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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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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040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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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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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챕터5-74. 해태(獬豸)-첫사랑 (1)

DUMMY

승주가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자 상현이 말했다.


“네, 말씀하십시오.”


“수희가... 상현 씨한테 어떤 감정인지는 저는 잘 몰라요. 수희도 상현 씨랑 똑같은 마음인지 아니면 수희는 상현 씨한테 아무 감정이 없는건지.... 근데... 전 상현 씨가 수희 일이 끝날 때까지 고백이든 뭐든 기다려주셨으면 해요.”


“일이라니... 무슨 일 말씀하시는 건가요?”


상현이 묻자 승주는 잠시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백마녀 할머님께 들으셨는지 모르겠어요. 수희는 지금... 자기 가족 복수를 위해 모든 걸 걸었어요. 혹시 알고 계세요?”


상현은 백마녀에게 수희가 가족을 잃고 그 복수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을 물어 보아도 백마녀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말해주지 않았다. 자신도 알지 못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쉽게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인지 백마녀의 의중을 모르겠기에 상현은 더 이상 자세한 것을 물어보지 못했다.


상현은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승주에게 자세한 내막을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수희 씨에게 실례인 줄 압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혹시 승주 씨가 아시는 것이 있으면 무슨 사연인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수희 씨에게는 제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꼭 비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말씀해주십시오.”


상현은 어느새 절박한 마음으로 승주를 향해 부탁하고 있었다.


승주는 또다시 뜸을 들이며 말하길 주저했다.


상현은 가만히 승주가 말하기만을 조용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승주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상현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하기 시작했다.


“수희에게 제가 말했다고는 하지 마시구.. 상현 씨만 알고 계세요. 저도... 수희랑 몇 년을 지내는 동안 자세한 건 모르다가....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수희에게 겨우 들은 이야기에요. 그만큼... 수희는 이 이야기를 숨기고 싶어 해요. 남들이 알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니... 꼭 비밀 지켜주세요.”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상현을 바라보며 승주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긴 이야기에요. 수희 고향은 충청북도 청주에요. 모르셨죠? 워낙 애가 계산도 빠르고, 깍쟁이라서 그런 시골 출신인 줄은 저도 몰랐어요. 아무튼... 충북 청주에 부모산이라는 곳이 있대요. 수희 말로는 완전 깡촌 시골 촌구석이라는데... 수희는 부모산 산기슭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대요. 수희 어머님은 수희 막내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고,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았나 봐요...”


상현은 자세를 바로 세우고 승주의 말을 경청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수희의 집안 내력이나 사연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승주가 커피 잔을 들어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시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식구들이 잘 지냈나 봐요. 수희 아버지, 친할머니, 오빠 하나, 언니 하나, 남동생 둘, 그리고 수희까지 대식구였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겨요. 수희가 갓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이었다고 해요. 학교를 가려면 산을 타고 시내까지 한참을 걸어 가야하는데 중간 중간 산길 언저리에서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대요. 검은 형체였는데 수희는 그 형체를 볼 때마다 탄 냄새가 엄청 심하게 느껴졌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수희가 귀신을 보게 된 거죠....”


“그렇군요...."


상현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승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희는 집안 형편도 워낙 어려웠고, 또 아버지나 오빠는 생계 때문에 일을 나가고, 언니 분은 또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해서... 그냥 가족들한테 숨기고 그 귀신을 쭉 보면서 살았나 봐요. 수희가 철이 일찍 들었던 거죠.... 원래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힘들게 자라면 철이 빨리 들거든요. 그런데 그 검은 형체의 귀신은 어느 날부터인가 수희가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그 다음부터 꾸준히 수희 앞에 존재를 드러내고는 수희에게 조금씩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대요.”


“어떤....?”


상현이 동그래진 눈으로 묻자 승주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희가 위험에 처하거나,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면 그 검은 형체가 나타나서 도와줬대요. 말을 직접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저쪽을 피해서 가라거나, 이쪽으로 오라거나 이런 식으로 수희 옆을 빙빙 돌며 도와줬다고 하더 라구요. 수희 입장에서는 자기한테 뭐 해코지를 한다거나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되니까 처음에는 내심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동생들 간식거리 먹을 거라도 사주고 싶고 자기도 사고 싶은 것들이 한창 많은 나이였으니... 수희가 학교 끝나고 알바를 시작했는데 유난히 그날따라 검은 형체가 집으로 가는 걸 막는 눈치 더래요. 마치 수희를 집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것처럼요. 수희 성격에... 훗.... 아시죠? 수희 남의 말 엄청 안 듣는 거... 결국은 그 검은 형체의 귀신한테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면서 집을 향해 털래 털래 걸어갔대요...”


승주는 한참을 망설이며 말을 아꼈다.


상현은 그런 승주가 말을 꺼내기를 한참 기다려주었다.


승주는 한숨을 푹 쉬고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수희가 그렇게 털래 털래 걸어서 산기슭에 있는 자기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불이 나서 집이 활활 타고 있을 때였대요. 소방차가 산길을 타고 오르지 못해서 소방대원들은 호스만 연결해 뛰고 있었고, 작은 시골 산동네여서 몇 안 되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 물을 뿌리며 화재 현장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고 하네요. 수희가 미친 듯이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마을 어르신들이 그런 수희를 붙잡고 못 들어가게 말렸대요. 근데 수희 성격 아시죠? 지금도 지랄 맞은데.... 그런 어르신들 뿌리치고 결국은 소방대원들도 피해서 집안으로 들어갔나 봐요. 수희가 말하길... 집안 거실 쪽에 모든 식구가 서로 둥그렇게 껴안고 불에 타고 있었대요. 의식 있는.... 산채로요.... 산채로 온몸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대요.”


“허.... 저런.....”


상현이 나직이 탄식을 내뱉자 승주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뜨거운 불에 손을 잠깐만 갖다 대도 아픈데, 수희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수희 남동생 두 명을 살리려고 수희 언니, 오빠, 그리고 할머니랑 아버지가 그 어린 아이 둘을 끌어안고 뜨거운 불로부터 지키고 있었대요. 수희도 어렸고.... 결국 자기 힘으로 그나마 걸을 수 있었던 수환이만 빼내서 데리고 빠져나올 수 있었나 봐요. 수환이 아시죠? 종우 병원에 입원해서 의식 없는 수희 남동생이요... 더 어렸던 남동생 수호는 그만 가족들이랑 화재 현장에서 죽었구요,”


“그랬군요.... 그럼 왼손 팔에 화상자국도....”


상현이 말을 아끼자 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화재 현장에서 수희가 복수를 다짐하는 일이 벌어져요. 아까 말씀드린 그 검은 형체 있죠?”


“네. 수희 씨 지켜주려 했다는 그 검은 형체 귀신 말씀이시죠?”


“네... 그게 사실은 화마(火魔)였어요. 수희가 애타게 가족들을 부르며 가족을 구하려 애쓰는 와중에 수희 눈앞에서 그 검은 형체가 어떤 중년의 남자 모습으로 바뀌더니 신나게 껄껄대며 미친듯이 웃고 있었대요. 수희는 저게 지금까지 나를 가지고 놀았구나 하고 깨달았대요. 수희가 그 존재를 향해 달려가 중년 남자의 형상을 한 그 존재의 멱살을 왼손으로 낚아챘대요. 근데 그 남자가 한참을 말없이 뚫어져라 수희를 쳐다보고는 입가가 귀에 닿도록 찢어지게 웃더니 수희 왼팔을 붙잡고 수희 팔에 불을 붙였다네요. 그걸 또 미련맞은 수희는 참고 버텨서 왼팔에 그렇게 심한 화상 흉터가...”


승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상현은 분노에 눈이 이글거리며 자신의 어금니를 세게 꽉 깨물었다.


상현은 할 수만 있다면 당장 그 현장으로 달려가 그 화마(火魔)라는 존재를 내동댕이치고 그대로 밟아죽이고 싶었다.


“수희는 왼팔에 불이 붙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대로 그 존재를 노려보며 말했대요. ‘널 꼭 죽이고 말겠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 소리를 듣던 화마는 신이 나는 듯이 흥에 겨워 다시 껄껄 웃으며 수희한테 말했다고 하네요.”


“뭐라고요? 뭐라고 했죠?”


상현이 분노에 찬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승주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반쯤 갸웃거리며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도 조금 쌩뚱맞고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네요. 그게... 화마가 수희한테 그랬대요. 꽃이야 지고 말면 그뿐인데...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어디 한번 해보라고... 했대요.”


상현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쥔 손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그 화마라는 존재는 수희가 자신을 해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말한 것이 분명했다.


“그 후로 수희는 화마(火魔)를 쫓아 거의 십년 넘게... 햇수로... 11년인가 12년인가.... 그 동안 화마만 쫓아다녀요. 무속(巫俗)공부도 정말 많이 하고, 거의 다 독학(獨學)으로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우고 익히고.... 귀신들이랑 싸우고 그랬나 봐요. 산전수전 다 겪어서인지 수희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갖은 흉터 많은 거 모르시죠? 그래서 수희 저랑 그 흔한 사우나나 목욕탕도 같이 간 적이 없어요. 남들이 보면 놀랄테니까..”


“저... 죄송하지만 다른 무당들한테 도와달라고 하거나, 그 화마를 물리쳐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상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자 승주가 옅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왜 안 해 봤겠어요. 용하다는 스님, 무당, 심지어 교회 목사님이나 성당에 신부님들까지 아니 막판에는 기도원 수녀님들까지 다 쫓아다니면서 부탁도 해보고 정보도 얻으려고 했대요... 그런데...”


“그런데요?”


“사기꾼이 절반 이상이더래요. 수희 가족들이 멀쩡히 살아있다고 엉터리 점을 보기도 하고, 수희가 남자 문제가 복잡하니까 굿을 해야 한다고 하는 무당도 있었고.... 그런데 정말 손에 꼽는 몇몇 용한 무당들은 달랐대요. 수희가 무당 집을 들어갈 때마다 무당들이 수희를 보고 놀라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바로 수희 등을 밀며 제발 가달라며 수희를 내보냈다고 해요. 다들 손을 벌벌 떨면서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공포에 질려서는 겁먹은 목소리로 자기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하나같이 수희를 두려워했대요. 그래서 수희는 아직까지 자기가 무슨 운명에 처한 것이고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 몰라요. 중도 자기 머리 못 깎는다고 하는 것처럼 본인의 미래는 수희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에요. 대신... 화마가 맞잡은 왼손엔 화마의 기운이 담겨서 수희가 위험할 때마다 쓸 수 있나 봐요. 그런데 그 화마의 기운을 쓸 때마다 생살을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하네요.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에요. 이게 전부입니다.”


이내 모든 것을 다 말해 홀가분하다는 듯이 깊은 숨을 들이 마신 승주가 커피 잔에 남은 커피를 모두 마시고 상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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