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Messorem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2019.01.03 20:30
연재수 :
505 회
조회수 :
359,903
추천수 :
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7.03.03 10:36
조회
940
추천
19
글자
5쪽

동료

DUMMY

말이야 거창하게 '축하 파티' 니 뭐니 했지만, 사실 그들이 한 것이라곤 그저 약간의 대화와 틈틈이 야식을 즐기는 것밖에 없었다. 누구 하나 흥을 띄우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 하나 놀이를 제안한 사람도 없었으며, 누구 하나 필요 이상의 행동을 행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평화로웠던 세 달 전의 시점으로 잔뜩 이야기 꽃을 피우는 최성민만이 오래도록 입을 가만두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그는 더 이상 유지현에 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마치 절대적인 함구령이 떨어진 듯, 무게도 어마어마한 쇳덩이가 '유지현' 이란 단어가 포함된 모든 말들을 콱 짓눌러버린 것 같았다.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와 근접한 이야기를 꺼냈을 땐, 그는 눈에 띄게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말을 더듬으며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고자 애를 썼다. 순식간에 해치워버리고 다시 손에 든 통조림을 한계까지 입 안에 쑤셔넣거나, 목이 마른다는 핑계로 불과 몇 초 전에 들이켰던 물을 또 벌컥벌컥 들이키며 한서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거의 덤으로 딸려온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애초에 이럴 목적으로 한 것인지, 파티의 마무리도 딱히 특별하다 싶은건 없었다. 분위기에 편승한 듯한 끝맺음이 유유하게 말을 타고 흘러나왔고, 단지 그것으로 마침표를 찍었을 뿐이었다. 불쑥 쳐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한아름 남은 통조림과 과자를 안아들고 나감으로써 순전히 분위기 뿐만 아니라 시각적, 그리고 청각적으로도 정말로 파티가 끝났음을 고해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 끊겼던 생각을 비로소 이어갈 수 있게 된 한서준이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마지못해 입에 대었던 감자칩 특유의 짭짤함이 아직도 잇속 구석구석에서 저마다의 생존신고를 보내왔다.

길게 늘어진 먼지 주머니들이 미약하게 흘러들어온 공기의 흐름을 타고 샌드백처럼 흔들리는 광경은 고스란히 그의 뇌를 자극해왔고, 그다지 변한게 없는 밝은 전등빛은 거듭 뾰족한 창이 되어 거침없이 그의 눈을 찔러들어왔다.

무심코 그곳에 시선을 던졌다 저도 모르게 눈가를 찌푸린 한서준이 이윽고 고개를 돌려 방의 유일한 창문, 하지만 장시간 사용되지 않아 통통한 애벌레 같은 먼지 주름이 낀 창 너머의 탁한 어둠빛을 멀거니 쳐다보다, 새로이 시선을 옮겨 이번엔 아무렇게나 놓아버렸던 군번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딱히 이렇다 할 형태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쌓아올린 형상 그대로 놓여있는 군번줄들만큼이나 찢겨진 고깃덩어리가 되어 싸늘하게 얼어붙여진 본 주인들의 시체들을 스쳐가듯, 하나하나 빠르게 떠올려보던 한서준이 돌연 무너질 것만 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순간의 안타까움으로 저지른 일치고는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감이 일순 그의 두 어깨를 강하게 짓누른 탓이었다.

서른세 명.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지막 흔적이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었다. 얼음 알갱이 같이 산산히 바스라졌던 기억의 조각들은 다시 한 덩이가 되어 차가운 냉기를 아스라이 퍼뜨려내었고, 그건 서른세 명의, 아니, 서른네 명의 심장 박동처럼 순백의 눈보라로 변해 끊임없이 그를 휘감아 안아왔다. 뜨겁다면 뜨겁다고 할 체온으로도 절대 녹지 않는 투명한 냉기의 결정체가, 어느샌가 그의 머릿 속 한켠에 단단히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었다. 마치 풀지 않으면 안되는 강박적인 숙제가 낙인처럼 각인되어진 것만 같았다.

한서준은 재차 한숨을 토해내며 곧 침대에 몸을 뉘였다.

약한 반동에 의해 '찰그락' 소릴 내며 달싹이는 군번줄들의 아우성에 이어, 잠깐의 움직임으로 불러일으킨 미세한 바람은 흡사 사막의 모래 언덕 같이 굽이진 침대보의 주름 끝을 어렴풋이 건드리며 퍼져나갔고, 꽤 오래된 침대 임을 일러주는 '삐그덕' 거림은 내부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울연한 떨림으로 마냥 고고히 흘러나왔다.

방의 구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위치이다 보니, 곧장 시선을 내리깔게 만드는 백색의 창연한 빛이 이번엔 기계 프레스인 양, 그의 눈동자를 '쿵' 덮쳐들어왔으나, 정작 그 대상이 된 한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눈만 끔뻑여댈 따름이었다.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처럼, 전혀 빛이 인식되지 않는 텅 빈 오른쪽 눈 구덩이만큼이나 수십보는 멀게만 느껴지는 빛의 가루들이, 어쩐지 그의 얼굴 주변만 환하게 비춰줄 뿐이란 것이었다.


작가의말

1차 수정 완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essorem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7 동료 +1 17.03.31 790 14 4쪽
86 동료 +2 17.03.29 797 13 4쪽
85 동료 +2 17.03.28 842 14 3쪽
84 동료 17.03.26 872 15 3쪽
83 동료 17.03.23 819 17 3쪽
82 동료 +2 17.03.20 859 15 3쪽
81 동료 +1 17.03.17 859 16 3쪽
80 동료 +1 17.03.14 873 17 3쪽
79 동료 +1 17.03.12 869 17 4쪽
78 동료 +1 17.03.08 899 21 7쪽
77 동료 +3 17.03.05 1,005 19 5쪽
» 동료 +1 17.03.03 941 19 5쪽
75 동료 +2 17.02.27 953 20 5쪽
74 동료 +3 17.02.25 1,104 26 5쪽
73 동료 +2 17.02.23 963 19 5쪽
72 동료 +2 17.02.21 1,009 19 5쪽
71 동료 +2 17.02.20 1,075 20 4쪽
70 동료 +2 17.02.19 1,245 23 6쪽
69 동료 +1 17.02.17 1,172 22 6쪽
68 동료 +2 17.02.15 1,486 21 6쪽
67 동료 +2 17.02.14 1,206 20 5쪽
66 동료 +3 17.02.13 1,200 19 4쪽
65 동료 +2 17.02.11 1,121 21 4쪽
64 동료 +2 17.02.10 1,244 21 4쪽
63 동료 +2 17.02.09 1,400 23 6쪽
62 동료 +2 17.02.08 1,238 21 6쪽
61 동료 +2 17.02.06 1,318 21 5쪽
60 동료 +2 17.02.05 1,300 24 7쪽
59 동료 +2 17.02.04 1,308 22 6쪽
58 동료 +1 17.02.03 1,327 22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