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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7,031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3.12.04 12:10
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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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챕터6-95. 사이비(似而非)- 귀신 터널 (3)

DUMMY

윤재가 추리한 내용을 무덤덤하게 말하자 그녀는 이윽고 손을 벌벌 떨면서 무명을 향해 엎드렸다.


“잘못했습니다. 부디 살려주세요! 살려주십시오!”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애원하는 중년의 여인을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보던 무명은 이내 혀를 ‘쯔쯧’차고는 차분하지만 화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저한테 사과하실 일이 아니지요!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저 위에 잠들어 계신 분들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명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은 마을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공동묘지 위에 무덤들이었다.


공동묘지에 묻힌 대다수의 시신들은 이 마을 주민들의 가족이자 조상이었다.


완공된 지 20년이 넘어가는 양부터널 근처 마을 주민들은 양부터널을 지으면서 국가에서 막대한 보상금을 받았고, 신상불명의 무덤에서 나온 시신들을 추슬러 해마다 마을에서 대대적인 위령제와 제사상을 차려 그들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마을에선 이제 더 이상 위령제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양부터널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형사고들이 연이어 나타나게 되었고, 마을 역시 이상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서 귀신이 붙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제 딸년도 미쳐서 죽기 직전입니다. 자꾸 헛것이 보인다고 하고...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도 짤리고 지금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밤마다 저 터널로 간다고 맨발로 뛰쳐나가고 정신줄 놓고 지금은 반병신이 되었어요. 이렇게 제가 빌겠습니다. 제발 좀 살려주세요! 살려주십시오!”


거의 애원하다시피 두 손을 싹싹 빌어가며 울면서 애원하는 중년여인을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보는 무명에게 윤재가 슬며시 다가왔다.


무명은 분명 해결책을 알고 있지만 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선생님! 사정이 딱한 것 같은데.... 좀 알려주세요. 선생님께서 좀 도와주세요.”


윤재의 말에도 무명은 짐짓 짜증나고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이윽고 윤재가 무명 가까이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고 다시 한번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습니까... 도와주세요.”


윤재의 말에 무명이 무서운 기세로 크게 소리쳤다.


“산 사람은 살아도 되고, 죽은 사람은 그냥 가만히 앉아 죽어있어야만 한다더냐! 조상이니까 후손들을 위해 안식도 방해받고 쫓겨나도 된다는 게야? 어디 그런 무책임한 말이 있더냐!”


“아니... 저 스승님 저는... 그냥...”


갑작스런 그의 분노에 윤재는 당황한 듯 무명을 잡은 손을 놓고 말았다.


무명은 한참을 말없이 중년의 여인을 노려보다가 윤재를 한번 흘끗 쳐다보고는 이내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마을회관 밖으로 서둘러 나가버렸다.


윤재는 그런 무명을 잠시 쳐다보다가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자신의 발밑에 주저앉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중년의 여인에게 다가가 차분히 말했다.


“저... 우리 선생님이 원래 저런 분이 아니신데, 지금 화가 많이 나신 거 같습니다... 일단.. 지금 이 곳 아주머니 댁에 따님 분이 지내고 계신거죠?”


윤재의 걱정스럽고 다정한 말투에 눈물범벅인 중년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윤재를 바라보았다.


윤재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솔직히 제가 아직 배움이 부족해서 저도 아직 자세한 해결책은 모르겠어요. 일단은 급한 대로 개복숭아 나무를 좀 구해오세요. 그리고 마을이나 주변 목수한테 찾아가서 개복숭아 나무를 칼 모양으로 깎아달라고 하세요.”


윤재가 지금 말하는 개복숭아 나무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귀신을 쫓는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나무였다.


일반적인 복숭아 나무와 달리 개복숭아 나무는 한국에서만 자라는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토종 복숭아 나무인 개복숭아 나무는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요즘 사람들에게 엑기스를 우려내 보약처럼 먹기도 해서 최근에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나무였다.


“저도 지금... 막 생각나는 비방이라...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효험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개복숭아 나무로 신장칼을 만들어서 따님 몸에 지니게 하거나, 배게 밑에 놔두고 자게 하세요. 또 집안 현관문 들어가는 입구 쪽에 조금 큰 크기로 만든 칼을 잘 보이게 세워두셔도 좋을 겁니다... 다만.... 이건 급하게 막는 것일 뿐... 정말로 사죄하고 뉘우치면서 매년 공동묘지 주인들에게 공손히 제사를 지어 올리세요. 무조건 마을 사람들 전부 다 참여하셔야 합니다. 꼭 전부 다 참여하셔야 합니다! 꼭이요!”


윤재는 그녀가 어느새 간곡한 표정으로 윤재 자신의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뒷말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뒤통수만 긁적이며 서둘러 마을회관 밖으로 나왔다.


윤재는 무척이나 찜찜한 표정으로 밖에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명을 찾았다.


마을 회관에서 이삼십미터 떨어진 곳에 무명이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시다니... 진짜 속상하셨나보네.


무명은 본래 술은 즐겨도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말로 속상한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만 한 두 개피씩 윤재 몰래 숨어서 피우는 모습을 종종 보았던 윤재였다.


“선생님...”


윤재가 조심스럽게 무명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무명이 서둘러 담배를 발밑에 떨구곤 발로 담배를 비벼 끄며 일어났다.


“그래서 어떤 비방을 알려주고 나오는 길이냐?”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는 무명을 바라본 윤재가 놀라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너는 마음이 약해서 큰일이다! 너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인간들이 앞으로 쌔가 빠지게 많을 텐데 그때마다 무턱대고 도와주다가는 큰 코 닥치는 날이 온다... 윤재야. 벌을 받아야할 일은 벌을 받고, 응당 대가를 치러야할 일은 대가를 치러야하는 것이 하늘의 섭리다. 무자정 사연이 안타깝다고 도와줘서는 안 돼! 우리가 일일이 사람들 전부 다를 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명의 목소리를 어딘가 슬프고 처연해보였다.


윤재는 아무 말 없이 입술만 꽉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이고는 가만히 무명의 옆에 서 있었다.


“네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다! 나이가 들면... 네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을 때가 찾아온단다. 아니면 도와주면 안 되는 상황도 생기게 될 거야. 그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설 텐데 갖은 번뇌에 휩쌓이게 될 너의 모습이 훤하구나.... 에휴...”


무명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윤재의 머리를 한번 헝클어뜨린 뒤, 그의 차에 올라타라는 신호를 했다.




무명은 윤재가 쫄래쫄래 그의 차에 올라타자 서둘러 양부터널로 향했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 어둠이 짙게 내려오고 있었고, 주변 일대를 오가는 차량도 많이 줄어들었는지 드문드문 몇몇 차들만 양부터널 안을 지나고 있었다.


무명은 말없이 차만 운전하고 있었고, 윤재 역시 그런 무명의 눈치를 살피느라 애꿎은 창문 밖 풍경만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무명이 갑자기 차의 속도를 줄이더니 아까 처음 양부터널에 왔을 때 세워두었던 갓길에 차를 세우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으이구... 못난 놈! 이번만이다? 진짜야!”


무명이 윤재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고, 윤재는 그런 무명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역시! 우리 선생님! 최고!”


윤재는 ‘헤헤’거리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활짝 웃어보였고, 무명은 이내 차 밖으로 나가자는 듯이 손짓했다.


윤재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대며 군인이 경례하는 듯한 장난스러운 제스쳐를 취했다.


이내 둘은 고속도로 입구 쪽까지 조심스럽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드문드문 자란 잡초들이 뻗은 차선 바깥을 위험하게 걸어간 곳은 터널 바로 앞 입구였다.


무명은 자신의 등에 멘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된 둥근 화구통에서 붓 한 자루를 꺼내 숨을 깊게 한번 들이마시고는 터널 입구에 무슨 글자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붓의 크기는 꽤 컸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얇은 우산이나 회초리처럼 보였다. 끝에는 강아지 꼬리 같은 갈색털이 달려있었는데 무명은 붓에 아무것도 묻히지 않고 그저 벽에 붓만 열심히 휘갈겨 쓰고 있었다.


윤재는 옆에서 유심히 무명이 쓰고 있는 글자들을 천천히 읽고 있었다.


“악(嶽)...신경(神驚)....분(奔)).....”


“우리 윤재 한문은 정말 잘 안다니까! 어려운 글자들도 잘 읽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훔치며, 깊게 한숨을 한번 내쉰 무명이 윤재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한문을 많이 아셨어요. 고물상에서 주워온 책들 주워 읽다가 모르는 한자 있으면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면 전부 다 알려주셨거든요.”


윤재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아 질끈 나오려는 것을 재빨리 참고 무명을 향해 물었다.


“귀신도 놀라 달아난다는 뜻인거죠?”


“그래. 자고로 예로부터 글자 한 글자 한 글자에는 언령(言霊)이라는 것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


“언령이요?”


“응. 언혼(言魂)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의 말에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불가사의한 힘을 말하는 거야. 왜 어르신들이 ‘말이 씨가 된다’면서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들 하시지?”


“네, 우리 할아버지도 불길할 말은 입 밖에 쉬이 꺼내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 선조 어르신들은 다 알고 느끼셨던 거야. 말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늘 긍정적인 말만 하고,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말만 해야 하는 거란다. 알겠지?”


“예, 선생님!”


고개를 끄덕이며 윤재가 환하게 웃자 무명은 그런 윤재의 어깨를 한번 토닥거린 뒤, 서둘러 다시 그들의 차로 향했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무명은 윤재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너가 알려준 비방이 혹시 개복숭아 나무를 깎아 만든 신장 칼을 집안에 들여 놓으라는 거냐?”


“오와! 어떻게 아셨어요?”


“나한테 배운 너가 말해줄만한 비방이야 안 봐도 비디오다! 그야 뻔한 거 아니겠냐. 근데 윤재야, 너 그 후폭풍도 알려준 거지?”


“알려줄까 말까 하다가.... 말았어요. 알려줄 걸 그랬나요?”


무명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입술을 꽉 다문 채 앞만 보고 고개를 한번 가로 저었다.


“아니야. 안 알려주길 잘했다. 알려줘 봐야 어차피 그 사람들에게는 지금 선택권이 없으니 그냥 모르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것까지 그들이 감당해야할 몫인 거다...”


윤재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그저 묵묵히 차 밖 풍경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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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챕터6-96. 사이비(似而非)- 폐아파트 (1) 23.12.04 29 1 11쪽
» 챕터6-95. 사이비(似而非)- 귀신 터널 (3) 23.12.04 31 1 11쪽
94 챕터6-94. 사이비(似而非)- 귀신 터널 (2) 23.12.03 32 1 11쪽
93 챕터6-93. 사이비(似而非)- 귀신 터널 (1) 23.12.03 31 1 12쪽
92 챕터6-92. 사이비(似而非)- 침윤(浸潤) : 스며들다 (2) 23.12.03 32 1 11쪽
91 챕터6-91. 사이비(似而非)- 침윤(浸潤) : 스며들다 (1) 23.12.03 31 1 11쪽
90 챕터6-90.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3) 23.12.03 32 1 11쪽
89 챕터6-89.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2) 23.12.03 32 1 11쪽
88 챕터6-88.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1) 23.12.02 38 1 11쪽
87 챕터5-87(완). 해태(獬豸)- 신수 해태 (2) 23.12.02 40 1 11쪽
86 챕터5-86. 해태(獬豸)- 신수 해태 (1) 23.12.02 35 1 11쪽
85 챕터5-85. 해태(獬豸)-아이티 부두인형 (3) 23.12.02 36 1 11쪽
84 챕터5-84. 해태(獬豸)-아이티 부두인형 (2) 23.12.02 34 1 11쪽
83 챕터5-83. 해태(獬豸)-아이티 부두인형 (1) 23.12.02 36 1 11쪽
82 챕터5-82. 해태(獬豸)-광교저수지 (2) 23.12.01 35 1 11쪽
81 챕터5-81. 해태(獬豸)-광교저수지 (1) 23.12.01 35 1 11쪽
80 챕터5-80. 해태(獬豸)-신풍동과 무당거리 (3) 23.12.01 37 1 14쪽
79 챕터5-79. 해태(獬豸)-신풍동과 무당거리 (2) 23.12.01 3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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