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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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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023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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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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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챕터5-78. 해태(獬豸)-신풍동과 무당거리 (1)

DUMMY

그렇게 상현이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구한 선물이 상현의 양복 상의 주머니 품 안에 조용히 담겨있었다.


- 받아주겠지. 비싼 것도 아니고... 최대한 부담스럽지도 않은 걸로.... 골랐는데...


상현의 속은 새까맣게 타 들어갔지만 이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수희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그의 말에 창문 밖을 내다보던 수희가 기지개를 펴며 차 밖으로 내렸다.


상현이 세운 곳은 장안문 근처의 공영주차장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저물어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밤공기는 서늘하다 못해 차가웠다.


수원 장안문 성곽에는 화려한 조명들이 성곽 아래로 아름답게 빛을 비추며 성곽의 야경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공원에는 간간히 산책하는 이들이 보였다. 수희와 상현은 그들처럼 야경을 구경하러 산책나온 한 쌍의 커플 같아보였다.


차로 움직이는 동안, 상현은 수희를 배려해 차 안에 히터를 너무 세게 틀어놓았다.


뜨거운 히터의 열기 탓일까 차가운 밤공기였지만 수희는 기분 좋게 찬 공기를 들이 마시며, 장안공원을 가로질러 장안문으로 걷고 있었다.


겨울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기에 수희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밤하늘 풍경은 별로 가득했다.


“우와! 별 진짜 이쁘다!”


수희가 살짝 웃으며 밤하늘을 보느라 정신이 없을 때, 상현 역시 그런 수희를 흘끗 바라보며 살면시 미소짓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십여분 가량 걸었을까 어느새 눈 앞에 거대한 ‘장안문’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 아오... 목 아퍼! 크키고 크고, 높기도 높네.


수희가 고개를 들어 거의 일직선이 되게 일자목으로 장안문의 처마 끝을 쳐다보았다.


수희는 날렵하게 위로 치켜진 처마 지붕 끝에 ‘어처구니’를 찾고 있었다.


흔히 궁궐 처마에 올려둔 작은 인형같이 생긴 잡상(雜像)을 ‘어처구니’라고 한다.


보통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만든 토기(土器)를 말하는데 서역을 갔다 온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올려 놓는다. 잡상은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11개까지 올린다.


처마 끝에 어처구니를 올리는 이유는 기와의 줄을 잡기 위함이다. 기와를 올릴 때, 기왓장의 측면에 계단식의 홈이 한 줄 파여 있는데 이것은 빗물이 새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것을 '어처'라고 하는데 이 어처가 없다면 기와의 줄을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흔히들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은 있어야할 것이 없음으로 인해 일이 힘들어지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을 빗대어서 말하는 것이다.


수희는 이윽고 어처구니 잡상(雜像)들을 찾고는, 그것들을 향해 윙크를 지어 보이며 전음을 시작했다.


- 헤이! 거기 잘생긴 오빠들! 나 물어볼 게 있어 대답 좀 잘해줘요!


이내 몽글몽글 아지랑이가 일듯이 어처구니 앞으로 허공에 작은 물결이 일더니 그 조각상들의 눈이 노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 무당이야? 내가 먼저 말할래!

- 아냐, 내가 먼저 말할거야! 근데 무당 아닌 거 같은데?

- 신기가 없는데? 칠성줄이 없어!

- 뭐야? 우리가 보여? 뭐야 저 여자? 보여?


한 번에 우다다 시끄러운 목소리로 동시에 떠들어대는 어처구니 때문에 수희는 정신이 없었다.


- 야! 시끄러워. 헤이, 셧 업! 닥치고 내 말 좀 들어봐!


일순간 조각상들이 조용해지자 수희는 이내 만족했다는 듯이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는 전음을 계속 이어나갔다.


- 내가 여기 온 건... 정보 좀 얻을까 해서야. 일단 첫 번째 질문. 여기 화마 있어 없어?


수희의 마음 속에서 '화마'라는 단어가 울려퍼지자 일순간 조각상들 사이에 풍기던 분위기와 공기가 달라졌다.


- 화마? 말하는 것조차 두렵네.

- 무서워.

- 난 빠질래.

- 그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 잘못하면 죽는다!


수희는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자신들을 알아봐 준 것이 흥이라도 나는지 한껏 신나는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존재들이 화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일순간 겁에 질리거나 대화를 거부하려는 낌새에 잠시 멈칫했다.


상현은 수희가 장안문 입구에 서서 가만히 처마 끝만 쳐다보고 꿈쩍도 하지 않자 무언가 영(靈)적인 대화 중이거나 무속 행위를 하는 것이라 생각해 멀찍이 떨어져 그런 수희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 오케이. 그럼 됐고! 두 번째 질문... 여기 해태 있어? 수원은 해태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내가 수원 오다가 해태 조각상을 봐서 그래!


수희는 일전에 사당역에서 수원까지 오기 위해 탔던 7770 광역버스 안에서 바라본 해태 조각상의 정보에 대해 묻고 있었다.


- 저 여자 또 이상한 질문한다!

- 해태는 여기 없지!

- 해태가 여기 있겠어?

- 어디 있어? 화성 동북각루에 방화수류정이 이쁘니까 거기 있나?

- 야, 거기 있겠냐? 멍청아! 저 여자는 미쳤나, 해태가 왜 여기 있어? 해태도 거의 신 아닌가? 해태 신이 여기 있어?


우왕좌왕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석상(石像)들을 향해 수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 질렀다.


- 아오! 한명씩 말해 한명씩! 정신 사나워 죽겠네. 자꾸 그러면 그냥 싹 다 부숴버린다?


수희의 윽박에 또다시 일순 조용해진 석상들을 수희가 째려보며 말했다.


- 샤발 아는 거 쥐뿔도 없나보네. 됐고! 그럼 세 번째 마지막 질문. 요 근래 여기 잡스럽거나 이상한 기운 느껴지는 거 없어? 내가 봤을 때는 금기술이나 양밥 펼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니면 뭐 결계라도 쳐놓거나? 뭐 아는 거 있으면 좀 말해봐!


그녀의 말에 석상들은 아까 수희가 화마의 이름을 꺼냈을 때처럼 흠칫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떠는 것 같았다.


다들 일순간에 또다시 입을 꽉 다물고 조용해지자 수희가 짜증을 내며 재촉했다.


- 어어! 빨리 말 안하면 그냥 저기 서있는 깡패 같이 생긴 남자한테 말해서 너네 다 부숴 버리라고 한다? 발로 잘근잘근 밟아서 다 깨부셔도 되는 거지? 그래, 알았어!


수희는 상현을 흘끗 쳐다보며 석상들에게 협박 아닌 협박 중이었다.


하지만 석상들은 아까 시끄러웠던 수다쟁이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다들 입을 꾹 다문채로 정적만이 가득했다.


수희가 몸을 돌려 상현을 부르려던 찰나 제일 끝에 위치한 제일 중후해보이는 목소리의 석상 하나가 입을 열었다.


- 신풍초등학교로 가봐라. 여기까지다. 더 묻지마라!


그리고 그 석상의 말을 끝으로 일제히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던 기운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렸다.


- 신풍초등학교라....


수희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상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상현은 수희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보며 수희를 향해 걸어왔다.


“어딘지 대충 알아냈어요. 내일 아침에 제가 잠시 다녀올게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이고! 아니에요. 내일은 정말로 저 혼자 다녀올게요. 위험할 수도 있어서 그래요! 상현 씨가 있어도 어차피...”


아차 싶었던 수희였지만 상현은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수희 씨에게 큰 도움이 안 되는 거 저도 잘 압니다. 내일 혼자 가시는데... 대신에 무슨 일 생기시면 저한테 꼭 바로 연락 주셔야 합니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수희는 상현의 듬직한 말에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꼭 그럴게요!”


수희가 고개를 돌려 장안문 옆으로 이어진 수원성의 야경을 구경하는 동안 상현은 조심스레 자신의 양복 주머니 품안에 넣어두었던 반지가 들은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


상현이 수희를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네? 왜요?”


수희가 성곽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상현을 바라보자 얼굴이 바알갛게 물든 상현이 수희를 바라보며 무언가 건네고 있었다.


“저.... 이거... 받으십쇼!”


상현이 손을 내밀며 수희 쪽으로 건낸 곳에는 작은 분홍빛 꽃이 인쇄된 포장선물이 보였다.


“이게 뭐에요?”


수희가 얼떨결에 작은 상자를 받고 묻자 상현이 말했다.


“그냥 드리고 싶어서... 주운 거 아니고 제가 직접 돈 주고 산 겁니다!”


그리고선 무엇이 급한지 상현은 재빨리 등을 돌려 그대로 차가 세워진 주차장 쪽으로 재빨리 걷기 시작했다.


등 돌린 그의 귀는 너무나도 빨갛게 물들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수희는 빠르게 걸어 주차장으로 향하는 상현을 불러 세우려는 손을 내리고 가만히 그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성의를 무시해 상현에게 굳이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수희는 다시 고개를 올려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 고마워요. 상현 씨...


수희는 상현에게 차마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쳐다 볼 뿐이었다.





수희는 다음 날, 상현이 잡아준 호텔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호텔 조식을 배가 터져라 먹고는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옛날 청주 집에 살 때, 할머니는 늘 새벽같이 일어나 아빠와 오빠가 일 나가기 전부터 아침밥을 차려주시곤 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아침에 배는 꼭 든든하게 채워놔야 한다며 부득불 아침밥을 차리던 할머니를 생각하니 수희는 또다시 코끝이 찡해왔다.


일부러 우울한 마음을 감추기 위함일까 수희는 에코백을 맨 어깨에 한껏 힘을 준채 신나는 발걸음으로 어제 미리 찾아보았던 버스 노선대로 힘차게 버스에 올라탔다.


어제 자신이 핸드폰으로 검색해본 결과, 수원에 신풍초등학교는 폐교한 뒤 광교 쪽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1896년 개교하였다고 하니 그 역사가 어마어마한 학교였다. 수원시에서 화성행궁 복원 사업으로 부득이하게 학교를 이전하면서 지금은 기념비 하나와 거대한 나무 한그루만 남아있다고 했다.


분명 어제 어처구니 조각상들 중에서 가장 짬밥이 있어보이는 기운이 세보이는 영가가 ‘신풍초등학교’로 가보라고 자신에게 일러주었다.


그 곳에 무슨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아 수희는 오전에 휭하니 다녀올 참이었다. 어차피 경환이와 상현은 오후에나 시간이 된다고 했기에 오후에 셋이서 경환의 누나를 찾아가볼 생각이었으니 오전은 수희에게 개인시간이 주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 여기인가.. 흠...


수희는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낡아 보이는 단독주택들 몇 채가 리모델링이라도 한 것처럼 새로 벽돌을 쌓아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다른 주택 몇몇은 붉은 적조식 벽돌 건물로 엄청 오래되어 보였다.


지도 어플을 켜고 위치를 검색하며 한참을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헤매가며 수희는 겨우 눈앞에 목적지인 신풍초등학교 터에 닿았다.


주변을 둘러본 수희의 눈에는 공사 중이라는 팻말이 달린 공사울타리만이 보였다.


- 뭐야, 에이씨! 기껏 왔는데 안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


힘들게 찾아온 신풍초등학교는 공사 중이었다.


광교로 이전하면서 현재 해당 교지(校地)에 있는 우화관(于華觀)의 터를 발굴하여 복원 중이었던 것이다.


수원 화성행궁의 우화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인데, 정조 13년(1789)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영우원에서 수원으로 옮겨 현릉원을 조성함에 따라 수원부의 신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건립된 문화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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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챕터5-81. 해태(獬豸)-광교저수지 (1) 23.12.01 3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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