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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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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26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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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DUMMY

영길이가 맨몸으로 지게에 수많은 돌을 날라 돌탑을 쌓는 모습은 인근 주변 마을사람들 모두가 알 정도로 어느 샌가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하나둘씩 영길이 왜 돌탑을 쌓는지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영길이 지내는 움막 근처에 먹을 것들을 놓고 가곤 했다. 어떤 이들은 떡을 만들어와 그의 움막 입구에 놓고 가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주먹밥을, 또 어떤 이들은 오래두고 먹을 수 있는 육포나 말린 과일들을 놓고 갔다.


“그래... 오늘도... 쌓았더냐?”


목이 다 쉬고, 등도 구부정한 늙은 노스님이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듯이 그의 젊은 제자승들을 향해 물었다.


질문을 던지는 노승을 향해 합장을 하며 대표같아 보이는 젊은 스님 한 명이 대답했다. 그는 2년 전, 암자에서 노승의 등을 받치며 그를 부축하던 젊은 스님이었다.


“예... 단 하루도 쉬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질 않아 그 광경을 보는 이들이 모두 혀를 내두른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노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구나... 내 한번 가서 봤으면 싶은데...”


그의 말에 노스님 앞에 가부좌를 튼채 앉아서 가르침을 듣던 모든 스님들이 일제히 놀라 눈이 커졌다.


모두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자 노승(老僧)은 껄껄 웃으며 힘겹게 일어났고, 그 옆에 어느샌가 달려온 어린 동자승이 지팡이를 그에게 건넸다.


머리를 박박 깎은 어린 동자승의 오른쪽 눈 밑에는 두 개의 쌍점이 있었는데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안 됩니다! 거동도 불편하신 것을요! 안 됩니다!”


대표 같아 보이는 젊은 스님의 단호한 말에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노승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껄껄 웃으며 노승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어느샌가 암자 밖으로 발을 뻗어 힘겹게 고무신을 신으려 했다.


쪼르르 밖으로 나간 어린 동자승 하나가 재빨리 노승의 주름진 앙상한 발에 고무신을 신겨주자, 인상이 날카롭던 젊은 스님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노승을 부축해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 노승을 따라 대여섯 명의 젊은 스님들이 조심스럽게 그를 동행했다.


느린 걸음으로 힘겹게 걷는 노스님의 걸음걸이 때문일까 스님들은 이십여분 가량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걷고 있었다.


작은 개울이 흐르는 돌다리를 건너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영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지게를 지고 있는 노추산 계곡 입구였다.


중간중간 휘청이며 숨을 고르던 노승 때문에 젊은 스님들은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웠다.


노추산 계곡 입구에서 돌을 나르는 영길의 얼굴은 강한 햇빛에 새까맣게 타서 거무죽죽했고, 그의 온몸은 땀에 쩔어 흠뻑 젖어있었다.


영길의 온몸은 돌과 나뭇가지에 긁힌 것인지 상처 투성이였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불꽃이 이글거리듯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노추산 계곡 입구 쪽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영길은 시선을 돌려 그 쪽을 바라보았고, 이내 스님들이 열대명 가량 서서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승은 천천히 돌탑 주변을 걸으며 돌탑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어떤 돌탑 앞에서는 한참을 멍하니 서서 지켜만 보다가 합장을 하기도 했고, 어떤 돌탑 앞에서는 돌을 주워 그 위에 돌 하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두기도 했다.


그런 노승의 뒤를 대표로 보이는 젊은 스님 한명과 동자승 하나가 안절부절하며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영길은 어느 새 자신의 코앞에 다가온 노승을 발견했다.


영길은 자신을 찾아온 2년 전 주지스님을 향해 가만히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한 뒤,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지게를 짊어지고 돌덩어리들을 나르려고 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조심스럽게 내딛어 노승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영길을 불러 세웠다.


“그래, 이 녀석아! 몇 개나 남았더냐?”


“삼십 두 개 남았습니다. 일이 끝나는 대로 찾아뵙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영길은 아무 대답도 없이 묵묵히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노승의 다리 옆에 찰싹 붙어있던 개구쟁이 같아보이던 동자승이 영길을 향해 뛰어가려 했지만 노승이 손을 들어 동자승을 저지했고, 다시 한번 영길을 향해 말했다.


“이만 하면 되었다! 암자로 건너오너라!”


“아직 천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못 갑니다! 천개를 채워야 합니다!”


바락바락 악을 쓰며 외치는 영길을 향해 노승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 질렀다.


“이 놈아 남은 것들은 다른 이들이 쌓아야지! 너 혼자서 부처님 공덕을 다 가져갈 셈이냐! 부족한 것은 남들이 채워줄 터이니 너는 얼른 오래두!”


그의 말에 지게를 내려놓고 휘청거리며 영길은 천천히 노승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본 영길의 몸 상태는 훨씬 좋지 않아보였다. 다리 뿐만 아니라 팔도 성치 않은 것이 분명했다.


“쯔쯧... 너도 참 독하디 독한 녀석이로구나... 몸이 그게 뭐냐!”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젓던 노승은 뒷짐을 지고 힘겹게 다시 발왕사 암자로 향했다.


그의 뒤를 영길과 다른 젊은 스님들이 뒤 따랐다.





***





신록이 눈부신 5월이었다.


푸르른 산사(山寺)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개울가에 졸졸 시냇물 소리와 함께 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산들바람에 휘청이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이윽고 헛기침을 하며 휘적휘적 발왕사 내부로 들어갔다.


어느 새 준비된 것인지 승복(僧服)이 대웅전 앞에 놓여있었고, 노승은 자신을 뒤따라 온 영길을 향해 말했다.


“입거라! 부처님께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한번만 구해주십시오 하면서 삼천배를 올려! 정성을 다 해야 한다!”


노승은 그 말을 하고 난 뒤 대청마루에 힘겨운 듯이 등을 기대고 앉아 멍하니 처마 끝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풍경은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면서 경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노승은 맑고 청아한 풍경을 보면서 옛날 생각에 잠겼다.


그를 가르쳐주시던 선대 주지스님께서 자신은 늘 질문을 던지곤 했다.


“스님! 왜 풍경은 물고기 모양인 것인가요?”


“허허! 네 생각에는 왜 물고기 모양인 것 같으냐?”


“글쎄요? 저 푸른 하늘 속에 물고기가 물 속에서 수영하는 것 같아서요?”


“그 생각은 나도 하지 못했구나. 풍경이 물고기 모양인 것은 수행자들을 경책하기 위함이다.”


“경책이요?”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수행자는 언제나 물고기처럼 총명하게 눈을 뜨고 게으름으로 멍하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게야! 그러니 이 녀석아! 너처럼 그리 농땡이를 피우면 되겠느냐?”


자신의 이마를 뒤통수로 가볍게 튕기던 스승님을 떠올리던 노승은 환복을 마치고 승복을 입은 채 대웅전 안에 불존(佛尊)을 향해 삼천배를 시작한 영길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영길을 볼 때마다, 이미 늙어버린 노승은 어릴 적 당차고, 영특했던 그러나 무모할 정도로 순수했던 자신을 보는 듯 했다.


어느 덧 영길의 승복은 땀으로 젖기 시작했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영길의 다리가 점차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속도가 느려지며 영길의 몸이 휘청거리기 시작하자 노승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시! 그리 해서 부처님께서 도와주시겠느냐! 이 우둔한 것! 다시 해라!”


무서운 소리로 말하는 노승의 목소리에는 그 전까지 능글거리던 장난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노승의 꾸짖음에 자신의 어금니를 세게 깨물며 영길은 고개를 몇 번 휘휘 젓더니 다시 바른 자세로 힘겹게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 노승과 영길을 저 멀찍이서 젊은 스님과 동자승이 걱정스러운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노승은 그런 영길을 바라보다가 다시 처마 끝의 물고기 모양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노승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 풍경에 얽힌 이야기를 말이다.


천성이 게으르고 농땡이를 피우던 젊은 스님 하나가 있었다.


훗날 자신의 스승에게 꾸짖음을 듣고 회개하여 성실히 수행을 하던 그 젊은 스님은 그만 마을에 떠돌던 역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평상시에 수행을 게을리하며 먹지는 않더라도 재미 삼아 마을 개천에서 물고기를 낚던 제자를 그의 스승은 화장하여 뼛가루를 강물에 뿌려 주었다. 살아서 물고기를 괴롭혔으니 죽어서라도 물고기 밥이 되어 잘못을 빌라는 뜻이었다.


그 뜻이 통했던 것일까. 죽은 제자는 암자 아래 강물 속에 물고기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 물고기의 모습이 이상했다.


물고기 등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가 자랄수록 물고기의 등을 짓누르기 때문에 물고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에 몸부림쳤다. 물고기로 환생한 제자는 노승을 보자 울면서 말했다.


- 계율을 어기고 수행을 하지 못한 업보로 이리 고통받습니다. 미물을 괴롭힌 제가 이리 고통받고 있으니 해탈하게 해주십시오. 이 나무를 베어 부처님 앞에 매달아주십시오. 저를 교훈 삼아 모두가 정진을 열심히 할 것이며, 저는 바람이 저를 두드리면서 물고기 몸에서 해탈할 것입니다!


간절한 그의 부탁에 스승은 울면서 천도제를 지내 주었고, 그 나무를 깎아 물고기를 만들어 절의 처마 끝에 매달아주었으니 그것이 목어(木魚) 훗날 풍경의 시초가 된 것이다.


어느 새, 이름 점심시간에 시작된 절은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서 끝나가는 듯 했다.


장장 대여섯 시간동안 절을 올리는 영길이나 대웅전 앞 마루에 앉아 그 모습을 꿈쩍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노승이나 둘다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노승은 틈틈히 영길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절을 올리라고 소리를 치거나 그가 마음이 약해져 휘청거릴 때면 불벼락같은 호통을 치기도 했다.


영길은 무언가 홀린 듯이 노승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예를 갖춰 공손히 부처님께 절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영길은 영길 나름대로 힘겹게 절을 올리고 있었고, 노승은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앉아서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심부름을 하던 어린 동자승은 힘겹고 지루한지 어느새 모습을 감추고 사라져버렸고, 그의 젊은 제자들 역시 혀를 내두르며 각자 수련실이나 다른 암자에서 수행을 하거나 불경을 읽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서서 대표 같아보이던 인상이 날카롭던 젊은 스님 하나만이 노승의 옆에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영길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그가 가뿐 숨을 내쉬며 절을 하는 동안 노승은 자신의 목에 걸린 염주알을 굴리면서 무언가 조용히 경을 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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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우리들의 벽사일기를 끝마치며 24.01.31 15 2 7쪽
221 외전3-221(완).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2) 24.01.31 13 1 11쪽
220 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24.01.31 11 1 11쪽
219 외전3-219.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2) 24.01.30 11 1 11쪽
218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24.01.30 10 1 12쪽
217 외전3-217.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2) 24.01.29 10 1 12쪽
216 외전3-216.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1) 24.01.29 12 1 12쪽
215 외전3-215.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2) 24.01.28 10 1 12쪽
214 외전3-214.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1) 24.01.28 14 1 12쪽
213 외전3-213.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2) 24.01.27 13 1 12쪽
212 외전3-212.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1) 24.01.27 10 1 11쪽
211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24.01.26 13 1 11쪽
210 외전3-210. 등교(登校)- 무당의 딸 (1) 24.01.26 10 1 11쪽
209 외전2-209(완). 출가(出家)- 출가(出家) (3) 24.01.25 14 1 14쪽
208 외전2-208. 출가(出家)- 출가(出家) (2) 24.01.25 10 1 12쪽
207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24.01.24 12 1 12쪽
»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24.01.24 15 1 11쪽
205 외전2-205.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2) 24.01.23 14 1 12쪽
204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24.01.23 10 1 12쪽
203 외전2-203.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2) 24.01.22 14 1 11쪽
202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24.01.22 14 1 11쪽
201 외전2-201.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2) 24.01.21 14 1 12쪽
200 외전2-200.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1) 24.01.21 14 1 12쪽
199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24.01.20 17 1 11쪽
198 외전2-198.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2) 24.01.20 18 1 12쪽
197 외전2-197.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1) 24.01.19 17 1 11쪽
196 외전1-196(완).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4) 24.01.19 16 1 17쪽
195 외전1-195.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3) 24.01.18 19 1 12쪽
194 외전1-194.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2) 24.01.18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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