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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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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10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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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DUMMY

선아 자신처럼 주은이 역시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가 무슨 말을 꺼낼지 미리 예상하고 있는 눈치였다.


주은이는 한껏 입을 대빨 내밀고는 아주머니를 향해 궁시렁거리며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다.


“아줌마! 또 그러시네! 내가 여기 떡볶이에 중독 되서 매번 오지만! 자꾸 우리 선아보고 뭐라고 하면 저 이제 여기 단골 안 할 거에요! 그리구 아줌마!”


지금 말하고 있는 주은이의 목소리를 분명 애교가 철철 흐르는 듯한 말투였다.


남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할 때도, 주은이의 목소리에는 다정함과 상냥함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언제나 차갑고 무뚝뚝한 선아 자신과는 종자부터 다른 느낌이었다.


선아 자신이 말했다면 아무런 애교나 감정이 섞이지 않은 무뚝뚝한 말투였을 것이고, 저 말을 그대로 말했다간 주은이가 쥐고 있는 오뎅 국자로 머리를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선아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재빨리 이쑤시개로 떡 하나를 짚어 주은이의 작고 야물 딱진 입 안에 넣어 주었다.


무언가 더 말할 것이 있는 듯 한 주은이의 입을 떡볶이로 막고서는 선아 자신 역시 재빨리 떡볶이 떡 하나를 입안에 집어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달큰하지만 매콤한 떡볶이 국물이 입 안 가득 퍼지며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아는 주은이가 말한 ‘단골’이라는 말에 선아는 또 다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식간에 파도처럼 선아의 머릿 속에 파고 든 것은 종식 아재의 목소리였다.


선아의 머릿속은 어느샌가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선아야! 우리 이쁜 선아 공주님! 단골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누?”


자신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활짝 웃어 보이던 종식 아재는 어린 선아를 향해 물었다.


“아재, 아재! 내가 그걸 어찌 아누?”


그가 건넨 작은 옥춘 사탕 조각을 쪽쪽 빨며, 종식 아재의 말투를 따라하며 선아가 말했다.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으니 일곱 여덟살 쯤 되었으려나. 선아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종식 아재가 건네준 제사상에 올리는 알록달록 화려한 붉은 빛깔의 옥춘사탕을 쪽쪽 빨며 아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종식 아재는 그런 선아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또 다시 머리를 쓰다 듬으며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원래, 단골이라는 건 식당이나 가게를 엄청 자주 가는 걸 말하는 거야. 왜 우리 선아도 신풍반점 탕수육 자주 시켜먹지? 그게 단골이라는 거거든?”


“응! 응! 거기 탕수육 진짜 맛나!”


초롱초롱 눈을 반짝 빛내며 활짝 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선아를 향해 종식 아재가 말했다.


“원래 전라도 지역에서는 무당을 ‘당골’이라고 불렀거든? 정확히는 성황당 나무를 관리하는 무당을 말하는 거지만... 아무튼 마을의 큰 행사를 치르면서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집이라는 뜻에서 ‘당골내’ 라고 부르면서 단골이라는 단어로 바뀐 거란다.”


어린 선아가 이해하지 못할까봐 천천히 설명해주는 종식 아재는 종종 선아 자신에게 무당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하였다.


종식 아재는 무당 굿판에서 무구(巫具)를 연주는 악사(樂士)였다.


어디선가 모를 굿판이 끝나고 종식 아재는 항상 선아가 좋아할만한 제사 음식들을 챙겨와 내게 건네주며 환하게 웃곤 했다.


때로는 고기산적이나 전이 있었고, 약과나 한과 또는 옥춘사탕을 건네며 종식 아재는 수시로 어린 선아를 보러 집에 찾아오곤 했다.


어린 나이의 선아에게 있어 종식 아재는 아버지와 다름이 없었다.


종식 아재는 자신이 건네준 음식을 오물거리며 낼름 받아먹는 선아 자신을 향해 항상 껄껄 대고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어린 선아는 종식 아재가 이야기해주는 것들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그저 그가 건네준 음식들을 먹는 즐거움에 그리고 그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 포근한 손길에 기분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향해 따스한 손길을 건넨 종식 아재는 전라도 어느 계곡에서 수살귀를 천도하는 ‘넋건지기’ 굿을 간 뒤로 더 이상 선아를 보러 오지 않았다.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자신은 그저 종식 아재가 너무나도 굿판에 일이 많아 자신을 보러 올 수 없겠거니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고 어느 새 중학생이 된 선아는 알 수 있었다.


그 다정하고 따스했던 종식 아재는 이미 수살귀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 새 수업 준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문 밖으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귓가에 스치는 종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선아는 주은이가 잡아채는 손에 이끌려 엉거주춤 가방을 맨 채 교문을 향해 미친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떡볶이와 오뎅값을 지불하려 했지만 어느 새 손이 빠른 주은이가 아주머니 앞 쪽에 공손히 돈을 꺼내놓은 채, 선아를 이끌고 달리는 바람에 선아는 그저 무작정 앞을 향해 내달릴 수 밖에 없었다.


고개를 반쯤 숙이며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닫혀가는 교문 사이로 몸을 들이미는 사이, 그런 선아와 주은이를 현대 문방구 아주머니가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상하게도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




선아와 같은 반인 주은이가 잽싸게 교실 뒷문을 열고 자리를 바라보자 이미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리에 엎드려 잠을 자는 학생, 그리고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핸드폰으로 무언가 열심히 보고 있는 학생까지 교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교문 사이로 잽싸게 얼굴을 밀고 달려 온 주은이와 선아는 숨이 가쁜 듯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제 곧 담임선생님의 조례 시간이 있을 것이다.


“자! 앉아!”


어느 새 교실 앞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온 담임 선생님의 호령에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담임선생님은 키가 무척이나 작은 40대 후반의 노총각 선생님이었는데, 그래서일까 종종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어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가 갱년기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말이 나돌았다.


“반장 인사!”


“차렷, 경례!”


이윽고 아이들의 인사가 끝나자 담임 선생님의 조례가 시작됐다.


“어제 중3 선배 둘이 또 다쳤어! 너희들 요즘 이상한 소문 돌고 있는데 그거 따라한답시고 하다가 다치면 너희들만 손해인 거 알지? 교장선생님도 그렇고, 학부모님들 사이에서도 사태가 더 커지면 가만 안 있으실 거니까 알아서들 잘 처신하도록 해라! 너희가 초딩이냐? 그런 걸 믿게? 아이고야, 요즘 초딩들도 그런 거 안 믿는다! 정신들 차리고 공부나해!”


담임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지금 담임이 하고 있는 말은 분명 요즘 학교에 떠돌고 있는 귀신 이야기에 관한 것이었다.


선아는 주은이와 함께 간 매점 앞에서 다른 반 아이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니, 진짜라니까! 학교 중앙건물 왼쪽 벽에 걸린 그림 있잖아! 그래, 그 연꽃 그림! 밤 12시에 그 연꽃 그림 앞에서 ‘니가 그랬지? 니가 그랬지? 니가 그랬지?’를 세번 외치면 연꽃대가 있는 그림 속 물에서 손이 쑤욱 하고 솟아나온다니까? 그 손에 붙잡히면 그대로 죽는대! 근데 만약에 안 붙잡히고 학교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면 살 수 있대!”


“헐! 진짜? 대박... 우리 오늘 한번 해볼까?”


“야! 하다가 죽을 일 있냐? 그리고 문제는... 3층 올라가는 계단이야.”


“엥? 거기가 왜?”


“3층 올라가는 계단이 12개잖아. 근데 그 연꽃 그림 속 귀신한테 쫓겨서 올라가면 그 계단이 12개가 아니랜다!”


계단의 갯수가 12개가 아니라는 말에 두 눈이 똥그래진 여학생들이 지금 말하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친! 그러면? 12개가 아니면?”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대. 그냥 계속 계단이 무한반복이라나?”


“헐... 그러면 무조건 귀신한테 붙잡히는 거 아냐? 그럼 연꽃 귀신한테 붙잡히면 바로 죽어?”


“아니, 그 다음 날부터 손톱이 하나씩 빠지기 시작한대! 그렇게 10일이 지나서 열 개의 손톱이 다 빠지면... 그 날 귀신이 찾아와서 그대로 죽는다고 하더라!”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양쪽 팔에 두손을 비비며 고개를 가로 젓는 한 여학생을 향해 다른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며 꺄르르 웃고 있었다.


“야! 근데 목숨까지 걸린 일인데 그걸 그냥 재미로 하기엔 좀 위험한 거 아니냐?”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다른 여학생 하나가 무리를 보고 말하자 무서운 괴담 이야기를 처음 시작했던 여학생이 천천히 말했다.


“그게, 옥상까지 올라가서 귀신한테 잡히지 않으면 그 귀신한테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다나봐! 그러면 그 귀신이 궁금한 거를 대답해주는데 그게 정말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더라? 어떤 선배는 기말고사 시험 문제 답을 물어보기도 했고, 또 아주 예전에 처음 기수 선배는 남편의 직업 같은 것도 물어보고 한 모양인데 나중에 확인해보면 귀신이 말한 게 죄다 들어 맞았대! 대박이지? 대박 아니냐?”


모두가 ‘헐’, ‘대박’ 등을 외치며 신기해하는 동안 선아는 주은이가 건네준 딸기 우유를 마시며 유심히 그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다른 여학생들은 모두 장난이라며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선아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깊이 생각 중이었다.


사실 선아 역시 그 연꽃 그림 속 귀신에 대해 무언가 느끼고 있었다. 학교 중앙건물 복도에 놓인 연꽃 그림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 암울하고 짙은 귀기(鬼氣)를 말이다. 아니 그것은 기운이라기보다 냄새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았다.


순간 또다시 선아는 과거의 종식 아재를 떠올리고 있었다.


작고 하얀 앙증맞은 애기손으로 종식 아재의 어깨를 ‘쾅쾅’ 내리치는 어린 선아를 향해 종식 아재가 엄살을 부리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선아 손 맵네! 아재 어깨 다 부서지겠다! 살살 좀! 아재 어깨 부서질라!”


“힛! 히힛! 아재 아파? 아파요?”


어린 선아는 아프다고 말하는 종식 아재의 말이 무엇이 그리 재미지는지 연신 ‘킥킥’거리고 있었다.


선아는 이제 힘을 푸르고 조심스럽게 종식 아재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주물러야 얼마나 시원하겠느냐마는 종식 아재는 연신 계속해서 ‘으아’ 소리를 내며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고개를 좌우로 꺾고 있었다.


“아재, 아재! 근데 왜 나는요! 우리 엄마처럼 무당이 되는 거에요? 저번에 굿거리에 온 어떤 할머니랑 아줌마들이 나 보면서 이 어린 건 언제 신 내리나 하면서 그러던데? 나도 신 받아요? 신 할머니가 나한테 와요?”


순간 고개를 좌우로 꺾던 종식 아재의 몸이 흠칫하고 굳는 것이 느껴졌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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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우리들의 벽사일기를 끝마치며 24.01.31 14 2 7쪽
221 외전3-221(완).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2) 24.01.31 12 1 11쪽
220 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24.01.31 10 1 11쪽
219 외전3-219.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2) 24.01.30 10 1 11쪽
218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24.01.30 9 1 12쪽
217 외전3-217.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2) 24.01.29 10 1 12쪽
216 외전3-216.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1) 24.01.29 11 1 12쪽
215 외전3-215.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2) 24.01.28 9 1 12쪽
214 외전3-214.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1) 24.01.28 13 1 12쪽
213 외전3-213.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2) 24.01.27 12 1 12쪽
212 외전3-212.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1) 24.01.27 10 1 11쪽
»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24.01.26 13 1 11쪽
210 외전3-210. 등교(登校)- 무당의 딸 (1) 24.01.26 10 1 11쪽
209 외전2-209(완). 출가(出家)- 출가(出家) (3) 24.01.25 13 1 14쪽
208 외전2-208. 출가(出家)- 출가(出家) (2) 24.01.25 10 1 12쪽
207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24.01.24 12 1 12쪽
206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24.01.24 14 1 11쪽
205 외전2-205.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2) 24.01.23 14 1 12쪽
204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24.01.23 9 1 12쪽
203 외전2-203.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2) 24.01.22 14 1 11쪽
202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24.01.22 14 1 11쪽
201 외전2-201.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2) 24.01.21 14 1 12쪽
200 외전2-200.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1) 24.01.21 13 1 12쪽
199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24.01.20 17 1 11쪽
198 외전2-198.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2) 24.01.20 17 1 12쪽
197 외전2-197.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1) 24.01.19 16 1 11쪽
196 외전1-196(완).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4) 24.01.19 16 1 17쪽
195 외전1-195.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3) 24.01.18 18 1 12쪽
194 외전1-194.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2) 24.01.18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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