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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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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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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5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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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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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6
글자수 :
1,239,628

작성
17.02.14 09:4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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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5쪽

동료

DUMMY

"누군가의 고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도 꽤 고역입니다.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네요. 아쉽지만, 지금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론 위험성을 전혀 고려해보지 않는다면 몇가지 방법이 존재하긴 하겠네요. 조금, 아니, 꽤 많이 위험한 방법이라 그다지 추천해드리고 싶진 않지만요. 이미 당신에겐 과도한 양의 마취제가 투약되었습니다. 거기에 수면제나 진통제를 추가로 투약한다면······ 솔직히 목숨을 부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대체 무어라 중얼거리는지 단 한 문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말미에 나붙은 '수면제' 와 '진통제' 라는 단어만을 기적적으로 알아들은 한서준이 기어이 입을 열어 지친 목소리를 토해내었다.

"···그거······ 끅, 놔··· 주시죠······."

한마디한마디를 이어갈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동반되어지는지, 고작 6개의 글자를 뱉어내고 폭포수 같은 식은땀을 얼굴은 물론, 온 몸의 땀샘이란 땀샘에서 죄다 흘려내던 그가, 영 미적지근한 움직임으로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남자에게 서둘러 다급한 손짓을 내보였다.

얼른 투약을 하라는 신호였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제가 한 말들을 못들으셨습니까? 이 이상으로 약물을 투약하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다해도 후유증이 어마어마할 거구요. 참아내는게 미래적인 측면에선 더 안전하단 소리입니다. 거기다, 지금까지 잘 버텨내지 않으셨습니까. 조금만 더 견디면 됩니다."

고통에 발버둥을 치는 한서준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가에 대한 의심은 전혀 돋아나지 않는 양, 남자는 이번에도 어딘가 연설 같은 말을 주루룩 뱉어내곤 굳게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지만 뭔가를 전달하고 싶은 사념이 살짝 그러한 표정에서 드러났기에,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유일한 왼쪽 눈을 오로지 그에게 고정시키고 있던 한서준은,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정확힌 귀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정연된 말들을 꼭 퍼즐 끼워넣기 식으로 바꿔내고 있는 머리를 어쩔 수 없이 끄덕여보이며,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전신을 마비시킨 고통이 이젠 시각의 영역마저 간섭을 하려는 듯, 쏟아져내리는 하얀 전등빛이 무슨 바늘비라도 된 것처럼 그의 눈을 콕콕 찔러대었던 탓이었다. 다행히 그 이상의 고통이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건조해진 눈이 가져다주는 뻑뻑함은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던 고통이 서서히 멎어가기 시작한 것은, 뒤늦게 들어온 최성민이 걱정이랍시고 의자에 앉아, 피곤한 표정으로 두 눈만 끔뻑거리다 저도 모르게 내뱉은 코골이 소리에 놀라 화들짝 잠에서 깨어날 때 쯤이었다. 그러니까, 약 1시간여 가량을 단 1초의 허비도 없이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이다 간신히 뭍으로 기어올라오게 되었단 것이었다.

쉴세없이 정신과 육체를 유린하던 통증은, 그간의 시간들이 모조리 거짓이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이 약간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맥없이 사라져버렸고,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뇟 속의 혼돈들은 전부 제 위치로 돌아가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정돈이 되었다. 마냥 어지러지고 뒤섞였던 남자의 말들과 상념들이, 이제서야 또렷하게 그의 머리에서 각자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진 것이다.

그 외의 수술 자국에서 우러나온 자극들이 여전히 축 쳐진 몸뚱아리를 아릿하게나마 건드려대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도 되는 극히 미세할 뿐인 통증이었다. 전신 수축과 이번의 고통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햇병아리 수준의 고통과 마찬가지였다. 허나 있는 듯 없는 듯한 고통이 오히려 피폐해진 정신을 일깨워주었고, 어떻게든 살아남았음을 직감하게 만들었다.

한 없이 멈춰질 때만 기다렸던 몇 분 전의 과거와는 달리, 이 미미한 고통이 있음으로써 제 생존 여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툭 던져본 것이었다.

답은 물론 간단하다. '생각' 이란 행위가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바로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증명서였다. 기본적으로 딱히 철학을 고찰하는 취미는 없었지만, 지금만큼은 데카르트가 품었던 의심이 어느정도 선까진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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