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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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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조회수 :
6,923
추천수 :
253
글자수 :
1,186,938

작성
24.01.2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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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DUMMY

결국 애타게 바라보는 영길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노파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옅은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노파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니가... 그리 간절하다면... 노추산 계곡 입구에서 대기3리 쪽으로 길을 따라 한시간 쯤 걸으면 절이 하나 나올끼다. 절 이름이 ‘발왕사’거든? 거 함 가봐라! 주지스님이 도와주실끼다! 가 빌어라! 살려주소 하고 가 빌어라!”


“절이요?”


“그래, 맞다! 절에 가야한다! 퍼뜩 가래이! 시간이 없다!”


마른 고추를 행주로 닦던 노인은 잠시 행주는 평상에 내려놓은 뒤, 영길의 두손을 잡고 말했다.


노파가 꼭 쥔 영길의 손등 위에는 아까 영자가 입을 쩍 벌리고 영길의 손을 물어서 일까 어린 영자의 이빨자국이 남아 피딱지가 굳어 있었다.


“어이구.... 어이구.... 이 놈을... 이 놈을... 불쌍해서 우짤꼬... 불쌍해서 우째. 아가! 잘 들거래이! 아무 나중에... 내 죽고 난 뒤 아주 나중에.... 니가 어떤 여자 하나를 도와줘야 한대이. 니캉 내캉 그럴 팔자로 이 길로 들어섰나카이. 내 팔자도 기구하지만 니 팔자도 못지않다이! 전생의 일잉께... 니가 도와야한다잉! 기억하그래이! 꼭 그 젊은 처자 도와서... 불타는 그 여자를... 불타는 그 그릇을 도와야 한다! 기억하래이!”


한숨을 깊게 내쉬며 거친 사투리를 내뱉는 노파의 얼굴을 잠시 쳐다본 영길은 결의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당집 밖으로 나섰다.


먼 미래의 일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던 영길은 지금 노파가 말하고 있는 말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길의 머릿 속에는 서둘러 늙은 무당이 일러준 절로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대기3리 쪽 방향을 쳐다보는 영길의 눈동자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영길은 또다시 미친 듯이 내달렸다.


노추산 계곡 입구에서 5~6킬로 미터 쯤 떨어진 발왕사는 오지 중에 오지였다.


도암댐과 청량한 송천을 내려다보는 발왕사는 우리나라에서 전기가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왔다고 전해지는 외지(外地)였다. 2011년에나 전기가 들어왔다고 하니 얼마나 산중 시골구석이었는지 알만했다.


그런 산속 외진 곳에 존재하는 발왕사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꾸불꾸불한 좁고 좁은 산길은 평탄하지 않았고, 곳곳에 우거진 수풀과 나무초목 그리고 자갈돌들로 이 길이 사람이 다니는 길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주변에 민가도 없어 길을 물을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미친 듯이 숨을 헐떨이는 영길은 저 멀리 은은한 불빛과 함께 코 끝에서 맡아지는 향긋한 꽃냄새에 무언가 홀린 듯이 뛰어가고 있었다.


어린 영길이 맡았던 그 꽃냄새가 연꽃 냄새였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서야 시간이 흘러 알게 되었다.


‘발왕사’라고 써진 낡은 팻말을 본 순간 영길은 그래도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야 말았다.


거의 두시간 가까이를 미친 듯이 내달려 산속 좁은 길을 헤맨 그였다.


사찰 내부에 너른 마당에 풀썩 쓰러진 영길을 발견한 것은 주지스님의 명령에 따라 마당을 쓸러 나온 젊은 스님이었다.


아침마다 절 입구 마당을 싸리빗자루로 꼼꼼히 쓸어내렸건만 뜬금없이 늦은 밤에 빗자루질을 하라는 주지스님의 말씀이 통 이해가 가지 않던 젊은 스님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 늦은 밤에 뭣하러 경내를 쓸어야하나 싶었지만 주지스님의 명령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군말없이 싸리빗자루를 들고 절 가운데 마당으로 나왔던 터였다.


하지만 곧이어 '털썩'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은 영길을 발견한 젊은 스님은 깜짝 놀라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다른 스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





이른 아침에 절에서 공양을 드리는지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직하게 경을 읊는 스님들의 목소리가 작게 울리고 있었다.


“일어나셨는지요?”


이윽고 창호지를 붙인 사찰 방문이 열리고, 흰쌀죽을 쑨 것 같은 미음과 간장종지가 담긴 작은 소반을 들고 젊은 스님 하나가 영길에게 다가왔다.


“스님! 이 곳이... 이곳이... 발왕사 인가요?”


“예, 발왕사입니다.”


작게 미소지으며 바닥에 소반을 내려놓고, 영길을 바라보며 스님이 말했다.


“저 주지스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지금 빨리요! 꼭 만나뵙고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영길이 젊은 스님의 팔소매를 붙잡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문 쪽에서 다른 젊은 스님의 헛기침 소리와 함께 껄껄대고 호탕하게 웃어대는 노인의 거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난게야? 그래, 무슨 일로 그리 미친놈 마냥 뛰어댕겼누?”


노인의 말에는 장난기가 가득 묻어 나 있었다.


뒷짐을 지고 서있는 노인은 휘청거리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날카롭게 생긴 마른 체형이 젊은 스님 하나가 그의 등 뒤를 받쳐주며 서 있었다.


“스님! 주지 스님! 제 동생 영자 좀 살려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누워있는 이불 밖으로 미친 듯이 뛰어나와 문지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영길이 애원했다.


그런 영길을 미소를 띤 채 물끄러미 쳐다보던 늙은 노승(老僧)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저 먼산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진정...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할 게야? 시키는대로?”


“그럼요! 하고 말고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겠습니다.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옛끼! 인석아! 부처님 앞에서 죽는다는 말이 그리 쉽게 나와?”


“네! 죽진 않겠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겠습니다. 그러니 방도를 알려주십시오!”


눈가가 시뻘개진 영길은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노승을 향해 부탁했다.


노승은 눈을 살며시 감으며 말했다.


“인재(人才)로다 인재... 가엾은 것.... 정 동생을 그리 살리고 싶거든... 노추산 계곡 입구에 돌을 쌓아 돌탑을 만들거라. 높이는 너의 가슴 명치까지는 와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천개다.... 할 수 있겠느냐?”


불쌍하다는 듯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영길을 내려다보던 노승이 말하자 영길은 한치의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하고 말고요! 쌓겠습니다! 제 손이 부서지고, 허리가 망가진다 해도 어떻게든 꼭 쌓겠습니다! 영자가 살 수만 있다면 꼭 쌓고야 말겠습니다!”


그런 영길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노승은 고개를 살며시 가로젓더니 이윽고 가보라는 듯이 그를 향해 손바닥을 들어 휘휘 젓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노승을 향해 큰 절을 한번 올린 영길은 그대로 암자 밖으로 뛰쳐나가 그대로 동생 영자와 부모님이 있는 대기리 꼭대기 마을로 향했다.


미친 듯이 사찰 한가운데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영길을 주지스님이라는 노승이 혀를 차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발왕사에서 하루를 꼬박 기절한 채, 영길이 의식을 잃은 그 시각 영자 역시 어른들이 행한 여러 가지 비방책으로 밤새 시달리고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어디선가 주워 들은 것이 있어서인지 영자를 향해 굵은 소금도 뿌려보고, 팥도 뿌려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또 어떤 이들은 새끼를 꼬은 금줄을 쳐서 가둬 두어야 한다느니, 씨뻘건 고추를 연기에 태워 쐬어야한다느니 갖가지 비방을 말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지역에 있는 무당집이란 당집은 전부다 수소문하고 다니기에 이르렀다.


영길은 부모님에게 자신이 발왕사 주지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잠자코 있으라는 말 뿐 그의 부모님은 전혀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의 허락이 없었기에 영길은 노추산 계곡으로 돌탑을 쌓으러 다닐 수가 없었다.


대신 귀신이 씌인 영자를 영길이 감시하며 지켜보기로 했고, 영길의 부모님은 두분이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당들을 찾아갔다.


영길의 부모님이 애타는 마음으로 무당들을 수소문하고 다니며 수많은 무당들을 만났다. 하지만 한 번도 동생 영자에게 귀신이 씌인 것을 알아맞히는 무당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영자는 자꾸 이상해져만 갔다. 결국 영자는 자기 몸을 해하기에 이르렀다.


영길이 밤새 영자를 지켜보며 밤을 꼬박 새우다 지쳐 잠시 벽에 기대 잠이든 찰나 부엌에서 무언가 달그락 거리면서 밥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은 강릉에 유명하다는 점집이란 점집은 죄다 쏘다니며 외출 중이었기에 영길의 집 안 부엌에서 음식을 할 사람은 영자 밖에 없었다.


번개처럼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뛰어간 영길을 바라보며 영자가 해맑게 웃었다.


“오빠! 배고프지? 밥 먹어!”


영자는 오빠 영길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영자는 이윽고 부엌 아궁이 옆으로 천천히 걸어가 평평하게 놓인 돌판 위에 서서 도마에 든 식칼을 움켜 쥐었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영자가 말했다.


“시원하게 마른 새우에 된장 좀 풀어서 배춧국 끓여 먹자!”


영자는 이어서 신나게 칼질을 하는데 영길이 영자의 손에 든 서슬퍼런 식칼을 향해 시선을 돌린 순간, 영자는 배추를 서걱서걱 써는 줄 알았더니 자기 손을 썰고 있었다.


순식간에 도마 위에는 영자의 잘린 새끼손가락과 약지 손가락 두개가 나뒹굴었다.


영자의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영자는 해맑게 웃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영자야!”


미친 듯이 영자를 향해 달려간 영길은 그대로 영자를 부여잡고 주저 앉아 울 수 밖에 없었다.


영길이 달려가 바라본 동생 영자의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텅빈 껍데기 같았다.


영길의 부모가 수십 명의 무당을 찾아다니며 방법을 찾는 동안 영자의 이상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새벽녘에 사라진 영자는 대기리 마을 안반데기에 끝없이 펼쳐진 너른 배추밭에 가서 새끼줄에 자기 목을 걸기도 했으며, 가만히 있다가 괴성을 지르며 머리에 피가 날 때까지 자기 방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아대기도 했다.


하루는 영자를 움직일 수 없게 꽁꽁 묶어둔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영길을 향해 앙칼진 여자목소리를 한 영자가 말했다. .


“죽어야 할 년이 아직도 살아있네! 하지만 곧 죽을 걸? 발버둥 쳐봐야 이 년과 이 년 가족은 모두 죽는다!”


“우리 영자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제발 좀 나가줘! 제발 우리 영자 좀 살려줘!”


영길이 울며 애원했지만 깔깔대고 웃으며 영자에게 실린 여자귀신이 영길을 비웃었다.


순간 영자의 두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영자의 입에서 앙칼지고 째지는 듯한 날카로운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흘러나왔다.


“이 년이 연모하는 남자가 결국 오늘 새벽 머리통이 깨져서 죽었구만! 키킥! 내 그리 된다 일렀거늘! 아마 이번주 안으로 가루가 돼서 이곳으로 올걸?”


영자는 가끔씩 눈이 검게 변하면서 저주인지 모를 예언같은 것들을 입 밖에 쏟아내곤 했다.


지금 역시 영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비명처럼 내지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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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우리들의 벽사일기를 끝마치며 24.01.31 15 2 7쪽
221 외전3-221(완).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2) 24.01.31 13 1 11쪽
220 외전3-220. 등교(登校)- 엄마와 딸 사이 (1) 24.01.31 11 1 11쪽
219 외전3-219.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2) 24.01.30 11 1 11쪽
218 외전3-218. 등교(登校)- 아버지의 은장도 (1) 24.01.30 10 1 12쪽
217 외전3-217.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2) 24.01.29 10 1 12쪽
216 외전3-216. 등교(登校)- 현대문방구 아줌마 (1) 24.01.29 12 1 12쪽
215 외전3-215.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2) 24.01.28 9 1 12쪽
214 외전3-214. 등교(登校)- 친구라는 존재 (1) 24.01.28 14 1 12쪽
213 외전3-213.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2) 24.01.27 13 1 12쪽
212 외전3-212. 등교(登校)- 학교괴담 13개의 계단 (1) 24.01.27 10 1 11쪽
211 외전3-211. 등교(登校)- 무당의 딸 (2) 24.01.26 13 1 11쪽
210 외전3-210. 등교(登校)- 무당의 딸 (1) 24.01.26 10 1 11쪽
209 외전2-209(완). 출가(出家)- 출가(出家) (3) 24.01.25 14 1 14쪽
208 외전2-208. 출가(出家)- 출가(出家) (2) 24.01.25 10 1 12쪽
207 외전2-207. 출가(出家)- 출가(出家) (1) 24.01.24 12 1 12쪽
206 외전2-206.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3) 24.01.24 14 1 11쪽
205 외전2-205.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2) 24.01.23 14 1 12쪽
» 외전2-204. 출가(出家)- 천불천탑(千佛千塔) (1) 24.01.23 10 1 12쪽
203 외전2-203.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2) 24.01.22 14 1 11쪽
202 외전2-202. 출가(出家)- 춘향이 놀이 (1) 24.01.22 14 1 11쪽
201 외전2-201.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2) 24.01.21 14 1 12쪽
200 외전2-200. 출가(出家)- 민주화 운동 (1) 24.01.21 13 1 12쪽
199 외전2-199.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3) 24.01.20 17 1 11쪽
198 외전2-198.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2) 24.01.20 18 1 12쪽
197 외전2-197. 출가(出家)- 안반데기 꼭대기 마을 (1) 24.01.19 17 1 11쪽
196 외전1-196(완).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4) 24.01.19 16 1 17쪽
195 외전1-195.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3) 24.01.18 19 1 12쪽
194 외전1-194. 신병(神病)- 여래아(黎崍阿) (2) 24.01.18 1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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