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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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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27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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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DUMMY

그 모습을 지켜본 영길의 엄마는 혀를 작게 ‘쯧’ 차고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밥상을 날랐다.


“넌 일찍 일찍 다니지 않을텨? 저걸 시집을 확 보내버릴라!”


때마침 싸리문을 ‘쏵’하고 열며 영자가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가뜩이나 마음이 '꽁' 해있던 영길의 엄마가 크게 소리질렀다.


석규만 끔찍이 챙기는 자신의 남편을 향한 원망과 짜증이 애먼 자신에게 향하는 줄 모르고, 영자는 재빨리 자신의 왼쪽 옆구리에 지고 있던 채반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이구! 내가 뭐 동무들이랑 놀다만 온줄 아나벼! 신나게 나물 다듬고 무청 다듬다 왔는데! 갑자기 왜 나한테 소리를 지르신대?”


“퍽이나 그러셔! 됐고! 와서 얼른 저녁상이나 거들어!”


그런 영자를 향해 어머니가 또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부으려는 낌새에 영길이 재빨리 영자를 나무라며 타박했다.


그런 오빠를 향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후다닥 밥상에 달려들어 이것저것 정리를 하며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영자였다.


영자는 밥상에 국과 수저를 놓으며 안방 쪽 마루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는 멀대같은 석규를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시 영자의 얼굴이 바알갛게 변해가고 있었다.


옆에서 어머니가 건네는 국그릇을 놓으며 동생 영자의 얼굴을 바라보던 영길이 그것을 눈치채고는 짐짓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식사들 하셔요!”


영길의 큰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영자가 재빨리 어머니 옆에 꼭 붙어 앉았고, 박씨는 석규의 팔을 이끌고 가운데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사실 석규와 영길은 자신들 입에서 막걸리 단내가 풍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둘다 허겁지겁 국부터 들이키고 있었다.


작고 붉은 입술로 오물조물 국그릇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된장을 가득 푼 아욱국을 들이키는 석규를 바라보던 영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 춘향이 놀이라고 했지? 내일 밤에 꼭 해봐야 겠다! 내가... 내가 석규 오라버니랑 결혼할 수 있을까?


어느 새 국그릇을 허겁지겁 내려놓은 석규를 흘끗 쳐다본 박씨가 눈짓하자 영길의 엄마가 일어서려 했다.


그 모습을 눈치챈 영길이 재빨리 동생 영자의 다리를 평상 밑 밥상아래로 툭 쳤고, 정신을 차린 영자가 날다람쥐처럼 쪼르르 석규의 국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 으이구! 저 물색없는 년!


혀를 작게 끌끌 차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영길은 눈썹 사이 미간을 찌푸려지고 있었고, 석규는 그런 영자의 뒷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오순도순 한곳에 모여 식사를 하는 영길네 가족 위로 구름 한 점이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




영자와 순옥 그리고 마을 동무들 여섯은 약속해둔 밤 10시에 몰래 서로의 집을 빠져나와 마을 뒷켠 언덕길로 향했다.


밤 10시만 되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어른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밤 9시만 되면 코고는 소리가 울타리 너머 집 바깥에 울려퍼지는 집도 있었다.


영자는 자신의 옆집 동무 광순과 팔짱을 낀 채 종종 걸음으로 빨리 걷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샌가 저 멀리 순옥의 집 뒤쪽으로 좁은 돌담길을 따라 오르며 널찍한 정자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정자는 팔각형 모양의 정자였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회의를 하는 장소였다.


마을 전체 풍경이 다 보였고, 밤에는 은하수가 넓게 펼쳐져 별들이 바다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미리 와 있는 듯한 다른 동무 넷의 모습도 보였다.


팔각정자의 한가운데 앉은 것은 머리를 곱게 땋아 내린 까무잡잡한 영자였다.


영자는 한껏 긴장한 채, 두손을 똑바로 펴서 포갠 뒤 가슴 명치께 두고 합장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다른 동무들은 모두 그런 영자를 한가운데 두고, 영자의 주변을 뱅 둘러 원을 그리며 앉아있었는데 영자와 같은 손동작을 한 채 앉아있었다.


그들은 모두 영자처럼 한껏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입술을 앙다문 채 초조한 듯이 발을 달달 떠는 아이도 있었다.


이윽고 시작하자는 듯이 순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영자의 동무들은 다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꼬대각시~ 꼬대각시~ 나이는 열여섯~ 이름은 춘향이~ 춤을 추며 놀아보자. 춤을 추며 놀아보자~ 꼬대각시, 꼬대각시, 나이는 열여섯~ 이름은 춘향이~ 춤을 추며 놀아보자!”


여자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가사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는데, 그 운율은 익숙한 노래가락이었다. 그것은 어린 아이들도 흙장난을 하면서 종종 부르기에 누구나 알법한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게, 새집다오’라는 노래 가락과 유사한 리듬이었다.


미리 사전에 가사를 수차례 읊조리며 외운 동무들은 다함께 같은 목소리와 리듬을 타며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영자를 둘러싸고 원 모양으로 뱅 둘러앉은 다른 여자아이들 역시 무릎을 꿇거나 옆으로 다리를 꼬고 앉은채 두 누을 꼭 감고 손바닥을 붙여 비비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자 아이들은 몸을 살짝 흔들기도 했고, 소원을 빌듯이 두 손을 비비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영자의 두 손이 점점 벌어지면서 영자의 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 영자의 입꼬리가 씰룩이더니 활짝 웃기 시작했고, 갑자기 영자가 자리를 박차고 머리 위로 두 손을 들어 올려 신명나게 손을 흔들며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앉아있던 다른 동무들 역시 그런 영자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재빨리 일어나 빙글빙글 주변을 돌면서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 진짜 되는가보네!

- 와... 영자 저년 연기하는 거 아니여?


각자 저마다 마음 속으로 영자의 행동을 보며 충격과 놀람으로 가득 찬 아이들이었다.


순옥이 닭목이 마을로 시집간 금남이에게 알아낸 비술은 소위 ‘춘향이 놀이’라 불리는 강령술의 일종이었다.


춘향이는 모두가 알다시피 남원에 유래된 설화인데, 기생이었던 춘향이는 이몽룡과 부부의 연을 맺기로 약속하고, 이도령은 과거 시험을 위해 남원을 떠나면서 헤어지게 된다.


이후 새로 부임한 마을의 변사또에게 수청을 들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옥에 갖힌 춘향을 옥중에서 서글은 ‘옥중가’를 부르기도 한다. 너무나 구슬퍼 귀신이 부르는 것 같다고도 불리는 옥중가를 듣다보면 한(恨)많은 춘향이의 사연에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춘향이 놀이는 한많은 영혼을 불러내는 강령술이었다.


춘향이 놀이는 4단계로 구성되는데 놀랍게도 ‘청신, 강신, 오신, 송신’의 과정으로 구성된 굿과 흡사하다.


귀신을 불러냈다가, 귀신이 몸에 내리면 질문이나 부탁을 던지고, 귀신과 놀았다가 다시 그 귀신을 보내는 것은 굿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춘향이 왔니!”


“그래 왔다!”


영자의 입에서 영자의 목소리가 아닌 앙칼진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모두가 숨죽여 ‘헉’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순옥은 긴장한 목소리로 영자를 향해 물었다.


“그래그래. 춘향아. 나 순옥이는 혼례를 치르니? 누구랑 치르니?”


순옥은 조심스럽게 영자에게 씌인 귀신을 향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너는 도화목 마을 우물가 집 최씨 셋째 아들이랑 하겠다! 애도 셋이나 낳네!”


영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모두가 놀라 눈이 한껏 커졌다.


연이어 다들 궁금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모두가 빙글빙글 돌면서 춘향이 노래를 계속 부르며 각자 자신의 궁금증이나 고민거리를 해결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아이는 자신이 결혼할 남자가 누구인지를 물었고, 또 어떤 이는 아이를 몇이나 낳는지, 또 자신이 최근 잃어버린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곤 했다.


어느 순간 모두가 한바퀴 다 돌아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어지자 영자 앞에 서 있던 광순이가 술래를 맡아 질문을 할 수 없는 영자를 위해 영자의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고마워, 춘향아! 근데 우리 영자는 누구랑 혼인하니? 석규오빠랑 하니?”


순간 머리 위에서 손을 신명나게 흔들며 웃고 있던 영자가 우뚝 멈춰서더니 굳은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년은 결혼 못 해! 결혼을 할 수가 없지! 그 새끼는 곧 머리가 터져 뒤질텐데 어찌 결혼을 하겠어?”


이윽고 신난다는 듯이 깔깔대며 웃으며 다시 머리 위에 올린 손을 허우적거리며 흔들어대는 영자의 손은 미친듯한 속도로 움직였다.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손을 흔들어대는 영자의 모습에 모두가 순간 동작을 멈춘 채 얼음이 되어 손을 바들바들 떨고만 서있었다.


- 잘 기억해야해! 질문이 끝나면 귀신을 보내야하는데 술래가 물을 한모금 마시면 귀신이 나간대. 그리고 절대로 귀신을 보내기 전에 남자가 원안에 들어오면 안 된대!


- 남자가 들어오면 어찌 되는디?


- 그러면.... 그러면.... 술래가 미치거나 죽는대!


순옥의 당부를 떠올린 아이들은 서둘러 정자 입구에 놓았던 바가지를 들어올려 영자의 입에 물을 넣으려 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정자 계단 입구에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나와 그들 앞에 섰다.


그것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영길이었다.


“야! 니들 여기서 뭐하냐?”


한심스럽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며 영길이 잽싸게 정자 위로 올라와 영자의 어깨를 움켜 쥐었다.


“야! 내일 석규 형 서울 간댄다! 니가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냐?”


갑작스런 영길의 행동에 순옥을 비롯한 여자아이들의 두 눈동자는 경악에 물들었다.


순옥과 광순이는 영길이 자신들이 에워싼 원 안에 들어온 것을 보고 놀라 비명을 내질렀고, 다른 여자아이들은 영길이 정자 위로 올라오면서 입구 초입에 놓았던 물이 담긴 바가지를 발로 차 엎어버린 것을 보고 놀라 소리질렀다.


영자의 입에 넣어주어야만 하는 물바가지가 쏟아지고, 원 안에 남자가 들어왔으니 지금 이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은 여자아이들과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몸을 휘청이는 순옥을 보면서 영길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순옥아, 왜 그러는거야?”


영길이 이상하다는 듯이 순옥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자신이 움켜진 동생 영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영자가 ‘킬킬’거리며 웃다가 엄청난 힘으로 영길의 복부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순간 영길의 몸이 붕 뜨더니 그대로 정자 밖으로 나동댕이 치면서 그는 데굴데굴 굴렀다.


“으악!”


영길이 공중에 붕 뜨면서 그대로 흙바닥에 허리를 쳐박혔다.


영길이 참을 수 없는 엄청난 고통에 신음을 내뱉자, 영자의 입에서 날카롭고 찢어질 듯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제 이 몸은 내꺼! 이제 내꺼!”


신난다는 듯이 입꼬리가 귓가에 걸릴 것처럼 깔깔대고 웃어대며 여자아이들 주변을 원을 그리며 뱅글뱅글 돌고 있는 영자의 눈은 어느새 하얗게 까뒵혀져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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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우리들의 벽사일기를 끝마치며 24.01.31 15 2 7쪽
221 외전3-221(완).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2) 24.01.31 13 1 11쪽
220 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24.01.31 11 1 11쪽
219 외전3-219.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2) 24.01.30 11 1 11쪽
218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24.01.30 10 1 12쪽
217 외전3-217.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2) 24.01.29 10 1 12쪽
216 외전3-216.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1) 24.01.29 12 1 12쪽
215 외전3-215.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2) 24.01.28 10 1 12쪽
214 외전3-214.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1) 24.01.28 14 1 12쪽
213 외전3-213.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2) 24.01.27 13 1 12쪽
212 외전3-212.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1) 24.01.27 10 1 11쪽
211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24.01.26 13 1 11쪽
210 외전3-210. 등교(登校)- 무당의 딸 (1) 24.01.26 10 1 11쪽
209 외전2-209(완). 출가(出家)- 출가(出家) (3) 24.01.25 14 1 14쪽
208 외전2-208. 출가(出家)- 출가(出家) (2) 24.01.25 10 1 12쪽
207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24.01.24 12 1 12쪽
206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24.01.24 15 1 11쪽
205 외전2-205.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2) 24.01.23 14 1 12쪽
204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24.01.23 10 1 12쪽
203 외전2-203.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2) 24.01.22 14 1 11쪽
»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24.01.22 15 1 11쪽
201 외전2-201.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2) 24.01.21 14 1 12쪽
200 외전2-200.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1) 24.01.21 14 1 12쪽
199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24.01.20 17 1 11쪽
198 외전2-198.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2) 24.01.20 18 1 12쪽
197 외전2-197.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1) 24.01.19 17 1 11쪽
196 외전1-196(완).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4) 24.01.19 16 1 17쪽
195 외전1-195.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3) 24.01.18 19 1 12쪽
194 외전1-194.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2) 24.01.18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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