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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안의 엑스트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김문서
작품등록일 :
2020.10.16 00:57
최근연재일 :
2020.11.13 08:00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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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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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156,145

작성
20.10.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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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여긴 어디? 나는 누구?(2)

DUMMY

“장군, 어찌하여 조령(鳥嶺)이 아니라 탄금대에 진을 치라 하시옵니까! 재고하여 주십시오···.”


순변사 이일. 불과 며칠 전, 철저히 왜군에게 패하고 본군에 합류한 이 장수는 지난 패배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어버린 듯 삼도순변사 신립에게 항명을 하고 있었다.

전투에 패배한 장수의 목은 베는 것이 국법이다.


하물며 불과 얼마 전, 애꿎은 병사들을 팽개치고 자신만 목숨을 살리겠다고 도망쳐온 장수가 하기에는 너무나 어이없는 발언이었기에 신립은 기가 찼다. 하지만 이일의 의견은 분명 일리가 있어 보였다.


굳이 험한 조령을 내버려 두고 드넓은 평지인 탄금대에서 다수의 왜군과 맞서 싸운다는 신립의 고집은 분명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연이어 막사 안의 다른 장수들 역시 신립의 의견에 나란히 반대를 하고 나섰다.


“죽기가 두려워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높은 곳을 차지한 자가 승리에 이르기 쉽다 하였습니다. 단지 병법만을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조령의 지형을 보시옵소서. 왜군 중 조총을 들고 온 부대가 만 이천이 넘습니다. 우리 병력으로는 조령에서 자리를 잡고 버티지 않는다면 왜군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옵니다.. 장군··· 제발···."

“장군, 우리는 수비를 하는 입장입니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정면대결이라니··· 가당치 않사옵니다.”

“병졸들을 살피십시오. 병사의 대부분이 농민들이고, 전투 경험조차 변변치 않은 약졸(弱卒)들이 다수입니다. 장군 제발 헤아려주십시오!”


신립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까딱한 후 턱에 손을 괴었다. 고민이 있을 때면 항상 하는 신립만의 버릇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옆자리의 종사관 김여물이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장군, 저 역시 조령에서 적을 맞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왜군에게 수적으로 밀리는 것이 하나요, 조령의 높은 위치에서 활을 쏘며 버틴다면 적이 오히려 불리한 형세가 되는 것이 그 둘입니다.”


김여물의 말이 끝나자 신립이 눈을 떠서 천천히 김여물을 쳐다보았다.


“김 종사관, 자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장군, 그렇사옵니다. 허나 장군께서 탄금대를 선택하신다면 저는 지금까지처럼 장군을 따라 죽기를 각오하고 왜적들과 싸울 것입니다.”


김여물은 신립을 따라 오랜 기간 전장을 누비며 싸워온 무인이었다. 전공을 생각한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직책을 받는 것이 마땅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여물은 벼슬을 떠나 존경하는 신립의 가장 가까운 곁에서 싸우는 것이 좋았다. 가장 존경하는 장군의 곁에서 싸우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러 무인이었다.


태산처럼 버티며 장수들의 의견을 듣기만 했던 신립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장수들의 시선은 신립에게 쏠렸다.


“내가 탄금대를 선택한 이유는 지금의 우리에겐 조령이 오히려 불리한 전장이기 때문이오.”


신립의 입에서 조령이 탄금대보다 더 불리하다는,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오자 장군들은 하나같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신립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까지 섞여있을 정도였다.


“우리 군은 장군들의 말씀들대로 약졸 중의 약졸들이오. 만약 조령에서 우리가 적들을 맞이한다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매복의 전법을 써야하오. 매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참을 수 있는 인내심과 강단을 갖춘 병사들이어야 가능한 법이오. 허나 우리 군의 약졸들은 조총 소리만 들어도 기겁하고 벌벌 떨기만 할 것이고 대다수가 전투의 중압감을 버티지 못해 전장을 이탈할 것이 눈앞에 펼쳐질 지경인데 전투 중에 그들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시오? 그 옛날의 관우나 조자룡이 살아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가할 것이라 보오”


관우와 조자룡은 중국의 후한시대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활약한 장수들이었다. 그들은 뛰어난 무예만큼 출중한 지휘 실력으로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고, 승리를 얻어낸 명장 중의 명장들이다. 그런 장수들이 지휘를 하더라도 패배를 막을 수 없다니...


사실 조선군은 신립 휘하의 정예 기병 50여기를 빼놓고는 대부분이 지방군에 속해있지만 전쟁의 경험이 전혀 없는 농민출신이었다.


여기에 전장의 경험이 없다보니 뜬소문에 흔들리며 아직 만나지도 못한 왜군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있는 병사들이 다수였다.


특히 지난 부산성과 동래성의 패배 이후에 왜군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원래의 전력보다 훨씬 과장되어 퍼지고 있었다.


왜군이 쏘는 조총에서 탕- 소리가 나면 무조건 우리 편이 죽는다느니, 조총에서 총알이 10발씩 쏘아져 나와 앞에 있던 조선군은 모두 벌집처럼 온 몸에 구멍이 뚫려 죽었다느니..


신립 휘하로 부대에 합류한 8천여 명 역시 그러한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소문은 실제 왜군의 전력에 비해 너무 과장되어 있었다. 장수들은 이점을 알고 있었기에 병사들의 마음을 바로잡기에 힘썼지만, 이미 환각처럼 두려움이 머릿속 깊이 자리잡은 병사들의 마음을 다시 돌려세우기란 힘들었다.


신립은 이러한 점을 들어, 조령에서의 매복은 결코 들키지 않고 숨어서 적을 맞이하는 것이 핵심인데 조총 소리가 들리고 전투에 돌입하면 분명 부대에서 이탈하는 병사가 많이 생길 것이고, 그런 병사들은 전투 중에 이들을 통제하면서 적군에 맞서기는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실 신립의 부대가 전국에서 모인 병사들로 인해 조금씩 불려가는 과정에서는 전투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술, 전략 훈련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시간 자체가 부족했고, 이러한 훈련을 시키기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왜군에 대한 과장된 소문이 퍼져가자 탈영병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었다.


병사의 수가 늘어난 것은 좋았지만, 그만큼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병사의 숫자까지 늘어나니 오히려 병사가 늘지 않는 것이 나아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헛소문들 때문에 탈영병은 계속해서 더 늘어났던 것이다.


그때마다 신립은 기병들을 동원해서 탈영병들을 잡아들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목을 베기까지 했지만 그 수가 이전보다 조금 줄어들었을 뿐, 탈영병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었다.


“탄금대에서 싸운다면 등 뒤에 강을 두고, 앞에 있는 적들과 싸우는 형국(形局)이 되는 것이오. 그렇다면 최소한 전장에서 달아나는 병사들은 없을 것이며, 약졸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왜군에 맞서게 될 것이오. 조령에서 싸우다 이탈자가 생기는 것보다는 이런 상황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되오.”


신립의 말이 끝나자 이일을 비롯한 장수들은 또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신립의 이러한 말들은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얼마 전 이일의 부대가 추가되었음에도 신립군의 병사들은 탈영병 때문에 여전히 8천에서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 김여물의 말은 장수들의 당황스러움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장수는 눈앞의 적에게 두려움을 갖지 않습니다. 오직 한양의 전하와 백성들을 위한 충심으로 적과 싸우면 되는 것이고, 승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 김여물은 신립 장군과 함께 탄금대에서 뼈를 묻겠습니다.”


일개 종사관에 불과한 김여물까지 신립의 주장에 동조하며 말을 마치자 장수들의 의견은 더 이상 나오지 못했고, 회의는 자연스럽게 파하게 되었다.


그렇게 신립의 군막을 나서는 장수들의 얼굴은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이 교차되어 복잡한 모습들이었다. 신립은 군막을 나서는 장수들의 얼굴을 보며, 따라 나가려는 김여물을 잡았다.


“자네도 정녕 그렇게 생각하는가? 탄금대보다 조령이 적을 맞이하기에 유리하다 생각하는가?”

“장군, 저는 장군의 결정에 따를 것입니다만 높은 언덕을 끼고, 산세가 험악한 조령을 이대로 왜군들이 통과하게 해둔다면, 전투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싸우지도 않고 험준한 전장터를 지나온 왜군들의 사기도 오를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흐음···.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네만.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세. 다만 적과 맞서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고있는 병졸들을 살펴보니 이것 밖에는 떠오르는 전략이 없더구만···.”

“장군, 그러면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떠하올지요? 우리 군에서 군략이나 용맹을 헤아리면 장군 다음은 순변사 이일 장군일 것이옵니다. 일단 이일 장군을 단월역(丹月驛)에 배치하여 적의 시선을 최대한 끌어들인 다음 기병으로 적의 측면을 쳐서 왜군의 전위와 후위를 분산시키면 어떠겠습니까? 그런 후에 본군에서 두텁게 진영을 형성해 정면에서 활을 쏘며 적을 몰아친다면 중과부적이긴하나 충분히 맞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호오..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적의 측후방을 포위하듯 둘러싼다? 그러면서 이일의 선봉부대가 임기응변으로 적의 전방과 후방을 분리한다 이 말이군! 여물이 자네 정말 늘었구만···.”


김여물은 신립이 손뼉까지 치면서 칭찬을 하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사실 이 전략은 기동력과 적절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여진족과의 전투 경험이 풍부한 신립과 이일이 함께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은 김여물이 처음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었다.

신립을 따라 오랜 기간 전장을 누비면서 터득한 전략이었다. 말하자면 신립이 이미 여러차례 활용했던 전략인 것이다. 과거,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포위를 당해 산으로 쫓겨갔을 때에도 신립은 이 전략을 활용해서 위기를 벗어나고 오히려 전투를 큰 승리로 이끌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승리를 옆에서 지켜본 김여물은 상대만 여진족에서 왜군으로 바뀐, ‘신립’의 전략을 제안한 것이다.


“김 종사관, 자네는 지금부터 조령에 올라가 바위에 볏집을 두르고 산 아래의 계곡에는 석회(石灰)가루를 뿌리도록 하게.”


신립의 지시는 왜군이 조령에 조선군이 배치된 것으로 착각하게끔 속이라는 것이었다. 김여물은 이런 일에 상당히 익숙한 편이었다.


예전 여진족과의 훈융진(訓戎鎭)전투에서도 이런 식으로 군세를 과장해 본진이 있는 것처럼 꾸민 후에 기병을 배후로 이동시켜 여진족의 중앙을 치고, 족장을 잡아 목을 벤 전투가 있었다. 바로 ‘니탕개의 난’으로 유명한 여진족과의 싸움이었다.


당시 물리친 니탕개의 적군은 1만 명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반란에 가세한 조선인들을 포함하면 2만 명을 바라보는 숫자였다. 조선군은 배신한 조선인들까지 모조리 죽이거나 멀리 북쪽으로 쫓아내는 성과를 거두었었다. 지금 맞설 왜군의 숫자 역시 그 때와 비슷한 규모였다.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적을 속이라는 말씀이군요. 시간을 벌어보자- 이 말씀이십니까?

“두 말하면 잔소리, 무슨 의미로 명(命)을 내린 것을 알 터이니, 신속하게 행(行)하도록 하게.”

“예, 장군. 명 받들겠습니다.”


힘차게 군막을 나서는 김여물의 뒷모습을 보며 신립은 흐뭇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왜군을 무찌르면 여물이 자네를 반드시 상주하여 능력에 맞는 직책을 얻게 해 줄 것이야. 이제 자네도 군사를 이끄는 장군이 되어야하지 않겠나.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네.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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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연재 시작합니다(수정) 20.10.17 127 0 -
28 이순신을 찾아서(1) 20.11.13 58 0 12쪽
27 용인 전투, 두 번째(4) 20.11.11 62 0 15쪽
26 용인 전투, 두 번째(3) 20.11.10 63 0 13쪽
25 용인 전투, 두 번째(2) 20.11.07 76 0 14쪽
24 용인 전투, 두 번째(1) 20.11.06 88 1 14쪽
23 팔문둔갑(八門遁甲)(2) 20.11.05 97 1 12쪽
22 팔문둔갑(八門遁甲)(1) 20.11.04 110 2 12쪽
21 홍의장군(紅衣將軍)(5) 20.11.03 114 1 12쪽
20 홍의장군(紅衣將軍)(4) 20.11.01 117 1 11쪽
19 홍의장군(紅衣將軍)(3) 20.10.31 127 3 12쪽
18 홍의장군(紅衣將軍)(2) 20.10.30 130 3 13쪽
17 홍의장군(紅衣將軍)(1) 20.10.29 136 2 11쪽
16 익호장군(翼虎將軍)(3) 20.10.28 138 3 13쪽
15 익호장군(翼虎將軍)(2) 20.10.27 151 3 13쪽
14 익호장군(翼虎將軍)(1) 20.10.26 169 4 12쪽
13 용렬한 군주 20.10.25 181 4 12쪽
12 용인 전투 20.10.24 180 4 12쪽
11 고니시(3) 20.10.23 187 3 12쪽
10 고니시(2) 20.10.22 191 5 13쪽
9 고니시(1) 20.10.21 199 4 12쪽
8 조령대첩(鳥嶺大捷) 20.10.20 210 4 12쪽
7 모래바람(2) 20.10.19 204 2 12쪽
6 모래바람(1) 20.10.18 222 3 13쪽
5 첩자(2) 20.10.17 229 5 10쪽
4 첩자(1) 20.10.16 242 4 13쪽
» 여긴 어디? 나는 누구?(2) 20.10.16 252 4 12쪽
2 여긴 어디? 나는 누구?(1) 20.10.16 288 3 16쪽
1 김반장 20.10.16 335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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