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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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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160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1.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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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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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챕터4-72. 불가(佛家)-사모곡(思母曲) (4)

DUMMY

준희는 아주 천천히 감정을 억누르며 말을 하고 있었다.


“매일 소주며 막걸리에 취해 살던 아빠였는데... 내 기억 속엔 매일 비틀거리면서 몸도 못 가누면서도 나 때릴 때만큼은 정신이 확 드는지 각 잡힌 자세로 질근질근 나를 밟아대던 아빠였는데.... 가만히 아빠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처럼 되게 슬픈 눈동자였거든. 맞다가 기절하기도 하고,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아침에 눈떠보면 아버지라는 사람은 또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근데 엄마가 쓰던 낡은 다 부서진 화장대 위엔 항상 천원짜리 두 세장이 있었거든. 죽도록 패죽이고 싶은 자식새끼 그래도 밥은 챙겨먹으라는 건지... 그걸로 그렇게 김밥천국을 가서 김밥을 사먹고 그랬다? 그래서 나 지금도 김밥은 별로 안 좋아하잖아... 몰랐지? 솔직히 난 지금도 날 버린 엄마나, 날 두드려 팬 아빠나 두 사람 다 용서할 수는 없어. 그래도 이제 미워하지만은 않을래. 이해하려고 노력해볼래... 그렇게 노력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볼게.”


준희가 조용조용 말하는 동안 수희와 한결, 그리고 화련은 암자 마당에서 조용히 그의 진심을 듣고 있었다.


화련이 합장하며 그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불이불이(不二不異), 부모와 자식의 마음이 서로 사뭇 다르지 않습니다.”


화련의 합장이 끝나고, 준희 역시 이제 할 말을 다 해서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피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 옥희의 영혼을 보며 활짝 웃었다.


옥희 역시 그런 준희를 보며 환하게 웃었고, 이내 서서히 영혼이 흐려져 갔다.


“아들... 우리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 다음 번엔 엄마가 더 잘해줄게. 이번 생에 못해준 만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줄게. 다시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잘 지내야해. 행복하게 너의 삶을 살아야해. 알았지? 약속해 아들! 엄마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 꼭 다시 만나!”


엄마의 말이 끝나가자 준희는 고개를 목이 부서져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준희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투둑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준희를 한결이 옆에 서서 등을 두드리며 다독거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하는 한결 역시 얼굴은 이미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대성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다.


- 아휴... 진짜 눈물 많은 남자라니까. 진짜 울기도 드럽게 잘 울어. 어휴...


혀를 쯧쯧차며 귀엽다는 듯이 웃는 수희를 바라보던 화련이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그나저나... 마두명왕께서 현신(現身)하시다니. 저는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저는 그 분 때문에 워낙... 개고생을 해서 그런가 봐도 뭐 그닥...짜증만 솟구치네요.”


수희는 마두명왕 때문에 문수산에서 죽다 살아날 뻔 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또다시 가슴에서부터 짜증이 치밀어 올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주님께서 모든 일을 해결하실만한 능력과 인품이 되시니 여기저기 다들 도움을 요청하는 탓이지요. 그러나 정작 시주님 본인께서도 고민이 많으신가봅니다.”


“뭐.... 없지는 않네요. 많아서 문제지. 대자대비(大慈大悲)하다는 자애로운 부처님께서도 이런 저를 가련히 여기시지는 않나 봐요. 매일매일 새로운 고민거리와 숙제를 주시는 걸 보면요...”


그런 수희를 자애로운 미소로 쳐다보던 화련이 주변이 웅성거리며 바빠 오는 기색에 수희에게 눈짓을 했다.


수희는 서둘러 준희와 한결에게 다가가 화련에게 건내받은 수건을 건냈다.


“피 좀 닦고, 우리 우란분재 구경이나 가요! 개고생 했더니 술 땡기네!”


수희의 말에 한결이 똥그래진 눈동자로 수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헐... 절에서 무슨 술을 찾아요? 수희 씨 알콜 중독자에요?"


한결의 환한 미소에 수희 역시 한결을 바라보며 깔깔대고 웃어보였다.


사실 지금 한결은 두 나찰에서 두들겨 맞아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지만 준희와 수희 앞에서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인 것은 준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준희는 머리를 방망이로 두들겨 맞아 머리가 깨진 모양인지 피가 흘러나왔지만 한결이 계속 지혈을 해준 탓인지 이제는 피가 멎어 더 이상 피가 흘러내리진 않고 있었지만 머리가 띵한 것인지 당장이라도 바닥에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셋은 이내 암자에서 짐을 챙겨 한창 우란분재 행사 중인 대웅전으로 향했다.


화련은 어느새 제자들과 함께 우란분재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화련스님은 어느새 단상에 서서 대웅전 앞마당에 가득 찬 불자(佛子)들을 향해 연설을 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의 설법이 끝나자 사람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정리 중인 와중에 준희가 화련스님에게 다가가 조용히 합장을 올리며 말했다.


“스님... 저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저희 외할아버지와, 부모님께 매년 제를 올리고 싶습니다. 제가 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매년 기도를 드리러 오겠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화련은 준희의 눈동자를 한참 쳐다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주님께 나는 연꽃향이 앞으로는 더욱 더 진해지시겠군요. 시주님 부탁은 그리 어려운 청이 아닙니다. 제가 도와드리지요. 부처께서 굽어 살펴주실 겁니다.”


그렇게 우란분재 행사가 끝났다.


몇몇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절을 찾아 초에 불을 붙이며 기도를 올렸고, 또 몇몇 이들은 기와에 소원을 적어 시주를 하는가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초록형광색으로 빛나는 작은 깃발에 매직으로 바라는 바를 적어 대나무 숲에 축원의 의미로 이를 묶기도 했다.


풍족하게 차린 제사상 음식들은 이내 일회용 접시에 담겨 우란분재 행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준희와 한결은 피범벅이 된 얼굴을 씻고, 멀끔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그 접시를 받아 들고 앞마당 천막에 앉아 허겁지겁 제사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야! 천천히 먹어. 또 걸신 들린 거처럼....”


순간 '아차' 싶었던 한결이 말끝을 흐리자, 준희가 괜찮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으며 한결의 어깨를 툭 쳤다.


“야! 걸신은 이미 빠져나갔고, 하도 쳐맞아서 그런가... 지금은 진짜로 허기져서 그래. 한결이 너도 많이 먹어라!”


준희의 말에 한결 역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음식을 권하며 그들은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유독 준희는 있는 힘껏 입을 벌려 우란분재 제사상의 음식을 듬뿍 퍼서 입에 넣었다. 자신이 잘 먹고, 잘 자는지, 잘 지내는지 엄마는 항상 지켜볼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걱정하지 않게, 더 이상 슬프지 않게 굳세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며 준희는 있는 힘껏 음식을 입에 우겨넣었다.


한결은 그런 준희가 목이라도 막히지 않게 옆에서 음료를 거들며 준희를 알뜰히 챙기고 있었다.


그런 둘을 물끄러미 멀리서 지켜보던 수희에게 화련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가셔서 한술 뜨시지요.”


“하도 뛰어다녀서 그런가 입 구멍 속에 뭐가 들어갈 것 같지가 않아서요. 쏘주면 또 모를까... 그나저나 화련스님은 나이도 있으신데, 나찰들 행패를 그렇게 버티시다니. 역시 차기 주지스님다우신데요? 대단하세요!”


칭찬을 하고 있는 수희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딱 보기에도 수희는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 수희의 어깨를 잠시 토닥이던 화련은 준희와 한결을 쳐다보며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두 분은 참 보기 좋지 않습니까. 어머니를 지키려는 시주님이나, 그러한 친구를 지키려는 저 분이나 참 대단하신 분들 같습니다. 혹 알고 계시는지요. 지리산에 있는 화엄사에 가면, 석등이 하나 있습니다.”


“절이라면 석등은 으레 있기 마련 아닌가요? 석등이 왜요?”


“그 석등 안에는 석등을 이고 무릎을 꿇은 목련존자가 계십니다.”


“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기 발로 지옥으로 들어갔다는 그 불자(佛子)를 말하시는 건가요?”


화련은 수희의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예. 그 목련존자께서 석등을 이고 무릎을 꿇고 어머님께 차를 공양하니 사찰 안에 차 냄새가 가득하지 않겠습니까.”


“에이... 뭐 진짜로 차 냄새가 나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시는 것이지요?”


수희가 묻자 화련이 말했다.


“준희 시주님을 보고 있노라니, 눈앞에 목련존자를 보는 듯 하여 말합니다.”


수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목련존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부처의 제자 중 한명인 목련은 평소에 신통력이 있었던 목건련(目犍連)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죄를 지어 업보가 많은 어머니가 죽어 아귀(餓鬼)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의 구원을 부처에게 청원하였다.


결국 목련은 석가모니에게 자문을 구해 비구니 16명에게 공양하여 그 공덕으로 지옥에 있는 어머니를 구했다고 한다. 그러한 공양제를 기려, 지금의 우란분재가 된 것이다.


오늘 이 행사 역시 우란분재 행사였다.


수희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스님. 결국 그 어머니는 인간으로 환생하지 못하고, 검은 개로 환생할 수밖에 없었지요. 대체 얼마나 끔찍한 죄를 지었길래... 그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고도 개로 밖에 환생할 수 없었던 걸까요?”


“그것은 알 수가 없지요. 다만... 개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분명 지옥이나 아귀도에서 고통 받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셨을 겁니다. 결국 아들을 다시 볼 수 있었으니까요. 준희 시주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천륜(天倫)은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화련의 말에 수희는 내심 부럽다는 듯이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그렇게 개나 고양이로라도 환생해도 좋으니. 우리 가족 단 한명이라도 다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절실히 기도하고 애원해도... 꿈에서조차 나타나질 않습니다. 가족들도 복수에 눈이 먼 저를 두려워하나봅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처연하다 못해 너무나 슬퍼 듣는 이로 하여금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할 정도였다.


이 분위기를 바꿀 겸 화련이 짐짓 장난스런 말투로 대답했다.


“두렵기는요. 수희 시주님께서는 당차고 강하신 분이시죠. 전 아직도 시주님께서 어린 학생이셨을 때, 절에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시던 것이 눈에 선합니다. 가족 분들이 그 모습을 보셨다면 무서워하셨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 안쓰러워하실 겁니다. 어디 그렇게 절에서 행패부리기가 쉽답니까?”


짐짓 웃는 화련을 보며 수희는 화련을 마주보고 환하게 웃었다


“에이~ 옛날 일은 왜 꺼내시고 그러실까?”


수희는 복수를 하기 위해, 화마(火魔)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전국 유명 사찰을 돌아다니며 자료와 정보를 구했다.


특히나 유명 사찰 주지스님들을 만나게 해달라며, 수시로 절을 찾아와 소리를 지르고 패악질을 부렸다.


화련은 그것이 어제 일 같다고 했지만 벌써 근 10년이 훌쩍 넘은 일이었다.


“복수는 복수로 풀리지 않고 복수를 버릴 때만 풀린다고 했지요.”


화련은 겸연쩍어하며 뒷통수를 긁적이는 수희를 향해 조심스럽게 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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