희들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중에 전투의 경험이 없는 병사들도 많이 섞여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조선의 운명이 달려있다. 우리의 존재가 있기에 지금 도성에 있는 전하와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잠시 입맛을 다신 신립이 말을 이었다. 병사들은 여전히 멍 하니 신립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내일 왜군과의 전투에서 물러난다면 여러분의 가족들과 죄없는 백성들은 왜군들에게 도륙 당하게 된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고 고금에 이르는 말이 있다. 우리가 내일 왜군에 맞서 죽고자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살고자 도망간다면 당장 내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국토를 짓밟은 왜군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다.

이후에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이 장수들과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하면서 유명해진 말이지만, 내일의 왜군과의 전투에 앞서 신립 역시 병사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의 등 뒤에 강이 흐른다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앞으로 나아가서 왜군을 무찌르고 조선을 구해내자! 여러분이 내일 반드시 버텨줘야 한다. 반드시 버티고 왜군들을 물리쳐서 조선을 구해야 한다. 조선의 명운은 바로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의 손아귀에 걸려있음을 잊지 말고 싸워다오.”


신립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은 힘차게 소리를 지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와~아아아!! 왜군을 무찌르자!”

“우리는 조선군이다! 자랑스러운 조선의 군대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병사들은 진영이 떠나가라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간간히 창이나 활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그런 함성에 맞춰 흔들어대는 병사들도 있었다.


병사들 중에는 50대를 훨씬 넘은 듯한 장년의 병사들부터 이제 갓 15,6살 정도가 되어 보이는 소년들이 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이런 분위기에 맞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간간히 군가 비슷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만세를 외치는 병사들도 있었다.


‘왜 하필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짱박혀있기도 힘들어 죽겠구만.’


까마득한 과거, 그것도 전장의 회오리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직후부터 현우는 어떻게든 조용히 이 곳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장군 신립이라니···.

게다가 자신을 대견하다는 듯 쳐다보는 노(老)장군의 그런 눈빛은 현우에게 너무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더 없이 자애로운 목소리였다. 자신도 모르게 현우는 심문에 대답하듯 말하고 있었다. 일종의, 기세에 눌린 느낌이랄까?


“저, 저는 김현우라고 하옵니다.”

“그래? 고향은 어디더냐?”

“가, 강원도 울진··· 출신이옵니다.”


사극톤의 대화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과거에도 사극을 많이 찍어봤고, 지금도 도저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임진왜란 2020’이라는 드라마를 찍다가 여기로 왔으니까.


다만 촬영 첫날이다 보니 5회까지 쪽대본이 나와있음에도 임진왜란의 상황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임진왜란의 정보는 오로지 김영민 배우 주연의 ‘불멸의 이순신’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출연했던 씬(scene)의 부분만.


“울진, 울진이라···. 현우 네 덕분에 울진에 있는 백성들은 오늘밤 베개를 높이 베고 잠을 청할 수 있겠구나. 허허허.”

“과찬이시옵니다. 장군.”


현우는 잠시 ‘황공하옵니다’라는 대답을 하려다가 그것은 어전에서 임금에게 하는 신하들의 대답이라는 것을 깨닫고 뜸을 들이다가 간신히 맞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신립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더욱 다정한 눈길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어리지만 풍채가 좋았고, 말하는 것도 예의를 잘 지키는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신립에게 김여물이 조용히 속삭였다.


“장군, 순변사 장군과 함께 온 아이입니다.”

“그래?”

‘아, 시발. 왜 나보고 계속 아이라고 하는 거야?’


나이 40이지만 팽팽한 피부 덕분에 아이로 보이는 현우. 다만 앞으로 며칠 후면 면도를 못할 텐데. 아마도 그의 진짜 나이가 들킬 날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장군!”


장막 한 켠이 열리며 신립이 들어왔던 곳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일이었다.


“순변사. 아직 출발하지 않으셨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장군께 청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지금이라도 조령에 진을 치시지요?”

“아니요. 이 병력으로 그런 진형이나 계략 따위는 의미가 없소. 아직 모르시겠소? 이 전투는 병사의 수나 지형지물이 아니라 기세 싸움이라는 것을.”

“으으···.”


여전히 자신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는 신립. 이일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북방에서 싸울 때만 해도 계급은 높았지만 신립과 이일은 동료 장수일 뿐 상하관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도성의 군사를 데리고 충주로 내려오면서부터 계속해서 자신을 하대하는 듯한 신립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신의 처지 역시 상주에서의 패배 때문에 녹록치 않은 상황이기에 더 이상 항변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고개를 숙인 채 어쩔줄 모르고 있는 현우의 모습이 보였다. 화풀이 상대로는 제격인 어린 녀석이었다.


“뭐야? 너 아직 여기 있었냐?”

“······.”


신립에게 하는 말투와 달리 다분히 하대하는 듯한 이일의 말. 신립은 자신과 대화할 때와는 달리 순식간에 바뀐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장군. 이 놈을 왜 수색하지 않으셨습니까?”

“뭐라구요? 수색?”

“장군이랑 함께 온 병사 아닙니까? 왜군에게서 장군을 제가 구해··· 흠흠. 장군을 모셔올 때에도 함께 있었구요. 저 아이는 왜군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니요. 이 놈은 수상한 기운을 잔뜩 풍기는 놈이란 말이오. 적의 첩자일 수도 있소. 어라? 너 복장이 왜 이런 것이냐? 언제 옷을 갈아입었지?”

“의복이라니요?”

“이 놈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입었던 복장 말입니다!. 김여물 종사관. 자네는 그런 것도 살펴보지 않았단 말인가?”

“······.”


이일과 김여물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있던 현우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좆됐다···.’


확실히 이일의 의심은 현우에게 껄끄러웠다. 그리고 그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말은 전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첫 날 촬영을 마치고 찜질방에 들렀지만 전혀 쉬지 못하고 다시 사당을 찾았던 현우. 그는 촬영장에서의 복장을 그대로 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하얀색 반팔 티셔츠.

분명 그날 밤에도 대한민국의 날씨는 덥기만 했는데 같은 날짜일지 다른 날짜일지 모르지만 이 곳의 날씨는 오히려 선선하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병사들의 복장 역시 모두가 긴팔 상의를 걸치고 있었다. TV에서 보는 사극 안의 병사와 똑같은 옷이었다.


게다가 당연히 말단 병사의 군복에 반팔이라는 것이 존재할 리가 없었지만 현우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순간 자신의 처지를 이 곳의 사람들과 바꿔서 생각해보았다.

완전히 다른 서로의 복장. 마치 그 복장의 차이는 조선군과 왜군의 복장 차이와 비슷했다. 잠깐, 왜군이라고···? 설마 이일, 저 자식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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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작합니다(수정) 20.10.17 126 0 -
28 이순신을 찾아서(1) 20.11.13 58 0 12쪽
27 용인 전투, 두 번째(4) 20.11.11 62 0 15쪽
26 용인 전투, 두 번째(3) 20.11.10 63 0 13쪽
25 용인 전투, 두 번째(2) 20.11.07 76 0 14쪽
24 용인 전투, 두 번째(1) 20.11.06 88 1 14쪽
23 팔문둔갑(八門遁甲)(2) 20.11.05 97 1 12쪽
22 팔문둔갑(八門遁甲)(1) 20.11.04 110 2 12쪽
21 홍의장군(紅衣將軍)(5) 20.11.03 114 1 12쪽
20 홍의장군(紅衣將軍)(4) 20.11.01 117 1 11쪽
19 홍의장군(紅衣將軍)(3) 20.10.31 127 3 12쪽
18 홍의장군(紅衣將軍)(2) 20.10.30 129 3 13쪽
17 홍의장군(紅衣將軍)(1) 20.10.29 136 2 11쪽
16 익호장군(翼虎將軍)(3) 20.10.28 138 3 13쪽
15 익호장군(翼虎將軍)(2) 20.10.27 151 3 13쪽
14 익호장군(翼虎將軍)(1) 20.10.26 169 4 12쪽
13 용렬한 군주 20.10.25 181 4 12쪽
12 용인 전투 20.10.24 180 4 12쪽
11 고니시(3) 20.10.23 187 3 12쪽
10 고니시(2) 20.10.22 191 5 13쪽
9 고니시(1) 20.10.21 199 4 12쪽
8 조령대첩(鳥嶺大捷) 20.10.20 210 4 12쪽
7 모래바람(2) 20.10.19 203 2 12쪽
6 모래바람(1) 20.10.18 222 3 13쪽
5 첩자(2) 20.10.17 229 5 10쪽
» 첩자(1) 20.10.16 242 4 13쪽
3 여긴 어디? 나는 누구?(2) 20.10.16 251 4 12쪽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1) 20.10.16 287 3 16쪽
1 김반장 20.10.16 334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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