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Tiphareth 님의 서재입니다.

도플갱어의 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Tiphereth
작품등록일 :
2024.03.26 19:19
최근연재일 :
2024.05.09 12:15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35
추천수 :
0
글자수 :
194,695

작성
24.03.26 19:23
조회
40
추천
0
글자
12쪽

0. Prologue

DUMMY

0. Prologue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이를 마주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경험일 것이다.


양팔을 유령같은 이들에게 붙잡혀 결박당한 채 그 드문 경험을 직접 하고있는 시안의 눈엔 여전히 현 상황에 대한 불신, 그리고 불안감을 넘어선 공포가 가득 담겨있었다.


그럴 것이, 듣던 것과 조금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도플갱어를 만나면 둘 중 하나는 죽게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시안의 머리 바로 위를 힐끗 쳐다보고는 시선을 내려 눈을 마주한다. 거울이라도 보듯 그녀의 안경 위로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친다.


“소시안,”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딘가 익숙한 그 목소리로.


“혹시 최근에 네 친구한테 붉은색 알약을 받은 적이 있나?”


지현에 대한 언급에 입을 굳게 다물어 보지만 흔들리는 눈빛만은 어쩔 수 없었다.


“있군. 알약은 어디 있지?”


그제야 그들의 목적이 알약이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정체는 알 수 없다. 타인의 모습을 그저 접촉하는 것만으로 복제하는 이에, 유령같이 생긴 이들의 조합 따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소시안, 우린 그 알약을 회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건 인간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야.”


“어째서”


드디어 열린 시안의 입으로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이 돌아왔다.


“당신들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을 치료하지 않는 건가요?”


“치료? 무슨 치료?”


서로를 쳐다보던 이들. 그들 대표로 다시 시안의 모습을 한 이가 입을 열었다.


“아,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나 보군. 그건 치료약 따위가 아니야.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붉은 알약은 너희들의 영혼을 오염시켜 윤회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저주받은 물건이다.”


“설마,”


“시안. 그게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말했지 않나. 치료약 따위가 아니라 주의 뜻에 반하는 저주받은 알약이라고. 그래서 인간들에겐 허용되지 않은 것이라고.”


자신이 정색하는 모습을 어색하게 쳐다보던 시안이 입을 닫았다.


그녀 말대로 그저 확인한 것은 그 알약이 피로 변한다는 사실 정도였지, 그걸 치료약이니 뭐니 하며 생각한 것은 자신이었다.


“설마 너, 알약을 먹은 건 아니겠지?”


주눅들어 소심하게 고개를 젓는 시안.


“다행이군. 그렇다면 그 알약을 접한 기억만 지우면 된다. 혹시 너랑 네 친구 말고 그 알약을 접한 이가 있나?”


시안은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다행이로군. 기억을 지운다는 건 아프고 힘든 과정은 아니야, 그저 관련된 기억만 수정하고 몸 성히 돌려보내 줄 거니까. 다만 주의해서 진행해야 해서 며칠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인데, 그것도 내가 네 모습을 복제했으니 돌아와서도 문제는 없을 거야. 알겠지? 그러니 순순히 좀 받아들이자.”


이렇게 우악스럽게 잡아와 놓고 별 불편함 없이 돌려보내준다는 말이 미심쩍었던 시안이 머뭇거리자 그 기색을 눈치챈 이가 말했다.


“흠. 이건 어떨까? 받아들이겠다면 선물을 줄게.”


선물이라는 단어는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기에 시안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 뭐, 버틴다면 너랑 기억 치환하는 애만 고생하는 거긴 한데 말이지. 네가 빨리 돌아와야 나도 원래 내 생활로 돌아가거든? 우리도 나름 사정이 있다고. 남의 인생살이가 늘 유쾌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어딘가 씁쓸하고 자조 섞인 웃음이 나타났다 바로 사라졌다.


"어쨌든 그러려면 네가 기억의 치환을 저항 없이 잘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보자.”


거기까지 말한 여성은 그 자리에 선 채 지그시 눈을 감고 넘겨받은 육신의 유전정보 속에 새겨진 ‘기억’을 되돌려 보았다.


이어진 정적에 시안의 마음이 불편해갈 즈음 반쯤 개안한 그녀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 이게 좋겠다. 너 아버지를 잃은 것이 네 탓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눈이 커지는 시안.


“뭘, 눈을 치켜뜨고 그래. 네 과거가 어떻고 현재가 어땠는지 다 안다고 했잖아. 어떻게 살게 될지까지 다 알 수 있,”


“카사”


그녀를 복제한 이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다급히 그녀를 제지하자 도플갱어, 카사 역시 움찔했다.


“아니,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하자. 어차피 지울 거지만,”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당황을 지원 카사.


“어쨌든 아버지 잃은 것이 네 탓만은 아니라는 기억은 남겨둘게.”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시안의 입술이 잘게 떨려왔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 협조해 준다면 약속하지.”


“그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게,”


“그래. 너 때문이 아니야.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다. 운명이란 건 그냥 그런 것일 뿐이었으니까.”


“...”


“소시안, 인연이 얽혀있더라도 그 사람의 운명은 결국 그 사람의 것이야. 아버지의 죽음은 아버지의 운명이란 말이지. 착각하지마. 넌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운명에 영향을 미칠 만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야. "


착각이라. 주변에서 자신의 탓이 아니라 부정해도 자신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던 부담감이었다.


"설렁 그게 너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해도 마찬가지. 그건 결국 그의 운명이야. 아마 그게 그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도록 살아왔겠지. 그의 선택은 오롯이 그의 것이고, 그렇게 선택하도록 운명지어졌단 이야기야.”


아빠의 죽음은 자신의 탓이 아니다.


어머니, 지현, 삼촌들. 타인에게도 들어왔던 이야기건만, 무언가 달랐다.


어째서인지 처음보는, 그것도 지금 자신이 적대하고 있는 이의 말 한마디에 마음 한구석에 막아두었던 어떤 감정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또르륵.


감정의 격류가 시안의 볼을 따라 한 줄기 흐르더니 순식간에 그 양을 더해간다.


“감사, 흑, 감사합니다. 흑”


“야, 또 뭘 그리 울고 그래. 이씨. 이래서 내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카사.


한 발 물러서서 뒷머리를 긁적이는 카사를 대신해 옆에 서 있던 남성이 시안을 다독인다.


“그만큼 그 감정이 이 아이를 짓누르고 있었단 거겠죠. 그런만큼 영향을 줄 텐데, 괜찮겠어요, 카사?”


“그렇긴 한데, 진천, 나,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진천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데리고 가 줘. 아까 말한 거 기억 전달자한테 좀 전해주고.”


“예”


반쯤 투명해진 시안을 들쳐맨 이가 대표로 답하곤 그와 함께 진천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와, 씨. 이 아이, 비밀이고 뭐고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스타일이네. 입조심 해야겠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진천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카사,괜찮겠습니까?”


“뭐? 기억? 아까 표정 못 봤어? 우는 것도? 이야, 진천, 안 그럴 것 같이 생겼는데, 아무리 우리 임무라지만 때때론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다니까.”


“확인차 여쭌 겁니다. 확인차.”


“뭐. 위험도를 생각하면 다 지우는 게 원칙이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무의식 깊은 속에 한 줄기 기억을 남겨주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틀어지면 다시 잡으러 가야지. 그건 쟤 복이고.”


“조금 걱정은 되지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것만 해도 저 아이 입장에서는 훨씬 편해질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시말서는 카사님이 쓰시는 거니까요.”


“그렇지. 뭐, 더 귀찮게 하지 않았으니 그 정도는 해 줘도 되겠지. 그런데 진천, 어린 애 다루듯 그러지 좀 말라고!”


진천은 가벼이 미소 지으며 살포시 그녀를 안아 카사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한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겁니다. 카사님을.”


“또, 또 입에 발린 소리. 그나저나 이번에도 가슴까지 닿는구나. 키가 또 줄었네.”


“아니, 제가 키 재는 기구도 아니고 맨날. 그래도 이건 나름대로 폭 들어와서 좋은걸요?”


“뭐야? 이런 취향이야?”


“아, 그건 아니고요,”


“장난이야. 언제나 바른 소리 고마워. 옆에 있어줘서 고맙고. 넌 나 떠나지 마.”


진천이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그래야지요. 아무래도 아까 폭발도 그렇고 이번 일,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요. 딱 붙어있을 겁니다.”


스윽. 그녀의 입꼬리가 살포시 올라갔다.



=====



그들이 지나쳐 간 어느 5층 건물의 옥상.


시안을 들쳐메고 어둠 속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건물 위에서 지켜보던 남성이 무전기 너머로 질문을 던졌다.


“시영, 어때? 꼬리가 있나?”


- 아니요 없는 것 같습니다.


“소연, 네 쪽은?”


- 미행이나 추적은 따로 붙지 않았습니다.


“함정은 아니란 소리군. 그럼 가자.”


- 크리스님 이쪽도,


- 진수, 묻지 않으셨다.


“그 쪽은 이미 확인하였다. 가자.”


- 예


- 위대한 해방을 위하여


“또 쓸데 없는 소리.”


휙.


바닥으로 사뿐히 뛰어내려 앞선 이들을 쫒는 그의 뒤로 세 명의 인영이 따라 붙었다.


“시영, 지금 잡혀가는 이가 초월자인게 확실해?”


“그게, 조금 애매한 게.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헤일로가 없었는데, 잡혀갔다 오더니 있었습니다.”


“뭐라는 거야.”


“아니, 그게 사실인데,”


“쉿 목소리가 크다. 함정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우니 주변을 잘 살피도록”


"네!"


날을 세우고 달리는 동안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한참을 뒤따르던 일행. 가장 앞서서 전진하던 시영이 다급히 멈춰서며 왼팔을 들어올렸다.


미리 정해둔 정지 신호에 일행이 다급히 멈춰섰다.


틱, 하필 진수의 발이 꼬이며 옆에 있던 무언가를 걷어찼고,


탕, 그게 또 주차된 차를 때리며 소리를 낸다.


어이 없는 실책에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진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문제는 일행의 시선만 끈 게 아니라는 것.


빵. 빵. 빵.


충격에 차량이 경적을 울렸고 목표물들의 시선 역시 이쪽을 향했다.


“아놔, 망했다.”


일행의 ‘눈’ 역할을 담당하던 시영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들은 주저없이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쫓아!”


쉬익. 달밤 아래 추격전이 재개되었다.



=====



“카사, 애들 쫓기고 있다는데요?”


추격자의 존재는 시안이 차고 있던 수호부의 잔해를 찾던 진천과 카사에게도 즉각 전달되었다.


“누구? 일단 가자!”


“해방 같답니다.”


“해방? 현자의 돌! 이런. 설마 했는데. 일단 감시팀도 다 합류하라 해!”


“넵.”


주변 수색을 중단하고 바로 일행이 내려간 방향으로 뛰어 내려가던 두 사람의 뒤로 바람이 세차게 분다.



=====



그렇게 다급히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 사람의 온기가 사라질 즈음이 되어서 또 다른 인형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여기 어디쯤인데.”


다부진 체격의 남성이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잡초 속에서 작은 염주 알 하나를 주워 올리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바닥에 쓸린 흔적 등을 확인하곤 시안이 처음 잡혔던 그 장소를 찾아냈다.


“반시진 정도 이전, 여기서 수호부가 작동했다. 반탄지기가 작동한 흔적으로 봐선 주술이든 수호자든 뭔가 위험한 일이 있었다는 건데, 어디로 간 거지?”


중얼거리며 바닥의 흔적을 쫓는 남자.


“비형 행님, 헥, 같이 좀, 헥헥, 갑시다.”


“수호부가 방어주술을 가동했다. 저주술보다는 수호자의 소행으로 보이는군.”


“수호자가 왜요? 은신의 술법도 걸려있지 않습니까?”


“만나보면 알겠지. 일단 이쪽으로 간 것 같다. 거리는 적어도 반각 이상. 늦을 수 있으니, 빨리.”


“네엡!”


바닥의 흔적을 찾던 비형이 동행에게 카사 등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키며 먼저 몸을 날렸고, 같이 온 이는 숨을 채 고르지도 못한 채 그 뒤로 따라붙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플갱어의 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7. 초월 한국본부 (3) 24.05.09 1 0 15쪽
33 7. 초월 한국본부 (2) 24.04.29 2 0 14쪽
32 7. 초월 한국본부(1) 24.04.25 3 0 12쪽
31 Interlude 03. 존재의 이유 24.04.24 5 0 9쪽
30 6. 또 다른 길, 초월(4) 24.04.22 5 0 12쪽
29 6. 또 다른 길, 초월(3) 24.04.19 5 0 12쪽
28 6. 또 다른 길, 초월(2) 24.04.18 5 0 17쪽
27 6. 또 다른 길, 초월(1) 24.04.17 4 0 11쪽
26 5. 진실된 세상에서 (4) 24.04.15 5 0 14쪽
25 5. 진실된 세상에서(3) 24.04.12 6 0 12쪽
24 5. 진실된 세상에서 (2) 24.04.11 6 0 14쪽
23 5. 진실된 세상에서 (1) 24.04.09 7 0 16쪽
22 5. 진실된 세상에서 (0) 24.04.08 6 0 15쪽
21 Interlude 02. 추적 24.04.06 6 0 14쪽
20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5) 24.04.04 6 0 14쪽
19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4) 24.04.03 6 0 13쪽
18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3) 24.04.02 6 0 12쪽
17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2) 24.04.01 6 0 14쪽
16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1) 24.04.01 6 0 15쪽
15 4. 자유를 꿈꾸는 이들 (0) 24.03.31 6 0 11쪽
14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5) 24.03.29 6 0 12쪽
13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4) 24.03.29 4 0 11쪽
12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3) 24.03.29 5 0 12쪽
11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2) 24.03.29 3 0 11쪽
10 3.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 (1) 24.03.28 4 0 12쪽
9 Interlude 01. 붉은 알약 24.03.28 5 0 11쪽
8 2. 그 날 있었던 일은(4) 24.03.28 4 0 11쪽
7 2. 그 날 있었던 일은(3) 24.03.27 7 0 11쪽
6 2. 그 날 있었던 일은(2) 24.03.27 5 0 12쪽
5 2. 그 날 있었던 일은(1) 24.03.27 9 0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