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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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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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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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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화. 잊어버리는 약 같은 게 있으면 좋겠어.

DUMMY

“······.”



개강. 영원할 것 같던 방학이 끝이 나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2학기가 시작됐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교는 방학이 말도 안 되게 길었으니까. 이야, 한 달 쉬어도 한 달 또 있어~ 그러고도 조금 더 있어~ 와 진짜 해외 나가서 살고 와도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지요.



“스흡─”



절망적인 마음으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강의실로 향한다. 이번 학기 역시 시간표 설정을 망······했다기보다 나에게 자유는 없었다. 왜 꼭 전공 수업은 아침 9시에 하는 걸까. 좀 제발 오전 수업은 11시쯤으로 하고 싶어.






하린이와 헤어진 게 며칠 전. 아직 멘탈을 다 추스르지 못 했지만, 어쩌겠는가. 개강은 했는데. 학교는 가야지. 그래서 간다. 뭔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할 것 같은 피해망상이 생겨날 것만 같다.



“얻─”



강의실로 가는 길. 문득 앞쪽에 소미가 걸어가는 게 보인다. 와, 이게 얼마만에 보는 거야. 종강 이후 방학 때에는 정말 한 번도 못 봤으니, 거의 두 달 반 만인가 싶다. 반가워서 말을 걸려다가 멈칫. 말이 턱 막힌다. 윽. 말을 못 하겠어.



“어? 웅도 거기서 뭐해?”

“어, 으응. 인사하려다가.”

“응! 방학 잘 지냈어?”



그나마 다행히, 막 강의실을 들어가려던 소미가 몸을 돌려 내 쪽을 보곤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해서 어색한 순간을 돌렸다. 아 왜 인사 안 나왔지.



“뭐, 그냥그냥 못 죽어서 사는 거지.”

“들었어, 얘기······.”

“어······?”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복도에서 얘기하는데, 대뜸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소미. 어 잠깐만.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가지 말라고. 개강 첫 날부터 이런 멘탈의 충격은.



“하린이······ 헤어졌다구.”

“······응. 하린이한테 들었어?”

“응.”



소미의 말에 나는 잠자코 물어봤다. 고개를 끄덕이는 소미. 하. 안하린. 끝까지 이렇게······ 아니야, 우리 좋게 헤어졌어. 그래, 어차피 다가올 일이야. 소문 다 났겠지. 소미가 나한테 먼저 말할 정도면. 어차피 맞이해야 하는 운명이라면, 그런 시련 따위. 와봐랏!






**






“시간 되게 애매하게 남네.”

“원래 개강 첫 주는 그러잖아요~”



전공수업이 끝나고 과방으로 가는 길. 전공 교수님은 어째 첫 주 오리엔테이션 시간인데도 1시간을 쓰셨다. 뭐, 2시간짜리 수업 시간이니. 내 말 한 마디에 하린이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그것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소미. 오랜만에 보는 라나 누나. 달라진 건 크게 없다. 나랑 하린이가 헤어진 거 말고는.



“헤어진 거 치고는 둘이 안 어색하네?”

“네? 아, 넹! 저희 좋게 헤어졌거든요!”



라나 누나가 특유의 끈적하고 느릿한 말투로 말을 건다. 아, 되게 오래간만에 듣네 이 말투. 하린이는 쾌활하게 대답한다.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라나 누나. 그러더니 싱긋 웃으며 말한다.



“웅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뇨 저도······ 저도 괜찮습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아닌 건 아닌 거야. 나는 그렇게 칼로 물 긋듯이 바로 선 못 긋겠더라. 라나 누나의 조롱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한다.



“에이, 뭔 소리예요 오빠! 저희 좋게 헤어졌잖아요!”

“그렇지······ 그렇긴 한데.”



좋은 게 좋은 거지. 솔직히 난 헤어지기 싫었다고. 아직도 하린이 너 보면 쫌 기분 이상한데. 최소한 상처가 아물 시간 정도는 줘라. 하린이는 천진난만하게 말하더니 과한 텐션으로 앞서 걸어가다 문득 멈춰선다.



“좋게······ 흑! 헤어졌으니까······!”

“갑자기?!”



진짜 뜬금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하린이. 뭐야, 조울증이야?! 갑자기 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데.



“어쨌든 괜찮아요.”

“아니 그렇게 울어놓고 뭘 괜찮다는 건데······.”



더욱 어색한 분위기로 걷는다. 소미는 더욱 불안한 표정. 라나 누나는 대충 파악했다는 느낌. 과방까지 가는 짧은 거리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와 ! 안녕하세요 언니 오빠들!”

“오~ 하린이 안녕~”



과방에는 먼저 온 손님들이 계신다. 부학회장인 순정이 누나와 학회장인 성준이 형. 순정이 누나의 패거리(?)인 은정이 누나랑 영미 누나도 있다. 하린이는 여전한 인싸력으로 모두에게 인사하며 밝게 웃는다.



“얘기 들었어. 헤어졌다며.”

“흐에에엣!! 언니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면! 전 뭐라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안 그래도 방금 전에 그것 때문에 울고 왔는데!”

“아······ 미안.”



저세상 대화. 원래 말투가 직설적인 영미 누나는 하린이의 기분 따위 배려하지 않고 바로 직구로 내다 꽂아버린다. 하린이도 하린이대로 특유의 미치광이 같은 말투로 대답한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하는 영미 누나. 하린이는 ‘괜찮아요 데헷☆’ 하는 느낌으로 방긋 웃는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아이고. 헤어져서 어떡하나. 그러니까 옳게 된 국가에서는 과CC를 금지하고 타 학과 학생과 만나지. 영영 사귈 건 아니잖아? 이렇게 몇 개월만에 헤어져서 엿될 수가 있으니까.”

“저주 하시는 건가요.”

“전혀. 염려하는 거지.”



건들건들한 느낌으로 다가와 말하는 성준이 형. 뭔가 시비거는 것 같은데. 뾰족한 말투로 응답하니 전혀 웃지도 화내지도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형. 나라고 이럴 줄 알았냐구요. 하린이가 헤어지자고 한 거라구요.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순정이랑 과CC를 해요?”

“아. 그건 비밀인데.”



순정이 누나 옆에 앉아서, 성준이 형을 바라보며 눈을 흘기는 은정이 누나. 성준이 형은 굉장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다. 비밀이라면서 전혀 비밀같지 않게 말하는 게 포인트.



“에, 엣? 언니 오빠 사귀세요?!”

“뭐······ 그렇게 됐네.”



소미는 대게 리액션 담당이다. 작고 가녀린 손으로 입을 가리며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성준이 형은 뭔가 되게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가만히 있던 순정이 누나가 태클을 건다.



“뭘 남 얘기 하듯이 말해요.”

“어쩌다보니 너무 예쁘게 보여서······ 그렇게 됐습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었나 그 때.”

“아 뭔데요!”



순정이 누나는 사귀고도 성준이 형한테 존댓말 쓰는구나.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순정이 누나 답다. 나랑 하린이는 사귀고 조금씩 반말 썼는데. 그건 뭐, 하린이가 성향이 그래서 그렇지. 사귀기 전부터도 반말 조금씩 쓰려고 했으니.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의 징조. 둘이 막 어색하고 그런 거 아니지?”

“······네.”

“······예.”

“어머, 어색한가보네.”



순정이 누나는 우리 둘을 위로하기 위해 야무진 태도로 말한다. 하지만 미적미적한 나와 하린이의 반응에 살짝 눈을 크게 뜨곤 당황해하신다. 혼자 있고 싶네요. 다 나가주세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그런 거죠······.”

“웅도 너 불교 믿냐?”

“아뇨, 무교인데요.”



무념무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내 혼잣말에 성준이 형은 무심하게 물어본다. 누군가는 헤어지고, 누군가는 다시 만나는구나.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또 다른 인연을 이어 나가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찐 인연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그 아이는 또 성장해서 나와 비슷하 고뇌를 겪다가 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그런 게 인생이겠지. 실연을 겪으니 뭔가 생각하는 게 어른스러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헤어질 수도 있지! 둘이 안 어색하게, 이제 웅도랑 하린이 얘기는 그만하기!”

“헤어질 수도 있긴 한데 너무 빨리 헤어지지 않았냐.”

“아 그럴 수도 있죠! 오빠가 제일 문제야,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준다니깐요.”



마악 꽁냥대는 성준이 형과 순정이 누나를 보니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랑 하린이도 이렇게 티격대격하며 잘 지냈는데. 하. 잊자 잊어. 희세랑 하린이랑 삼자대면 할 때 다 받아들이기로 했잖아.








//








“미리 조율을 할 걸 그랬네.”

“그러게.”



점심을 다 먹고, 교양 OT 들으러 가는 길. 나랑 소미 둘만 걷게 됐다. 학기 초에 워낙 정신이 없어서, 수업을 맞추자는 생각을 미쳐 못 했거든. 1학기 때엔 나, 하린이, 소미, 라나 누나 넷이서 수업이 완전 똑같았는데, 이번에는 전공하고 교필 1개 빼고는 다 수업이 다르다. 소미의 아쉬워하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우연히 교양 2개가 소미랑 같은 건 다행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안 겹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아······ 그렇네.”



나지막이 말하니 소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린이 때문에. 좋게 헤어졌든 안 좋게 헤어졌든, 어쨌든 안 보이는 게 지금 내 심란한 마음에는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힘들지?”

“그치.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소미는 아까 아침부터 내 눈치를 굉장히 많이 본다. 그렇게까지 엄청 걱정해줄 건 아닌데. 그냥 딱 라나 누나 정도 태도가 적당하다. 헤어졌구나. 일부러 건드리진 말아야지. 평소처럼 대해주는 그런 거. 얼른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엔 그런 게 좋은 것 같다. 소미는, 너무 염려해주니까 계속 상기하게 되잖아. 하린이랑 헤어진 사실을.



“그······ 물어봐도 돼?”

“뭘?”

“어쩌다가 헤어진 건지.”

“음······.”



방금 전 말 취소. 걱정해주고 염려해주는 애 치고는 너무 대놓고 물어보는데. 상처를 다시 벌리는 꼴이잖아.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힘드냐고 물어보면서 어떻게 헤어졌냐고 물어보는 건······.”

“아, 미 미안······ 내가 오지랖이 좀 심했지, 미안 미안, 웅도 기분은 생각도 안 하고······ 미안해.”



굉장히 미안해하며 사과하는 소미. 또 그렇게까지 미안해할 건 아닌데. 되게 조심스럽게 물어봤나보다. 애초에 조심스러우면 그런 걸 안 물어봤겠지. 어쨌든.



“그냥······ 하린이가 날 찼어.”

“에! 어, 응······.”



리액션 부자 소미는 화들짝 놀란다. 왜. 내가 찼을 거 같애? 내가 왜. 왜 그런 짓을 하겠어. 난 잘 사귀고 있었는데.



“하린이가 헤어지자고 해서. 왜 헤어지냐고 하니까, 나 만나도 더 이상 설레질 않는데.”

“에······.”



요약 정리하자면 그런 거다.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크으. 헤어지니까 왠갖 노래가 다 내 얘기 같구나. 방청객을 해도 아주 잘 할 것 같은 리액션 천재 소미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어쩔 줄 몰라한다.



“그, 그러면! 권태기 온 부부나 연인들은 다 헤어져야 하는 거잖아. 그런 기간은 얼마든지 연인이 서로 얘기해서 극복할 수 있는 거잖아!”

“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노력하려 했어. 근데 박수도 손이 맞아야 소리가 나지. 하린이 쪽에서 완전히 결론을 내리고 그렇게 하는데 어떡해. 결국에는 헤어졌지.”

“에······.”



내 말이 그 말이다. 소미의 반박대로, 나는 권태기를 풀어보려 했어. 근데 그게 잘 안 된 거지. 내 말에 소미는 또 시무룩해진다. 소미는 어째 리액션을 보는 재미가 있다.



“뭐, 이쯤 하고 수업이나 들으러 가자.”

“으, 응.”



얘기하다보니 금세 강의실 앞에 도착. 뭐, 수업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 첫 주 첫 수업이라. 그냥 수업 개요나 듣고 종이나 받고 나오겠지. 소미는 내 감정에 많이 공감했는지 나보다 더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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