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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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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08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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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DUMMY

이윽고 가뿐 숨을 들이마시며 마지막 절을 올리던 영길이 휘청이며 바닥에 쓰러지자 노승은 영길을 향해 말했다.


“수고했다! 그리 성치 않은 몸으로 용케 해냈구나. 온몸이 부서질 것 같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니라! 잘 듣거라, 지금 당장 집으로 가서 식칼을 집 울타리 밖으로 집어 던져야 한다.”


“예? 식칼을요?”


숨을 헐떡이던 영길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노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쉽지 않을게다. 기억해라! 세 번 안에 던져서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문 밖으로 식칼이 나가야.... 니 동생이 산다... 이제 그 방법 밖엔 없구나...”


노승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기운이 없어 보였고, 왜 인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영길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승복으로 닦아내며 노승을 바라보자 노승은 아무 말없이 고개 푹 숙이고 가부좌를 튼채 평상에 앉아있었다.


노승은 구부정한 허리를 어느샌가 꼿꼿이 펴고 가부좌를 튼 채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앉았다.


젊은 스님은 이 모든 것을 예상한 듯이 영길이 삼천배 절을 올리는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경내 마당에 서 있다가 드디어 서서히 몸을 움직여 자신의 스승인 노승을 향해 다가갔다.


이윽고 그대로 사찰 흙마당에 주저앉아 젊은 스님은 소리 내어 통곡하기 시작했다.


“열반(涅槃) 하시었네! 모두 나와 스승님을 배웅하거라! 큰 스님을 배웅하라!”


있는 힘껏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에는 참을 수 없는 서글픈 울음이 가득 맺혀 있었다.


그의 외침은 엄청난 크기로 발왕사 전체로 메아리 치듯이 울려퍼졌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여기저기서 우당탕 소리와 함께 삽시간에 이십여 명의 스님들이 뛰쳐나와 모두 경내에 모여 주저앉은 채 하나같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노승에게 고무신을 신겨주며 지팡이 심부름을 하던 어린 동자승은 대표같아 보이는 젊은 스님을 껴안고 서럽게 소리내 울어댔다.


그 광경을 보고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던 영길은 그대로 시선을 돌려 자신을 향해 다정히 말했던 노승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 돌아가셨구나! 돌아가셨어!


영길은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이 큰 충격에 그만 대웅전 바닥에 털썩 주저 앉고야 말았다.


“스님! 주지스님! 이렇게 가시다뇨! 안 됩니다!”


영길 역시 애처롭고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발왕사 경내 내에서는 여러명의 서글프고 애달픈 울음소리만이 가득 휘감아 돌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울고 있는 다른 모두를 향해 젊은 대표스님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좌탈입망(坐脫立亡)하셨으니 열반(涅槃)하시었다! 어서 장례 준비를 하도록 하여라!”


그의 명령에 하나둘씩 눈물을 훔치며 모두 일어나 분주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젊은 스님은 동자승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일으켜 세우며 동자승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그가 방금 말한 ‘좌탈입망’이란 불교에서 ‘수행의 가장 높은 경지’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어야하는 예지력과 아무 동요 없이 죽음 역시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하는 높은 정신력을 겸비해야 한다.


보통 앉아서 가부좌를 튼채 죽음을 맞이하거나 서서 합장을 한 채 죽음을 맞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랜 시간 참선 수행을 한 선승(禪僧) 가운데서도 드물게 보이는 현상으로 상상치도 못할 높은 법력(法力)을 지닌 자에게 종종 나타나는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윽고 다른 스님들에게 명령을 내린 젊은 스님은 영길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영길을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지스님의 마지막 유고를 들었을 것이 아닌가! 어서 움직이게! 시간이 없어!”


분명 노승(老僧)은 집으로 달려가 식칼을 집 밖으로 던지라고 알려주었다.


영길은 숨을 깊게 한번 들이마신 뒤, 눈앞에 가부좌를 튼채 앉아 열반에 이른 노승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큰 스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꼭 다시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편히 가십시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영길은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젊은 스님은 눈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그저 묵묵히 그런 영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젊은 스님은 그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울고 있는 동자승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으고 있었다.


오른쪽 눈 밑에는 두 개의 쌍점 사이로 우수수 떨어지는 닭똥같은 눈물을 닦으며 동자승은 영길을 향해 잘 가라는 듯이 배웅을 하며 자신의 작은 양손을 있는 힘껏 흔들었다.




***




5월의 날씨는 맑고 푸르렀다.


산길을 따라 이름 모를 들꽃이 화려하게 수놓았고, 푸르디 푸른 배추밭은 여전히 바다처럼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라도 한번 일렁일라 치면 짙은 녹색 배춧잎들은 깃발처럼 흔들려 파도가 이는 푸른 바다처럼 보였다.


저녁 노을이 지면서 붉은 빛을 쏘이는 배추잎은 주황색 빛과 초록빛이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처럼 보였다.


영길은 미친 듯이 자신이 나고자란 대기리 꼭대기 마을로 올라가는 산길을 타고 내달렸다.


점점 어두워지는 저녁이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거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영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는데, 그의 귓가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 그래봐야 니 동생은 못 살려! 그냥 포기해!

- 니까짓 게 해 봐야 그렇지! 그냥 가서 돌이나 쌓다 뒈져!

- 그 늙은 땡중 새끼 때문에 발목이 붙잡혔네! 그 늙은 중도 죽었으니! 키키!


때로는 쇳소리로 긁는듯한 날카로운 목소리였다가, 목이 다 쉰 늙은 노인의 목소리 혹은 장난꾸러기같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뒤섞여 영길의 귓가에 정신없이 맴돌았다.


영길은 발왕사 주지스님의 조언대로 노추산 계곡에 돌탑을 2년 동안 쌓으면서 육체적인 변화 뿐만 아니라 영(靈)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는 돌탑에 돌을 하나씩 쌓아올리면서 간절히 그리고 애타는 심정으로 부처님께 기도했다.


간절한 그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에 가 닿은 것일까 그는 어느샌가 도력(道力)이 생기고 영안(靈眼)이 트였다.


노추산 계곡 입구에 지푸라기도 대충 지어놓은 영길의 움막에서는 새벽녘부터 산속에서 사람이 아닌 것들이 끊임없이 영길을 괴롭혔다.


새벽마다 움막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정신 사납게 굴었고, 영길이 잠들라 치면 귓가에 무언가 속삭이며 영길을 끝없이 고민에 빠뜨렸다.


절대로 동생 영자를 구할 수 없으리라는 저주 아닌 조롱을 섞어 말하는 귀신들을 영길은 주지스님이 보내온 불경을 읽으며 애써 무시했다.


하루종일 무거운 돌들을 나르면서 피곤이 쌓인 영길은 불경을 읽다가 기절하듯이 잠들곤 했다.


그러다가 이른 새벽이 되면 영길은 노추계곡 차가운 물에 대충 얼굴을 적시고는 마을 주민들이 놓고 가거나 혹은 마을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음식들을 먹고 주저 없이 돌을 날랐다.


그에게는 하루 일과가 그것이 전부였다. 돌을 쌓고, 경전을 잃고, 기도를 올리는 그 단순한 생활이 영길에게는 전부였다.


- 어머니! 아부지! 영자야! 꼭 내가 천개의 탑을 쌓을테니 기다려줘! 내가 꼭 살릴게! 내 동생 꼭 살려줄게!


영길은 가족들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옷가로 눈가를 쓱쓱 닦고는 서둘러 모나고 날카로운 그리고 무거운 돌들을 옮겼다.


무겁고 거친 돌에 영길은 손톱이 빠지기도 하고, 험난한 산길을 오르다보면 돌에 채여 발톱이 빠지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영길은 묵묵히 돌탑을 쌓다보면 아무 고민도,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다.


거진 2년 만에 처음 찾아간 자신의 대기리 꼭대기 마을은 그 어느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익숙한 길을 따라 자신의 집 어귀에 도착하자 저녁밥을 짓는 것인지 아궁이에서 밥 짓는 연기가 스물스물 올라 오고 있었다.


“아부지! 어무니! 영자야!”


싸리나무 울타리 밖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영길의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지자 이윽고 안방에서 흰천으로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던 어머니가 안방문을 삽시간에 열어재끼고 맨발로 뛰어나왔다.


“영길이냐! 영길인게야? 영길이 온 거야?”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영길을 껴안고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예, 접니더! 어무니! 저 영길입니더!”


눈물 어린 말투로 울먹이며 말하는 영길은 서둘러 동생 영자가 지내는 사랑방의 기척을 살폈다.


“영자는요? 아버지는요?”


“아부지는 배추밭 나가셨고.... 영자는 지 방에 금줄로 묶여 있다... 오늘도 하루종일 허공에 대고 중얼중얼 미친년맨키로 쳐 있다가... 방금 막 잠들었을기라...”


영길의 어머니가 옷소매로 눈가를 찍어 눈물을 닦아내는 동안 영길은 영자의 방으로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영길이 바라본 영자의 방에 영자는 온몸이 밧줄로 꽁꽁 묶인 채, 죽은 듯이 누워자고 있었다.


영자의 온몸은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인지 해골처럼 삐쩍 말라 있었다. 눈 밑은 퀭했고, 영길이 바라본 영자의 왼손은 새끼손가락과 넷째손가락이 없었다.


영길은 목구멍까지 가득 차오른 울음을 억누르며 그대로 영자를 들쳐 업고 대청마루로 그녀를 옮겼다.


어느 새 다가온 영길의 어머니가 그런 영길을 바라보며 뭐하냐는 듯한 걱정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영자 저거 깨어나면 또 발광할텐데... 어쩌려고 그러냐? 방 안에 가둬 두는게 낫지 않어?”


영자가 깨어날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말하는 어머니를 향해 영길이 살짝 웃어 보이며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 어머니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영길은 그대로 부엌으로 향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뭐 찾는겨? 왜?”


마치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하면서 영길을 쫓아다니는 어머니를 향해 영길이 물었다.


“어무이! 식칼은 어디 있어요?”


2년 만에 뜬금없이 나타나 동생을 엎고 마루에 놓은 뒤, 식칼을 찾는 아들을 바라보며 영길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식칼은 왜?”


“아니어요, 어무니! 영자 죽이려는게 아니라 이리 해야 영자가 멀쩡해진 답니다! 식칼요! 빨리요! 발왕사 주지스님께서 알려주신 비방입니다! 빨리요!”


영길의 엄마가 고개를 돌려 바라본 영길은 2년 사이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얼굴은 더 새까맣게 짙은 구리빛으로 타 버렸고, 돌을 지고 나른 탓인지 온몸에 상처 투성이였지만 근육이 붙어 덩치는 더 커보였다. 키도 어느새 훌쩍 더 자란 것 같았다.


이제는 건장한 사내가 되버린 자신의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본 영길의 어머니는 가마솥 안 쪽에 몰래 숨겨둔 식칼을 꺼내어 자신의 아들에게 건네 주었다.


“영자 이년이 식칼만 보면 짚고 죽이려 달려들어서 숨겨두었지... 여기 식칼... 여기 있다.”


끙끙거리며 무거운 가마솥 위에 돌을 들어올려 식칼을 빼낸 영길의 어머니가 영길에세 식칼을 건네자 영길은 그것을 받아쥐고 성큼성큼 평상이 놓인 집마당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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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우리들의 벽사일기를 끝마치며 24.01.31 14 2 7쪽
221 외전3-221(완).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2) 24.01.31 12 1 11쪽
220 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24.01.31 10 1 11쪽
219 외전3-219.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2) 24.01.30 10 1 11쪽
218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24.01.30 9 1 12쪽
217 외전3-217.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2) 24.01.29 10 1 12쪽
216 외전3-216.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1) 24.01.29 11 1 12쪽
215 외전3-215.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2) 24.01.28 9 1 12쪽
214 외전3-214.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1) 24.01.28 13 1 12쪽
213 외전3-213.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2) 24.01.27 12 1 12쪽
212 외전3-212.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1) 24.01.27 10 1 11쪽
211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24.01.26 12 1 11쪽
210 외전3-210. 등교(登校)- 무당의 딸 (1) 24.01.26 10 1 11쪽
209 외전2-209(완). 출가(出家)- 출가(出家) (3) 24.01.25 13 1 14쪽
208 외전2-208. 출가(出家)- 출가(出家) (2) 24.01.25 10 1 12쪽
»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24.01.24 12 1 12쪽
206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24.01.24 14 1 11쪽
205 외전2-205.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2) 24.01.23 14 1 12쪽
204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24.01.23 9 1 12쪽
203 외전2-203.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2) 24.01.22 14 1 11쪽
202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24.01.22 14 1 11쪽
201 외전2-201.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2) 24.01.21 14 1 12쪽
200 외전2-200.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1) 24.01.21 13 1 12쪽
199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24.01.20 16 1 11쪽
198 외전2-198.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2) 24.01.20 17 1 12쪽
197 외전2-197.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1) 24.01.19 16 1 11쪽
196 외전1-196(완).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4) 24.01.19 16 1 17쪽
195 외전1-195.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3) 24.01.18 18 1 12쪽
194 외전1-194.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2) 24.01.18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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