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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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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6.10.03 09:08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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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5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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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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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9,628

작성
17.02.10 11:21
조회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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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4쪽

동료

DUMMY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왼발의 고동은 점점 무뎌져갔다. 서서히 점멸되어가는 시야만큼이나 고무 같은 느낌을 전달해주던 왼발의 감각은 점차적으로 그의 의식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반면 조심조심 살을 잘라가던 남자의 손놀림은 한층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사기에 들어있던 정체불명의 약이 이 때 쯤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지, 다소 느리게만 보여졌던 손놀림이 순간적으로 빨라졌단 것이었다.

마치 일필휘지의 붓을 놀리듯, 매끄럽게 살을 잘라내는 은빛의 도신은 화려하고 기교스런, 그러나 결코 난봉적이지 않은 아름다운 춤사위를 선보였다.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유려한 곡선이 더도덜도말고 딱 정해진 부분에만 정교하게 그려질 뿐이란 소리였음이다.

흡사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만 같은 진한 먹선이 새하얀 뼈 사이에 아로새겨지며 흘러내렸다. 작은 돌조각들이 툭툭 다가와 부딪히는 것 같은 미묘한 진동은 바다에 빠진 빗방울처럼, 한 없이 그의 발등 속에 먹먹히 빠져들어갔고, 언뜻언뜻 전해져오는 뼈마디의 아릿한 감촉은 어쩐지 왼발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무슨 시체의 발을 잘라와 대신 붙인 듯한 착각을 일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서준은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왼발의 감각과 더불어, 스멀스멀 몸을 타고 올라오는 울연한 떨림이 어느덧 심장마저 집어삼켜버렸음을 문득 깨닫고는, 오로지 은빛 칼을 놀리는데에 여념이 없는 남자에게 황급히 말을 날리었다. 아니, 어떻게 알아챈건지, 귀신 같이 자신을 쳐다보며 유일하게 드러난 갈색의 눈동자를 반짝이는 남자의 행동에 그만 꽉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어딘지 묘한 압박감이 일순 그의 목젖을 쿡 찔러왔던 것이었다.

남자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 약효가 전신으로 퍼지고 있습니까? 방금 전 보다 떨림이 많이 멎었네요. 부작용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당신의 체질이 이 약의 효과을 증폭시킨 것일 뿐이니까요. 기본적인 효과는 그냥 부분 마취입니다. 단지 그 부분······ 그냥 전신으로 퍼져갔을 뿐······. 방금 전에도 ······지만, 아무 부작용도 ······요. 조금 졸리긴 할 ······니다. 아, 지금보니 벌써 그······ 온 것 같네요. 한숨 푹 주······ 죠. 일어날 때 쯤 되면, 치료는 모두 ······것 입니······. 평소대로 ······인다고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보단 ······나아지······. ···...많이 힘들······ 시 네요. 그럼 나중에 다시 뵙도록······."

시시각각 흐려지는 시야와 함께, 점점 멀어지는 심박자와, 점점 닫혀가는 두 귀로 흘러들어오는 남자의 말은, 비록 해석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잡음이 뒤섞인 시끄러운 노이즈로써, 그의 정신을 삽시간에 엉망진창으로 흔들어 놓았고, 삽시간에 지그재그의 흐름 속에 빠뜨려버렸으며, 삽시간에 아득히 날아가버리는 듯한 기분을 만들어내었으나, 한서준은 낙석 마냥 쏟아지는 '수면' 의 묵직함을 억지로 참아내며 버텨내었다. 어쩐지 조금 기이한 기분에, 혹은 그러한 생각에 쉬이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아무 이득도 없는 반항일 뿐이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양, 단어 그대로 '파도' 처럼 들이닥치는 난폭한 '수면' 의 결정체가 그의 머릿 속을 깊숙히 침투해 버린 탓이었다. '버텨낸다.' 라는 생각조차 미처 떠오르지 못하게 할 만큼, 강력하기 이를데 없는 '수면' 은 범람하는 강둑처럼 한순간에 그의 정신을 뒤덮어버렸고, 한순간에 그것을 끊어내버렸다.

'정신이 끊어진다.' 라는 감각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야말로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란 것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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