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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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잠에 빠져있었는지, 그가 처음 눈을 뜨고 본 것은 짙은 어둠이었다.
한치 앞도 구분이 안되는 싸늘한 장막에 청각마저 제 기능을 잃어버린 듯, 소름이 끼치는 고요한 정적만이 그를 반겨주는 유일한 문안객이었고, 당장 몸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칠흑의 안개는 마치 그가 죽기를 기다리는 조문객 같았다.
수십여명의 시커먼 형체들이 빈 공간 하나 없이 빽빽히 들어차, 일제히 이곳을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서준은 얼마안가 자신을 구속하던 무언가가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이어 슬슬 포효를 시작하는 양, 왼발에서 발생한 저릿저릿한 고통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나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참기 힘든 통증을 유발하기 시작하자, 그는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성을 터쳐내고 말았다.
왜 더벅머리의 남자가 그토록 '아프다.' 란 말을 강조하고, 몸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묶어놓았었는지 번쩍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통증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쌓여가는 지층의 퇴적물처럼 조금씩조금씩 그 무게가 가중되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정도 참아낼 수준은 되었던 처음과는 달리, 눈 앞을 핑핑 돌게 만드는 현재의 고통은 그로 하여금 격렬한 몸부림을 치게 만들었고, 좀처럼 내뱉지 않던 비명을 고래고래 내지르게 만들었다.
전신 수축의 고통과 엇비슷할 정도의 고통이 느닷없이 왼발에서, 나아가 온 몸에서 퍼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허나 뼈마디까지 파고드는 진득한 진동 덕에, 아릿하게 퍼져나가는 고통은 전신 수축의 경우보다 훨씬 아찔하게 뇌를 쿡쿡 찔러댔고, 더욱 선명한 감각적 각인을 뇌주름 하나하나에마다 또렷하게 새겨넣었다.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던 전신 수축의 고통과는 달리, 온 몸의 뼈가 죄다 으스러지고 재구성되는 것 같은 복합적인 통증은 도저히 '참아낸다.' 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가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아니, 아예 망치로 그러한 선택지 자체를 산산조각 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한서준은 연신 끅끅 흘러나오는 비명성을 참아내지 못했다. 여전히 사물의 대강적인 모습도 알아보기 힘든 새카만 어둠 속에서, 언제 굴러떨어진건지,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의 감촉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몸을 비비 꼬아대기만 할 따름이었다. 제 나름대로의 고통을 발산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지만, 딱히 효과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오, 생각보다 빨리 깨어나셨군요. 앞으로 한 두시간 쯤은 그대로 잠들어계실 줄 알았는데."
그리고 바로 그 때, 캄캄했던 어둠을 밀어내고 대신 자리를 차지한 밝은 빛이 일순 그의 눈가를 뒤덮었다.
따갑게 쏟아져내리는 하얀 빛에 순간적으로 고통을 잊은 그가 질끈 눈을 감아내는 사이, 여러가지의 잡음들로 엉망진창이 된 귓가에 돌연 '저벅저벅', 판에 박힌 듯한 발걸음 소리가 어렴풋이 흘러들어왔다. 동시에, 이젠 익숙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더벅머리 남자의 목소리가 조용히 그의 주변에 내려앉았다.
- 작가의말
4차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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