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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님의 서재입니다.

잘 살았소이다.(힘들었지만)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별별조니
그림/삽화
조니
작품등록일 :
2018.05.03 08:29
최근연재일 :
2020.01.03 13:00
연재수 :
171 회
조회수 :
82,426
추천수 :
345
글자수 :
882,289

작성
19.01.30 07:00
조회
170
추천
1
글자
12쪽

141.정묘호란 이후...

DUMMY

[1627년 음력 4월 19일 모문룡이 정주 일대의 피난민들을 약탈하고 학살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음력 5월 25일 살고자 도망쳐 오는 조선인들이 한인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조실록-]


“어떻게 밖의 사정은 달라졌냐?”

“예, 아버지. 오랑캐 놈들이 물러나고 있는데요? 며칠 전보다 숫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우리도 슬슬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구나.”

“식량도 거의 떨어져 가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네요.”


마루의 아들들 중 하나가 밖으로 나가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돌아왔다. 금나라 병사들은 이제 자신들의 원하는 목적을 다 이루었으니 더 이상 싸울 이유도 조선에 남아있을 이유도 없었기에 다들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 짐들 다 챙겼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아이고, 어머니. 몇 주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만 고생 많았겠니? 너희들도 다 고생 많았지.”

“자, 그럼 집으로 돌아가 볼까?”


대가족은 자신들이 임시로 머물렀던 피난처의 구멍을 잘 막아둔 채 평양성에 있는 집으로 이동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막집을 지어놓고 땅속에서 생활하다보니 햇빛을 오래 보지 못해 얼굴을 흰빛으로 바랬고 큰 동작들을 못하니 허리와 무릎이 뻐근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숨어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정말 이게 우리 평양성이란 말이야?”

“읍, 시체 썩는 냄새. 새아가야 우리 손자손녀 코 좀 막아줘라.”

“사람들이 다... 변발을 하고 있고.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잖아?”

“성벽 위에는 병기들 대신 먼지만 잔뜩 앉아있고... 이거 완전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군.”

“거리에는 깨지고 부숴 진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평양성에 돌아오니 이전에 알고 있던 평양성의 모습과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임진년과 정유년 왜란을 거치고 나서 다시 넉넉하고 평화로움을 되찾은 평양성은 35년 만에 다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머리칼이 밀려져 있었고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집들 곳곳은 모두 약탈해갔고 주변에는 정묘호란당시 사망한 사람들의 시체가 버려져 썩어가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집 꼴도 말이 아니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다 털어갔나 보군....”

“나쁜 놈들 결국 우리 집도 다 털어 갔나본데! 야! 가서 확인 해봐!”

“예, 아버지. 그런데 이건 뭐... 확인해 보나마나 아닌가요?”

“설마? 설마!”


대가족의 대부분은 이미 오랑캐들이 거의 다 약탈해 갔음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돈과 재물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덜했다. 하지만 하루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직 이뤄야 될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방안에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뒤졌다.


“아이고, 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왜 저런다니?”

“없어! 없어!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어!”

“하루야 뭐가 문제인데?”

“내가 모아놨던 은자 60냥이 모두 사라져 있어!”

“그야, 당연하지. 오랑캐 놈들이 돈 되는 거는 다 가져갔을 거 아니야?”

“남령초도 다 사라졌어! 남령초 씨앗까지도!”

“그건 좀 너무했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라가 이렇게 개판이 되었는데...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하루는 마루와 친구들의 지금 같은 시국에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는 말을 듣지도 않았다. 하루는 아수라장이 된 집안 이곳저곳을 수십 번은 뒤졌고 마당과 창고 심지어 땅까지 파면서 자신이 어렵게 모아놨던 은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냈다. 하지만 이미 은자는 오랑캐들이 다 가져간 뒤였다.


하루는 먼지투성이가 된 몸으로 땅에 털썩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렸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었지만 막상 그것을 당면하고 나니 그 너무나도 큰 상실감의 고통을 견뎌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내 은자! 내가 오랫동안 어렵게 모아온 은자들이!”

“하루야!”

“으악! 으아아악! 그게, 그게! 어떻게 모은 은자들인데!”

“하루야, 진정해!”

“으아아악! 조금만! 조금만 더 모으면 하나를 멋지게 데려올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하면! 이제 은자도 없고 남령초도 없어! 다 끝났어! 다 끝났다고!”


하루는 하늘을 바라보며 오열했고 너무나도 큰 상실감과 목적의 종착점에서 다시 멀어져서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구슬펐다. 하루의 몸부림침을 막고 진정시키기 위해서 친구들이 달려가 진정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깟 신의 경전? 집을 지켜줘? 이런 거는 가져가지도 않고! 내가 십년동안 고생에서 모은 돈과 패물들은 모두 가져가! 이까지 것 찢고 태워버려야!”

“하루야 참아! 성서를 태우면 벌 받는 거 몰라?”

“시끄러워! 신이 있었다면 왜 평화롭고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던 나에게 이런 크나 큰 시련과 고통을 안겨주시는 거야! 왜! 내가 하나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마다 난관을 만들어서 나를 더욱 더 힘들게 만드는 건데! 왜,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아주지 못한 건데!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거야! 왜! 왜!”


하루는 오랑캐들이 뭔지도 모르고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마당에 버리고 간 어드가 준 라틴어 신약성서의 일부분을 보고선 더 크게 진노했다. 하루는 자신의 처지를 애써 괜찮은 척 웃으며 살아왔지만 그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자 이성을 잃고 날 뛰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성서를 태워버리고 집안에서 부숴진 물건들을 깨부수고 난동을 부리려 하는 하루를 온몸으로 막아섰다. 힘으로 하루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루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하루의 친어머니인 유키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루야? 우리아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이 엄마는 다 안다.」

「어머니! 전 절대로 못 참아요! 왜 이런 비극이 찾아와서 이 따위 시궁창 같은 인생이 되었는지!」

「자, 받아라.」


하루의 어머니는 다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하루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주면서 뭔가를 건네주었다.


「이거 다 팔아버려라. 이건 20년 전에 나가시노에 와서 나한테 준 옥들, 이건 10년 전에 준 것이다. 또 이건 얼마 전에 조선에 왔을 때 선물해 준 것이고.」

「어머니... 이걸 왜 저한테?」

「네가 모은 돈에 비하면 얼마 값어치는 안 되겠지만 너 필요한 거에 써. 아, 얼마 뒤면 죽을 쭈글쭈글 꼬부랑 노인네가 이런 것 차고 있어봤자 뭔 소용이 있냐? 엄마는 죽기 전에 우리 하루가 늘 행복했으면 하는 게 엄마 생의 마지막 소원이다.」

「어머니...」

“아들? 친엄마만 있는 것이 아니야? 자, 이 패물들 너 가져라. 아이 나도 이제 이런 거 쓸모없어. 우리 하루 슬퍼하면 여기 있는 대가족 모두가 슬퍼지는 거 몰라? 자, 그만 오열하고 얼굴 쫙 펴!”

“어머니? 어머니까지...”


하루의 친엄마와 마루의 어머니는 하루에게 자신들의 늘 가지고 있던 옥장신구들을 떼어서 하루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 여기요. 저희도 하루 삼촌한테 옥가락지 드릴게요.”

“저도요. 자 받으세요.”

“어? 정말, 나 줘도 괜찮은 거니?”

“그럼요. 하루삼촌이 우리랑 함께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도와주셨는데요.”

“자! 이것도 받아라. 여기 있는 친구들 은자 다 보았는데 겨우 스무 냥이 조금 넘는다. 훨씬 부족하겠지만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도와줄 테니까 일본에 다녀올 여비걱정은 하지 말라고.”

“얘들아....”

“으이고, 우리 30년 지기 절친 하루답지 않게 왜 이렇게 나약해 졌어! 자! 이거 봐봐!”

“이건?”

“그래, 저번에 우리가 산, 밭의 땅문서! 이 땅 다시 팔아봤자 은 몇 냥 안 되겠지만 여기서 꾸준히 마늘 농사를 짓는다면 반드시 몇 년 안에 은자 수십 냥 만들어 낼 수 있어! 그 주인양반이 밭을 하나도 쓰지 않아서 척박한 밭이지만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열심히 갈고 새롭게 단장해서 진심으로 성심성의껏 농사짓는다면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할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하루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전보다 갑절로 많아진 자신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들, 자신과 함께 인생 동고동락 새옹지마를 평생 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아직 곁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하루를 다시 나락으로부터 구원해줬다.


“하하, 이거야 원. 어쩔 수 없네. 다들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큰 소란을 피워서 말이죠.”

“아니야, 당연히 그럴 수 있지. 큰 꿈에 거의 도달했는데 원점으로 돌아갔으니까.”

“자, 하루? 빨리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야지? 일본에서 애인이 기다리고 있잖아?”

“응, 그래야지! 히히, 이거 인생 완전 잘 살았구먼? 이렇게 난장판이 된 상황 속에서 함께 비극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 이렇게나 많으니 말이야?”

“당연하지!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하루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다시 시작하면! 우리에겐 아직 그럴 기회가 많이 남아있어!”


하루는 다시 의지를 되찾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하루의 인생을 완벽하게 끝마칠 수 있게 만들어줄지 아니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은 아쉬움 삶이 될 지를 결정할 것이다.


하루는 다시 열정에 가득 찬 눈빛으로 기지개를 켰다.


엄청난 비극이 찾아온 평양성에서도 백성들은, 사람들은 그렇게 다들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하나씩 세워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평양성 보다 위쪽 지역에서는 아직 비극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적들의 수급을 베어 오거라!』

“아이, 명나라 나리들께서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우리들은 엄연히 조선 백성인데?”

“맞습니다요. 칼 좀 치워 주시죠. 아, 조선말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오랑캐란 말입니까?”

『네 놈들의 변발이 너희들을 오랑캐라고 증명해 주고 있지 않느냐?』

“그건 무슨...”

『베어라! 조선말을 하던 만주어를 하던 변발을 하고 있는 자들은 다 우리의 적이다!』

“무슨?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


모문룡은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 가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적들이 물러서자 그제 서야 가도 주변의 평안도 지역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서 그가 행한 행동은 조선에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는 민가에서 식량을 약탈하는 것을 뛰어넘어 여진족의 포로로 잡혀있다 변발이 된 채로 풀려난 조선 백성들을 모조리 참수했다.


『도독, 아무리 봐도 조선 사람들인데 꼭 이렇게 까지 해야 됩니까?』

『뭐, 어쩔 수 없지 않나? 분명 명 조정과 황제께서도 지금쯤이면 조선에 오랑캐 3만이 쳐들어 왔다는 사실을 알 텐데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면 어찌 되겠느냐?』

『하긴...』

『그리고 변발을 한 수급이면 분명 황제께서도 오랑캐인 줄 알 것이다. 또 수급을 많이 베어서 보내면 잘 싸운 줄 알고 우리에게 또 은자를 잔뜩 보내실 줄 어찌 아느냐? 은자가 많이 오면 너희들한테도 잔뜩 나눠 줄 터이니 변발을 한 자들의 수급 베는 일을 게을리 하지마라!』


돈 욕심, 권력 욕심, 명예 욕심... 애초에 조선을 도울 생각은 눈곱만큼 없었던 모문룡은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변발을 한 조선 백성들을 무참히 죽였다.


수백 수천의 조선 백성이 모문룡의 손에 억울하게 죽어나갔다. 오랑캐 손에 살아 돌아오니 이젠 다른 놈들의 손에 죽어나갔다.


이렇게 조선의 비극은 계속 되어졌다.


작가의말

저 때 살았던 민초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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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3.편안히 돌아가시다. 19.02.09 191 2 11쪽
142 142.붉은 머리의 서양인 19.01.31 173 1 12쪽
» 141.정묘호란 이후... 19.01.30 171 1 12쪽
140 140.정묘호란(4) 19.01.29 127 1 12쪽
139 139.정묘호란(3) 19.01.28 124 1 12쪽
138 138.정묘호란(2) 19.01.26 143 1 12쪽
137 137.정묘호란(1) 19.01.25 154 1 12쪽
136 136.누르하치의 최후(2) 19.01.24 191 1 11쪽
135 135.누르하치의 최후(1) 19.01.23 154 1 11쪽
134 134.갑자년 통신사(6) 19.01.22 236 1 12쪽
133 133.갑자년 통신사(5) 19.01.21 145 1 11쪽
132 132.갑자년 통신사(4)-행방불명 19.01.19 155 1 12쪽
131 131.갑자년 통신사(3)-나고야의 밤 +1 19.01.18 166 1 11쪽
130 130.갑자년 통신사(2) 19.01.17 165 1 11쪽
129 129.갑자년 통신사(1) 19.01.16 208 1 12쪽
128 128.이괄의 난 19.01.15 175 1 11쪽
127 127.인조반정(4)-왕이 된 인조 19.01.14 178 1 12쪽
126 126.인조반정(3)-막으려난 자. 일으키려는 자 19.01.12 169 1 12쪽
125 125.인조반정(2)-수상한 낌새 19.01.11 156 1 11쪽
124 124.금가는 명나라(4) 19.01.10 183 1 13쪽
123 123.금가는 명나라(3) 19.01.09 195 1 12쪽
122 122.자식들의 혼인(4) 19.01.08 184 1 12쪽
121 121.자식들의 혼인(3) 19.01.07 203 1 13쪽
120 120.자식들의 혼인(2) 19.01.05 168 1 12쪽
119 119.자식들의 혼인(1) 19.01.04 196 1 12쪽
118 118.금가는 명나라(2) 19.01.03 269 1 12쪽
117 117.금가는 명나라(1) 19.01.02 18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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