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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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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125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1.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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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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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4-73(완).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5)

DUMMY

조심스럽게 말하는 화련스님의 말에 수희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복수를 포기하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지 마세요. 선대 주지스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화련 스님께서는 벌써 잊으셨습니까?”


수희의 목소리에는 묘한 반항심과 분노가 담겨있었다.


“제가 감히 어찌 잊겠습니까. 근 10년이 다 되어간다지만 아직도 그때 일이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합니다.”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수희를 향해 낮게 말하는 화련의 얼굴은 씁쓸함이 가득했다.


수희를 바라보며 말하는 화련의 목소리에 슬픔 역시 가득 묻어나왔다.


“저도 그래요. 어찌 잊겠어요. 어찌 그 기억이 흐려지겠어요. 아까우신 분이 그리 허망하게 돌아가셨는데...”


수희의 안타까운 말을 듣던 화련은 미소를 띤 채 합장(合掌)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시주님.. 아직 화마를 물리치실 방법은 찾지 못하신 거지요...?”


“아뇨, 찾지 못했어요. 그리 쉽게 찾을 거였다면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기록해두었겠죠. 그런데 기록이 없다는 건...”


“그러게나 말입니다. 기록 하나 없다니... 묘한 일입니다. 허허... 그게 기록으로 남겨주면 안 되는 것인가 봅니다.”


화련의 말을 들은 수희는 순간 뒷통수를 무언가로 세게 맞은 듯 머리가 얼얼해져왔다.


-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래... 기록이 없다는 건... 그걸 기록으로 남겨두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였어! 그래서 기록이 없었던거야!


옛 선조들이 길몽이든 흉몽이든 꿈에서 꾸었을 때, 그 날 오후 12시가 되기 전에 입 밖에 꺼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해가 중천을 지나기 전에 입 밖으로 그 꿈 이야기를 꺼내면 꿈이 가진 힘이 사람에게 미치는 언령(言靈)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화마(火魔)를 봉인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입 밖으로 꺼내면 그 힘을 잃기 때문에 그 방법이 대대로 전승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수희는 이제야 깊은 깨달음의 탄식을 얻고 화련 스님에게 말했다.


-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는 전음(全音)으로 대화할게요.


그런 수희를 향해 화련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젖히며 전음을 이어나갔다.


굳이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대화를 하는 전음을 시전하고 있는 수희는 사뭇 진지해보였다.


- 말씀하시지요.


- 주지스님이 어디서 돌아가셨죠?


- 강원도 양양에서 입적하셨습니다. 불에 타 뼈만 남으신 채 발견되셨지요.


- 양양에 주지스님께서 친분 있는 지인이나 혹은 관련된 일이 있으셨나요?


- 아뇨, 전혀 없었습니다.


- 그럼 강원도 양양 쪽에 해답이 있을 거예요. 가봐야겠어요. 양양이면 범위가 너무 큰데....


수희가 말을 아끼며 잠시 생각에 잠기자, 화련 역시 무언가 짚이는 것이 없나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화련이 생각났다는 듯이 수희에게 전음을 계속했다.


- 혹시....


- 네, 뭐 떠오르시거나 혹은 아시는 게 있다면 그냥 편하게 다 말씀해주세요.


- 양양 쪽에 있는 낙산사에는 3대 관음성지인 해수관음이 있으십니다.


- 낙산사요?


- 네, 의상대사께서 세우신 절입니다. 선대 주지스님이 그 근처 해안가에서... 발견되셨으니 이유는 그것 뿐일 듯합니다.


- 거길 한번 가봐야겠네요. 고맙습니다 화련스님.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내시면 안 돼요. 입 밖으로 꺼내면 안된다는 제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신거죠? 입 밖으로 꺼내시면 안 돼요!


스님은 굳이 입 밖으로 대화를 하지 않고 전음을 하는 수희의 의도를 깨달았다는 듯이 흠칫 몸을 굳었다.


그렇다.


화마에 대한 내용을 입 밖으로 꺼내어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일은 수희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부디 수희가 불에 타버린 채 뼈만 남은 시신으로 발견된 전대 주지스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 대업(大業)을 끝마쳐주길 바랄 뿐이었다.


수희가 이글거리며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저 먼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 내 방식대로 복수 하겠어. 무슨 수를 써서든 가족들의 원한을 갚고야 말겠어.


선명한 가을 노을의 색은 불타오르는 화염 같아보였다.


수희는 자신이 공부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실린 문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 자귀의법귀의(自歸依法歸依)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


스스로에게 귀의(歸依)하고 법에 귀의(歸依)하라. 그리고 스스로를 진리의 등불로 삼아, 그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라.


수희는 붉은 노을을 쳐다보는 눈이 시릴 정도로 한참을 그런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늘한 가을 바람은 이른 겨울의 모습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어느새 겨울이었다.




<챕터4 완결>






챕터5. 해태(獬豸)


고대 중국 지리서(地理書)인 <산해경>에는 신화와 전설 및 설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수(神獸)와 상상 속 동물들이 등장한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신수(神獸)로는 ‘해태, 구미호, 인어, 용’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해태(獬豸)’는 한국에서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판단하여 악(惡)을 처단한다고 믿어지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 생김새는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어찌 보면 기린처럼 보이기도 하며, 머리에 뿔이 있다고 전해진다. 목에는 방울이 달려있으며, 몸 전체에는 비늘로 덮여있는데 겨드랑이에는 날개처럼 생긴 깃털이 달려 있다. 물가에 살며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경복궁 앞에는 한 쌍의 해치 석상이 자리 잡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길 서울은 한국의 수도로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유독 불에 약하다고 한다. 특히 관악산이 유달리 불의 기운이 강한 산이기에 경복궁 뒤의 북악산이 관악산보다 낮아서 그 기운을 막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火)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경복궁 앞에 두 개의 해치 석상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새 11월 중순이었다.


이제는 완연한 겨울로 접어들며, 일기예보에서는 첫눈이 내린다고 호들갑이었다.


어릴 때는 누구나 겨울이 오면 첫눈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막연히 첫눈만 기다리기에는 모두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렸다. 비가 오고 눈이 오면 다음 날 출근길을 걱정해야 했고, 도로 상황이 나빠질 것을 염려하게 됐다.


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추워진 날씨 탓인지 상현이 내쉬는 입김은 하얀 연기가 되어 공중에 퍼졌다.


‘띵똥’소리와 함께 상현이 수희와 승주가 지내는 아파트 현관문 벨을 눌렀다.


잠시 후에 ‘누구세요’라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틈으로 얼굴을 빼곰 내민 것은 승주였다.


“어! 상현 씨! 웬일이세요?”


상현을 보고 반가워하며 한편으로는 의아한 듯이 말하는 승주였다.


“수희 씨와 어딜 좀 가야해서요. 모시러 왔습니다.”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자주 보면서 전보다는 승주와도 친해진 탓인지 상현은 한결 부드러운 말투였다.


아직도 어색해 보이는 두 사람은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말하고 있었다.


“어! 수희 아까 나갔는데... 수원 간다고 했던 거 같아요. 수희랑 수원가시는 거에요?”


승주의 말에 상현은 아차 싶었다.


아까 백화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려 자신의 핸드폰은 액정이 나가면서 핸드폰은 이미 먹통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분명 자신이 데리러 가겠노라 미리 시간까지 수희에게 문자를 보내놓은 터였다. 수희가 홀로 수원을 갔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바로 핸드폰을 고치거나 구비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수희가... 상현 씨가 데리러 오는 거 힘드실 거 같다고... 민폐 같다고 해서 상현 씨한테 문자 보내고 그냥 자기 혼자 버스 타고 간다고 하면서 아까 나갔어요.”


승주의 말에 상현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승주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렸다.


상현은 재빨리 그의 차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승주가 갑자기 상현을 불러 세웠다.


“저 상현 씨!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 하시고 가실래요? 밖이 꽤 추운 거 같은데...”


조심스러운 그녀의 말에 상현이 괜찮다며 거절하려는 순간이었다.


승주가 상현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저 지금 상현 씨한테 작업 거는 거 아니구요. 수희 일 때문에 그래요. 수희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


수희 일 때문이라는 말에 상현은 바로 몸을 돌려 꾸벅 인사를 한번 더 한 뒤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 어머! 역시 수희 일이라면...


승주는 예상했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상현은 ‘실례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집안 구조가 익숙한 듯이 거실 식탁으로 들어섰다.


“지금 밖에 엄청 춥죠? 상현 씨는 이렇게 추워도 항상 똑같은 검정 양복만 입고 다니시네... 이것 좀 드시면서 몸 좀 녹이세요.”


승주가 상현에게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맞은 편 식탁 의자에 앉았다.


상현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씩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승주 역시 그런 상현을 잠시 아무 말 없이 쳐다보며 자신도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 잔을 식탁위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주세요. 상현 씨... 수희 좋아하죠?”


그녀의 말에 상현은 갑자기 커피를 마시다 말고 사례가 걸렸는지 ‘켁켁’ 대며 기침을 했고 그런 상현을 보며 승주가 티슈를 한 장 꺼내 건넸다.


승주가 건넨 화장지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던 상현이 승주에게 말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티가 납니까?”


“에이, 상현씨도 참... 수희 같은 곰탱이는 눈치 못 채도 백마녀 할머님이나 저 같은 사람들은 대번에 알아차리겠는걸요? 상현 씨 시선이 항상 수희에게 가 있잖아요? 누가 봐도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것도 엄청요!”


깔깔대고 웃으며 말하는 승주의 말 때문인지 상현의 귓불이 바알갛게 물들어갔다.


승주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뭐 제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 수희 그만 만나세요’ 라고 말할 입장도 아니고... 다 큰 성인남녀가 좋다면 제가 무슨 수로 막겠어요. 다만...”


승주는 잠시 뜸을 들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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