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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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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09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20 18:10
조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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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DUMMY

이윽고 목에 걸친 수건으로 자신의 옷에 묻은 흙들을 탈탈 털면서 싸리나무 울타리 안으로 영길이 걸어 들어왔다.


“영길아!”


“오메! 석규 형님!”


석규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영길이 미친 듯이 평상으로 달려왔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석규를 와락 끌어 안으려던 영길은 자신의 옷에 여기저기 묻은 흙을 생각하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런 영길을 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석규는 서둘러 그의 흙으로 더러워진 손을 붙잡고 반갑게 흔들며 말했다.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냐!”


너무나도 반갑게 말하는 석규는 영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영길은 여전히 건강해 보였고, 거친 농사일에 힘든 것인지 투박한 손에는 굳은 살이 박혀 있었다. 햇빛에 타서 얼굴이며 온몸이 까무잡잡했지만 영길의 얼굴 혈색만큼은 건강해보였다.


“석규 형님! 서서 이러지 말고 앉으쇼!”


영길이 석규를 평상에 앉혔고, 이제 막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다시 싸리나무 울타리가 바닥을 긁으며 대문이 활짝 열렸고, 머리에는 커다란 채반을 짊어진 영자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소리에 시선을 돌린 석규가 소리 질렀다.


“영자야!”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영자가 화들짝 놀라며 채반을 떨어뜨릴 뻔 하자 영길이가 재빨리 소리쳤다.


“어어! 저거봐! 떨어뜨리기만 해, 아주!”


자신의 여동생을 향해 나무라듯이 말하는 영길이와 그런 오빠 영길이를 향해 눈을 쌜쭉 거리는 영자가 무척이나 웃겨죽겠다는 듯이 석규가 깔깔대고 웃어댔다.


오빠 영길이를 향해 뭐라 타박하려던 영자가 깔깔대고 웃는 석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석규를 바라본 영자가 잠시 주춤거리더니 그대로 채반을 평상에 놓고는 휭하니 자신의 사랑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오메! 저 년이 왜 저래?”


영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쓰던 영길의 어깨를 두들기던 석규가 말했다.


“이야, 우리 영자는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어여쁜 아가씨가 다 되었어!”


“시집은 무슨! 저거 아직도 애요 애! 철딱서니 없어 가지고! 어휴! 그저 동무만 보면 좋다고 동무 옆에 하루종일 붙어 있고!”


석규는 또다시 여동생 영자를 흉보는 영길이 웃겨 죽겠다는 듯이 배꼽을 부여잡고 껄껄 웃어댔다.


석규는 외동이었기 때문에 형제가 있는 식구들이 늘 부러웠다.


석규와 영길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 샌가 상다리가 부러질만큼 음식을 담은 밥상을 영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쪽씩 붙잡고 평상으로 엉거주춤 힘겹게 걸으며 나오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석규가 냉큼 뛰어가서 도우려 하자 영길의 아버지 박씨가 소리쳤다.


“어허! 석규는 그냥 앉아 있고! 영길이 이 새끼! 얼른 와서 거들어야지 뭐하고 앉아 있냐! 손가락 부러졌냐?”


박씨 아저씨의 황송한 대접에 석규는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었고, 영길의 엄마는 그런 남편을 흘겨보며 입술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길은 서둘러 밥상 한쪽 모퉁이를 잡고 무거운 밥상을 평상 위에 천천히 올려다 놓았다.


“밥 묵으라! 영자야! 뭐하냐! 나와서 밥 먹어!”


영길의 엄마가 영자를 불렀지만, 영자는 코빼기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한번 언성을 높여 영자를 부르려고 하자 석규가 말했다.


“어무니! 제가 가볼게요! 식사들 하고 계셔요!”


석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영길의 아버지가 석규의 팔을 붙잡고 그에게 숟가락을 쥐어주며 말했다.


“영길이 뭐하고 앉아있냐, 얼른 저 년 데려와 밥먹으라케라!”


그의 말에 영길은 서둘러 입 안에 우겨넣은 숟가락을 쪽 한번 빨고는 밥그릇에 숟가락을 비슴듬히 꽂아두고는 총총 걸음으로 영자의 사랑방으로 걸어 갔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석규는 자신의 밥상에 이것저것 반찬을 놓아주는 박씨 아저씨를 보며 어색하게 웃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와서 밥먹어! 뭐 하냐?”


거칠게 방문을 열며 동생 영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자 영자는 무릎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헝겊에 자수를 놓고 있었다.


“오메오메, 이 년 뭐한다냐? 밥 쳐먹고 해! 안 먹으면 너만 손해여!”


동생 영자가 밥을 마다하고 이상한 짓을 하고 있자 영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영길은 영자의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윽고 동생 영자의 귓불이 바알갛게 물들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이 년 봐라? 석규 형님 보고 저 지랄인겨? 허이구! 지도 꼴에 가시나라고?!


이윽고 동생 영자의 행동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았다는 듯이 영길은 어처구니가 없어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낸 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야! 배곯으면 못 써! 얼른 가서 밥 먹어!”


“입맛이 없어. 가 오빠나 드셔!”


영자는 쑥스럽고 부끄러운 듯이 오빠 영길의 시선을 피하며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영길은 어느새 16살이 되어 봉긋하게 가슴이 나오고 토실토실 엉덩이 살이 오르며 여자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의 하나뿐인 여동생을 바라 보았다.


- 진짜루... 시집 갈 나이가 된 것인가? 으이구, 지 까짓것도 여자라고! 어딜 감히 석규 형님을 넘보긴 넘 봐?


작게 혀를 한번 차며,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젓던 영길은 영자를 향해 무언가 타박을 하려다가 이윽고 포기한 듯 거칠게 방문을 ‘쾅’닫고는 거하게 밥상이 차려진 마당 한가운데 평상으로 향했다.


“영자는 배앓이를 해서 입맛이 없대유! 그냥 우리끼리 먹어요!”


여동생 영자를 위한 거짓말을 내뱉은 영길은 입술을 씰룩이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영길은 먹다 만 밥그릇에 밥을 퍼 입안에 넣기 시작했다.


석규는 그런 영자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영자의 사랑방을 쳐다 보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밥숟가락 위에 이것저것 반찬을 먹기 좋게 올려주는 박씨 아저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수저를 뜰 수 밖에 없었다.


“아이고! 야! 나 배터져서 죽겠다!”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드리며 누워서 말하고 있는 석규형님을 바라 보며 영길이 웃었다.


“그러게! 형님 서울가서 굶기만 했소? 어찌 삐쩍 곯아서 말라깽이요? 피부는 희여멀건해서! 얼굴은 또 왜 그리 기생오라비처럼 곱디 곱소? 서울물을 먹으면 다 그리 얼굴이 새하얘지나?”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던 영길을 향해 석규가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맨날 지하실에 숨어있고 그래서 햇빛을 못봐 그런가. 내 얼굴이 하얗긴 하지?”


“여자가 분가루라도 바른 것 같네! 대학물 먹었더만 여자들이 형님 좋다고 달라붙어 못살게 굴죠?”


짐짓 석규를 놀리는 듯이 짖궂은 농을 던지자 석규는 얼굴이 바알갛게 변해가며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저었다.


“아이고, 여자는 무슨!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야!”


석규의 말에 영길은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학생 운동인가 뭔가 하느라 바쁘요? 무슨 운동을 대학생들은 다 모여서 같이 하는갑네?”


그의 말에 석규 역시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길이 너만 알고 있어라. 지금 내가 여기 온 것도..... 사실은 도망 온거야. 학생들 잡아죽이지 못해서 서울은 지금 난리다...”


“도망이요? 잡아 죽인다고요?”


영길은 똥그래진 눈으로 석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서울 대학생들이 모여서 운동을 같이 하는데 왜 어른들이 학생들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라는 것인지 영길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의 영길의 질문에 석규는 며칠 전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긴급조치 9호의 여파로 그 이전보다 학생운동의 분위기는 험악해져지고 있었다.


학교 내에서도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둘러싸고 유언비어를 날조하거나 유포한다는 명목으로 사복차림의 경찰들이 학생들을 연행해갔다.


특히 석규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비밀서클과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고려대학교라는 이유로 강제 휴교조치까지 있었다.


석규는 휴교령 조치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2천명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집결하여 매섭게 시위를 벌였기 때문임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학교 내부에서는 마치 살얼음판과 같이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계속 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들을 둘러싼 민주화 운동의 불길은 거세어 잠재울 수 없었다.


결국은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와 서강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의 휴교령이 내려졌다.


4월에 이르러서는 서울대학교 농대에 다니고 있던 석규의 친구 김상진은 유신정권을 비판하고 타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던진다면서 칼로 할복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곧 숨졌다.


석규는 그의 장례식장을 찾아가지도 못했다. 사복차림의 경찰들이 잠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불을 키고 민주화 운동을 막기 위해 경찰을 비롯한 정치 세력들이 행동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렇게 시간이 흘러 8월 말이었다.


석규는 서울대학교에 있는 자신의 민주화운동 투쟁 동무들을 만나 10월 서울대학교 축제기간에 맞춰 데모운동을 벌일 작전을 세웠다.


학생들을 둘러싼 이 운동은 확대되어 반유신운동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을 추적하는 경찰들을 피해 아버지의 고향으로 석규는 숨어든 것이다.


“나중에 다 이야기 해 줄게!”


석규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하루밤을 꼬박 지새워야할 것을 알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영길을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 영길이 공부는 잘 하고 있는거야? 형이 보내준 책 얼마나 봤나 어디 한번 볼까?”


석규의 시선이 영길의 방에 놓은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 향하자 이윽고 낡은 책 서너권이 눈에 들어왔다.


맨들맨들 윤이 나서 책의 바깥쪽 테투리에 손때가 가득 묻은 것을 보아하니 책을 정말 수십번 아니 수백번은 본 듯한 것이 느껴졌다.


“우리 영길이 장하네! 대견하다!”


석규가 대견하다는 듯이 영길의 머리를 쓰다듬자 영길이 부끄러운 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석규를 향해 말했다.


“형님! 좁아도 오늘은 여서 자고 가소! 내 심심해!”


18살이나 되어 이제는 건장한 성인 체격의 영길이었지만 형이 없어서일까 6년만에 만난 석규를 향해 아직 어린아이가 떼쓰듯이 말하는 영길이었다.


그런 영길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던 석규를 방바닥에 어지럽혀진 이불위로 폴싹 눕자 영길은 신이 난 듯 한껏 커진 눈동자로 활짝 웃어보이며 석규의 옆에 철싹 달라붙어 누웠다.


영길과 석규가 함께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안반데기 꼭대기마을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처연한 초가을 밤만 무심히 깊어지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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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우리들의 벽사일기를 끝마치며 24.01.31 14 2 7쪽
221 외전3-221(완).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2) 24.01.31 12 1 11쪽
220 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24.01.31 10 1 11쪽
219 외전3-219.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2) 24.01.30 10 1 11쪽
218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24.01.30 9 1 12쪽
217 외전3-217.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2) 24.01.29 10 1 12쪽
216 외전3-216.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1) 24.01.29 11 1 12쪽
215 외전3-215.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2) 24.01.28 9 1 12쪽
214 외전3-214.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1) 24.01.28 13 1 12쪽
213 외전3-213.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2) 24.01.27 12 1 12쪽
212 외전3-212.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1) 24.01.27 10 1 11쪽
211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24.01.26 12 1 11쪽
210 외전3-210. 등교(登校)- 무당의 딸 (1) 24.01.26 10 1 11쪽
209 외전2-209(완). 출가(出家)- 출가(出家) (3) 24.01.25 13 1 14쪽
208 외전2-208. 출가(出家)- 출가(出家) (2) 24.01.25 10 1 12쪽
207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24.01.24 12 1 12쪽
206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24.01.24 14 1 11쪽
205 외전2-205.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2) 24.01.23 14 1 12쪽
204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24.01.23 9 1 12쪽
203 외전2-203.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2) 24.01.22 14 1 11쪽
202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24.01.22 14 1 11쪽
201 외전2-201.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2) 24.01.21 14 1 12쪽
200 외전2-200.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1) 24.01.21 13 1 12쪽
»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24.01.20 17 1 11쪽
198 외전2-198.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2) 24.01.20 17 1 12쪽
197 외전2-197.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1) 24.01.19 16 1 11쪽
196 외전1-196(완).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4) 24.01.19 16 1 17쪽
195 외전1-195.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3) 24.01.18 18 1 12쪽
194 외전1-194.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2) 24.01.18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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