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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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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09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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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01화. 혼자 서는 이야기 - 1

DUMMY

입학식이란 그런 것. 나란히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 있고, 아직은 찬 초봄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보이면 안녕 하고 웃고, 처음 보는 애들도 있어 약간 어색하기도 한, 새로이 처음 학교생활을 같이 할 친구들을 보는 행사.

곧 신입생 대표라고 해서, 성적 제일 높은 애가 단상 위로 올라와 말 한 마디 한다. 전교 1등이라니 당연히 안경 쓰고 모범생 같은 그런 스타일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예쁘장한데다 가슴이 크다. 그래, 그런가보다. 하지만 어째, 성적도 1등이라는 데다 예쁘고 가슴도 큰 그 여자애에게 모두의 시선이 가 있지 않다. 어찌 보면 민망할 정도로, 단상에 올라왔는데도 그녀는 소외당하고 있다. 그리고 주목하지 않는 시선은 모두 나를 향해 있다.

내가 무슨 스타 같은 것이냐고? 아니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잘 생긴 미남? 아니, 전혀 아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여긴 여고이고, 나는 남자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가슴을 쭉 펴고 나는 강당 천장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를 올려다본다.


「제 XX회 성빈여고 입학식」


그렇다, 나는 남자인데도─ 여고에 입학하게 됐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혀 있지만 참 불편한 시선이다. 한숨이 푹 나온다.





─“엑??! 엄마, 그건 너무하잖아!!”

집. 느긋하게 누워서 전화를 받던 나는 굉장한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문했다. 전화를 받고 있는 대상은 엄마. 웃으며 대답하는 소리는.

『그게, 어쩌겠니.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다 막혔더라고.』

“아, 내가 미리 넣으라고 했잖아! 그렇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야, 그게!”

『얘는, 엄마 때리겠다? 그래, 엄마가 자식교육을 잘 못해서 그런 거지. 다 엄마 잘못이야. 어미가 못나서 자식이 이렇게 패륜아가 돼서─ 흑흑……』

“아…… 그런 게 아니잖아요.”

엄마는 격한 내 말에 서글픈 목소리로 대답한다. 수작질이라는 건 뻔히 알지만 알면서도 넘어가야 하는 게 자식 된 도리지. 사정을 말하자면,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기러기 가족이다. 아버지는 멀리 외국에 계신다. 건축회사 사장이신데, 외국 건설업체 일 때문에 1년 전부터 전근 가셨다. 가족을 위해 홀로 타지에서 쓸쓸히 일하시는 아버지께 잠시 묵념. 엄마는, 덕분에 아주 자유롭게 자유부인의 삶을 누리고 계신다. 아버지에게 허락을 맡았다고 하는, 무슨 강의를 들으러 다니신다고 요즘 집을 자주 비우신다. 그러다가 터진 결과가 바로 이것. 고등학교 문제.

말하자면, 고등학교 원서를 제때 넣으시질 않으셔서 자칫 잘못하면 고등학교를 못 가게 생겼다. 엄마를 믿고 가만히 있던 내가 잘못이다. 다만 엄마가 유일한 대책이 있다고 넣은 학교가 있는데…… 거기가 여고란다.

“아니, 애초에 여고에 어떻게 원서를 넣었어?”

『응, 실은, 거기가 여고가 아니래. 남학생은 한 명도 없지만, 여고는 아니래.』

“무슨 말이야…… 어쨌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시지 마시고 원서 빼요.”

『그럼 너 1년 꿇어야 되.』

“어쩌다 그 지경까지 간 건데! 왜 원서를 안 넣었어요, 대체!!”

『어머, 화내지 마~ 엄마가 깜빡! 했다니까.』

“깜빡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 아들 미래가 달린 일인데!!”

엄마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무대책. 참, 아버지 연애할 때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주 깜빡 해서 가스불 켜놓고 놀러 갔다가 불이 날 뻔하거나, 마트로 쇼핑하러 갈 때마다 뭐 사야할지 까먹어 간장만 10L 정도 집에 쌓아둔 것이나 하는 건망증 에피소드는 참 많지만 그 건망증이 내 미래에까지 관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답답하지만 엄마에게 따져봐야 이미 소용은 없지. 엄마한테 그 학교의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여보세요!”

『네. 성빈여고 행정실입니다.』

“봐, 여고잖아! 여보세요? 네. 네네. 아뇨, 그게 아니라─”

『………………』

“네? 네. 방금 여고라고 했잖아요. 에에? 그게 되요? 아…… 그……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게…… 아뇨! 네, 입학한다고…… 네. 네. 네네. 네.”

『…………』

“……예…….”

전화를 거니 행정실로 연결된다. 받는 여직원이 틀림없이 성빈‘여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세하게 얘기를 듣던 내 표정은 돌처럼 굳어간다. 결국 힘없이 전화를 끊고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웠다. ……완패다.

학교 측의 설명은 이것이다. 원래 성빈여고는 정식으로 여고는 아니고, 원래는 ‘성빈고등학교’ 라는 평범한 학교였다고 한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점차적으로 남학생 입학 비율이 깨졌고, 점점 여학생의 비율이 높아져 어느 순간 남학생이 한 명도 입학하지 않는 시점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니 남학생들이 더욱 오기를 꺼려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외부에서도 여고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분명 등록 상으로는 남녀공학이고, 시설도 원래 남녀공학으로 지었기에 남자화장실이나 그런 것도 버젓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거기도 여학생들이 쓴다고 하지만. 그리고 그 직원이 친절하게 내 원서도 조회를 했는데, 버젓이 정상적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이제 입학만 하면 된다고 한다. 꽤 이름 높은 사립학교인데, 이럴 때엔 어느 정도 공부를 하는 내 자신이 서글프다.

“아아…… 뭐 어떡하라고.”

혼잣말 해보지만 답은 없다. 앞으로 고등학교 생활이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그랬던 게 한 2개월 전 겨울방학 때 얘기이고. 지금은 결국 입학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입학식 시작. 굉장하긴 굉장했다. 모든 여자애들이 잔뜩 쳐다보고, 선생님들마저 ‘저 애는 뭘까’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당연하겠지, 여고에 남자애가 입학했으니. 하지만 난 그 시선이 달갑지 않다. 뭐랄까, 동물원에서 동물 쳐다보는 관객의 시선 같다고나 할까. 애초에 여자애들이 그렇게나 많이 쳐다본다면 좋은 기분보다는 두려운 기분이 드는 게 맞을 거다. 혼자만 외계인이 된 기분이고. 잔뜩 모두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가운데 입학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 안녕.”

“……흥!”

입학식이 끝나자 모두 우르르 퇴장한다. 선생님들도 나가고, 나도 인파에 떠밀려 어떻게 교문 앞까지 오게 됐다. 여자애들은 몇몇씩 끼리끼리 자기들끼리 떠들며 삼삼오오 학교에서 멀어져간다. 나처럼 혼자 있는 애는 보기 드물고, 그 혼자 있는 애들 중에서도 남자인 나는 단연 눈에 띈다. 괜히 뒤를 돌아 학교 건물을 보려다 아까 그 전교 1등이라던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혼자 걸어 나오고 있는 그 여자애. 가까이에서 보니 아까 단상에 올라갈 때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엄청난 외모다. 키도 꽤나 크고, 몸매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해서 꼭 연애인 아이돌이 교복을 입은 것처럼 교복 맵시가 잘 산다. 무엇보다 얼굴이 굉장히 예쁘다.

도도한 표정으로 걸어오던 여자애를 보고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든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여자애는 언짢은 듯 나를 노려보곤 고개를 돌리고 재빠르게 가 버린다. 아아, 미움 사버린 걸까. 하긴, 아까 저 애, 단상 올라갔을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으니, 나 때문에. 괜히 창피해진다.


입학식은 끝났지만 난 갈 곳 없는 나그네가 됐다. 기본적으로 여긴 우리 집에서 버스로 2시간이 넘게 떨어진 외지. 그도 그럴 게, 깜빡대왕 어머님께서 원서를 넣으려고 했을 때엔 이미 우리 집 근처의 학교들은 마감을 한 상태였다. 학교가 이렇게나 떨어져 있는 것도 그 이유겠지.

“하아. 이제 어쩐다.”

원래 혼잣말 따위 하지 않는 성격인데, 낯선 곳에 혼자 있게 되니 자동으로 혼잣말이 나온다. 학교를 빠져 나와 정문 앞에서 학교 정경을 쳐다본다. 과연, 교문의 문패에는 ‘성빈고등학교’ 라고 박혀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일까. 어디에도 ‘여고’ 라곤 표시돼 있지 않군. 그렇지만 다들 여고로 인식하고 있잖아. 실제로도 그렇고.

“우선은 교실이나 탐방해볼까.”

교내에는 아무도 없다. 2,3학년들은 아직 등교를 할 시기가 아니고, 입학식을 마친 여자애들은 모두 돌아갔다.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선생님들뿐이겠지. 내가 탐방하려는 곳은 교실이고. 사실, 뭐든 귀찮은 짓은 하고 싶지 않은 나지만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게…… 갈 곳이 없다. 집은 통학을 고려할 정도의 거리가 아니다. 버스로 2시간이 넘는다. 내일 당장 학교를 다녀야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순 없다. 매정한 엄마는 그 뒤로 어떤 언질도 해 주질 않아, 졸지에 난 이 도시에 혼자 남게 됐다. 오늘은 일단은 찜질방에서 하루 보내려고 마음 먹었지만. 그 전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느긋이 교실을 돌아다녀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런 마음으로, 맨 앞에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여고라고 뭔가 다를 거라는 환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좀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학교. 크게 차이 나는 점은 다니던 중학교는 복도가 삐걱거리는 나무복도였는데 여기는 그냥 시멘트 바닥이라는 것 정도. 딱히 여고라는 점을 느낄만한 것도 없다. 「1-1」라고 적힌 교실로 들어갔다.

‘드르륵.’

적당한 크기의 교실. 아무도 없어 정적이 가득한 교실. 이 이상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표준 교실을. 천천히 걸어 교탁에 섰다. 이제, 이 교실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겠구나.

평범하고, 무관심하고, 모든 게 귀찮다고 말은 하지만 새로워진 환경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큰일인가는 잘 알고 있다.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하고. 뭐, 지금 이 상황에선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욱 크지만.

‘덜컹 덜컹.’

“??!”

우수에 젖은 눈으로 교실을 슥 둘러보는데 구석에서 덜컹덜컹 하는 소리가 들린다. 뭐, 뭐지. 아무 인기척도 느끼지 못 했는데. 별로 무섭거나 한 건 아니지만 살짝 놀라긴 했다. 천천히 걸어가 소리가 난 쪽 마지막 책상으로 갔다.

“에구구…… 헤헷.”

“누구……?”

책상 뒤쪽에, 한 여자애가 쭈그리고 앉아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그러다 나를 힐끗 올려다보더니 에헤헤 하고 웃는다. 뭐야, 이 여자애는.

나랑 같은 소재의 교복인 걸 보면 일단 이 학교 애인 건 틀림없다. 거기다 오늘은 2,3학년들은 안 왔다고 하니 나랑 같은 학년의 여자애. 이런 데서 혼자 무얼 하고 있던 걸까. 보통 입학식 끝나면 집에 간다고. 아, 그건 내가 할 말이 아니구나. 이 애도 나처럼 돌아갈 집이 없는 걸까. 그럴 리가.

“이 학교…… 학생이지?”

“응! 왜 이런 데 있어? 이런 시간에. 집에 안 가?”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었는데.”

“아! 그러네! 에헤헤헤. 학교 입학하기 전에 교실 한 번 보고 싶어서. 너는?”

“뭐, 나도 마찬가지지. 할 짓도 없고…”

“에엣??! 우리 학교 여고인데! 너 여자애였어?!”

“무, 무슨 말을…… 명백하게 바지 입고 있잖아. 셔츠도 다르고.”

“그, 그, 그럴 수가!! 에에에에에!!”

여자애는 내 심드렁한 말에 기겁을 하듯 깜짝 놀란다. 고양이처럼 작은 여자애가, 꼭 고양이가 꼬리 밟혀서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란다. 힐끗 여자애의 블라우스를 한 번 살펴보고 다시금 시선을 내 셔츠로 옮겼다. 확실히 남녀공학이 맞긴 맞구나, 이렇게 남자 교복도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니. 여자애는 허공에 손으로 알 수 없는 동작을 선보이며 살짝 뒷걸음질 치고 말한다.

“그…… 어! 그럼, 우리 학교 남자애들도 입학하는 거야? 난 틀림없이 여고라고 들었는데!!”

“남자는 나 혼자야. 사정이 좀 안 좋게 돼서.”

“엣! 하아. 그건 다행이네.”

“입학식 때 나 못 봤어? 다들 나만 보던데.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에헤헤, 사실 입학식, 늦어서 못 갔거든.”

“엇. 그래도 되?”

“모, 모르겠어…… 이미 늦었는걸. 도착하니까 애들이 다 나오고 있더라구.”

“…….”

참 대책 없는 여자애다. 혀를 쭉 내밀고 뒷머리를 긁으며 웃는 게 상당히 귀엽다. 대책 없는 건 우리 엄마나 이 여자애나 비슷한 수준이다. 보통 입학식이면 단단히 준비하고 꼭 참석하지 않나?

“아, 그럼 난 갈게. 나 남자애랑 얘기하는 거 되게 어색해 하거든. 헤헤헤.”

“……어색해 해?”

“응! 다음에 또 봐!”

조금 어이가 없는데. 보통 그걸 본인이 말하진 않는다고. 게다가 지금 전혀 어색해 하지도 않고 있고. 어쩌면 나 같은 애는 남자로 보지도 않는다, 그걸 완곡하게 돌려 말한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여자애는 활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간다. 처음 만난 남자애한테 이렇게까지 활기차게 인사하는데, 그게 어색하다니. 안 어색하면 얼마나 하려고. 나도 딱히 할 건 없기에, 교실 탐사는 이만 마치고 건물을 나왔다. 작은 소득은 하나 있네, 여자애 한 명을 알게 됐어. 아, 이름도 안 물어봤네. 이름 정도는 물어봐도 됐을 것 같은데. 터벅터벅 교사를 나와 걷는다.



“흐흡─ 하아.”

찜질방을 나와 걷는다. 기어이 찜질방에서 잤다. 어쩔 수가 없다. 잘 곳이 없는걸! 고등학교 첫 등교를 이런 찜질방에서 시작하다니. 그런 의미에서, 학교 첫 날이지만 오늘은 물어보려고 한다. 기숙사나 그런 것 없나. 물론 여자기숙사라 잘 수 없다고 하겠지만, 하다못해 5공화국 때 쓰던 숙직실 같은 것이라도 있다면…… 숙직실이라, 초등학교 때 창고로 변한 숙직실을 본 적이 있는데. 요즘에도 그런 게 남아 있을까. 어쨌든 한 번 물어나 봐야지. 찜질방에서 학교까지는 거리가 꽤 돼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학교에서 가까워질수록,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수는 줄어들고 점점 나와 같은 무늬의 교복을 입은 여자애들이 늘어난다. 그에 따라 나에게 꽂히는 시선도 점점 늘어난다.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때엔 거의 아이돌이라도 등장한 것처럼 주위에 있는 모든 여자애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돼 있다. 이거, 한류스타 공항 들어오는 것도 부럽지 않은걸. 하지만 너무 부담스럽다. 내 소박했던 고등학교의 꿈은 물 건너 갔군. 평범하게 생활패턴을 구축하는, 작은 꿈이 있었는데.

“어머~ 네가 그 문제의 남학생이구나.”

“안녕하세요.”

“하하, 그래. 손 똑바로 안 들어! 이것들이.”

3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나쁘게 말하면 성깔 좀 있어 보이는 여선생님이 위협적인 얇은 몽둥이를 들고 교문 앞에 서 있다. 그 옆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는 여자애 세 명이 보인다. 보니 치마도 짧고 어떤 학생은 파마도 했다.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말하신다. 음, 여기선 좀 튀지 않게 넘어가야 학교생활이 편할 것 같은데.

“그래, 소란 피우지 말고 학교 다니렴. 남자애가 학교 들어오는 건 10년간 이 학교 있으면서 처음 봤거든. 혹시 만약이라도 한 치라도 여자애랑 엮이는 사건이 내 귀에 들리면…… 알지?”

“네, 네, 그럼요…….”

이 분, 처음 보는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아무래도 여고에 남자애가 들어와서 민감한 걸까. 매를 들고 있는 그 분의 뒤에 오오라 같은 보이지 않는 기운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섬뜩하다. 얼른 지나가고 교실 쪽으로 갔다.

복도 한구석에는 여자애들이 바글바글하다. 조금 큰 종이로 ‘반 편성표’ 라고 붙어 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나, 반도 모르는구나. 편성표를 보러 다가가자 모세의 기적처럼 나를 중심으로 스윽 애들이 갈라진다. 우와, 벌써부터 이 거리감. 애써 괜찮은 척 쿨하게 편성표를 올려다봤다. 1반. 내가 자리를 뜨자 다시금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몰려서 떠들어댄다. 아아, 정말 싫은데, 이거. 평범하게 지내고자 하는 바람이 완전히 물거품이 됐어.

‘드르륵.’

“…….”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금 전까지 왁자지껄하던 반이 화악 하고 조용해졌다. 이거, 괜히 죄책감 드는데. 약간 억울한 기분도 든다. 내가 무슨 괴물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인데. 뭐, 이미 여고를 다니는 시점에서 여자애들 입장에선 괴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딱히 자리가 정해져 있거나 하진 않겠지. 첫날이니까.

교실을 슥 둘러봤다. 여자애들은 일제히 내 시선이 닿을 때마다 고개를 돌리거나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피한다. 저기…… 그렇게까지 대놓고 티낼 것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하니까 더더욱 쓸쓸해지잖아.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힐끗 창가 쪽 맨 구석자리가 눈에 띈다. 가방이나 책 같은 게 놓여 있지 않은 빈 책상인 것을 보니 아직 아무도 앉지 않은 모양이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구석자리로 가 앉았다. 책가방은 옆에 걸고 앉았다. 그 상태로 가만히 정면을 쳐다봤다.

전쟁터의 양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여자애들은 나를 경계하며 별다른 얘기도 하지 않는다. 이거, 미안해지는데. 자리라도 피해줘야 하는 건가. 그런가, 뭔가 여자애들이 모종의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삐익.’

뒷머리를 긁으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빠지며 삐익 거리는 소리에 여자애들이 눈을 찡그리며 날 바라본다. 나는 그대로 휴대폰만 들고 복도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금방 뒤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나 참,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나 별로 관심 없다구요, 여자애들.


“하아……”

답답하다. 이런 취급 받는 건 너무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교실에 있으니 다들 나를 불편해하고 피하려하고, 그래서 복도로 나오니 복도에도 애들이 없다. 지나가던 애들도 내가 서 있는 창가 쪽은 기겁을 하듯 황급히 지나간다. 앞으로 학교생활 내내 이래야한단 말인가. 할 일도 없어 휴대폰으로 인터넷이나 하려 하는데 배터리도 없다. 이런, 어제 자기 전에 충전을 안 했네. 한숨을 팍 쉬고 다시금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할 것도 없네─ 그냥 창가로 지나다니는 여자애들을 구경한다.

“엇.”

“안녕?”

“어, 어. 안녕.”

정말 할 짓 없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교실로 돌아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가 들어서자마자 정적이 되는 교실. 누가 보면 내가 시간을 멈추는 이능력이라도 있는 줄 알겠다. 헌데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흠칫 놀랐다. 그러니까 내 자리 옆자리, 아무도 앉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자리에 웬 여자애 한 명이 앉아 있다. 여자애는 앞자리 여자애랑 떠들다 힐끗 나를 보고 인사한다. 다들 조용한 상태에서 그 여자애 목소리만 들리니 더 크게 들린다. 뭐야, 이 여자애. 일단 인사는 했으니 받아는 줘야지. 인사하고 어색하게 자리에 가 앉았다.

……뭔가 굉장히 껄끄러운데. 버스에서 옆자리에 갑자기 여자가 앉아서 굉장히 어색한 것 같은, 그 느낌과 꼭 같다. 반의 다른 여자애들은 아까만큼 나를 경계하거나 하진 않지만 여전히 내가 들어오기 전 왁자지껄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진 않는다. 뭐, 곧 수업시간이 돼 가니 상관없으려나.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비축분을 쌓아두는 짓은 못 하겠네요. 쓰는 대로 바로바로 올릴게요. 음... 뭔가 기획을 해서 쓰는 건 처음인지라, 이것저것 삐걱댈 것 같은 예감입니다. 그래도 즐겁게 봐 주시면 저로썬 큰 즐거움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도 많이 달아주시고 추천도 많이 박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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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1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4.01.09 18:34
    No. 1

    이것이군요. 소재가 흥미롭습이다. 댓글을 달자면, 혹시, 인물묘사 하실 때 조금 더 자세하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쁘다 가슴이 크다 귀엽다 활기차다 이러한 묘사보다 조금만 더 자세히 한다면 더 좋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코, 눈, 입에 대한 묘사나 머리 스타일에 대한 묘사나 (웨이브, 펌, 생머리라도 길이가 어떤지, 머리결은 어떤지) 신체에 대한 묘사 (어깨 허리 엉덩이 팔 손 등등) 조금만 양념을 쳐줘도 읽는 독자들이 조금 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읽을거라 믿습니다. 예를 들어 큰 가슴에 다리까지 뻗고 예쁘다면 즐기는 신사들의 머리속에서는 이미 ... 망상폭주이겠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09 19:09
    No. 2

    어멋… 그런… 후후후… 전작에서 유경이 1인칭 시점일 때, 유경이가 성격이 여자애 같으니까 너무 조잘조잘 엄청 떠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번 남자애는 조금은 과묵한 컨셉으로 밀어보려다 묘사를 적게하는 참사를 빚었네요. 졸은 조언 감사합니다. 아직 애들이 자리를 못 잡아서 저도 혼동이 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얼가니
    작성일
    14.01.19 03:15
    No. 3

    여고라.... 왠지 시작부터 카오스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9 03:24
    No. 4

    후후... 그렇지요... 쓰다보니까 더욱 이상한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지만...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dsafsdas..
    작성일
    14.01.26 14:23
    No. 5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고등학교 보내는데로 가지는거 아니에요? 골라가는 거에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6 22:45
    No. 6

    저는 역으로 다른 삶을 살아서... 그렇습니다.
    수도권 같은 데는 학교를 뺑뺑이로 돌려서 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시골인 지방권은 놀랍게도 고등학교를 원서를 넣어서 간다는 것! 해서 소위 말하는 명문고등학교라는 것도 아직 남아 있다는 점! 뭐 그렇다는 거죠 어차피 안 그렇다 해도 소설이니까 그냥 넘어가는 것도... 후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4 일상과일생
    작성일
    14.01.26 14:39
    No. 7

    혼돈의 카오스. 무한의 인피니티. 전설의레전드. 인가요 허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6 22:46
    No. 8

    그렇지요, 아주 유명한 시의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이외수 선생님의 입을 가감없이 한 번에 틀어막은 절대절명의 시.
    -어둠에 다크에서 죽음의 데스를 느끼며 서쪽의 웨스트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윈드를 맞았다. 그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끄적거려
    작성일
    14.02.09 22:12
    No. 9

    엄청 새로운 내용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0 00:07
    No. 10

    새롭다기보다... 그렇죠, 조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 [탈퇴계정]
    작성일
    14.02.19 11:13
    No. 11

    잘보고 있습니다. ~ 연재 잘 부탁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9 14:06
    No. 1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플라워
    작성일
    14.02.22 02:53
    No. 13

    우와..이런 장르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엄청 기대되요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3 11:17
    No. 14

    후훗... 처음이라면 발을 잘 못들이신 것 같네요. 명작부터 보셔야 하는데 이런 걸 보시다니. 죄송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14:59
    No. 15

    음? 하도 소식 없으시길래 체육공원 소녀에서 서재 갔더니
    못보던글이ㄷㄷ
    오랜만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8.23 21:36
    No. 16

    네, 안녕하세요. 갑자기 댓글이 42개가 달려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헤헤 이거 완결났어요! 이제 제취미가, 제취미가...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하무린
    작성일
    15.08.23 11:41
    No. 17

    인사드립니다. 와 댓글이 엄청나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소설보러
    작성일
    16.07.19 09:56
    No. 18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6.07.20 14:37
    No. 19

    넵,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1 HIElf
    작성일
    18.08.21 01:03
    No. 20

    전형적인 애니의 영향을 듬뿍 받은 3류 씹덕 소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5 주웰시
    작성일
    19.01.13 01:44
    No. 21

    여자애가 완전 일본 애니에 나오는애같네... 현실에서는 귀엽게 혀를 쏙 내밀면서 실수를 말하면 '뭐지. 미친놈인가.' 하는데. 그게 귀엽냐. 뭔 고딩이나 된 애가 저래....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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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17화 - 3 +3 21.01.12 109 5 12쪽
357 17화 - 2 +5 21.01.04 7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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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16화 - 4 +3 20.12.17 65 5 18쪽
354 16화 - 3 +1 20.12.14 68 4 14쪽
353 16화 - 2 +1 20.12.08 64 4 12쪽
352 16화. 사람으로 그린 수채화. +3 20.12.05 79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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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15화 - 5 +3 20.12.01 95 4 14쪽
349 15화 - 4 +1 20.11.27 85 3 11쪽
348 15화 - 3 +3 20.11.21 90 4 12쪽
347 15화 - 2 +1 20.11.19 62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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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14화 - 3 +5 20.07.15 85 5 11쪽
343 14화 - 2 +1 20.07.13 61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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